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51)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51화(51/125)
#51
“어? 룩스의 뜻을 알아?”
나는 깜짝 놀랐다.
그간 룩스의 이름을 듣고 고대어라는 걸 맞힌 사람은 없으니까.
‘알면서 굳이 아는 척 안 한 걸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이렇게 말한 사람은 테오가 처음이었다.
특히 테오의 나이와 환경을 생각해 보면 더 놀라웠다.
평민 고아가 고대어를 알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일반적으로 문맹이 많은 걸 생각하면 꽤 놀라웠다.
마리 언니와 나는 보육원 원장이 특별히 교육한 거라 예외지만.
“예전에 어쩌다 보니 들어 알게 됐어요. 사실 고대어는 잘 모르는데 아는 단어가 나와서 말해 봤어요. 죄송해요.”
“아냐. 죄송할 게 뭐가 있어.”
진심이었다.
나도 몇 개 주워들어 아는 것뿐이었으니까.
“그런데 이거 잘라 본 적 있어? 어떻게 자르는지 알아?”
“해 본 적 없어서…….”
내가 가위로 프테리디움이 있는 화단을 가리키자 테오가 고개를 저었다.
“어렵지 않아. 이렇게 시든 부분만 자르면 돼.”
나는 시들어 끝이 돌돌 말린 부분을 싹둑 잘라 냈다.
“어떻게 이런 걸 알아요?”
“여기에 있을 때 많이 해서 그래. 프테리디움은 꽤 유용한 약초니까 관리법을 알아 두면 좋을 거야.”
“그렇구나.”
테오가 신기하다는 듯 프테리디움 이파리를 건드렸다. 그리고 전지가위를 들어 잎을 자른다.
“이렇게 하면 되나요?”
“응, 맞아.”
몇 번 봐 준 후, 내게 주어진 일을 하기 위해 집중해 시든 잎줄기를 잘라 내던 때였다.
무릎 위에 있던 룩스가 말했다.
―베리, 나 질문! 인간들은 자유롭게 모습을 바꿀 수 있어, 찍?
‘응?’
이게 무슨 말이지?
나는 가위질을 멈췄다.
‘모습을 바꿔? 옷 갈아입는 걸 얘기하는 거야?’
―그거 말고 생긴 거, 찍!
‘당연히 못 바꾸……. 아, 마법사면 바꿀 수 있겠다.’
이전에 아빠가 모습을 바꿨던 게 떠오른다.
하지만 그건 아빠가 뛰어난 마법사라서 가능했던 게 아닐까 싶은데.
―마법사, 찍?
‘그런 게 있어. 나도 잘 몰라서 설명해 주긴 어려워. 미안.’
―이해해 줄게. 난 마음씨가 아주 넓은 생쥐니까, 찍.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궁금해졌어?’
―저 테……. 뭐였지? 까먹었다, 찍!
‘테오?’
―맞아, 찍!
룩스가 내 무릎 위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쟤한테서 전에 만난 인간이랑 같은 냄새 나, 찍.
‘전에 만난 인간? 누구?’
―사탕 먹으러 갔다가 만났던 인간, 찍!
전에 사탕 가게에 갔을 때 얘기하는 건가?
그런데 그때 만난 사람이 있었나?
―기억 안 나? 사탕 가게에 있다가 갑자기 뛰었잖아, 찍!
내가 갑자기 뛰었던 때라면…….
‘다른 사람을 마리 언니로 착각했던 때를 말하는 거야?’
―몰라. 네가 웬 여자를 붙잡으니까 어떤 남자애가 짠 나타났어, 찍.
맞네. 그때.
이미 몇 달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제법 생생했다.
사탕 가게의 유리창 너머로 보인 여자를 마리 언니라 여기고 무작정 따라갔었지.
그 뒤에 나타난 남자애가 자기 하녀에게 무슨 볼일이냐며 잔뜩 경계했고.
―어쨌든 그 남자애랑 쟤랑 냄새가 같아, 찍!
