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104
104화
최강이 휘두른 청화수로 인해 일대를 집어삼켰던 안개는 다음 날 새벽이 되어서야 사라졌다.
“어. 그래, 알았어. 최대한 빠르게 복귀할게.”
미국에서 있었던 일을 최대한 간략하게 크리스에게 보고한 쇼튼이 전화를 끊자 엘리자가 말했다.
“뭐라고 그래?”
“최강이 던전을 처리하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은 좀 찝찝하긴 하지만, 이번 일로 결정한 거 같아.”
엘리자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최강을 그란디아 대륙 사람으로 결정짓겠다는 말이야?”
“그래. 정확히는 맞든 틀리든 처리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거겠지만.”
광둥성에서 청화수와의 대결이 있던 날, 미국에 균열이 열렸고 던전이 생겼다. 그리고 오늘 최강이 던전을 해결하자 대규모 균열이 북한에 발생했다고 크리스는 말했었다.
이것만 보았을 때 마나의 공명을 일으키는 것은 최강이 맞다. 우연치고는 너무 공교롭게 척척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엘리자가 말했다.
“하지만 만약에 최강이 그란디아 대륙과는 상관없는 사람이라면?”
“…….”
쇼튼이 엘리자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봤다. 여전히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이 보였다.
쇼튼이 말했다.
“아직도 그 감 때문이야?”
“그건…….”
망설이던 엘리자가 마지못해 인정했다.
“그래, 맞아. 근데 그게 왜? 최강, 그 녀석과의 싸움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쇼튼 너도 동의했었잖아. 그런데……!”
“엘리자.”
평소랑 다르게 쇼튼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자르며 들어오자 엘리자가 입을 다물었다. 쇼튼이 말했다.
“최강이 그란디아 대륙 사람이 아닐 확률이 몇 퍼센트나 된다고 생각해?”
“…….”
엘리자가 답하지 못하자 쇼튼이 말했다.
“답을 못 하는 이유는 엘리자 너도 알고 있다는 거지?”
쇼튼의 말대로 엘리자도 알고 있었다. 이미 앞의 2개의 증거를 제외하고도 그란디아 대륙의 기술을 사용하는 모습이나 몬스터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모습 등 여러 가지가 겹쳐진 결과, 최강이 그란디아 대륙 사람이 아닐 확률은 거의 희박했다.
이성과 감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던 엘리자가 저항하듯 말했다.
“그치만, 그 이전엔? 우리가 최강에게 관심을 갖기 전엔 어때? 녀석이 바실리스크를 처리할 때도, 아니, 그 이전에 리치를 처리할 때도 균열은 일어나지 않았잖아.”
“마나의 공명이 일어날 확률은 100%가 아니야. 그리고 이건 엘리자도 알고 있는 내용일뿐더러 발생한 마나가 클수록 공명이 일어날 확률과 함께 균열의 크기도 커지지.”
“…….”
엘리자가 말이 없자 쇼튼이 말했다.
“엘리자, 무게의 추는 이미 상당히 기울었어.”
“…….”
90%. 엘리자가 생각하기에도 최강이 그란디아 대륙인일 확률은 그 정도였다. 그리고 쇼튼의 말마따나 그렇기에 엘리자는 쇼튼의 말에 더 이상 반론하지 못했다.
최강을 방치하고 무시한다면 더 큰 균열로 언젠가 찾아올 것이고, 그렇다면 최강 한 사람의 억울함에 대한 우려 때문에 결국 수천, 아니 경우에 따라서는 수백만 명이 피해 보는 사건으로 다가올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쇼튼이 때마침 미국 정부가 제공하는 헬기가 저 멀리 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말했다.
여전히 엘리자의 표정이 밝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엘리자가 더 할 말이 있다면 말이야, 크리스에게 말해 보는 건 어때? 어차피 결정하는 건 크리스니까.”
***
저는 엘리트 아라크네 최말숙.
지금은 최씨 특전대로 활동하고 있는 마족이에요.
오늘은 이번 주의 여섯 번째 날. 이쪽 세계에서는 토요일이라고 부르는 날이에요.
이 토요일엔 비교적 할 일이 없어요. 아버님이든 어머님이든 별일이 없다면 집에 항상 계시기 때문이죠. 그런데…….
오늘은 이상한 일인 것이에요. 점심이 끝나자 두 분이 급히 외출을 준비하셔요.
“말숙아, 그럼 집 잘 부탁해.”
“…….”
따라나서겠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외출을 빠르게 준비하신 어머님이 말씀을 하시고는 문을 닫고 나가 버리셨어요.
뭔가 이상한 감정…….
이 감정이 무엇인지 떠올리다 보니 생각나는 것이 있어요.
