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83)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83화(83/125)
#83
‘셰인트 백작가의 뒤를 봐주는 고위 가문 사람이었던 거야.’
등골이 서늘해진다. 셰인트 백작가보다 더 높은, 고위 가문이 있을 거란 소문을 몇 번 접하긴 했다.
그러나 딱히 그곳이 어딘지 궁금한 적은 없었다.
어쩌면 소문은 소문일 뿐이라고 넘기기까지 했다.
당시 나는 말롱 부인이 시키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다른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으니까.
소문의 진실을 이런 식으로 확인하게 될 줄이야.
‘하지만……. 그때는 왜 도와준 거지?’
단순한 동정심 때문?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무른데.
이런 식으로 마주하게 될 줄 몰랐나?
하긴. 나도 이렇게 마주칠 줄 몰랐는데 그쪽도 몰랐겠지.
그래도 암흑가와 관련된 아이치고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내가 고발하면 어쩌려고.’
그로써 도움을 받은 내가 할 생각이 아닌 것과 별개로.
물론, 며칠이 지나도 내가 남자아이……. 그러니까 ‘미하엘 경’을 고발하는 일은 없었다.
나야 룩스 덕분에 그 남자아이와 미하엘 경의 연관성을 믿으나 남들에게 명확히 증명할 방법이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결정적인 이유가 따로 있었다.
‘날 도와줬었어.’
비록 그 도움을 제대로 누리진 못했으나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었다.
‘보여준 호의에 보답하기는커녕 이미 피해를 입혔지만.’
어쩌면 날 도와준 것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아빠가 셰인트 백작을 죽임으로써 그가 관리하던 암흑 시장의 세력이 줄었으니.
미하엘 경의 가문 또한 연관이 있을 테니 해를 끼친 것과 마찬가지일 터다.
‘어느 가문의 사람인지 알아두는 게 좋겠지?’
지난번에 만났을 때 내게 적의를 가진 것 같진 않았지만, 알아둬서 나쁠 건 없을 거야.
카드릭한테 물어보면…….
‘궁금해할 것 없어.’
음, 안 가르쳐주겠네.
카드릭의 냉랭한 대꾸를 떠올리니 금방 결론이 나온다.
알려줄 마음이 있었다면 처음 내가 미하엘 경에 관해 물었을 때 이름과 작위부터 말했겠지.
‘첼시와 집사는 알려나?’
수도에 오래 있었으니 어쩌면 소문으로나마 들었을지도?
그런 생각으로 둘에게 물었으나 돌아온 대답은 비슷했다.
‘황태자 전하의 호위 기사요? 전 그런 건 잘 몰라서…….’
‘죄송합니다. 잘 모르겠군요.’
고개를 젓는 둘을 보니 그제야 아차, 싶더랬다. 생각해 보면 둘은 대공저에서만 일하니 황궁과 관련된 소식을 깊게 접하기 어려울 터였다.
그런고로 내 질문에 답해줄 다음 대상은 황후의 시녀인 데보라 부인이었다. 아무래도 가장 날 잘 챙겨주는 사람이다 보니 주제를 꺼내기 편했다.
나는 일부러 도서관에 가는 대신 데보라 부인이 한가해지는 때를 기다렸다가 말을 걸었다.
“데보라 부인, 잠깐 시간 괜찮으신가요? 궁금한 게 있는데 혹시 부인께선 알까 싶어서요.”
“어떤 건가요?”
“황태자 전하의 호위 기사가 누구인지 아시나요? 얼핏 미하엘 경이라고 듣긴 했는데, 이름인지 작위인지 모르겠어서요.”
“미하엘 경이라면, 미하엘 실베스터 공자 말씀이군요.”
데보라 부인은 곧바로 내게 해답을 주었다.
“검술 실력을 인정받아 호위 기사로 임명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나이는 어리나 전하의 호위인 만큼 예외적으로 기사 작위를 하사받았지요.”
부인이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으나
동시에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옛 장면이 번뜩였다.
죽기 직전, 봤던 황금 사슴 문양과 금색 머리카락을 가졌던 청년의 모습이.
‘같은 사람이야.’
미하엘 실베스터가 그 남자였다니.
병약하다기에 그동안 둘의 연관성을 배제했던 게 우스울 정도다. 직접 보고도 바로 떠올리지 못하다니.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부인.”
“무얼요.”
데보라 부인이 설핏 웃었다.
“실베스터 공자의 인기가 많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정말 그런가 보네요.”
“……?”
의아해하던 나는 곧 데보라 부인의 생각을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황급히 내저었다.
“전 그저, 그분이 어린 나이에 황태자 전하의 호위라길래 신기해서……!”
“네에, 그럼요.”
데보라 부인이 놀리듯 말끝을 흐렸다.
틀렸다. 전혀 믿는 눈치가 아니잖아!
이럴 것 같아 일부러 뜸도 들이지 않고 본론부터 말한 거였는데!
부인은 한동안 계속 웃음기 어린 얼굴로 날 쳐다보고 갔다.
‘그런 거 아닌데.’
억울했지만 달리 표현할 방도도 없어 나는 체념했다.
그래, 오해하면 좀 어때?
리리카도 그렇고 내 또래들은 이런 것에 관심 두는 게 보편적이니 딱히 문제가 될 건 없겠지. 데보라 부인의 입이 가벼운 것도 아니니까.
그리고 사실 중요한 건 저게 아니었다.
‘실베스터 공작가도 암흑가와 관련 있다니……. 혹시, 아빠의 반역도 연관 있지 않을까?’