‘비슷한 냄새인 거 아니고?’
―내 코를 못 믿는 거야? 똑같아, 찍!
그렇게 말해도…….
나는 힐끔 테오를 바라봤다.
이전에 본 남자애의 생김새가 또렷하게 생각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제법 눈에 띄는 외양이었던 것만은 확실했다.
반면에 테오는 조금 전까지 마주 보고 대화했는데도 기억이 안 날 만큼 흐릿한 인상이었다.
인상 외에 머리나 눈 색도 달랐다.
그 애는 테오처럼 회색 머리에 회색 눈이 아니었으니까.
‘룩스가 착각한 거겠지.’
생각해 보면 룩스의 코는 만능이 아니었다.
이전에 감자 스튜에 수면제가 들어간 것도 모르고 맛있게 먹었으니까.
‘무엇보다 테오는 내 또래의 어린 남자아이인걸.’
저 나이에 모습을 바꿀 수 있는 마법사라면 이 보육원에 오지 않았겠지.
그러다 문득 이전에 본 남자아이의 눈 색이 떠올랐다.
“금색 눈, 같았는데.”
응. 맞는 것 같다. 금색이라서 예쁘다고 생각했으니까.
조금 전에는 하나도 안 떠오르더니 이렇게 갑자기 기억날 줄이야.
내 기억력이지만 신기해서 감탄하던 때였다.
“방금……?”
테오의 눈이 커졌다.
‘왜 저렇게 놀란 얼굴이지?’
뒷말이 더 나올 줄 알고 기다리니 테오가 손에 들고 있던 프테리디움 줄기를 내밀었다.
“멀쩡한 걸 잘라서요.”
그 말대로였다. 테오의 손에 생생한 자줏빛의 잎줄기가 들려 있었다.
“시든 걸 자르려고 했는데 같이 잘렸어요.”
저거 때문에 놀랐나 보다.
“괜찮아. 한두 개 정도는.”
“정말 괜찮나요?”
“응. 실수한다고 큰일이 생기는 것도 아닌걸. 게다가 오늘 처음 해 보는 거잖아. 실수할 수 있어.”
“……전 실수하면 안 돼요.”
“응?”
뜻밖의 말에 나는 당황했다.
마리 언니가 그렇게 말했나? 언니는 그럴 사람이 아닌데.
“누가 그래?”
“…….”
테오는 대답하는 대신 시선을 회피했다.
“여기 오기 전에 들은 거야?”
조금 망설인 끝에 테오가 고개를 끄덕인다.
순간, 이전 기억들이 떠오른다.
죽은 원장과 말롱 부인이 내게 그렇게 강요했는데.
‘얘도 그랬던 걸까.’
동질감이 더욱 짙어졌다.
“괜찮아. 지금은 여기에 왔잖아. 마리 언니는 착해서 네게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거야.”
“…….”
“그러니까 괜찮아.”
나는 테오에게 잘라 낸 줄기를 담으라며 바구니를 내밀었다.
“아가씨는 상냥하네요.”
테오가 자른 잎줄기를 바구니에 넣으며 말했다.
“내가? 아닐걸. 마리 언니라면 몰라도.”
나는 다시 멈췄던 가위질을 하기 시작했다.
이 뒤로 테오가 내게 말을 거는 일은 없었다.
* * *
베로니카의 옆에서 죽은 잎줄기를 잘라 내는 테오의 표정은 한껏 굳어 있었다.
줄곧 베로니카에게 보인 표정과는 사뭇 다른, 아이답지 않게 냉담한 얼굴이었다.
‘고작 이런 실수를 하다니.’
사실 오늘 실수는 이게 처음이 아니었다. 이미 아까 여러 번 했다.
이곳의 원장이라는 여자에게 티 나게 능력을 걸고, 생쥐의 이름이 고대어라는 걸 아는 척해 버렸으니.
그래도 전자는 베로니카에게 접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둘러댈 수 있었다.
후자는……. 방심했다는 것 외엔 변명할 여지가 없지만.
