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11
11화
“그러니까…… 이게 증거라는 거죠?”
주소희가 못 믿겠다는 양 답하자 그 기색을 읽은 최강이 말했다.
“그래, 이게 그 거미로 변했다는 여자가 나한테 준 옷이니까.”
대충 옷을 살펴보던 주소희가 말했다.
“음…… 아무리 증거라 그래도 이건 좀 힘들 거 같은데요…….”
“아니, 왜!”
“그야…… 아무리 그렇게 말씀하셔도 그냥 평범한 옷으로밖에는 안 보이고…….”
최강이 답답하다는 양 천주갑을 다시 입고 말했다.
“야, 거기.”
김준영이 말했다.
“저 말씀이십니까?”
“어, 그래. 너.”
“왜 그러십니까?”
“그 허리에 찬 검으로 있는 힘껏 나 베어 봐.”
자리에서 일어나서 양손을 벌리고 서는 최강을 김준영이 어벙한 눈으로 보고만 있자 최강이 말했다.
“뭐 하냐? 안 해?”
“하…… 하겠습니다.”
최강의 말에 급히 최강의 앞까지 뛰어간 김준영이 허리춤의 검을 뽑고 말했다.
“저…… 정말로 벱니까?”
“아니, 그러라니까?!”
“진짜……! 진짜로 벱니다?! 반격 같은 거 안 하시는 거 맞죠?”
“아니…… 씨, 죽고 싶냐?”
최강이 인상을 ‘팍’ 쓰자 김준영이 급히 내공을 운용했다.
초록색에서 푸른색이 되다 만 듯한 청록색 내기가 김준영의 검에 서렸다.
“진짜 때리지 마세요.”
김준영의 검이 마침내 최강의 복부를 베고 갔다. 주소희가 말릴 틈도 없이 일어난 일이었다. 그런데…….
소리가 뭔가 이상했다.
캉.
검으로 사람을 베었다기에는 소리가…….
“엥?”
김준영이 토막 난 자신의 검을 보고 이런 소리를 냈다. 자신의 검이 좋지 않은 검이라거나 손질이 안 되어 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강이 어느새 벗은 천주갑을 다시 내밀며 말했다.
“이게 그 대장 거미가 준 옷이라니까? 착용법도 간단해. 입겠다고 생각하면 입어지고 벗겠다고 생각하면 벗어지고. 자.”
김준영이 최강이 내미는 천주갑을 받아 들고 입겠다고 생각하자 잠시 후 붉은빛과 함께 천주갑이 김준영의 양복 위에 걸쳐졌다.
김준영의 모습을 본 최강이 간단한 소감을 남겼다.
“웩, 촌스러.”
“아하하…….”
김준영은 초록색 추리닝을 입은 최강에게 그런 말을 듣는 것이 불쾌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웃을 뿐이었다.
최강이 주소희를 보며 말했다.
“자, 이래도 못 믿어?”
상황을 지켜보던 주소희가 뒤늦게 보통 옷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의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주소희의 검에 푸른색 내공이 맺히는 모습이 보였다.
“제가 베어 봐도 될까요?”
최강에게 물어본 거였겠지만 김준영이 발작하듯 말했다.
“자…… 잠깐만요! 아가씨!!”
최강이 흔쾌히 말했다.
“어, 그러든가.”
최강의 말과 함께 주소희의 검이 김준영을 베었다.
김준영의 내공보다야 주소희의 내공이 더 순도 높았고 당연히 위력도 더 강했겠지만 결과는 같았다.
캉.
토막 난 주소희의 검을 본 세 사람의 반응이 다 제각각이었다. 먼저 최강은.
“거봐, 괜찮댔잖아.”
뭔가 의기양양한 모습이었고, 주소희는.
“이럴 수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모습이었으며, 김준영은…….
“진짜아…… 무서웠단 말입니다.”
황천에라도 반쯤 입수하고 온 것 같았다. 아랫도리가 축축한 것을 보면 말이다.
주소희가 자신의 능력을 써서 다시 김준영이 입고 있는 옷을 바라봤다.
붉은빛의 내공에 휩싸여 있는 김준영의 모습이 보였다.
깜짝 놀란 주소희가 최강을 바라봤다.
최강에게는 아까처럼 붉은빛의 내공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뭐지……? 하얀색……?’
처음 보는 백색의 기운이 일렁이고 있을뿐더러 주머니에서는 강렬한 붉은색 기운이 엿보였다.
주머니는 일단 접어 두고 주소희는 어째서 내공이 없던 최강이 방금 전까지 붉은색 내공을 보였는지 어렴풋이 눈치챘다.
기존의 최강의 내공은 하얀색이었고 거리 때문에 보이지 않은 것뿐이었던 것이다.
어찌 됐든 일단 최강의 붉은색 내공의 출처가 이 옷에 있음을 확신한 주소희가 말했다.
“벗을 수 있겠어요?”
“해 보겠습니다.”
김준영이 벗겠다고 생각하니까 잠시 후 김준영의 손에 천주갑이 떡하니 돌아오는 모습이었다.
