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60)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60화(60/125)
#60
슬슬 잘못 찾아온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들던 찰나 카드릭이 고갯짓했다.
“저기 있네. 마법 금서.”
“그러게?”
나는 카드릭을 데리고 책장 앞으로 갔다.
책장을 살펴보니 제법 그럴듯해 보이는 게 있다. 나는 까치발을 들고 손을 뻗었다.
‘조금만 더! 더 하면 꺼낼 수 있을 거 같은데!’
“자.”
열심히 애쓰는데 카드릭이 내가 꺼내려던 책을 대신 꺼내 주었다.
“이거 맞지?”
“고마워…… 어!”
“왜?”
“손! 손 놨어!”
나는 황급히 카드릭의 손을 다시 붙들었다.
내가 놓은 기억은 없으니 아마 나 대신 책을 꺼내 줄 때 그가 먼저 놓은 게 아닐까 싶다.
“그게 왜?”
“손잡고 있어야 하잖아!”
아, 아닌가?
호들갑인 나와 달리 침착한 반응을 보니 긴가민가해진다.
“안 잡고 있어도 돼?”
“여기 들어올 때만 잡고 있으면 돼. 이후는 자유고.”
아, 그렇구나……가 아니라!
“너, 너!”
“말해.”
“날 속였어?”
“속인 건 아니지. 말을 안 한 거뿐이니까.”
그거나 그거나!
생글생글 웃는 꼴을 보니 뭐라 해도 소용없을 것 같았다.
‘내 속만 뒤집히지.’
그러나 관련된 생각이 자꾸만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를테면 카드릭이 손만 잡아 주면 페리드 경도 여기에 들어올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
사실 페리드 경에게 내가 뭘 알아보려 하는지 알리고 싶지 않아 잘된 일이긴 했다.
페리드 경이 알면 집사가 알 테고, 집사가 알면 아빠도 언젠가 알게 될지 모르니까.
책장을 훑던 나는 제법 그럴듯한 제목을 보고 책을 꺼냈다.
《소환수와 마법의 상관관계》
“이거 읽어도 되지?”
“그래.”
좋아. 허락도 받았겠다, 나는 앉을 곳을 찾았고 가까운 데 있는 사다리가 눈에 띄었다.
아, 저기 앉으면 되겠다. 자리를 잡고 빠르게 읽어 나가는데 문득 집요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드니 내 맞은편에서 날 보는 카드릭이 보인다.
“계속 여기 있을 거야? 바쁘지 않아?”
“걱정해 주는 거야?”
세상에, 걱정이란다.
나는 떡 벌어지려는 입을 애써 다물었다.
하지만 안다. 이미 내 태도를 통해 감정이 드러났을 거란 거. 그렇지 않고서야 카드릭이 저렇게 웃진 않을 테니.
‘여유롭나 보네.’
다시 고개를 숙인 나는 이번에야말로 정말 집중해서 책을 읽었다.
이번에는 소득이 있긴 했다.
[간혹 살아 있는 동물을 길들여 소환수처럼 부리는 자들도 있다. 우리는 이들을 ‘테이머’라고 정의한다.테이머는 소환사와 명백히 다른 정의로, 소환사는 이계의 정령수를 소환하는 반면, 테이머는 살아 있는 동물과 교감한다.
드물게 소환수와 교감하는 테이머도 있다.]
이거 내 능력 얘기 같은데.
‘이런 능력이 있는 사람을 테이머라고 하는구나.’
드디어 뭔가를 찾아냈다는 기쁨에 들뜬 나는 빨리 다음 장을 넘겼다.
[테이머는 흔히 정신을 ‘공유’한다고 한다. 이는 마법과도 다른 개념이니 유의하도록 하자.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마법과 소환수는…….]
뭐야?
이게 끝? 정말?
믿기지 않아 몇 장을 더 휙휙 넘겨 봤지만, 다시 테이머가 언급되는 부분은 없었다. 이제야 뭘 좀 알아내겠구나 싶었는데!
허망한 마음에 책을 탁 덮고 일어나자 카드릭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찾는 내용이 없어?”
“있긴 있는데 부족해서.”
“책이 그렇지. 두껍고 서술은 많은데 정작 찾는 내용은 없거나 몇 줄에 불과하고.”
