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73)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73화(73/125)
# 73
―맞아! 이럴 때가 아니지! 우리 룩스 보러 가자!
슈가의 말에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룩스는 죽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슈가는 이 사실을 모르겠구나.
나는 심호흡한 끝에 슈가한테만 들리게 말했다.
“룩스는……. 이제 없어.”
―응? 없다니?
나 때문에 죽었어.
나는 차마 저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잠시 입을 꾹 다물고 있자 슈가가 머리를 갸웃거리다 말고 끄덕였다.
―하긴. 걔 완전히 달라졌지. 처음 보고 깜짝 놀랐어!
“……?”
―이상한 애가 나더러 누님이라는데 뭔가 싶었더라니까?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나는 눈을 깜빡였다.
“이상한 애라니?”
―늙은 수컷 인간이 너한테 가면 안 된다고, 오늘은 자기랑 있어야 한다면서 날 데리고 가서 가뜩이나 좀 짜증 났는데 옆에서 이상한 게 나한테 말을 거는 거야!
슈가는 잔뜩 흥분한 듯 가볍고 납작한 꼬리로 내 손바닥을 팡팡 내리치며 말했다.
―무시해도 자꾸 ‘누님, 나야!’ 이러니까 네가 누구냐고 막 화냈지. 그랬더니 자기가 룩스라고 하는 거 있지!
들으면서도 믿기지 않는다.
룩스라고 자칭하는 게 있다니? 분명 룩스는 죽었는데, 만약 저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슈가를 든 채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가씨?”
“집사한테 갈래.”
“하지만 며칠간 누워만 계셨는걸요. 바로 움직이는 건…….”
“맞아요. 제가 집사님을 불러올 테니 여기 계세요.”
“아니야. 가서 볼 게 있어.”
고집스레 바닥에 발을 내딛자마자 몸이 휘청였다.
“괜찮으세요?”
“으응, 고마워.”
샤비가 받아줘 다행히 넘어지진 않았지만 묘하게 후들거리는 다리는 꽤 충격이었다.
며칠 누워 있었다고 이렇게 후들거리다니!
그래도 평소보다 조금 힘이 없을 뿐, 못 걸을 정도는 아니라서 나는 고집스레 걸었다.
내가 찾아올 줄은 몰랐는지 집사는 날 보고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내 관심사는 집사에게 있다는 ‘이상한 것’이었다.
“잠깐 들어가도 돼?”
“물론입니다. 들어오시지요.”
집사가 문에서 자리를 비켜줬다. 안으로 들어가자 슈가가 외쳤다.
―저기 있어!
저기?
슈가가 보는 방향을 좇으니 철장 안에 하얀 무언가가 내게 열심히 꼬리를 흔들었다.
처음에는 ‘완자인가?’ 싶었지만, 조금 보니 둘이 확연히 다른 게 느껴졌다.
여우? 늑대? 무어라 딱 정의할 수 없는 게 슈가의 말대로 이상한 것이었다.
나는 그것의 앞으로 가서 조심스레 읊조렸다.
“……룩스?”
―맞아!
진짜 룩스라고? 이게?
‘말도 안 돼.’
룩스는 분명 마물한테 먹혔는데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심지어 ‘이게’ 룩스라고?
그러나 생판 모르는 것이라고 부정하기엔 어쩐지 눈앞에 있는 것이 낯익었다.
게다가 설명하기 어렵지만, 어째서인지 유대감이 느껴졌다.
이상하지. 처음 보는 것에게는 절대 느낄 리 없는 감정인데 어째서 이게 룩스처럼 느껴지는 걸까?
“룩스.”
-응!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거지?
내가 철장 앞에 멍하니 서 있자 집사가 옆에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께서는 그 마물을 기억하시는 것 같군요.”
마물? 설마 날 죽이려 하고 룩스를 잡아먹은 그 마물을 말하는 건가?
