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90)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90화(90/125)
#90
어째서 아빠가? 슬슬 돌아올 때가 됐지만 왜 하필 오늘 온 거람? 그것도 하필 지금!
습관적으로 헤헤, 바보 같은 웃음이 지어진다.
“언제 오셨어요?”
“조금 전에.”
짧게 숨을 내쉰 아빠가 내게 다시 물었다.
“그래서 뭐가 비밀이란 거지?”
말 돌리기 실패다. 애초에 어물쩍 넘길 수 있을 거라 기대도 안 했지만, 이렇게 바로 되물을 줄이야.
“그게…….”
뭐라 하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열심히 변명거리를 생각했으나 역시 떠오르는 건 없다.
어쩔 수 없지. 아빠한테도 샤비와 마부한테 말한 것처럼 사실대로 털어놓는 수밖에.
“실은 넬레 영애가 주최한 모임에 갔다가 잠깐 시가지에 들렸거든요. 그때 다른 사람이랑 부딪쳐 넘어졌어요.”
“넘어졌다고? 다친 곳은?”
“넘어지긴 했는데 다친 곳은 없어요. 이건 저와 부딪친 사람의 거예요. 많이 다친 것 같길래 도와주는 동안 묻었어요.”
“하녀는 뭘 하고 네가 그걸 도왔지?”
“탓하지 마세요. 제가 안 데려간 거예요.”
나는 샤비에게 향하는 아빠의 시선을 가로막았다.
“안 데려갔다고?”
역효과가 난 듯했지만.
“모임에 가는 거니까 별일 없을 줄 알고……. 원래는 모임에만 다녀오려고 했거든요.”
“하녀야 그렇다 쳐도 호위기사는 데려갔을 것 아닌가? 설마 호위기사조차 안 데려간 건 아니겠지.”
“룩스와 함께 가서요.”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스리슬쩍 룩스를 가리켰다. 내 손짓을 받은 룩스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러나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빠는 눈살을 찌푸렸다.
찔리는 게 있어서 그런가?
오늘따라 유난히 아빠의 눈매가 날카로워 보인다. 원래도 매섭게 생기긴 했지만.
“저게 강하긴 하지만 항상 널 지킬 수 있는 건 아닐 텐데.”
“웬만한 사람보다는 믿을 만하잖아요.”
“그래서, 다친 곳은 정말 없는 거고?”
끄덕끄덕.
나는 여느 때보다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는 여전히 뭔가 거슬리는지 눈썹을 치켜세운 채 날 한참 바라봤다.
차마 시선을 똑바로 마주 못하고 괜히 그 시선을 피해 다른 곳을 보던 때다.
아빠가 한숨을 내쉬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무사하니 됐다. 저녁 식사는 하고 온 건가?”
“아니요. 안 먹었어요.”
“그럼 오랜만에 같이 먹지.”
내가 좋다고 하자 아빠는 이따 보자며 나갔다.
그제야 나는 안도하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너덜너덜해진 외출복을 벗고, 멀쩡한 옷으로 갈아입는데 샤비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아가씨, 떨어뜨리셨어요.”
그녀가 내민 것은 황금 사슴이 양각된 펜던트였다.
헉, 저걸 안 돌려주고 그대로 들고 왔구나! 미하엘 경을 데려간 여자한테 줬어야 했는데!
“고마워.”
나는 일단 샤비로부터 펜던트를 받았다.
보석함에 넣어뒀다가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시가지로 가서 라샨에 갖다 줘야겠다.
카드릭한테 부탁하면 미하엘 경과 직접 대면할 수야 있겠지만…….
‘더는 엮이고 싶지 않다고.’
펜던트를 움켜쥐는데 샤비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못 보던 건데 오늘 사신 건가요?”
“잠깐 떠맡은 거야.”
“떠맡아요……?”
“응. 주인이 따로 있어서 돌려줘야 해.”
다행히 샤비는 거기서 더 묻지 않았다.
펜던트를 보석함에 넣은 나는 하인이 저녁 준비가 끝났다고 알려줄 때까지 룩스와 슈가와 함께 놀았다.
그렇게 다이닝룸으로 오니 아빠가 먼저 와 있었다. 나도 전달받자마자 바로 내려온 건데.
하인이 빼준 의자에 앉으며 나는 힐끔 아빠를 쳐다봤다.
아까야 미처 정신이 없어 묻지 못했으나 아빠가 목적을 달성했는지 궁금해서였다.
표정을 보아하니 이번에도 못 찾으신 것 같은데……. 못 찾은 것 맞겠지?
“못 찾았다.”
“네, 네?”
“고대 무기를 찾았는지 궁금했던 거 아닌가?”
내가 언제 소리 내서 아빠한테 물어봤나? 아닌데?
“어떻게 아셨어요?”
“뻔하지.”
뻔하다니, 내가 그렇게나 대놓고 표정을 드러냈다고?
손을 들어 더듬더듬 얼굴을 만지는데 아빠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오늘 시가지에는 왜 간 거지? 모임에만 다녀올 예정이었다며.”
“모임이 일찍 끝날 줄 몰라서요. 살 것도 있었고요.”
“살 것?”
“선물…… 헙!”
무심코 말하던 나는 아차, 싶어 입을 다물었다.
“선물?”
그래봤자 늦은 일이었지만.
아빠의 반문에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아빠는 카드릭을 안 좋아하니 내가 시가지에 들른 이유가 그의 선물을 준비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알면 화낼지도 몰랐다.
그걸 알면서도 달리 둘러댈 말이 없었던 만큼 나는 우물쭈물 털어놨다.
