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64)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64화(64/125)
#64
말롱 부인이 넘어지자 고양이는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얼굴 위에 올라타 마구잡이로 할퀴기 시작했다. 쩌렁쩌렁한 비명이 울려 퍼진다.
‘지금!’
고양이가 말롱 부인을 할퀴는 동안 나는 철창을 빠져나왔다.
부리나케 도망쳐 문을 열자 탁 트인 복도와 제법 우락부락한 남자 두 명이 보인다.
‘아.’
실수다. 바깥에도 사람이 있을 걸 예상 못 하고 대책 없이 나오다니.
어차피 대책을 세울 틈이라든가, 묘수가 없긴 했지만.
“뭐 해! 잡지 않고!”
남자들을 보고 내가 주춤하는 동안 어느덧 고양이를 치운 말롱 부인이 외쳤다.
쩌렁쩌렁한 울림에 나와 비슷하게 얼타 있던 남자들이 흉흉한 기색으로 내게 다가왔다.
분명 잡히겠지. 무사히 도망친다고 해도 어차피 여긴 저 사람들의 소굴이니 얼마 못 갈 테고. 그래도…….
‘순순히 잡힐 순 없어.’
아랫입술을 악문 내가 돌진하려던 때다.
키야아옹!
아까 본 고양이가 튀어 오르며 남자들에게 달려들었다.
“어딜!”
“안 돼! 야옹아!”
남자 중 한 명이 고양이를 막으며 내리치자 다른 남자가 고양이를 받았다. 그러고는 고양이를 내리친 남자에게 다짜고짜 주먹을 날렸다.
퍽!
“뭐 하는 거야, 미친 새끼야!”
“너야말로! 야옹이한테 뭐 하는 짓이야!”
“뭐? 진짜 돌았냐? 그깟 고양이가 뭐라고 지금……!”
“그깟?”
남자들의 싸움으로 인해 가로막혀 있던 앞에 틈이 생겼다.
내가 조금 더 컸다면 붙잡혔을 테지만, 다행히 작아 지나칠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었다. 키가 별로 안 큰 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이야.
틈을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뛰쳐나가자 뒤에서 외침이 들려온다.
“됐고, 잡아! 잡으라고!”
“야옹이한테 사과해!”
“진짜 미쳤나! 이거 놔, 이 새끼야!”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혼란스러운 상황이란 건 알겠다. 그리고 내게 다행이란 것도.
* * *
말롱 자작 부인은 멀어지는 베로니카의 뒷모습과 싸우는 장정들을 보며 속이 뒤집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기껏 데려온 저 꼬맹이가 갇혀 있던 철창을 연 건……. 그래, 자신의 탓이 맞았다.
데려오기까지 그렇게 공을 들여 놓고 이런 실수를 하다니!
우스운 일이지만 막상 얼굴을 보니 성급함 때문에 실수를 하고 말았다.
아무렴 원수를 눈앞에 두고 태평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베로니카 때문에 황궁 지하 감옥에 갇힌 이후, 말롱 자작 부인은 온갖 꼴을 다 봤다.
황궁 지하 감옥은 ‘황궁’이라는 단어가 붙은 게 무색하게도 더러웠다.
어디 그뿐인가? 더운데 습기가 가득 차 퀴퀴한 데다 거미와 날벌레는 기본이요, 팔뚝만 한 쥐들이 들끓었다.
감옥 내 커다란 구멍도 없는데 음식을 조금이라도 남기면 밤에 나타나 그녀의 그릇을 탐내고는 했다.
자다가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놀라 눈을 떴는데 우글우글 몰려 있는 커다란 것들이 일제히 그녀를 쳐다보는 광경을 목격했을 때의 심정이란!
부유한 부친 덕분에 늘 사치스럽게 살고, 깨끗한 환경에서 자라 온 그녀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환경이었다.
게다가 그 미친 황태자는 수시로 그녀를 찾아와 불새로 고문했다.
분명 육신은 멀쩡한데, 타 죽는 감각과 고통을 몇 번이나 겪었는지 모른다.
다행히 부친인 셰인트 백작이 어떻게든 구해 줬지만…….
그녀는 공식적으로 ‘죽은 사람’이 되었다.
그로써 더는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지도 못하게 되었다. 당연히 우아하고 기품 있는 삶을 즐길 수도 없었다.
이 모든 원인은 벨로크 대공의 수양딸이 된 분홍 머리 여자아이 때문이었다!
자신은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졌건만 희희낙락하고 있을 베로니카를 떠올리면 말롱 부인은 울화통이 터져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고는 했다.