나만 그런가 했는데 쟤도 그렇게 느꼈구나.
처음으로 형성된 공감대에 고개를 마구 끄덕이는데 카드릭의 붉은 눈이 유난히 돋보인다. 불새를 다룰 수 있는 직계 황족만의 특징.
“불새도 소환수지?”
“크게 보면 그렇지.”
“언제부터 불새랑 함께였어? 교감은 어떻게 했어? 어떤 느낌이 들어?”
“태어났을 때부터. 그냥 되던데. 별 느낌 없어.”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혹스러울 법한데도 카드릭은 덤덤하게 답해 줬다. 비록 그 답변이 너무 훌륭해 내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게 문제이긴 해도.
‘물은 내가 바보지.’
소환사와 테이머가 다르다 해도, 그래도 교감 부분에 대해서는 조언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저런 답이라니.
‘아빠한테 물어도 저럴까?’
지금 내 상황에 아빠한테 물을 수 있을 리 없지만, 만약 묻는다고 해도 저 비슷한 답이 돌아올 것만 같다.
책을 원래대로 돌려 놓은 나는 다른 책을 꺼냈다.
“도움이 안 된 모양이네.”
그럼 되겠니.
나는 대꾸하는 대신 묵묵히 책에 코를 박았다.
* * *
황궁 도서관에 다녀온 건 미약하나마 수확이 있긴 했다.
처음 발견한 책 말고 이후에 본 책들에서도 테이머가 짧게나마 언급돼서였다.
테이머만 따로 다룬 책이 있을까 싶어 찾아봤지만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적었다.
‘어쩌면 흔치 않은 능력이라 그럴지도.’
마법이나 신성력 같은 건 자주 들어 봤어도, 테이머는 나도 처음 들었으니까.
그나마 찾은 책에서도 테이머 능력에 대해 세세하게 기록해 둔 건 없었다.
하지만 몇 달간 대공가의 도서관에서 헛물만 켜던 걸 생각하면 괜찮은 수확이었다.
이론은 더 찾아도 소용없을 듯해 난 다시 몸으로 부딪쳐 보기로 했다.
하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나는 룩스와 슈가를 대동한 것도 모자라 완자까지 불러 앉혀 놓고 매일같이 교감을 시도했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알 도리는 없었지만.
“어때? 나랑 뭔가 통하는 거 같아?”
―산책하고 싶다, 멍.
완자는 안 됐고.
“슈가, 넌?”
―졸려. 나 잘래.
슈가도 틀렸다.
나는 마지막 희망인 룩스를 바라봤다.
―감자 먹을래, 찍!
끄응, 오늘도 실패인가? 분명 책에선 내가 집중하면 정신이 통하게 될 거라고 했는데 왜 안 되는 거지?
그동안 여러 번 시도해도 잘 안 됐던 만큼 금방 될 거라 여기진 않았지만, 매일 반복해도 진전이 없으니 지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니야. 하다 보면 될 거야. 힘내자!”
―첼시이이이, 멍!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스스로 격려하는데 완자가 내 옆을 쌩 지나갔다.
―첼시! 첼시! 첼시! 멍!
완자가 꼬리를 흔들며 주위를 뱅글뱅글 돌자 첼시가 정신없어하며 완자를 붙들었다.
“완자도 참, 첼시만 좋아한다니까요.”
샤비의 투덜거림에 이어 첼시가 “착하지? 진정하자. 진정.”이라며 완자를 도닥이는 소리가 들린다.
“죄송해요, 아가씨. 제가 방해한 것 같네요.”
―방해라니, 아니야, 멍!
“마침 들어가려던 참이었어. 그런데 손에 든 그건 뭐야?”
“황궁에서 온 거래요.”
“황궁에서?”
“네. 집사님을 뵈러 갔더니 마침 이게 보이더라고요. 아가씨께 온 게 아니냐고 여쭸더니 그렇다며 주셨어요.”
첼시에게서 서신을 넘겨받고 나서야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카드릭이 생일 연회 초대장을 보낸다고 했지?’
예상대로 서신을 보낸 사람은 카드릭인 듯했다.
[다음 주 토요일이니 꼭 와.]아무렴 내게 이런 식으로 서신을 쓸 사람은 그밖에 없으니. 뭐, 내게 편지를 쓸 만큼 친한 사람도 카드릭뿐이긴 하지만.
