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53)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53화(53/125)
#53
놀라 문을 응시하는데, 기다란 문손잡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슈가가 보인다.
―열었어!
―대단해! 역시 누님이야, 찍!
아니, 어떻게 열었지?
“문 열려고 들어간 거야?”
―응! 열어야 한다며! 매달리니까 열렸어!
슈가가 팔 위로 잽싸게 날아왔다. 그리고 언제 봐도 반짝이는 까만 눈망울로 날 본다.
‘먼지투성이가 됐네.’
구멍에 들어갔다가 나와서인지 슈가의 털에는 먼지가 붙어 있었다.
그래도 날 도와주려고 한 거니 뭐라 하기도 그렇고…….
나는 손끝으로 슈가의 등을 살살 긁으며 말했다.
“고마워.”
―뭘 이 정도로!
―으앗! 누님, 몸 털지 마! 먼지 날리잖아, 찍!
―이 정도 먼지가 어때서? 그리고 너도 많이 묻히고 다녔을 거 아니야?
―난 먼지 싫어해, 찍!
룩스가 기겁하는 동안 나는 반지를 주웠다.
‘다행이다.’
잃어버리지 않아서.
반지는 되찾았지만, 줄이 끊어진 관계로 나는 반지를 손가락에 꼈다.
그러자 조금 헐렁하던 반지가 내 손가락 굵기에 딱 맞춰 줄어들었다.
‘정말 크기가 맞춰지네.’
반지를 찾았으니 문을 닫으려던 때였다.
“어?”
무심코 방 안을 본 나는 깜짝 놀랐다.
‘가구들이 왜 저러지?’
마치 불에 탄 것처럼 방 안에 있는 가구들은 군데군데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도저히 대공저에 있을 만한 가구는 아니라서 나도 모르게 방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정말 탔네…….”
가까이서 보니 가구의 몰골은 더 처참했다.
게다가 꽤 오랫동안 방 안에 두었는지 가구 위로 희뿌연 먼지가 자욱했다.
‘여기서 불이 났었나? 하지만 벽은 멀쩡한데.’
만약 불이 났다면 이 방 어딘가에도 탄 흔적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벽지는 말끔했다. 바닥도 마찬가지였다. 불이 난 곳이라고는 도저히 상상되지 않을 만큼.
‘일부러 가구만 옮긴 것 같은데……. 왜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절로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조금 더 방 안을 둘러보니 의외의 가구가 눈에 띄었다.
“아기 침대잖아?”
자세히 보니 침대뿐만 아니라 모빌과 아기들이 앉을 법한 의자며 인형들도 많았다. 대부분 성치 않았지만.
‘내 건 아닌 거 같은데.’
내가 쓰기엔 하나같이 앙증맞고 작았다.
갓 태어난 아기를 위한 물품 같다고나 할까?
그렇게 가구들을 살피는데 흰 천에 뒤덮인 무언가가 보였다.
‘이건 뭐지?’
홀린 듯 슬쩍 천을 들자 허공에 먼지가 피어올랐다.
“윽, 먼지!”
동시에 콜록콜록하고 기침이 터졌다.
‘도대체 얼마나 오래 내버려 둔 거야?’
팔을 들어 소매로 코와 입을 막은 나는 다른 손으로 조금 신경질적으로 주변을 휘저었다.
그리고 천 아래를 확인했다.
“우와!”
천에 덮여 있던 것은 직사각형 형태의 액자였다.
내 키와 비등할 정도로 아주 커다랗고, 모서리 일부가 그을린 액자.
하지만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따로 있었다.
액자 안에 담긴 어느 여자의 초상화였다.
“예쁘다…….”
청초한 인상의 여자는 대단한 미인이었다. 설핏 웃고 있는 얇은 입술 선이 여자의 분위기를 더욱 온화하게 만들었다.
―누구야?
“나도 모르겠어. 잠깐만. 여기 뭔가 쓰여 있는 것 같아.”
나는 액자에 꽂혀 있는 작은 종잇조각을 들었다.
“레일라 이렌?”
―그게 저 인간의 이름이야?
“그런 것 같아.”
설마 관련도 없는 걸 같이 두진 않았을 테니까.
종잇조각을 원래 자리로 돌려 놓는데 룩스가 말했다.
―저 여자랑 베리랑 눈 색 똑같아, 찍!
“어? 정말이네.”
룩스의 말에 다시 초상화를 보니 정말 그랬다.
하지만 그 순간의 깨달음이 전부였다.
누구인지 모르는 미인과 눈 색이 같다 한들 큰 감흥이 있을 리가.
그런데 전에 이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내 눈이 누군가와 닮았다고…….
“으음.”
생각날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누구한테서 그런 말을 들었더라?
―어! 인간 온다!
뭐? 문 열려 있을 텐데?
당황한 나는 문을 확인했다. 계속 열어 둔 줄 알았던 문은 다행히 닫혀 있었다.
나는 급히 움직이는 대신 최대한 숨을 죽이며 방구석으로 숨어들었다.
‘들어오진 않겠지?’
잠겨 있었던 데다, 먼지가 쌓일 정도로 사람의 출입이 없던 방이니 그냥 지나갈 확률이 높았다.
아는데도 긴장되면서 가슴이 콩닥거렸다.
사실 들켜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이 방에 들어온 게 큰 잘못은 아닐 테니까.
