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69)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69화(69/125)
#69
“찾았나?”
―죄송합니다.
돌아온 수하의 전언에 아시드가 빠드득 이를 갈았다.
대공가의 기사들이 찾을 거라고는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은밀히 풀어놓은 ‘그림자’들마저 못 찾을 줄은.
아니지. 자신조차 못 찾는데 그림자가 찾으면 그게 더 이상할 터였다.
같은 이유로 화염의 검에 대적할 수 있는 ‘그것’을 찾을 때도 그림자들한테는 짐작되는 장소를 찾는 것까지만 시킬 뿐, 확인은 자신이 직접 해 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맥이 풀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푸르렀던 하늘 위로 붉은 노을이 드리울 정도로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까.
조금 전 베로니카가 부른 것으로 추정되는 울림이 또 한차례 있었으나 안심되진 않았다.
그 뒤에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모르니까.
솔직히 이제는 아이가 살아 있을 거라 여기는 게 헛된 희망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그리고 조금 전에 사체를 발견했는데, 아가씨의 호위 기사라고 합니다. 더 조사해 봐야겠지만 일단 타살로 보입니다. 죽은 지 얼마 안 됐고요.
베로니카가 사라진 뒤 죽은 호위 기사라니.
다소 어지러운 정신머리에도 아시드의 사고는 냉정하게 굴러갔다.
비록 델러노가 세간에 ‘황제는 아량이 넓다’라는 인식을 주기 위해 허용한 기사단이라고는 하나 대공가의 기사단은 실력자들이었다.
특히 베로니카의 호위 기사를 선별할 때는 성실하고, 실력이 좋은 이로 신경 써서 골랐다.
그런 이가 당했을 정도라면 상대 역시 만만치 않은 실력자일 터. 게다가 하필 ‘이 시기’에 타살이란 것은…….
‘호위 기사가 첩자였군.’
일대를 수색하라는 명령에 불안해진 호위 기사는,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을 찾아갔다가 그만 살해당한 것이리라.
“근방에 암흑 시장이 있나?”
―잠시 지도를……. 아, 예. 있습니다.
아시드는 곧바로 수하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전언 대신 육성으로 물었다.
“어디지?”
“여기입니다. 현재 저희가 있는 위치는 이곳입니다. 시장의 규모는 제법 큰 편입니다.”
갑작스러운 아시드의 등장에도 수하는 침착하게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방향과 거리를 가늠하던 아시드가 읊조렸다.
“헛짓했군.”
마지막으로 추적이 끊겼던 곳을 좀 더 찾으면 될 거라고 여겼건만, 작정하고 빙빙 꼬아 놨다. 이리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얄팍한 장난질에 놀아나느라 시간을 허비하다니.
어떤 놈이 꾸민 일인지 몰라도 편안한 죽음을 바라는 것은 사치라는 걸 깨닫게 해 주리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동한…….”
쿠구궁!
갑자기 울린 커다란 진동에 다들 멈칫했다. 모두가 이상 징조에 바짝 긴장했을 때 다시 진동이 울렸다.
아까보다 더 커진 진동에 이어 땅이 쩌적 갈라지고 있었다.
아시드와 주변에 있던 수하들은 황급히 갈라진 곳에서 멀리 몸을 피했다.
콰앙!
갈라진 땅이 완전히 들리더니 거대한 것이 튀어나왔다.
늑대를 닮았으나 일반적인 동물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덩치와 생김새에 다들 홀린 듯이 읊조렸다.
“설마, 마물?”
저게 도대체 왜 여기에?
대대적인 토벌과 끊임없는 보수로 마물은 북부가 아니면 보기 어려운 희귀종이 된 지 오래였다. 그런데 이곳에 있으니 이상한 일이었다.
혼란과는 별개로 일단 마물을 해치워야겠다고 마음먹은 그가 마력을 운용했다.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커다란 공 모양의 불꽃이 화르륵 피어올랐다.
마물을 향해 마법을 쏘아 보내자 마물이 고개를 뒤로 젖히며 정면으로 맞았다.
퍼엉!
크아아악!
몸에 붙은 불길이 고통스러운 듯 마물이 발버둥 쳤다. 그 모습을 본 아시드는 의아해졌다.
피하거나 다른 공격을 할 줄 알았건만, 그대로 맞다니?
맞으라고 쓴 공격 마법이긴 했으나 문제는 마물의 태도였다. 마치 일부러 맞은 듯한 모습이었으므로.
덩치가 덩치인 만큼 마물은 한 방으로 죽진 않았다.
이윽고 연달아 마법을 쓰려던 그때였다. 마물의 등에 위태로이 있는 베로니카가 보인 것은.
“……베로니카?”
마물의 덩치에 비하면 베로니카는 터무니없이 작았으나 새까만 털 사이로 보이는 분홍 머리 아이의 존재는 선연했다.
‘설마 베로니카 때문에 일부러 맞은 거였나? 피하면 베로니카가 맞을지도 모르니?’
스스로 생각하고도 어이없는 가설이었다. 마물이 인간을 지키려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 없었으므로.
분명 그가 아는 상식으로는 그러한데, 지금 눈에 보이는 광경은 그 상식과 달라 아시드는 자신도 모르게 공격 마법을 거둬들였다.
그러나 그리한 것은 그 혼자뿐이었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불꽃이 마물한테 파고들었다.
캬아아악!
뒤이어 검을 빼 든 수하들이 마물을 베려는 듯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검날이 마물을 베기 직전, 방어막이 펼쳐졌다.
방어막에 가로막혀 튕겨 나온 이들이 다시 검을 바로 잡는데 아시드가 입을 열었다.
“그만.”
“전하……?”
“다들 물러나라.”