이런 느낌을 인간들은 섭섭함이라고 명명하고 있었어요.
짝.
깜짝 놀란 제가 스스로 제 뺨을 때렸어요.
이 마음이 얼마나 불경한 마음인지 아는 것이에요.
“후…….”
볼이 좀 얼얼한 상태로 심호흡을 크게 몇 번 하니 이제야 마음이 좀 진정되는 것이에요.
“어머님, 힘내시와요.”
얼마 전에 어머님과 아버님이 한동안 서먹서먹해지셨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는 두 분의 눈치를 보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요.
눈치 있는 아라크네라면 이 순간엔 빠져 주는 것이 맞는 것이에요.
두 분이 외출하셨으니 집을 쓱 둘러보던 제가 오랜만에 청소를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설거지, 화장실 청소, 바닥 닦기 등 기본적인 걸 순서대로 끝내고 이불을 전부 들어서 빨랫줄에 널고 시간을 확인해요.
째깍째깍.
청소가 얼추 끝났는데 겨우 두 시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어요.
큰일인 것이에요.
“이제 더 이상 마땅히 할 일이 없는데…….”
두 분을 기다리며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자니 천장 구석에 거미줄이 보여요.
원래라면 동업자 정신을 발휘해서 최소한 지켜 줘야 하는 것이겠지만…….
“…….”
빗자루를 들고 와서 거미줄을 제거해 버렸어요. 아버님이나 어머님이 보신다면 저 아이의 목숨도 위험할지 모르기 때문인 것이에요.
집을 철거당한 녀석이 방구석으로 도망가 벌벌 떨고 있어요.
“미안, 그래도 여기는 들어오면 안 된단다.”
조심히 다가가 손바닥을 내밀었더니 경계하던 녀석이 손바닥에 올라타는 모습이 보여요.
진심은 통한다더니 믿어 준 것이에요.
마음이 변하기 전에 녀석을 현관문 밖으로 들고 나가서 옥상 난간에 놓아줘요.
뭔가 최소한의 선의를 베풀었는데 도망가는 녀석을 보자니 어쩐지 마음은 편치 않아요.
씁쓸한 마음으로 다시 방으로 들어오자니 곧이어 현관문이 다시 열려요.
두 분이 생각보다 일찍 돌아오신 것이에요.
“어라? 말숙아, 무슨 일 있어?”
어서 평소처럼 표정 관리를 하고 아무 일 없었다고 말해야 하는데 입이 멋대로 움직여요.
“대기업의 횡포를 부려 버린 것이에요.”
어머님이 어른스럽지 못한 제 투정에 고개를 갸우뚱거리시자 옆에 떨어져 있던 빗자루를 들어 보시던 아버님이 픽 웃으시더니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셔요.
“그게 그렇게 싫으면 안 해도 상관없었는데?”
“죄송한 것이에요.”
제 말을 듣고 빗자루를 정리하러 가시는 아버님을 보고 어머님이 따라나서는 모습이 보여요.
“에? 뭐가요? 최강 씨, 뭔가 아시는 게 있어요?”
“몰라도 돼.”
아버님은 괜찮다고 하셨지만 아마도 저는 다음번에도 또 같은 짓을 반복할 것 같아요.
이 집에 있는 이상 저는 아라크네가 아니라 최말숙이니까요.
***
오후 6시 경이 됐을 때였다. 바깥이 노을로 점차 물들어 갈 무렵 최말숙을 단장시키는 주소희의 모습이 보였다.
최말숙이 처음 왔던 날 입었던 드레스와 비슷한 드레스로 갈아입힌 주소희가 와락 최말숙을 끌어안았다.
“와…… 완전 귀여워.”
드레스 차림의 최말숙이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어머님. 오늘 저녁은 외식하는 것이와요?”
주소희가 최말숙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어색하게 답했다.
“어? ……뭐, 그렇지.”
“상당히 격식이 필요한 곳인 것 같은 느낌이와요.”
“응.”
낮에 외출해서 사 온 드레스를 갈아입힌 것을 보고 최강이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
“슬슬 시간 됐는데 나가자.”
“네.”
주소희가 최말숙을 이끌고 대기 중인 차에 오르자 30분쯤 운행하던 차가 멈춰 선 곳은 어느 5성 호텔이었다.
차에서 내리는 최강 일행을 알아본 것인지 입구에서부터 대기 중이던 최씨 문중 사람들이 깍듯이 인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최강이 사람들의 인사를 받으며 호텔 로비로 들어서자 아는 얼굴이 다가왔다. 한복 차림의 최세라와 1장로 최해성이었다.
“오랜만에 뵈어요, 선생님.”