‘복수! 복수해야 해!’
평생 자신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말롱 부인의 머릿속에는 오직 그뿐이었다.
일이 잘못되면 그녀의 가문에 누가 될 거란 것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사람이 피해당할 거란 것, 그리고 모두 자신이 자처한 결과라는 인식조차 없었다.
그녀는 비자금을 모두 털어 마법사를 고용하고 부친의 직위를 이용해 정보를 모아 베로니카를 데려올 계략을 꾸몄다. 부친과 남편 모르게.
그렇게 그녀는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계략을 세웠다.
‘대놓고 납치하면 금방 걸리겠지? 환영 마법을 건 가짜와 바꿔치기하자.’
어차피 마법 때문에 외양은 같을 필요가 없으니 흉내를 내 줄 어린아이만 구하면 됐다.
그건 비밀리에 노예 시장을 운영하는 부친을 둬 어렸을 적부터 불법적인 일을 접해 온 그녀에게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문제라면 대공가에 잠입해 베로니카를 데려오는 것이었으나 그것도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벨로크 대공가에서 일하는 사용인들을 조사하다 보니 곧바로 베로니카 옆에 있는 호위 기사의 약점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 뒤로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그놈도 참 멍청하지.’
어릴 적에 잃어버린 여동생이 살아 있다는 소식에 모시던 아가씨를 배신하다니.
물론 라이칸이 찾던 여동생은 죽은 지 오래였다.
라이칸을 속인 꼴이었지만, 말롱 부인은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속은 사람 잘못이지.’
오히려 그녀는 증거 인멸을 위해 라이칸도 유인해 죽여 버릴 계획이었다.
이미 그에 대한 살수도 고용해 둔 상태였다.
이렇게 나름대로 고생해 데려온 베로니카를 괴롭히겠다고, 들어오기 전에 누군가 키우고 있다는 고양이를 데려온 게 화근이 될 줄이야.
사실 말롱 부인은 자신이 철창을 여는 동안 베로니카가 도망칠지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으나 걱정할 거 없다고 여겼다.
이곳은 부친이 소유한 노예 시장인 데다, 바깥에 지키는 장정이 둘이나 있었으므로.
그러니 만약 도망쳐도, 다른 이가 금세 잡아 줄 거란 굳건한 믿음이 있었는데…….
“야옹이를 그렇게 다루면 안 되지!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
“안 다쳤잖아! 고양이는 원래 던져도 살아!”
“뭐? 이 쓰레기 같은 놈이!”
남자 둘은 기어이 서로의 멱살을 잡고 주먹질을 해 댔다.
그 모습을 보며 말롱 부인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야옹이 말입니까? 야옹이는 왜 데려가시려고요?’
우락부락한 얼굴과 덩치와 달리 어리숙하게 물을 때 저놈의 싹수를 알아봐야 했는데!
참다못한 말롱 부인이 구두를 벗어 야옹이 타령을 하는 남자의 뒤통수를 세게 갈겼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남자들이 싸움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봤다.
그에 말롱 부인이 찢어질 듯한 음성으로 외쳤다.
“고양이가 뭐라고 저걸 놓치고 있어! 너, 죽고 싶어?”
“아니, 아닙니다. 하지만…….”
“닥치고 아까 그 계집애 잡아 와! 어떻게든 찾아서 내 앞에 끌고 오라고! 알겠어?”
“예, 옙!”
* * *
“헉, 허억……!”
정처 없이 달리던 나는 일단 아무 문이나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내 체력상 계속 도망치는 건 무리인 데다 막다른 길을 마주하면 그대로 잡힐 테니까.
하필 숨을 돌리기 위해 숨어든 곳이 술 창고일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오크 통을 눕혀 쌓아 둬서 몸을 숨길 곳이 있다는 점이었다.
‘빈 오크 통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뚜껑을 열고 들어가면 몸을 완전히 숨길 수 있을 테니까.
‘그보다 이제 어떡하지?’
당장은 오크 통 뒤에 숨어 있는다 해도 만약 사람들이 많이 몰려와 이곳을 쥐 잡듯 뒤진다면 결국 들킬 게 분명했다.
체력을 보충할 때까지 제발 아무도 오지 말아야 할 텐데.
―베리, 괜찮아, 찍?
“괜찮아.”
나는 날 걱정스레 보는 룩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야말로 괜찮아? 아까 바닥에 던져졌잖아.”
―사실 아까는 좀 아팠는데 지금은 진짜 괜찮아! 그보다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야, 찍?