고급스러운 카드에 적힌 글귀에서 카드릭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나는 초대장을 접었다.
‘이걸 어째야 하나.’
갈 수 있다면 가겠다고 하긴 했지만, 정말 가야 할 때가 되니 여전히 망설여진다.
단순히 오기로 가기엔 역시 아빠가 무섭다.
그러나 어차피 밉보인 상태다. 더 미움받고, 황태자라는 든든한 편을 얻는 것도 나쁘진 않단 말이지.
어쨌든 당장은 내게 힘이 되어 줄 테니까.
“안 좋은 내용인가요?”
“아니. 초대장이야. 카드릭이 자기 생일이라고, 와 달래.”
“카드릭이 누구…….”
“황태자 전하의 성함이잖아.”
“아, 아아! 황태자 전하께서 아가씨를 초대하셨다고요?”
첼시의 설명을 들은 샤비가 놀란 얼굴을 했다.
“저번 아가씨 생일 때도 오시더니……. 황태자 전하께선 아가씨를 정말 좋아하시네요. 아가씨를 보면 누구나 그렇긴 할 테지만요.”
“맞지. 맞아.”
내가 제법 예쁘장하게 생긴 건 사실이긴 해도 저건 너무 지나친 칭찬 같은데 첼시가 옆에서 같이 동조하니 부끄럽다.
으으, 정말. 이 둘은 내가 뭐가 예쁘다고 이러는지.
“그런데 황태자 전하의 생일은 언제라던가요? 미리 준비해 두게요.”
“다음 주 토요일이래.”
“네에?”
샤비와 첼시가 동시에 내뱉었다. 경악 어린 얼굴을 한 그녀들 중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첼시였다.
“다음 주인데 초대장이 이제 왔다고요?”
“저번에 일찍 보냈었대. 난 받은 게 없었지만.”
“저도 황궁에서 온 걸 받은 적이 없는걸요. 이상하네요. 샤비, 너는? 받은 적 있어?”
“아니? 그런 게 있었다면 아가씨께 갖다 드렸을 거야.”
고개를 세차게 내젓는 샤비는 정말 억울해 보였다.
나도 내 전속 하녀들을 의심한 적은 없었기에 입을 열었다.
“괜찮아! 난 샤비와 첼시를 믿으니까! 카드릭이 실수했거나 오다가 빠진 걸 거야.”
“아가씨……!”
당연한 거라 말한 것뿐인데 한껏 감동한 얼굴의 둘을 보니 당황스럽다.
“걱정하지 마세요. 시간이 촉박하긴 해도 저희가 열심히 노력할게요.”
“맞아요. 어차피 저희 못 입어 본 드레스들도 많으니까요. 이번 기회에 다 입어 봐요!”
아, 아니! 그건 좀!
나는 예전에 아빠가 보내 줬던 드레스들을 떠올리며 질색했다.
분명 드레스들은 하나같이 예쁘고 귀여웠다. 하지만 그 수가 오죽 많아야지.
드레스 룸을 가득 채운 드레스들과 모자가 많은데 그걸 다 입어 보자고?
힘들어서 다음 날에 몸살을 앓을 게 분명하다.
“아직 고민이야. 내가 거기 가도 되는 걸까?”
“아가씨가 가고 싶으시면 가는 거죠.”
“아빠의 허락이 없어도?”
“주인님은…… 자리를 비우셨고, 언제 오실지 모르니까……. 호위 기사만 잘 대동하면 다녀와도 괜찮지 않을까요?”
“맞아요. 그러라고 주인님께서 페리드 경을 호위 기사로 붙여 주신 거잖아요.”
역시 다녀오는 게 좋겠지?
원래도 마음이 기울긴 했지만, 샤비와 첼시의 말을 들으니 가야겠단 확신이 든다.
그래. 나한테 관심도 없고, 제멋대로 화냈다가 잘해 줬다가 하는 아빠가 무슨 상관이야?
정 마음에 걸리면 집사랑 하녀들에겐 비밀로 해 달라고 하면 그만이지.
결심한 나는 방으로 돌아와 카드릭에게 답신을 썼다.
그리고 샤비에게 황궁으로 편지를 부쳐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다 끝난 줄 알았다.
“아가씨, 더스틴입니다.”
집사가 찾아오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