하지만 그 마물은 엄청나게 큰 데다 털 색도 새까맸는데?
“저도 전하께 전해 들은 게 전부입니다만, 이것이 아가씨를 지키려고 애썼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다 지금처럼 작아졌다고 하더군요.”
옆에서 정황을 들었어도 이해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지만…….
“꺼내도 될까?”
“괜찮으시겠습니까? 마법사들한테 이 마물은 안전하다는 확답을 받긴 했습니다만…….”
“난 괜찮아.”
“그렇다면 뜻대로 하시길.”
집사는 친절하게 철장에 걸린 걸쇠 부분을 짚으며 이걸 빼내면 된다고 알려줬다.
그의 말대로 걸쇠를 풀자 룩스가 안에서 튀어나왔다.
―베리이이이!
―뭐야! 너 왜 이리로 오는……! 으아악!
내게 뛰어드는 룩스를 무심코 받은 나는 꽤 당황했다.
헉, 생각보다 무겁잖아?
몸이 뒤로 기울어지더니 이윽고 ‘쿵!’ 하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나는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야…….”
“세상에!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다치신 곳은요?”
“괜찮아. 별로 안 아파.”
집사가 기함하며 날 살피는 동안 언제 저 책상 위로 날아간 건지 슈가가 폴짝폴짝 뛰며 룩스한테 화냈다.
―이 바보야! 여기로 달려들면 어떡해! 네 덩치를 생각해야지! 깔려 죽는 줄 알았잖아!
―미안, 누님.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룩스는 정말 미안한지 귀를 한껏 접으며 낑낑 울어대며 내 주위를 맴돌았다.
‘룩스가 맞아.’
원래 내가 알던 것보다 커다란 덩치도, 복슬복슬한 긴 털도 낯설었지만.
―으악! 귀에 물 들어왔……! 응? 베리, 우는 거야?
―뭐? 운다고? 헉, 진짜네!
룩스가 꼬리를 열심히 흔들고, 도로 내 어깨로 날아온 슈가가 방방 날뛴다.
나는 말 없이 다시 만나게 된 내 친구들을 꼭 끌어안았다.
* * *
탁-
아시드는 황제가 제 발치 앞으로 던진 종이 뭉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바닥에 떨어지며 잔뜩 흐트러지긴 했지만, 두께를 보건대 최소 수십 장은 되어 보였다.
“그게 뭔지 아십니까?”
황제가 오만하게 턱짓하며 물었으나 아시드는 침묵을 고수했다. 제 이복형제가 진실로 대답을 원하고 물은 게 아니란 걸 알고 있었으므로.
“형님의 재판을 열라는 탄원서들입니다. 평소에도 이리 항의가 빗발치니, 재판이 열렸을 때 나올 결과가 어떨지 잘 아시겠지요.”
“본론이나 말해.”
“도대체 셰인트 백작은 왜 죽이셨습니까?”
“죽여야 했으니까.”
“하아, 정말이지…….”
황제가 미간을 좁히며 깊은 한숨을 토했다.
“셰인트 백작의 딸이 귀여운 조카에게 벌인 짓은 저도 유감입니다만, 그래도 백작의 목숨만큼은 붙여놔야 했습니다.”
“…….”
“차라리 손과 발을 못 쓰게 만들지 그랬습니까? 아니면 의식불명으로 만들던지요. 덕분에 귀족파에서 얼마나 난리인지 아십니까? 형님께선 제 고충을 모르시겠지만.”
조롱 섞인 어조에 아시드는 별 감흥 없이 황제를 쳐다봤다.
모를 리가 있나.
평소에도 저 핑계를 대며 제게 더러운 임무를 시켰는데.
“이번은 정말 선을 넘으셨습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셰인트 백작이라니요.”
“선은 백작이 먼저 넘었다.”
“벡작이 아니라 백작의 딸이 넘은 거지요.”