돌이켜 생각하면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아빠가 자기 입으로 직접 황실을 멸문시키겠다고 했으나 아빠의 반역은 너무나 조용히 일어났다.
보통 반역할 땐 사병이나 기사단을 동원하지 않나?
비록 아빠가 뛰어난 마법사라고 하나 황궁에서 마법 사용을 허가받지 못한 사람이었다.
어릴 적 내 앞에서 피를 토하던 아빠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러니 홀로 반역을 일으키는 건 불가능해.’
아빠가 고대 무기를 찾는 이유는 황제가 지닌 화염의 검에 대항하기 위해서였다.
불새를 조종당하지 않는다 한들, 황궁 전체에 깔려 있다는 반발 마법까지 무시하긴 어려울 터였다.
‘만약 실베스터 가문이 아빠를 도왔다면?’
정확히는 ‘이용’한 거겠지만.
나는 냉정하게 칼로 아빠의 등을 꿰뚫던 실베스터 공자를 떠올렸다.
만약 아빠가 실베스터 가문과 상조했다면 아빠의 최후가 그런 식일 리 없었다.
‘이러면 실베스터 공자 옆에 있던 사람이 날 죽여야 한다고 그랬는지도 설명돼.’
목격자를 남기지 않는 건 암흑가 대부분의 철칙이었으므로.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실베스터 공자가 날 기억하면 어쩌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전생과 다른 행보를 보인 건 어린 마음에 내가 걸림돌이 될 줄 몰라서였을 것이다.
당시 내 차림새는 쫓기고 구르느라 꼬질꼬질해서 더욱 보잘것없는 아이처럼 보였을 테고.
하지만 나는 그를 기억하고 있으며, 그의 가문이 어떤 일에 연관되어 있는지까지 알았다.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위치이자 비밀을 알고 있는 위험 인자.
그나마 다행인 건 아빠와 룩스가 있다는 것이다.
‘외출할 땐 룩스와 함께 다녀야겠다.’
황궁에서 날 해하는 대범한 짓은 안 하겠지만, 거리에서는 모를 일이니까.
* * *
―눈! 눈이다!
―눈!
밤새 내린 눈이 소복하게 쌓인 정원을 보고 신이 난 룩스와 슈가가 폴짝폴짝 뛰었다.
날이 추워져 꽃이 피지 않는 계절의 정원은 흡사 넓은 들판처럼 보였다.
―저게 뭐가 좋다고. 나처럼 품위를 지켜야지!
첼시의 품에 안긴 완자가 한마디 해도 룩스와 슈가는 들은 체도 안 했다.
―베리, 베리! 나 커져도 돼?
“그래.”
주위에 미리 사용인들을 물려둔 관계로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별장에 있을 때와 달리 내내 작은 덩치로 지내는 모습이 마음에 걸려 취한 조치였다.
내게 생쥐였던 룩스와 지금의 룩스는 똑같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위협적으로 느껴질 거란 걸 아니까.
사람이라고는 오직 나와 함께 별장에 있을 때 룩스의 진짜 모습을 자주 본 샤비와 함께 온 첼시만 근처에 있을 뿐이다.
“마음껏 놀아.”
내 허락에 룩스의 몸에서 옅은 빛이 흘러나오더니 덩치가 엄청나게 거대해졌다.
“맙소사.”
룩스의 본모습을 처음 보는 첼시가 충격 반, 놀라움 반 어린 감탄을 내뱉었다.
“저 커다란 게 룩스라니…….”
룩스의 본모습을 처음 본 첼시는 정말 놀란 듯했다.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몸을 덜덜 떨었으므로.
눈으로 직접 룩스가 변하는 모습을 봤으니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는 듯했지만.
‘무서운 거겠지. 첼시한테도 비밀로 할 걸 그랬나.’
그런 생각을 하던 때다.
“너무…….”
“…….”
“너무 귀여워요! 저 커다란 까만 발바닥 좀 보세요! 얼마나 말랑말랑하고 푹신할까요? 만져봐도 될까요, 아가씨?”
―뭐? 지금 왕자님의 것이 아니라 저 녀석의 것을 만지겠다고? 안 돼! 이거 봐, 첼시! 왕자님의 발도 말랑말랑해!
첼시가 한껏 흥분한 기색으로 말하자 완자가 낑낑거리며 그녀의 팔을 긁었다.
완자의 말을 알아들을 리 만무한 첼시는 영문도 모른 채 완자를 달래기 바빴지만 말이다.
한바탕 룩스와 슈가가 놀도록 내버려 둔 나는 어제저녁에 받은 편지 내용을 떠올렸다.
[7년 치 선물 기대할게.]저 뜬금없는 서신의 출처는 카드릭이었다.
정말이지, 자려고 눕는데 뭔가 창문을 툭툭 두드리는 소리에 봤다가 불새가 있는 걸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설마 아빠의 불새인가? 무슨 일이 생겼나?’라고 걱정하기도 잠깐, ‘삐이!’ 울어대는 모습을 보고 카드릭의 불새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창문을 열어주자 기다렸다는 듯이 날아온 불새는 내게 목도리처럼 제 목을 감싼 천 주머니를 보여줬다.
조심히 천을 풀자 거기에 들어있는 것은 모서리가 살짝 구겨진 봉투 두 개였다.
하나는 카드릭의 생일 연회 초청장.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카드릭이 별도로 내게 보내는 서신.
그리고 후자에 저 말이 쓰여 있었다.
[이번에도 못 받을까 봐 피닉스를 보내. 7년 치 선물 기대할게.]……라고!
한 마디 한 마디가 지난 7년 전에 있었던 일을 가리키고 있어 편지를 받은 나는 어이없어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