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91)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91화(91/125)
#91
혼잣말인지 그가 읊조리는 음성은 너무 작아 잘 안 들렸다.
하지만 입 모양은 명확히 읽혔다.
‘통하지 않는다니, 뭐가?’
의아해져 올려다보니 그와 눈이 마주쳤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빤히 바라보는 눈빛.
아니, 노려보는 건가?
날 저렇게 노려볼 이유가 있……, 설마 날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살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황궁인데, 설마 그러겠어?’
애써 태연한 척하려 했으나 뒤이어 떠오른 말롱 부인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그녀는 황궁 안에서 날 해치려 들었으니까.
불안감이 파도처럼 날 덮쳤다. 손끝이 덜덜 떨린다.
‘어떡하지?’
어제 본 건 비밀로 하겠다고 말할까? 아니면 난 그쪽이 뭘 하고 다니든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해야 하나?
그런데 이미 날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어떤 말을 하든 소용없는 거 아닌가?
‘역시 어제 모른 척 버리고 갔어야 했어.’
나중에 내 발목을 잡을 걸 알면서도 외면 못 했다가 후회하는 때가 종종 있는데 지금이 그런 때 같았다.
‘어제 다친 데를 때리고 도망치는 건…….’
나는 바로 생각을 지웠다.
어제 미하엘 경의 상처는 정말 심각했다.
아직도 치료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멀쩡하게 서 있지 못할 터였다.
‘아빠를 불러도, 그때까지 내가 무사할까?’
심지어 아빠는 황궁에서 마법을 쓰면 그만큼 후유증을 앓았다. 지금 아빠를 부르는 건 신중히 해야 했다.
심증에 불과한 의심을 하며 계속 망설이던 때다.
미하엘 경이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의도는 몰라도 위협적으로 느껴져 눈이 질끈 감겼다.
“…던트.”
“……?”
작은 속삭임에 의아해하며 슬그머니 눈을 뜨는 동안 그가 다시 말했다.
“펜던트를 돌려주지 않으셨더군요.”
“아.”
방금까지 머릿속을 가득 차지하고 있던 생각들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내 착각이었구나.’
그를 두려워했던 크기만큼 부끄러움이 가득 올라왔다.
나는 그가 말한 펜던트를 찾기 위해 허둥지둥 주머니 부분을 짚다가, 오늘 입은 옷에는 주머니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당연히 목걸이도 없었다. 애초에 방에 두고 왔는데 여기 있을 리 없지.
이렇게 직접 만나러 올 줄 알았다면 챙겨왔을 텐데.
“지금은 없네요. 나중에 갖다 드릴게요.”
“나중이라 하시면?”
“제가 쉬는 날에요. 어제 부탁한 곳에 맡기면 되죠?”
“아니요. 내일 이 시각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그때 전해주십시오.”
미하엘 경은 내게 가볍게 묵례하고는 돌아섰다.
* * *
돌아선 미하엘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죽일 뻔했어.’
주먹을 쥔 손끝으로 빠른 맥박이 느껴진다.
시발점은 베로니카한테는 세뇌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였다.
능력을 자각한 이래로 이런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베로니카 또한 그의 능력이 통했었다.
몇 년 전 처음 그녀에게 능력을 썼을 때, 아무 의심 없이 저를 보육원에 있는 고아로 여긴 게 그 증거였다.
그다음에 원래 모습으로 만났을 때도 못 알아봤고.
그래서였다. 북부 상처에서 비롯된 통증과 피를 많이 흘려 정신이 흐려지던 때, 마침 눈에 띈 베로니카를 붙들었던 이유가.
한 번이라도 제 능력이 통한 사람은 다음에 더 쉽게 세뇌되고 피로도가 덜했다.
그렇기에 의식을 잃기 전에 뒤를 대비하고자 필사적으로 베로니카를 붙든 것이었는데.
‘미하엘 경……?’
생각지 못한 변수가 생겼다. 언제부터 있었던 건지 모를 웬 동물이 그를 제지하더니, 이어서 베로니카가 제 본모습을 알아본 것이었다.
그래도 거기까진 괜찮았다. 뜻밖이긴 하나 상처를 입어 제대로 힘을 못 쓴 탓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능력이 안 통할 리 없으니 나중에 다시 세뇌를 걸어 기억을 덧씌우면 되리라.
그렇게 여겼다.
오늘도 베로니카에게 능력이 통하지 않기 전까지는.
사실 변수로 ‘마수’를 생각하기도 했다.
어제 그는 미처 확인 못 했으나 힐다가 말하길, 베로니카의 옆에 있는 게 평범한 동물이 아니라 마수라고 했으므로.
‘도련님을 모셔올 때 봤습니다. 이상할 정도로 온순하긴 했으나 마수가 분명했습니다.’
그러며 그녀는 벨로크 공녀를 주시하는 게 좋겠다고 덧붙였다.
미하엘은 힐다가 하는 주장이 꽤 그럴듯하다고 느꼈다.
마수라면 갑자기 그렇게 커다란 덩치의 것이 나타난 것도, 그 옆에 있던 베로니카한테 제 능력이 전부 먹히지 않은 것도 설명되었으니까.
확인해볼 필요성이 있다고 여긴 미하엘은 가문의 인장 펜던트도 돌려받을 겸 베로니카를 찾아갔다.
