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56)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56화(56/125)
#56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아빠가 나와 함께 식사하거나 책을 읽어 주러 오는 일은 없었다.
다시 일이 생겨 나갔다고 집사가 전해 줬다.
‘돌아오자마자 일이라니.’
이상한 건 아니다.
그러니까, 우리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더라면.
‘내가 꼴 보기 싫은 거겠지.’
이쯤 되니 첼시와 샤비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아빠를 위해 만들어 둔 화관을 슬그머니 다른 곳으로 치워 둔 걸 보면.
‘차라리 잘됐어.’
나도 아빠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던 참이다.
막상 만나면 전처럼 억지로 웃기야 하겠지만……. 내키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
아빠가 알아서 피하니 다행이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원하던 바잖아?’
맨 처음 여기에 왔을 때 가졌던 희망 사항이지만, 어쨌든.
가슴이 욱신거린다. 분명 잘된 일인데, 이런 느낌이 들다니.
아무래도 내 생각보다 아빠에게 정을 많이 준 모양이다.
‘그래도 이럴 때가 아니지.’
나는 며칠간 생각했던 걸 시행하기로 했다.
종종 생각은 했지만 제대로 알아보려 하지 않았던 일을.
“첼시, 샤비.”
“네, 아가씨.”
“서점에 가고 싶은데, 나가도 될까?”
“집사님께 알리면 될 것 같아요. 페리드 경도 데려가고요. 그런데 어떤 책을 사시려고요?”
“그냥 책이 많은 곳에 가고 싶어.”
샤비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내게 말했다.
“그런 이유라면 대공가의 도서관을 이용하시는 게 더 좋지 않나요?”
“도서관이 있어? 서고 정도가 아니라?”
“네. 건물 자체가 따로 있을 정도로 아주 크답니다.”
“맞아요. 다른 귀족 가문에는 없는 게 일반적이지만, 대공저는 크고 넓으니까요.”
내가 깜짝 놀라 묻자 샤비가 설핏 웃으며 답했고, 첼시가 덧붙였다.
하긴, 이 정도로 큰 곳이라면 도서관이 따로 있을 법도 하지.
그리고 여긴 벨로크 이전에 드리텐이었다니까…….
“도서관 크다고 했지? 책도 엄청 많겠네?”
“이용해본 적은 없지만 웬만한 책은 다 있다고 들었어요.”
“그럼 도서관에 갈래.”
외출하고 싶어 꺼낸 얘기가 아니니 내가 찾는 책만 있다면 어디든 상관없겠지.
첼시가 페리드 경을 데려오겠다며 나갔다.
룩스와 슈가를 데려가려고 바구니 쪽을 바라보니 따사로운 햇볕 아래 몸을 동글게 말고 자는 둘이 보인다.
‘혼자 다녀와야겠다.’
* * *
도서관은 내가 처음 와 보는 곳에 있었다.
‘진짜 넓다…….’
초반에 그렇게 뽈뽈대며 돌아다녔는데 아직도 내가 모르는 곳이 많다니.
그리고 샤비의 말대로 도서관은 아주 크고 책도 많았다.
이 정도면 없는 책을 찾는 게 더 빠르겠는데?
“그런데 어떤 책을 읽으시려고요?”
“동물과 관련된 거!”
“날다람쥐님과 생쥐님 때문인가요?”
“맞아.”
정확히는 동물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거지만, 나는 적당히 둘러댔다.
경험상 이런 건 숨기는 게 좋았다.
“사서에게 물어볼게요.”
잠시 뒤 분류 번호를 알아 온 첼시가 나를 이끌었다.
“아까 사서가 알려 준 대로라면 여기부터 저 끝까지 다 동물과 관련된 책이네요.”
“쥐와 관련된 책은 이쪽 같아요! 여기부터 보시겠어요?”
“응, 한번 볼게.”
내가 책장 사이로 들어서자 샤비와 첼시가 천천히 고르라며 내 뒤쪽으로 물러섰다.
‘의심받지 않게 몇 권은 관련된 거로 고르고, 몇 권만 능력과 관련된 걸 찾자.’
나는 부지런히 서가를 오가며 책을 골라냈다.
그러나 몇 권은 아무리 발돋움해도 손이 닿지 않을 정도로 높은 곳에 꽂혀 있었다.
‘안 닿잖아?’
이제는 익숙해졌다 싶다가도 이런 일이 닥치면 당혹스럽다.
“도와드릴까요?”
내가 끙끙거리는 걸 봐서인지 첼시가 조심스레 물어 왔다.
나는 망설이다 그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어떤 책을 꺼내 드려요?”
“위에서 두 번째 칸에 있는 거! 《쥐들과 대화하는 자세》!”
제목을 말하고 나니 불안해졌지만, 애써 마음을 다스렸다.
‘괜찮아. 책을 좀 읽는다고 내게 이런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진 못할 거야.’
설마 눈치채겠어?
“이런 책에 관심 있으신 줄은 몰랐네요. 아가씨는 이미 쥐님들과 대화하고 있는데 말이죠.”
어?
순간 몸이 뻣뻣해졌다. 나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으려던 참이었다.
“재미없어, 첼시.”
“으음, 이 농담이 실패할 줄은 몰랐네. 죄송해요, 아가씨. 재미없으셨죠.”
샤비의 핀잔에 첼시가 어색하게 웃으며 내 눈치를 봤다.
‘아, 농담이었구나.’
뒤늦게 나는 상황을 파악했다.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분위기가 이상해지지 않도록 나는 첼시에게 “재밌었어.”라고 말했다.
이런 내 대답에도 첼시는 무안했던 모양이다. 빨리 책을 꺼내 주겠다고 허둥거리며 책장으로 손을 뻗는 걸 보니.
