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6)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6화(6/125)
#6
집사의 주인인 남자는 황족답게 불새의 주인이자 뛰어난 마법사였다.
십여 년 넘게 이 저택에서 일하며 이미 이런 일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봐 온 참이었다.
“확인하고자 하셨던 것은 보셨습니까?”
“그래.”
남자는 입고 있던 외투를 집사에게 넘겼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가 아까처럼 붉게 물듦과 동시에 외형이 변했다.
옅은 갈색 피부에 거칠어 보이는 금발의 남자에서, 흰 피부에 흑발을 가진 30대 초반의 남자로.
“내 착각이더군.”
작은 덧붙임에 집사가 의외라는 얼굴로 제 주인을 올려다봤다.
“허탕이었단 말씀입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닙, 아닙니다. 그저 기분이 좋아 보이셔서……. 늙은이가 감히 전하의 기분을 짐작하였습니다.”
집사는 처음 제 주인이 나타났을 때 짓고 있던 표정을 기억했다.
‘희미하지만 웃고 계셨지.’
사랑하던 부인이 죽은 뒤,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사람처럼 굴던 주인이었다. 웃는 걸 본 적이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이런 것과 별개로 집사는 방금 한 말이 저답지 않은 실수를 범한 일이란 걸 인지하고 있었다.
예전엔 안 그랬어도 지금은 누구나 기함할 정도로 잔혹한 성정을 가지게 된 주인이다.
작은 실수조차 용납 못 하니 처벌을 면치 못하리라.
“아, 재밌는 걸 봐서.”
하지만 들려온 것은 뜻밖의 말이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재밌는 것?’
집사는 자신도 모르게 남자를 올려다봤다.
더 얘기해 주길 바랐으나 이어지는 말은 없었다.
결국 그는 가득 피어난 의문을 억누르는 수밖에 없었다.
* * *
‘웃고 있었어…….’
나는 남자가 쓰다듬어 준 머리를 매만지다 말고 정신 차렸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닌데!
어서 금품을 들고 도망쳐야…….
“망할 생쥐 새끼! 찾으면 내가 죽여 버릴 거야! 아악!”
컹컹! 개 짖는 소리와 원장이 악다구니 쓰는 소리가 번갈아 들렸다.
‘벌써 돌아온 거야?’
생각보다 이른 귀환에 나는 당황했다. 말롱 부인의 치맛자락이라도 잡고 구질구질하게 늘어질 줄 알았으니까.
‘그냥 도망쳤어야 했는데.’
뒤늦게 후회가 됐지만, 말 그대로 이미 늦은 일이었다.
“너!”
날 발견한 원장이 성난 황소처럼 달려왔다. 그녀가 날 향해 손을 높이 쳐들었다.
짝!
세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당연히 내 고개가 돌아갈 줄 알았는데, 내 얼굴은 멀쩡했다.
‘그럼 누가?’
놀라 앞을 보니 마리 언니가 원장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당장 비켜!”
“아으, 으…….”
마리 언니가 원장을 팔을 붙들며 빌었다.
―제가 잘 가르칠게요. 한 번만 봐주세요.
“이미 늦었어! 오늘 오신 부인이 우리 시설에 얼마나 중요한 분인데……. 다 끝났다고! 너도 쫓겨나기 싫으면 가만히 있어!”
원장이 마리 언니의 팔을 강하게 뿌리쳤다.
유약한 마리 언니는 나동그라진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원장을 붙잡았다.
덕분에 언니에게 붙잡힌 원장은 어떻게든 언니를 떨쳐 내려 애쓰며 발악했다.
“저게 망쳤어! 어? 저게 다 망쳤다고! 생쥐가 네 친구야? 어디서 그런 되지도 않는 거짓말을 해서 부인의 심기를 건드려!”
“저, 저는…….”
“귀머거리 주제에 여태껏 먹여주고 입혀줬는데 날 속인 것도 모자라 이따위로 굴어? 너도, 이거 놔!”
원장이 끝내 마리 언니를 떨어뜨렸다.
언니가 다시 원장을 잡으려 했지만, 원장은 평소 여유 부리던 성격답지 않게 매우 빠른 속도로 나를 붙들었다.
그것만으로도 진이 다 빠졌는지 그녀는 씩씩 거센 숨을 내쉬며 날 붙잡았다.
* * *
원장이 다음에 한 행동은 날 독방에 밀어 넣는 것이었다.
‘거기서 네 잘못을 반성해! 오늘은 밥도 없을 줄 알아!’
저 말을 남기고.
쾅!
문이 세차게 닫힌 뒤로 나는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그래도 어릴 때처럼 막 무섭진 않네.’
나는 낡고 어두운 독방을 훑으며 무릎을 모았다.
‘반성의 방’이라 불렸던 이 독방은 원장이 특별히 개조한 곳이었는데, 대부분 이곳을 특히 무서워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디까지나 ‘어릴 때의 나’에 국한된 이야기지만.
그땐 아무도 없고 좁고 캄캄한 이곳이 그렇게 무서웠는데 지금은 그럭저럭 있을 만했다.
그렇다고 이곳에 오래 있고 싶은 건 아니지만…….
원장이 하고 간 말이 있으니 적어도 오늘은 이곳에 있어야 할 게 분명했다.
‘배고파.’
어두컴컴한 곳에 주린 배로 혼자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딱히 울 만한 일이 아닌데, 몸이 어려진 탓인가?
‘그래도 다행이야.’
말롱 부인에게 선택받지 않았으니까. 이번에는 마리 언니를 연관시키지 않았으니까. 비록 상황은 여전히 나빴지만.