식물을 관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테오는 모든 걸 잘했다.
설령 처음 해 보는 일이라 할지라도, 항상 다른 이들보다 뛰어났다.
지금처럼 식물의 잎줄기를 자르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실수한 건, 베로니카가 읊조린 말 때문이었다.
‘금색 눈, 같았는데.’
자신을 보며 한 말.
원래 제 눈 색을 정확히 집어낸 말에 그만 실수했다.
‘설마 세뇌가 안 통했나?’
테오라는 이름도, 외형도 모두 세뇌로 인한 것이었다.
능력을 풀고 가문으로 돌아간다면 남은 사람들은 “테오? 그런 애가 있었나?”라고 반응할 수 있게끔.
그동안 능력을 썼을 때,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던 만큼 당혹스러웠다.
자신도 모르게 베로니카를 붙잡고 어떻게 알아본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을 정도로.
‘알아봤을 리 없어. 우연이었겠지.’
곧 평정심을 되찾고 잘 둘러댈 수 있었지만…….
‘괜찮아. 한두 개 정도는.’
‘실수할 수 있어.’
자꾸 베로니카가 해 준 말이 머릿속을 떠돌아다녔다.
실수해도 된다고?
이상한 소리였다. 어디에서도 들어 본 적 없는.
태어난 순간부터 들어온 소리는 ‘실수해서는 안 된다’였으니.
‘네 능력이면 뭐든 할 수 있어. 고작 불새 하나로 특별하다 믿는 저 황실도 치워 버릴 수 있을 거다.’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 손은 꽤 굳세었다.
지금보다 더 어릴 때는 이 손길이 아프다고 여기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익숙했다. 제 부친이 엄한 얼굴로 늘 자신을 속박하는 것도.
‘아파 죽을 거 같아도 견뎌라. 결국, 네게 도움이 될 테니.’
아무렇지 않게 힘든 일을 강요하고, 정을 붙일 만한 주변인도 다 치워 없앴다.
그렇게 남은 건 오직 그의 명령에 복종하는 수족들뿐이었다.
‘실수는 무식하고 열등한 것들이나 하는 것이지.’
‘미하엘 실베스터.’
‘너는 우월하다. 그러니 천한 것들처럼 실수하는 건 용납하지 않겠다.’
부친이 자신에게 가하는 것이 일반적인 게 아닌 건 안다.
‘설마 실베스터면서 이 정도도 못 견디겠다는 건 아니겠지?’
‘……견딜 수, 있습니다.’
괴롭고 힘들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훈련을 거부한 제 형제들이 어떤 말로를 맞이했는지 알아서는 아니었다.
그저, 부친의 관심을 원했다. 인정받기를 원했다.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제 부친이 흡족해할 때까지.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지. 해낼 줄 알았다. 넌 내가 길러 낸 걸작이니까.’
정작 인정을 받았을 때는 기쁘지 않았다.
이상하지. 분명 좋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렇게 느낀다 한들 달라지는 건 없었다.
뭘 해야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으니까.
지금도 그렇다. 결국, 제 발로 가문으로 돌아왔다.
“다녀왔습니다, 아버지.”
테오, 아니, 미하엘은 중년의 남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이는 보육원에 있을 때 남들에게 보이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옷을 갈아입어 행색도 달랐지만, 무엇보다 외관이 달랐다.
흐리멍덩하던 테오의 얼굴과 달리 미하엘의 얼굴은 한번 보면 한동안 잊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러나 아이를 보는 실베스터 공작의 시선은 딱딱했다.
“그래. 살펴보니 어땠지?”
“특별한 건 없었습니다. 한 달 동안 벨로크 대공이 방문한 적도 없었고요.”
“네 잠입을 눈치챘을 린 없을 테고……. 이상하군. 어느 정도 눈치채서 브리엔츠를 사들인 줄 알았는데. 다른 특이 사항은?”
“대공의 딸을 만났어요.”
“그리고?”
“나약하더군요. 신경 쓸 가치는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