김준영에게 받아서 테이블 한쪽에 올려놓은 주소희가 붉은 내공이 뿜어지는 옷을 확인하고 말했다.
“저…… 아까 그 거미로 변했다는 사람, 특이한 점은 없었나요?”
“글쎄? 잘은 모르겠…… 아!”
말하던 최강이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아라크네한테 딸이라고 하거나 지가 여왕이라거나. 말하던 게 좀 정신 나간 여자 같긴 했지.”
최강의 말을 들은 김준영이 주소희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떠오른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 혹시 아가씨…… 그거 엘리트 몬스터 아닙니까?”
주소희의 고개가 말을 한 김준영에게 휙 돌아갔다. 그러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출현 빈도가 잦은 하급 몬스터도 1년에 한 번 정도나 엘리트 몬스터가 발견될 정도로 드물긴 했지만, 일단 한번 출몰한다면 귀중한 아이템을 남기고 사라지는 경우가 있었을뿐더러 몬스터가 사람과 대화를 시도하는 경우도 적잖게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트 몬스터…….”
주소희가 만약에 최강이 말하는 거대 거미가 엘리트 아라크네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의 랭크를 추정했다.
“랭크 B…….”
미국과 중국에서 딱 두 번, 여태 딱 두 번 있었다던 랭크 A의 바로 아래 단계이자 10년 전에 국내에서 딱 한 번 있었던 등급이었다.
그때 반나절 만에 도시가 반파됐던 것을 감안하면 국가 재난에 해당하는 등급인 것은 매한가지였다.
“저…… 저기요, 최강 씨.”
주소희의 말에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은 최강이 먼저 엄포를 놓듯 말했다.
“응, 안 돼.”
“아직 들어 보지도 않으셨잖아요…….”
“아니!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어. 사정 봐 달라고 그럴 거잖아?”
주소희가 정곡을 찔린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결국에는 자포자기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원하시는 게 뭔데요?”
“일단 가지고 와 봐.”
“네?”
최강이 기다렸다는 듯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쪽에서 줄 수 있는 거 전부 다.”
***
본격적인 거래를 알리는 최강의 엄포를 들은 주소희와 김준영이 소곤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속닥이던 김준영이 사라지고 두 시간쯤 지났을 때였다.
“죄송합니다.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주소희의 지시를 받고 마지못해 사라진 김준영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손에는 A4 용지 수십 장이 집힌 서류 하나가 쥐여 있었다.
김준영이 그것을 최강에게 내밀며 말했다.
“이게 뭐냐?”
“말씀하신 대로 지금 주씨세가에서 드릴 수 있는 목록입니다. 물건으로 옮기면 이동에 대한 번거로움이나 시간 낭비 때문에 이렇게 작업했습니다. 골라 보시지요.”
서류는 작은 크기의 사진과 물품의 이름과 설명으로 간략하게 이루어져 있었다.
김준영이 주소희의 뒤편으로 다시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본 최강이 서류를 펴서 정식으로 읽어 가기 시작했다.
A4 용지에는 갖가지 물품들이 적혀 있었다.
『만첨성월도.
현대 10대 대장장이 반열에 올랐던 유일한 한국인 국적의 명인 김춘독이 죽기 전에 만든 마지막 역작.
어지간한 바위도 반으로 썰어 버릴 정도로 날카로운 예기를 자랑하는 보검 13자루 명검 42자루 중 하나에 꼽힌다.』
“이건 아니고.”
만첨성월도를 함께 넘겨받은 펜으로 작대기 그은 최강이 다음 칸으로 눈을 옮겼다.
『화이트 사파이어 반지.
엘리트 슬라임의 전리품인 이 반지는 평상시에는 세공된 다이아처럼 투명한 보석의 반지이다.
하지만 착용자의 신체에 마비와 출혈 등 사용자가 상태 이상에 빠졌을 때, 사파이어처럼 푸른빛의 마력을 방출해 치료하는 능력 때문에 화이트 사파이어 반지라고 이름 붙은 희귀 아이템이다.』
“이것도 좀 아니네.”
한 장씩 넘겨 가며 물건을 확인하는 최강을 지켜보던 김준영이 주소희에게 조용히 말했다.
“뭘 고를까요?”
“글쎄요.”
10분쯤 지났을 때였다. 최강이 서류 뭉치를 테이블에 대충 툭 던졌다. 주소희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집어 들어 확인했다.
“어…… 어째서?”
주소희가 체크된 목록을 확인하고 최강을 급히 바라봤을 때였다. 최강이 말했다.
“잡동사니들뿐이라서 고를 수가 있어야지.”
“자…… 잡동사니라뇨……. 그래도 여기에 적힌 것은 적게는 기본이 수억 원대부터 많이는 수백억 원도 하는 알아주는 명품들인데요?”
“그건 주씨세가 기준이고, 내 기준에서는 줘도 안 가져.”
“무슨 그런 억지가…….”
자신의 말에 반론하려는 주소희를 최강이 노려봤다.
“이봐.”
위축된 주소희가 말했다.
“네…….”
“내 입장이 지금 어떻게 되지?”
“…….”
주소희가 침묵하자 최강이 말했다.