이해하기 힘든 명령.
그래도 수하들은 일단 뒤로 물러났다.
캬르릉!
마물이 위협적으로 그들을 향해 포효했다. 처음에는 크기에 압도당해 몰랐는데 마물은 꽤 다친 상태였다.
그와 수하들이 공격한 곳 말고도 여러 곳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으므로.
그런데도 끊임없이 베로니카를 감싸는 모양이라니.
비로소 아시드는 확신을 굳혔다. 저 마물이 베로니카를 지키고 있다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일 테지만, 지금은 그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바로 베로니카의 안위.
“네가 베로니카를 데리고 나온 건가?”
크르릉!
마물은 여전히 사나웠다.
아시드는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뻗었다.
“이제는 안전하니 베로니카를 돌려줘라. 너도 치료해 주지.”
캬릉, 계속 그를 경계하던 마물이 갑자기 휘청거리더니 ‘쿵!’하고 옆으로 쓰러졌다.
마물의 등에 있던 아이가 스르륵 떨어져 내린다. 그 모습을 본 아시드가 달려가 떨어지는 베로니카를 받았다.
“큭!”
양팔에 가해지는 충격에 절로 눈살이 찡그려진다.
뒤늦게 마법으로 아이를 받으면 됐다는 사실이 떠올랐으나 후회는 찰나였다.
욱신거리는 통증도, 그런 생각도 베로니카의 상태를 살피는 것보단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무심코 아이의 안위를 확인하던 아시드가 멈칫했다.
엉망진창이 된 머리나 옷도 문제였지만, 그의 시선을 붙든 건 작은 얼굴 곳곳에 말라붙어 있는 검붉은 자국들이었다.
내상을 입은 건지 작게 벌어진 입술 사이로 여전히 선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베로니카가 완전히 무사할 거라 여기진 않았다.
작정하고 납치한 데다 사라진 지 제법 되었으니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고, 내심 그리 각오하기도 했다.
각오한 것에 비하면 다행이었으나 막상 아이가 다친 걸 목도하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상하지. 분명 누군가 다친 것은 물론이요, 죽어 가는 꼴도 수없이 봐 왔는데 어째서…….
“켈록.”
베로니카가 작게 기침하자 선혈이 사방에 튀며 아이의 잠옷과 그의 옷을 물들였다.
검붉게 피어난 점들에 정신을 차린 아시드가 급히 치료 마법을 사용했다.
이미 마법을 과하게 사용한 터라 머리가 핑 돌며 반평생 그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이명이 들려온다.
―아시드, 내 아들…….
―전하, 제발! 제발 살려 주십시오!
귀와 정신을 꿰뚫듯 윙윙대는 이명에도 아시드는 이를 악물고 계속 치료를 이어 나갔다.
효과가 있었는지 아이의 입가에서 흐르던 선혈이 서서히 멈췄다.
내내 찡그리고 있던 아이가 조금은 편한 얼굴을 하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블루베리색 눈동자는 다소 초점이 안 잡힌 상태였다. 그래도 그를 알아봤는지 베로니카가 입술을 달싹였다.
“아, 빠……?”
동시에 이명이 거짓말처럼 뚝 그쳤다. 이전에도 느껴 본 적 있는 기시감이다.
최근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
“아빠…….”
“그래.”
그의 대답에 베로니카가 또다시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나 소리가 워낙 작아 잘 들리지 않았다.
베로니카를 향해 고개를 더욱 숙이자 그제야 띄엄띄엄 아이가 하는 말이 들린다.
“반지……, 문질렀는데, 한 번만……, 한 번만, 도와, 달라고……. 그런데…….”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것만 같았다.
분명 그를 원망하는 내용일 테지. 반지를 문질러서 불렀는데 왜 오지 않았느냐고.
“잘못, 했어요…….”
그러나.
“방, 들어간 거……. 잘못, 했어요……. 귀찮게, 안 할 테니까…….”
베로니카가 힘없이 그의 옷깃을 붙들며 읊조렸다.
“싫어하지, 말아 주세요…….”
아시드는 숨이 턱 막혀 오는 걸 느꼈다. 분명 자신을 탓할 거라 여겼는데.
나 역시 사정이 있었다고, 널 찾느라 최대한 애썼다고.
하려던 말은 베로니카가 뱉은 한마디에 전부 바스러졌다.
아시드가 아무 말도 못 하는 동안 마지막 말을 뱉은 베로니카는 눈을 감고 혼절했다.
동시에 그를 붙잡고 있던 팔이 아래로 떨어진다.
아시드는 다소 멍하니 베로니카의 얼굴을 쳐다봤다.
잘못했으니 싫어하지 말아 달라니.
오히려 그 말을 해야 할 건 자신이었다. 무작정 화내 놓고 사과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위험에 처해 험한 꼴을 겪었으면서도, 다쳤으면서도 자신을 보자마자 먼저 잘못했다고 빌어 오는 아이라니.
“전하.”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돌아보니 그의 수하 중 한 명이 바닥에 쓰러진 ‘것’을 가리켰다.
“저 마물은 어떻게 할까요?”
“마물?”
아시드가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게 ‘마물’이라 칭해진 것은 조금 전 봤던 거대한 마물과 같은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아담해진 모습이었으니까.
달라진 건 크기만이 아니었다. 털색도 새하얗고 전체적으로 형태가 온순해졌다.
작아지기 전에는 늑대 형상을 한 괴물에 불과했다면 지금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 늑대처럼 보였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아까 보신 그 마물이 맞습니다. 갑자기 저렇게 변했습니다.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저것도 데려가지.”
치료해 주겠다고 약속했으니.
아시드의 말에 꾸벅 고개를 숙인 수하가 마물을 품에 안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