쯧, 혀를 찬 황제가 잠시 뒤 입을 열었다.
“형님의 판단이 이해 안 되는 것도 아닙니다. 백작은 딸을 무척 아끼는 자이니 어떤 식으로든 형님과 조카에게 복수하려 했겠지요. 하지만 별개로 상황이 귀찮아졌으니 형님께도 처벌이 필요하겠지요.”
“…….”
“지방에 내려가 한동안 자숙하십시오. 머리를 식히시는 김에 조카한테 예쁜 별장을 구경시켜주면 되겠군요.”
“그게 다인가?”
“따로 원하는 처벌이라도 있습니까? 못 본 사이에 새로운 취향이 생기신 줄 몰랐군요.”
“헛소리.”
“우리 형님은 언제쯤에야 농담에 어울려주실는지.”
“용건이 끝났다면 가지.”
냉정히 몸을 돌린 아시드가 나가기 위해 문손잡이를 잡았을 때였다.
“형님.”
뒤에서 들려오는 건조한 목소리에 아시드가 잠시 행동을 멈췄다.
“체스 말은 판 위에 있을 때 쓸모가 있는 법입니다.”
나직한 경고.
똑똑한 형제는 분명 제 뜻을 알아들었으리라.
황제는 아시드가 할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돌아온 건 문 닫히는 소리뿐이었다.
* * *
며칠간 나는 모두의 배려 속에서 푹 쉬는데 집념했다.
그 때문에 아주 뒤늦게 카드릭의 생일이 지났다는 걸 깨달았지만, 그뿐이었다.
카드릭을 위해 준비했던 선물은 페리드 경을 통해 말롱 부인이 수작을 부린 물건이었다.
그런 걸 황태자의 선물이라며 보낼 수 없지 않은가? 새로운 선물을 준비해 꾸려 보내기에는 이미 늦었고.
무엇보다 아빠의 사정을 들으니 더는 카드릭과 가깝게 지낼 엄두가 안 났다.
어째서 아빠가 황가를 그렇게 질색하는지에 대해 나도 이해해버렸으니까.
나는 괜히 발끝으로 땅바닥을 툭툭 건드렸다.
내 움직임에 따라 정원 나무에 매달린 그네도 같이 흔들흔들 움직인다.
―베리, 베리!
그때 슈가가 포르르 내게 날아왔다.
―룩스가 날 도토리와 함께 파묻으려고 했어!
―오해야! 아직 변한 몸이랑 이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룩스가 잔뜩 억울해하며 한쪽 발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얇은 발찌가 룩스의 발을 감싸고 있었다. 본체가 마물인 만큼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한 마도구였다.
나야 룩스가 안전하다는 걸 알아 풀어주고 싶은 마음이 컸으나 저택에서 일하는 사용인들을 비롯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행이라면 룩스가 아무렇지 않아 한다는 것 정도일까.
노느라 더럽혀진 룩스와 슈가를 데리고 들어와 씻기고, 젖은 김에 나도 씻고 조금 쉬고 뒹굴뒹굴하니 어느덧 잘 시각이 되었다.
침대에 누우니 이전과 달리 커진 덩치 때문에 더는 바구니에서 못 자게 된 룩스가 내 옆에 자리 잡자 이어 첼시가 내게 이불을 꼼꼼히 덮어줬다.
“안녕히 주무세요, 아가씨.”
“응, 첼시도 잘자.”
첼시가 나가자 바구니에 있던 슈가가 푸념하듯 말했다.
―오늘도 그 수컷 인간은 안 온 거지?
“응.”
나는 괜히 옆에 있는 인형을 매만졌다. 벌써 아빠가 돌아오지 않은 지 며칠째였다.
‘아마 또 그걸 찾으러 간 거겠지.’
가슴이 욱신거린다. 하지만 익숙해져야 할 일이었다.
아빠한테 이미 확답을 들었고, 나는 그걸 이해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