‘자면 배고픔이 덜하지 않을까?’
두 눈을 감고 잠에 드려 애썼지만, 바닥이 차가워서 그런지 잠이 안 왔다.
몸을 한껏 웅크린 채 어떻게든 잠들기 위해 애쓰던 그때였다.
투다닥-
“뭐, 뭐야?”
이게 무슨 소리지?
나로서는 모든 게 처음 듣는 소리라서, 잔뜩 겁먹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때였다. 천장에서 무언가 불쑥 튀어나왔다.
―친구, 안녕! 찍!
“꺄악!”
―으아아악, 찍!
나는 벽에 찰싹 붙었다. 동시에 ‘그것’도 반대편 벽에 찰싹 달라붙는 게 보였다.
심장이 벌렁거린다.
방금 뭐지? 나한테 말 걸었는데?
―왜, 왜 소리 질러!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찍!
목소리는 다시 들려왔다.
뒤늦게 나는 이 소리가 귀가 아니라 머릿속으로 들려온다는 걸 깨달았다.
아까 천장에 있던 쥐를 발견했을 때처럼.
그동안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그것’을 인지했다.
색은 잘 모르겠지만 연신 쫑긋거리는 동그란 귀, 볼록하게 튀어나온 주둥이와 긴 수염, 작은 몸과 기다란 꼬리…….
“……생쥐?”
―맞아, 찍!
뭐가 그리 신나는지 그것이 꼬리를 탁탁 치며 외쳤다.
“배고파서 꿈을 꾸나…….”
말하고 나니 좀 웃겼다.
이미 과거로 돌아오고,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는 상황이다.
여기서 생쥐와 대화할 수 있는 게 추가되었기로서니 새삼 현실이 아닐 거라고 부정하고 있다니…….
―배고파, 찍?
“응.”
생각에 빠진 나머지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자 내 배 속에서 꼬르륵, 하고 어떠한 소리가 울렸다.
헉,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내 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잖아!
반사적으로 내 배를 감싸자 생쥐가 날 빤히 쳐다봤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날 보는 새까만 눈망울에 측은함이 깃들여져 있는 것 같았다.
―진짜 배고픈가 보네. 어쩔 수 없지! 아까 주운 밀씨 나눠 줄게, 찍!
밀씨?
내가 의아해하는 동안 생쥐가 입을 우물거리더니 작은 씨앗을 뱉어 냈다.
그러더니 양손으로 쥐어 내게 내민다. 생쥐가 저런 자세도 가능했던가?
―자! 먹어, 찍!
“밀씨라는 게, 밀의 씨앗이었어?”
―그럼 뭐인 줄 알았어, 찍?
“그러게…….”
말하고 나니까 웃기다. 밀씨는 밀의 씨앗일 텐데.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바보 같아서 나는 헤헤, 웃었다.
“그런데 이게 왜 네 입에서 나와?”
―요즘 취미로 저장해 놓고 있어서, 찍!
“너, 생쥐 아니야?”
―생쥐 맞아! 나처럼 늠름한 쥐가 생쥐가 아니라면 뭐냔 말이야, 찍?
요즘 생쥐는 다람쥐처럼 입 안에 먹이 저장을 하나?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안 생쥐가 다시 밀씨를 내밀었다.
―어쨌든 원래 내 간식이지만 특별히 양보해 주는 거야. 우린 친구니까! 이거 먹고 기운 차려라, 찍찍!
“갠차나.”(괜찮아.)
나는 생쥐를 그렇게 징그러워하진 않지만, 그래도 침이 묻은 밀씨는 별로 먹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네 칭구라니? 무슨 말이야?”(그런데 내가 네 친구라니? 무슨 말이야?)
―찍?
생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그랬잖아, 찍?
그러니까 언제?
―사탕 먹다 놀랐지 뭐야! 인간 말은 못 알아듣는데 네 말은 알아들을 수 있는 데다 날 친구라고 해서 신기했어! 다들 날 싫어하는데 말이야, 찍!
생쥐의 말을 통해 흥분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그러고 보니 아까 천장에서 사탕가루가 떨어지고 말롱 부인에게 끌려가기 싫어 그렇게 말했었지.
생쥐가 내 친구라고.
‘그걸 듣고 생쥐가 날 찾아와 이렇게 대화하고 있다고?’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분명 꿈은 아닌 거 같은데 이 모든 게 현실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어쨌든 우리 친구 맞는 거지, 찍?
어둠 속에서도 작은 눈망울이 반짝였다.
생쥐와 친구가 되다니?
정말 이상하고 믿기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미 내 고개는 끄덕여진 뒤였다.
아무래도 과거로 돌아오면서 미친 게 틀림없다.
―친구다! 친구, 찍!
그래도 이 독방에 혼자 있는 것보단 어떤 식으로든 말 상대가 있는 게 좋을 것 같긴 하고…….
나도 내가 무슨 심정인지 잘 모르겠네.
나는 기쁜 듯 찍찍거리며 내 주변을 뱅글뱅글 도는 생쥐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난 애니야. 넌 이름이 뭐야?”
―이름, 찍?
“이름이 뭔지 몰라?”
―그게 뭐야, 찍?
그 말을 듣고 나니 아차 싶었다.
왜 생쥐에게도 당연히 이름이란 게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널 부르는 단어야. 너만을 위한 단어 마리야.”(널 부르는 단어야. 너만을 위한 단어 말이야.)
―그런 거라면 있어! 내 이름은, 회갈색 털빛이 매력적이고, 앙증맞은 연분홍색 발이 눈에 띄고 꼬리가 비교적 짧고 재빠르고 곡식을 좋아하는 이야, 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