그녀의 곁에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한 그는 제 능력을 썼다.
하지만 이번에도 베로니카는 자신을 알아봤다. 그것도 자신이 말을 걸자마자 단번에 말이다.
만약 마수의 영향으로 능력이 통하지 않았던 거라면 마수가 없는 지금은 능력이 완벽히 통해야 했다.
그리고 자신을 평범한 시종으로 대했어야 했다.
결론적으로, 베로니카가 미하엘을 시종으로 대하는 일은 없었지만.
이걸로 알 수 있는 사실은 명확하고 간결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벨로크 공녀에게는 내 능력이 통하지 않는다.’
이 사실은 미하엘에게 꽤 커다란 충격이었다.
‘내 능력이 통하지 않는다니.’
처음 있는 일인 만큼 당혹스럽다 못해 위기감마저 들었다.
부친의 밑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생사의 갈림길에 섰을 때도 이만큼 당혹스럽고 무서운 적이 없었는데.
아마 그 때문이었던 것 같다.
‘죽일까.’
자신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유일하게 제 능력이 통하지 않게 된 사람이자 ‘변수’였다.
변수를 남기지 말라. 예외를 두지 말라.
부친이 늘 강조한 가르침이었다. 실제로 그 가르침은 꽤 정확한 때가 많았다.
잔뜩 긴장한 몸은 작은 감각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쿵, 쿵―
울리는 심장 소리가 여느 때보다 크게 들린다.
‘죽여야 해.’
저 얇고 가녀린 목만 꺾어 치우는 건 어렵지 않다.
일부러 외진 장소로 데려온 터라 뒤처리도 비교적 수월할 테고.
벨로크 대공이 상당한 걸림돌이 될 테지만, 결국 부친이 어떻게든 잘 해결해줄 터였다.
‘그러니 공녀만 사라지면.’
자신은 다시 아무 결함도 없게 된다.
충동에 사로잡힌 손에 힘이 들어갔다.
미하엘이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손과 시선을 들었던 그 순간이었다.
베로니카가 눈을 질끈 감았다. 마치 제 생각을 읽은 것처럼 떨고 있는 그녀를 보니 순간, 아주 오래전에 봤던 장면이 떠올랐다.
오크통 뒤에 숨어 벌벌 떨다 자신과 마주하고 한껏 긴장하던 여자아이의 모습이.
그 여자아이는 조금 더 자라기만 했을 뿐, 그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여전히 작고 가녀리다.
이런 상대에게 위협을 느끼고 살기까지 내뿜다니…….
스스로가 한심해져 모든 의지가 사라졌다.
동시에 가슴 속 깊이 기분 나쁜 울렁거림이 솟구친다.
‘처음 만났을 때는 안 그랬으면서.’
어릴 적 실수한 그에게 ‘그래도 괜찮다.’라고 상냥하게 말해주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두려워하기만 하는 건지.
속마음과 별개로 미하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손을 원래대로 돌려놓고는 자연스럽게 펜던트로 화제를 돌렸다.
그렇게 내일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돌아섰으나 지금도 속이 울렁이고 가슴이 답답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섣불리 베로니카를 해치기 전에 멈춰서 다행이라는 점이었다.
‘어째서 갑자기 내 능력이 통하지 않게 됐는지 알아내야 해.’
그래야 이런 일이 또 일어나도 대처할 수 있겠지.
베로니카를 어떻게 할지는 그 뒤에 고민해도 괜찮으리라.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황태자궁으로 되돌아온 미하엘은 교대를 이어받았다.
그리고 막 카드릭의 곁에 섰을 때였다.
미하엘이 지나가며 얕게 일은 바람에 카드릭이 필사하던 손을 멈췄다.
평소 미하엘로부터 맡은 적 없는,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은은하지만 달큼한 향기가 카드릭의 후각을 건드렸다.
그도 그럴 게 그 향기는 베로니카한테서 나던 향기였으므로.
“미하엘 경.”
“예, 전하.”
“오기 전에 만난 사람 있어?”
생각지 못한 물음에 미하엘은 동요했으나 겉으로는 애써 무표정을 유지했다.
‘어떻게 안 거지? 내게 꼬리를 붙였나?’
하지만 황실이 굳이 그에게 꼬리를 붙일 이유는 없을 터였다. 대외적으로 그는 아직 황태자의 호위이자 공작가의 자제에 불과했으므로.
‘혹시 뭔가 알아내서 의심하는 건가?’
황실은 실베스터 공작가가 벌이는 일을 모른다고 여겼건만, 어쩌면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제 가문이 가진 재력의 비밀과 불법적으로 벌인 일들이 밝혀지면 상당히 골치 아플 게 분명했다. 무엇보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잠시 아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람을 만나고 온 건 어찌 아셨습니까?”
“익숙한 냄새가 나서.”
냄새?
미하엘은 반사적으로 제 복부를 짚었다.
어제 급히 치료받긴 했으나 상처가 워낙 깊어 완전히 낫지 않은 상태였다. 자신도 모르는 새 상처가 터져 냄새를 풍겼을지 몰라 나온 행동이었다.
아무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한 후에는 금세 손을 내렸지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면 됐고.”
카드릭은 미하엘을 한 번 힐끔 보고는 다시 책상으로 시선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