“선물용 장갑을 사러요. 크기를 몰라서 못 샀지만요.”
으, 제발 누구한테 줄 건지는 안 물었으면 좋겠는데.
“그러고 보니 새 장갑을 맞출 때가 되긴 했군.”
“……?”
“내 손 크기는 주인이 잘 알고 있을 거다.”
저 얘기를 왜 나한테 하는 거지……?
뜬금없는 장갑 얘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곰곰이 대화의 흐름을 되짚던 나는 흠칫 놀랐다.
‘설마, 아빠 걸 사려고 하는 줄 아는 건가?’
아닐 거라 여기고 싶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아빠가 저 말을 할 이유는 저것뿐이었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끝내 카드릭한테 줄 거라고 털어놓지 못한 나는 식은땀이 흐르는 듯한 기분 속에서 식사를 마쳤다.
나중에 카드릭의 선물을 주문할 때 아빠의 장갑도 함께 준비해야겠다.
* * *
“듣고 계십니까, 공녀님?”
“아.”
멍하니 있던 나는 갑작스러운 부름에 정신을 차렸다. 엘피다에서 오는 사절단에 대비한 교육관이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죄송해요.”
“오늘따라 집중을 못 하시는군요. 안색도 안 좋아 보이고. 혹시 어디 아프십니까?”
“아니요. 아프진 않아요.”
그저 어제 긴장한 상태로 저녁을 먹은 데다 생각할 거리가 많다 보니 그 후폭풍이 다음날까지 이어졌을 뿐.
“그럼 다행입니다만, 오늘은 이만 마치겠습니다. 돌아가서 쉬시지요.”
“괜찮아요. 아직 끝날 시각도 아니고 집중할게요.”
“오늘만입니다. 집중을 못 하는 상태에서 수업은 안 하느니 못하니까요. 다음에 좀 더 집중해주시지요.”
그러겠노라고 인사한 뒤 나오긴 했으나 예상치 못하게 생긴 여유 시간이 난감하기만 했다.
황궁 도서관에 가도 되고 황후궁으로 돌아가 한적한 시녀들과 이야기꽃을 피워도 됐지만, 오늘따라 다 귀찮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카드릭의 손 크기도 알아내야 하는데.’
아직 시간이 남긴 했으나 얼마 안 남은 만큼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었다.
‘일단 직접 만나서 재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만나지?’
우리의 만남은 카드릭이 먼저 찾아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그를 만나러 간 적 없는 만큼 그래도 될지 확신이 안 섰다. 무턱대고 찾아가 보고 싶다고 하면 안 받아줄 거란 밀이지. 그래도 명색이 황태자니까.
“으음.”
어떡한다?
카드릭이 날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건 너무 기약 없는데.
황후 폐하께 부탁드리는 건 부담스럽고, 아빠한테 부탁하면 왜 그러냐고 물어볼 테고…….
역시 되든 안 되든 찾아가 봐야 하나?
곰곰이 생각하며 걷던 때다. 누군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갑자기 끼어들기보다는 천천히 다가와 막은 느낌이었다.
“공녀님.”
나지막이 울리는 저음에 나는 고개를 들어 상대의 얼굴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상대는 미하엘 경이었다.
“시간을 내어주실 수 있습니까? 잠깐이면 됩니다.”
* * *
‘바쁘다고 말할걸.’
나는 나보다 앞서 걷는 미하엘 경의 뒷모습을 보며 후회했다. 갑작스러운 조우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 게 화근이었다.
우리 둘 다 황궁에서 일하니 이렇게 만난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바로 만날 줄 몰랐단 말이지.
‘게다가 저쪽이 날 찾아올 줄은 더 몰랐고.’
대체 왜 보자고 한 거지? 역시 그 펜던트 때문인가? 아니면 입막음?
타박타박, 이어지던 걸음은 딱 보기에도 사람이 잘 안 다닐 거 같은 외진 정원에 도달한 뒤에야 멈췄다.
외진 곳이라 그런지 정원사의 손길이 제대로 안 닿아 무성한 잡초와 커다란 아름드리나무가 괜히 음산해 보이는 곳이었다.
정말 후자였나?
설마 여기서 날 묻어 버리려는 건 아니겠지?
나름 목숨의 은인인데……. 설마 내게 해코지할까, 싶다가도 그의 출신을 떠올리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만 같았다.
나는 더듬더듬 아빠가 준 반지를 찾았다. 룩스를 데리고 오지 못하는 황궁에서는 반지만이 나를 지켜줄 수 있었으니까.
긴장한 채 미하엘 경을 응시하는데 그가 입을 열었다.
“제가 누군지 알고 따라오셨습니까?”
으, 응?
“황궁 안이라 해도 정체불명의 자를 따라갔다가 위험에 처하면 어쩌려고.”
이어지는 그의 말에도 여전히 나는 의아함을 숨길 수 없었다.
“황태자의 호위기사가 정체불명의 자는 아니지 않나요?”
물론, 그가 위험한 사람이라는 건 반박할 수 없지만.
“제가 황태자의 호위기사로 보입니까?”
“……호위기사 아니에요? 카드릭도 그렇고 다들 미하엘 경은 카드릭의 호위기사로 임명됐다고 했는데?”
왜 이런 주제를 논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의심하듯 물으니 당혹스러워 절로 주절거리게 됐다.
심지어 조금 굳은 듯한 그의 얼굴을 보니 마치 실수라도 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긴장감에 꿀꺽, 목울대가 움직이던 때다.
“역시…….”
“…….”
“통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