“숨만 돌리려고 했어. 이제 슬슬 나가 봐야지.”
어느덧 호흡이 진정되고, 몸에 기운이 돌았다.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게 심히 막막하긴 해도 일단 여기서 나가야 했다.
나는 내 손바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새끼손가락에 낀 반지가 눈에 띈다.
‘한 번만…….’
제발 앞으로 도와 달라고 안 할 테니까.
귀찮게 안 굴 테니까, 멋대로 행동 안 할 테니까 제발, 딱 한 번만.
간절한 마음으로 나는 다시 반지에 박힌 보석을 문질렀다.
그러나 이번에도 반지는 잠잠했다.
‘과연 그럴까? 벨로크 대공은 네게 관심이 없다던데.’
아까 말롱 부인이 한 말이 떠오르며 가슴이 할퀸 듯 아팠다.
주먹을 꽉 쥔 채 숨을 고르던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문에 귀를 댔다.
‘일단 소리는 안 들리네. 제발 밖에 아무도 없어야 할 텐데.’
나는 문을 조금만 열어 바깥 동태를 살폈다. 다행히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좋아, 나가자.’
막 결심하고 문을 열던 찰나였다.
“……니다. 도련님께서 와 주셔서…….”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온 음성에 나는 황급히 문을 닫았다.
탁!
제법 큰 소리에 헉, 숨을 들이켠 나는 서둘러 문에서 떨어져 최대한 먼 곳에 있는 오크 통 뒤에 숨었다.
심장이 벌렁벌렁하다. 아무리 당황했어도 그렇지! 문을 그렇게 세게 닫아 버리면 어쩌자는 건지!
‘들켰을까?’
그래도 거리가 있는 듯했으니 잘하면 못 들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잘하면…….
달칵―.
문 열리는 소리에 몸이 절로 떨렸다. 이윽고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보시지요. 평범한 술 창고입니다.”
생소한 남자의 목소리.
안으로 들어온 남자가 오크 통을 두드렸는지 탕탕!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러잖아도 긴장하고 있었던 만큼 그 소리에 가슴이 더 빨리 뛰고 숨이 거칠어진다.
“평소에 안 잠가 두나?”
“오크 통 자체가 꽉 닫혀 있어서……. 혼자서는 못 열어서요. 보통 두세 명씩 와야 하니까 잠가 두진 않습니다.”
남자아이 목소리?
이곳에서 들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여린 미성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말투로 보건대 남자아이도 저 남자들도 한패일 게 분명했으니까.
“또 워낙 개방된 곳이라 이렇게 문만 열면 훤히 보여서요. 도둑이 들었으면 바로 보였을 겁니다.”
“그래도 오크 통 뒤쪽은 안 보이잖아? 게다가 아까 침입자가 있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
“그건……. 예, 그랬지요.”
“여기, 숨기 좋아 보이네.”
기분 탓일 수 있겠지만, 어쩐지 남자아이가 내 쪽을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너희는 저쪽을 뒤져. 난 저길 뒤질 테니.”
“알겠습니다.”
아니, 실제로 그런 듯했다. 발소리가 점차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으므로.
분명 확인하고 나가려 했는데, 왜 하필 저들이 온 걸까? 왜 문을 세게 닫았을까?
후회와 별개로 이대로 있으면 들킬 거란 건 변함없었다.
지금이야 커다란 오크 통 뒤에 숨어 있으니 안 보인다지만 조금만 가까이 오면 들킬 터였다.
다른 곳 없나? 또 숨을 곳.
시선을 떼굴떼굴 굴려 보지만, 아무리 찾아도 숨을 곳은 더 안 보였다.
도망칠 곳이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가쁘게 뛴다.
‘어떡해야 하지?’
―내가 나갈게! 다들 날 보겠지, 찍!
‘안 돼!’
나는 튀어 나가려는 듯 구는 룩스를 꼭 붙들었다.
‘안 돼! 여기 있어!’
―하지만, 찍.
‘나가면 네가 위험해져. 아까도 다쳤잖아.’
―그럼 어떡해, 찍?
나도 내게 묻고 싶은 말이었다. 나는 말없이 룩스를 안고 몸을 잔뜩 웅크렸다.
사실상 내게 남은 일은 저들이 내가 있는 곳까지 뒤지질 않길 바라는 것뿐이었다.
나는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간절히 빌었다.
제발 오지 마.
여기까지 오지 말고 나가 줘.
하지만 발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더니 마침내 지척까지 왔다.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들렸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