그런데 왜 왜 자꾸 마치 하면 안 되는 짓을 한 것처럼 긴장되는 거지? 잠겨 있던 방에 들어와서 그런가?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진다.
나는 숨을 꾹 참고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다행히도 발걸음 소리의 주인은 그냥 지나쳐 갔다.
멀어지는 소리에 나는 작게 안도했다.
‘누가 또 오기 전에 어서 나가야지.’
나는 초상화 액자 위에 천을 덮어 원래대로 돌려 놓았다. 그리고 서둘러 방을 빠져나왔다.
* * *
방문을 닫을 때까지 사람은 오지 않았고, 날 본 사람도 없었다.
‘좋아. 완벽한 은신이었어.’
나는 흡족해하며 우선 내 방으로 돌아왔다.
샤비에게 먼지투성이가 된 슈가를 씻겨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덩달아 룩스도 목욕을 하게 되었다. 슈가의 옆에 있다가 먼지가 옮겨 붙은 탓이었다.
그렇게 둘을 맡긴 나는 다시 집사를 찾아갔다.
똑똑―.
문을 두드리니 안에서 들어오라는 말이 들린다.
슬그머니 문을 열자 집사가 벌떡 일어났다.
“베로니카 아가씨?”
앗, 놀랐나 보네.
“여긴 어떻게……. 혼자 오신 겁니까?”
“응.”
무심코 대답한 나는 집사의 표정을 보고는 재빨리 덧붙였다.
“샤비가 따라오려고 했는데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어. 이곳 정도는 혼자 올 수 있으니까.”
“그렇군요. 하긴, 아가씨도 많이 크셨지요.”
애 달래는 듯한 어투에 살짝 기분이 묘해진다.
“원래도 할 수 있었어.”
“예. 그럼요.”
조금 불만을 담아 확고하게 말했지만, 집사는 사람 좋은 얼굴로 빙그레 웃기만 했다.
보아하니 귀여운 어린아이 보는 눈빛이다.
최대한 진지하게 말했는데 역시 어린아이의 호기로 보였나.
“그런데 어떤 일로 절 찾아오셨습니까?”
“어, 그러니까……. 아! 아빠의 생일을 알고 싶어서!”
순간, 기억이 안 나서 당황했으나 금방 떠오른 이유에 나는 안도하며 덧붙였다.
“샤비한테 물어보니까 모른다길래. 집사는 알고 있을 것 같아서 왔어.”
“그러셨군요. 죄송하지만, 전하의 생신은 이미 지났습니다.”
뭐?
“정말 지났어? 언제였는데?”
“9월 27일이었으니……. 지난주군요.”
“말도 안 돼! 아빠의 생일 연회는 열린 적 없잖아? 그리고 난 생일인 줄도 몰랐는걸?”
“모르시는 게 당연합니다. 전하께선 원래 생신을 안 챙기시거든요.”
나는 꽤 당황했다.
“안 챙겨? 하지만 내 생일은 챙겨 줬잖아?”
“아가씨의 생일이었으니까요.”
머릿속에 물음표가 만개했다.
그리고 이런 심정은 얼굴에 그대로 나타났다. 자꾸만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으니까.
내가 표정 관리를 못 하자 집사도 어색하게 웃었다.
“전하께서 생신을 안 챙기시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하지만 아가씨는 축하받아야 마땅하니 챙기신 거고요.”
“축하받아야 하는 건 아빠도 마찬가지 아니야? 아빠는 왜 생일을 안 챙겨?”
“그건…….”
집사가 몹시 망설이며 입술을 여닫았다.
표정을 보니 말해도 될지 확신이 없는 눈치다.
“……죄송합니다. 제가 말씀드릴 사안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아빠한테 직접 물어봐야겠네.”
“예? 아, 안 됩니다, 아가씨.”
집사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를 만류했다.
“절대! 절대, 안 됩니다.”
“안 돼?”
“차라리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단, 전하께 제가 알려 드렸단 건 비밀입니다. 약속해 주시겠습니까?”
“응, 약속할게.”
내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집사도 같이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그렇게 꼭꼭 약속한 뒤에야 집사가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 생신을 안 챙기시는 건…….”
“…….”
“레일라 님 때문입니다.”
갑자기 튀어나온 이름은 상당히 익숙했다.
‘아까 본 종잇조각에 쓰여 있던 이름이랑 똑같네.’
불에 탄 가구들과 정체 모를 여자의 초상화를 떠올린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게 누구야?”
“전하의 전 부인이십니다. 예전에 돌아가셨습니다만, 레일라 님의 기일과 전하의 생신이 같아 안 챙기고 계십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 떨렸다. 아빠의 전 부인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있어서였다.
‘분명 아빠가 죽였다고 했지.’
그래서 폐위되었고, 자연스레 지금 황제가 황위에 올랐다.
설마 아빠의 생일날에 그런 일이 벌어진 줄은 몰랐지만.
잊고 있었던 아빠에 대한 악행과 소문들이 속속 떠오른다.
‘그런데 죽인 사람의 기일 때문에 생일을 안 챙기나?’
아까 본 초상화를 떠올리니 더욱 인지 부조화가 온다.
‘아니면 이름만 같고 다른 사람인가?’
나는 고민 끝에 물었다.
“혹시 초상화 있어?”
“초상화라 하심은?”
“아빠의 전 부인이라는 사람 초상화!”
“……아니요. 없습니다.”
뭐지? 방금 머뭇거린 것 같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