“말을 못 하니까 내가 말해 줄게.”
“주씨세가는 나한테 아라크네 때문에 아쉬운 상황이었어. 틀려?”
“아니요…….”
“그래. 그리고 그 말이 맞다면 당연히 그 거대 거미는 절대 주씨세가 선에서 결정지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어. 이건 틀린가?”
“아니요…….”
최강이 이어지는 주소희의 고분고분함에 힘입어 말했다.
“또 내가 거절하면 끼리끼리 비슷한 수준의 무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토벌하러 들어가려 했다던데, 그럼 전멸 예정이었던 거네? 그럼 이건 틀린가?”
주소희가 무언가 변명이라도 하려는 듯 달싹이던 입술을 다물었다.
최강이 픽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알기론 이런 경우에, 구해 준 사람을 생명의 은인, 가문의 은인, 뭐 이런 식으로 보통 부르지 않나?”
“…….”
유구무언이라고 했던가. 주소희가 이번에도 말이 없자 최강이 말했다.
“지금 주씨세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그쪽이 잘 모르는 거 같기에 말해 본 거야. 솔직히 전 재산 다 내놓으라고 해도 할 말 없어야지. 염치가 있으면.”
최강이 결정했다는 듯 말했다.
“아라크네 다섯 마리의 현상금 전부와 5년간 주씨세가는 수입 30%를 넘기는 걸로 합의 본다.”
주소희가 급히 소리 냈다.
일단 주씨세가는 일류세가다. 이번 일이 조금 특별해서 그렇지 정상적인 경우라면 1년에 수백억 원대 흑자를 남기는 조직인 것이다.
얼핏 따져 봐도 5년에 걸쳐서 천억 원에 달하는 금액을 뜯어 가겠다는 말인 것이다.
“자…… 잠깐만요.”
다시금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에 최강이 ‘쓰읍’ 소리를 내며 주소희를 째려봤다.
“그…… 그게 아니고요.”
겁먹은 목소리로 주소희가 말했다.
“3년으로 해 주시면 안 될까요? 비율도 10%까지 낮추고요.”
최강의 얼굴이 구겨지자 주소희가 황급하게 말했다.
“대신에 다른 걸 드릴게요.”
“뭔데?”
“그건…….”
***
최강이 주소희와 담판을 짓고 3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주씨세가 건물의 꼭대기에 위치한 가주의 집무실에 건장하고 말끔하게 생긴 두 청년이 뛰어 들어왔다.
“아버님!”
각각 20대 중반과 후반 정도의 외견을 가진 두 청년은 주소희의 두 오빠들이었다.
정신을 차린 것은 훨씬도 전이었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 병동에 격리 상태에 놓여 있다가 검사가 끝나자 복귀한 것이었다.
가주 주진강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을 반겼다.
“민석아, 연석아. 무사해서 다행이구나. 어디 다친 데는 없느냐?”
첫째 주민석이 말했다.
“네, 물론입니다.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이전보다 기운이 펄펄 넘쳐서 문제입니다.”
“그거 잘됐구나.”
주진강이 주민석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하자 때마침 주연석이 말했다.
“아버님, 그런데…….”
“왜 그러느냐?”
주진강의 물음에 주연석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소희는 어딨습니까? 따로 무슨 바쁜 일이 있는 겁니까?”
주진강이 말했다.
“평소 그렇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던 소희 녀석을 찾는 것 보니 연석이 네가 이번 일로 위기감을 느끼긴 했나 보구나.”
“아버님!”
주연석이 주진강의 말이 뜻하는 바를 알기에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던 첫째 주민석이 말했다.
“정말로 첩의 자식에게 가주 자리를 넘기실 생각이십니까?”
주민석의 말에 주연석이 거들었다.
“맞습니다, 아버님. 소희는 심지어 남아도 아니고 여아이지 않습니까?”
주진강이 재밌다는 듯 허허롭게 웃으며 말했다.
“집 잘 지키는 개가 암놈이든 수놈이든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리고 누누이 말하지만 나에게는 소희나 너희나 다 같은 자식일 뿐이다. 능력 있는 자식에게 후위가 넘어가는 것은 당연한 것. 그리고 아쉽게도 이번에 너희의 오판으로 세가에 닥쳤던 위기는 소희 녀석이 타개했지.”
주민석이 어쩔 수 없다는 투로 말했다.
“결국 실력으로 쟁취하라, 그 말씀이신 겁니까?”
“이해가 빨라서 좋구나.”
주진강이 자리로 돌아가 앉으며 말했다.
“얼굴을 보고 마음 놓였으니 됐다. 소희 녀석은 제법 괜찮은 사업 파트너를 얻은 모양이더구나. 너희는 거기 서 있어도 되겠느냐?”
비장한 얼굴의 주민석이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하다가 마지못해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문을 열고 사라졌다.
눈치를 보던 주연석도 마지못해 소리 없이 인사하고는 주민석을 따라 나갔다.
“그나저나 프리저라…….”
두 사람의 뒷모습을 웃는 얼굴로 지켜보던 주진강이 말했다.
“보고하는 편이 좋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