“지우 녀석이 잘 가르쳐 주냐?”
“네. 덕분에 벌써 유형기도 상당히 익혔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보여 드릴게요.”
“그래.”
최세라의 말에 답한 최강이 뒤에서 말없이 고개 숙이는 최해성의 인사를 눈으로 받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소란 피워도 되는 거냐?”
그도 그럴 것이 호텔의 로비에서는 최씨 문중의 사람들이 잔뜩 깔려서 분주하게 무슨 작업을 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최해성이 최강의 말에 답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오늘 하루 동안이지만 전세를 내 두었으니까요.”
“전 층을 다?”
“예.”
5성 호텔 전 층을 하루간 빌릴 정도라면 얼마가 깨졌을지 감이 잡히지도 않았다.
최강이 동지를 만난 듯한 말투로 말했다.
“너희도 돈 막 쓰는 편이구나?”
“이런 날이 아니면 감사를 표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도 힘든 분이니까요.”
최강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혹시 눈치 주는 거 아니지?”
“그럴 리가요.”
최해성의 말을 들은 최강이 말했다.
“그래서 파티장은 어디야?”
“3층에 마련해 두었습니다.”
최강이 최세라와 최해성의 안내를 따라 이동하려 할 때였다. 최말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님.”
최강의 걸음이 멈춰 서자 주소희를 포함한 안내하던 두 사람도 발을 멈추고 뒤돌았다.
“저 잠시 다녀올 곳이 있사와요.”
“다녀올 곳?”
최강이 해가 떨어진 호텔 밖을 살펴보다가 말했다.
“오래 걸리는 일이야?”
“잠시면 되는 것이에요.”
최강이 말했다.
“그래, 다녀와.”
“감사한 것이에요.”
최강에게 허락을 받은 최말숙이 드레스를 들어 올리고 황급히 달렸다.
최말숙이 호텔 밖으로 나와서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했을 때였다.
최말숙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헬레나.”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20대 초반 정도의 외관을 한 여자의 말에 최말숙이 답했다.
“여긴 어쩐 일이야?”
“당황스럽습니다. 헬레나, 어째서 화를 내시는 겁니까?”
여자의 물음에 최말숙이 사납게 날뛰던 마나를 황급히 갈무리했다. 여자가 말했다.
“헬레나, 여왕을 죽일 생각은 있으십니까?”
“있어! 다만…….”
“다만?”
여자의 물음에 최말숙이 답했다.
“너희가 생각하는 만큼 그분은 나약하신 분이 아니야.”
여자가 최말숙을 비웃듯이 쿡쿡 웃으며 말했다.
“못 뵌 사이에 거짓말도 상당히 능숙해지셨습니다.”
“…….”
최말숙이 뜨끔한 듯 눈동자에 동요를 보이자 여자가 말했다.
“인정합니다. 여왕은 강합니다. 하지만.”
“…….”
“제가 보기에 이미 그 여왕보다 당신의 기운이 훨씬 더 강합니다.”
얼마 전 최강이 넘겨준 마석을 먹은 후 이미 최말숙은 주소희를 아득히 초월한 상태였다. 하지만.
최말숙은 주소희보다 자신이 더 강하던 시절, 주소희가 자신을 부담스러워하던 기억 때문인지 일부러 기운을 숨기고 있었다. 주소희가 가진 능력 때문에 이미 자신이 한층 더 강해졌음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말이다.
최말숙이 둘러대듯 말했다.
“내 말은, 여왕을 해치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거야. 천주갑의 진짜 주인은…….”
“그 남자 말입니까?”
최말숙이 다시 한번 입을 다물었다. 여자가 말했다.
“그렇죠, 확실히 그 남자는 강합니다. 헬레나, 당신의 힘으로도 그 남자는 감당할 수 없을 테죠.”
최말숙이 대화를 빨리 끝내려는 듯 말했다.
“그럼 돌아가. 어차피 그는 인간이니까 100여 년 후면…….”
최말숙이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하자 여자가 말했다.
“헬레나, 제가 감히 질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뭔데?”
“여왕의 진짜 역할이 무엇입니까?”
최말숙이 말했다.
“종족의 번영이야.”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 천주갑의 주인은 아쉽지만 인간입니다. 전대 여왕 엘리스의 무책임한 행동이 불러온 일이긴 합니다만…… 당신이 보기에 저자는 여왕에 어울리는 자입니까?”
최말숙의 입이 즉시 열리려고 하자 여자가 못을 박았다.
“인격적인 부분이나 마음가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여자가 최말숙의 질문에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저자가 과연 아라크네를 번영으로 인도할 수 있는 자인가를 묻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