그러나 첼시는 내가 말한 책을 꺼내지 못했다. 아무리 발돋움해도 마찬가지였다.
첼시라면 쉽게 꺼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안 닿아?”
“죄송해요. 책장이 생각보다 높네요. 아무래도 사다리를 가져와야겠…….”
“여기 있습니다.”
불쑥 첼시의 옆으로 다가선 페리드 경이 길고 단단한 팔을 뻗었다. 우리와 달리 그는 단번에 책을 뺐다.
“아……. 감사합니다.”
첼시의 인사에 페리드 경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언제 나섰냐는 듯 다시 뒤로 물러났다.
이후로도 페리드 경은 높은 데 꽂혀 있는 책들을 꺼내 주고 방 앞까지 옮겨다 줬다.
―어디 갔었어?
방에 오니 내 부재를 몰랐던 건지 슈가와 룩스로부터 추궁이 이어졌다. 한참 해명하며 둘을 달래는데 샤비가 물었다.
“아가씨, 빌려 온 책들은 어디에 둘까요?”
“책상에! 지금 읽을 거야!”
내 말에 샤비와 첼시가 착실히 책을 옮겨 줬다.
순식간에 책상에 책이 잔뜩 쌓였다.
‘너무 많이 빌려 왔나?’
저 중에 절반은 위장용이고, 절반은 내가 찾는 내용과 관련 있을 거로 추정되는 책들이었다.
오늘뿐만 아니라 당분간 쭉 이럴 예정인지라 모두에게 미안해진다.
‘어쩔 수 없어.’
조급하게 굴고 있다는 걸 알지만, 그동안의 안일함을 만회하려면 어서 능력을 파악하고 힘을 길러야 했다.
고작 동물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무슨 도움이 되겠냐마는…….
‘가진 게 이것뿐인걸.’
유사시에든, 나중에 길거리에 나앉게 될 때든 어떤 식으로라도 도움 되지 않을까.
귀족 중에는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많으니 그들을 상대로 돈벌이를 할 수 있겠지.
“좋아, 읽어 보자.”
―뭘 읽어, 찍?
“나와 너희에 대한 공부.”
나는 룩스의 턱을 한번 간질이고는 책을 읽었다.
* * *
도서관을 다니는 일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매일 부지런히 책을 읽고 다음 날 반납한 만큼 다시 빌려 왔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하기보다는 빠른 정보 수집을 위해 목차를 훑고, 관련 있을 것 같은 부분만 빨리 읽었다.
‘예전이었다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근 몇 달간 글공부를 열심히 했더니 자연스레 속독을 익히게 되어 가능한 일이었다.
이 사실을 잘 모르는 하녀들은 벌써 다 읽었냐며 놀라워했지만 금세 적응했다.
도서관에 갈 때마다 책을 잔뜩 빌려 왔지만, 정작 내가 원하는 내용은 없었다.
‘그래도 찾다 보면 발견할 수 있겠지?’
나는 차근차근 도서관을 점령해 갔다.
그러는 동안에도 아빠는 여전히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가끔 내 기분과 상관없이 서운함이 울컥 솟구칠 때면 나는 더욱 내 능력을 알아내는 데 몰두하며 그 감정을 떨쳐 냈다.
“……없네.”
오늘도 원하는 내용을 건지지 못한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책을 덮었다.
슬슬 ‘동물’과 관련된 책을 거의 다 읽어 가는데 내 능력에 관한 내용은 찾지 못했다.
‘내가 최초는 아닐 텐데, 왜 없지?’
과거로 돌아온 것도, 갑자기 이런 능력이 생긴 것도 분명 내가 처음은 아닐 거다.
대륙의 역사는 길었으니, ‘나’라는 경우가 있는 만큼 그전에도 이런 경우가 있을 거란 추측이었다.
관련 내용을 쉽게 찾을 거란 기대는 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어떤 식으로든 기록이 남아 있을 줄 알았는데.’
점차 확신이 사라진다. 설마 하는 마음에 다른 분야의 책들도 빌려 왔건만 소득은 없었다.
‘이러다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못 찾으면 어떡하지?’
지난날, 나 혼자 애를 써서 알아낸 건 ‘접촉이 있어야 대화가 통한다’라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문헌을 통해 실마리를 찾으려고 한 건데…….
고민 끝에 나는 다음 날 샤비에게 넌지시 물었다.
“혹시 여기보다 책이 더 많은 곳이 있을까?”
“여기보다 책이 많은 곳이라면……. 황궁 아닐까요? 황궁 도서관에는 모든 책이 보관되어 있다고 들었거든요.”
귀가 솔깃해진다. 모든 책이 보관되어 있다면 내가 찾는 책도 있을지 모른다.
‘문제는 황궁에 가는 법인데.’
먼젓번에야 황제가 먼저 날 보고 싶어 해서 갔다지만, 원래 황궁은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황궁에 머무르는 황족의 허락이 있어야만 갈 수 있었다.
‘지금 황족이 태후와 황제, 황후, 카드릭 정도인가?’
태후는 지금 선황제가 즉위한 뒤 요양차 내려간 지방 별장에서 잘 올라오지 않는다고 들었다. 황제와 황후와는 딱히 연줄도 없고.
‘부탁할 만한 사람은 카드릭뿐인데, 들어줄까?’
그가 내게 호감을 표하고 뜻 모를 호의를 잔뜩 베풀었던 게 벌써 몇 달 전 일이다.
여전하면 다행일 것이다. 어쩌면 관심이 식었을지도 모르고.
아니, 분명히 관심이 식었을 거야. 틀림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