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111
111화
“이런 곳으로 오자고 해서 미안하군.”
아놀드가 두 사람과 함께 이동한 곳은 훈련소 안의 식당이었다. 식당 안에는 세 사람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아놀드가 식사 중이던 다른 랭커들에게 부탁해서 자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쇼튼이 텅 빈 식당을 쓱 둘러보고는 말했다.
“뭐 상관없어. 이렇게 사람만 물려 준다면야.”
아놀드가 점심으로 나온 수프를 한 숟가락 입에 넣으며 말했다.
“그래, 할 말이란 게 뭔가?”
“프락시온에 들어올 마음 있어?”
시작부터 날아오는 직구에 아놀드의 스푼질이 멈칫하는 것이 보였다. 천천히 고개를 든 아놀드가 쇼튼을 조용히 보다가 실없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테스트라면 사양하겠다.”
프락시온의 테스트에서는 사지가 한두 짝쯤 잘려 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건 물론 방어하는 프락시온의 입장에서도 그렇지만 반대로 도전자의 경우도 같은 것이다.
때문에 쇼튼은 아놀드의 거절이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조금 이르다고 생각하면 섣불리 도전하기에 부담스러울 수도 있으니 말이다.
“테스트가 아니야.”
쇼튼의 말에 수프를 입에다가 한 숟갈 넣은 아놀드의 고개가 재차 들렸다. 쇼튼이 말했다.
“우연히 공백이 한 자리 생겼거든.”
아놀드는 바보가 아니다. 때문에 쇼튼의 지금 이 말이 프락시온의 이전 멤버 한 사람이 죽었다는 말이라는 것쯤 쉽게 알 수 있었다.
멀쩡한 프락시온이 죽었다? 드문 일이었다.
‘아니지…… 처음 있는 일 아닌가?’
여태까지 발생한 적 없던 그런 일에 아놀드는 오히려 프락시온의 빈자리보다 그 부분이 더 신경 쓰였다. 도대체 누가 프락시온을 죽음까지 몰고 갈 수 있었을까 하는 부분 말이다.
아놀드가 말했다.
“하나 궁금한 것이 있다.”
“말해 봐.”
쇼튼이 말하자 아놀드가 말했다.
“일전에 내가 접한 소문에서는 프락시온에서 최강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정보가 있었다. 그건 어떻게 됐지?”
미국 정부는 물론이고 이것은 세계의 선진국이라면 전해졌을 이야기였다. 그것 때문에 미국이 최강에게서 한 발 떨어져 있는 것도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쇼튼이 진지하게 고민했다. 물론 사실대로 말해 줄 필요는 없지만 그럴듯하게 받아넘길 필요는 있었기 때문이다.
“뭐 당장은 관심이 없는 것 같더라고.”
“관심이 없다라…….”
아놀드가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과연 그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놀드가 말했다.
“미안하지만 나도 거절하지.”
최강의 입단이 이미 확정된 것이 아니라면 자신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는 하기 싫다고 말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지금 프락시온에 들어간다면 당연히 막내일 것이고, 그렇다면 나중에 최강이 혹시라도 마음이 바뀐다면 최강과 겨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호랑이 굴에 들어갈 이유는 없는 것이다.
“플랭크는 어떤가? 녀석은 나와 다르게 권유한다면 들어간다고 할지도 모르는데. 항상 다시 프락시온에 복귀하겠다며 의욕이 넘쳤으니까.”
“그쪽에도 이미 이야기해 보고 오는 중이야.”
“뭐라고 했지?”
아놀드가 궁금한 얼굴로 물어보니 쇼튼이 말했다.
“긍정적인 반응이었지.”
“잘됐군. 그럼…….”
역시나 예상했던 대답에 아놀드가 이렇게 말하며 거절의 의사를 밝히려고 할 때였다. 쇼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척이나 진지한 목소리였다.
“이봐, 아놀드. 우리는 사실 플랭크보다 네 쪽이 더 마음에 들거든?”
거짓말은 아니었다. 아놀드의 성장세는 놀라웠고 사실 지금 시점에서 놓고 본다면 플랭크를 이미 뛰어넘었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쇼튼이 감추고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은 아니었다.
아놀드에게 구태여 말하지만 않았을 뿐 한 명이 아니라 네 명을 구하는 것이었고, 동시에 플랭크와 아놀드 두 명 다 영입하고 싶어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역시나 이것은 지금 단계에서 말할 내용은 아니었다.
한 번에 프락시온에서 네 명이나 멤버를 구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오히려 입단이라는 사건보다 프락시온이 근래에 어떤 일을 했기에 네 명이나 구하는가에 대해 초점이 맞춰질 테니 말이다.
달칵.
진지하게 생각하던 아놀드가 들고 있던 스푼을 식판으로 내려놓으며 말했다. 뭔가 쇼튼의 말에서 수상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최강은 싫다고 하니까 명단에서 제외해 놓고서 자신은 이토록 영입하려는 것이 무척이나 이상한 것이었다.
“한 가지만 더 물어봐도 되겠나? 아니지, 그냥 물어보겠다. 답은 하지 않아도 상관없으니까.”
“…….”
“혹시 이번에 죽은 그 프락시온.”
쇼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아놀드가 쇼튼의 눈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말했다.
“최강과 관련 있나?”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쇼튼의 입은 아놀드의 입이 다시금 열리기 전까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군.”
아놀드가 무언가를 결정한 듯한 중얼거림을 흘리더니 곧이어 수프를 몇 숟가락 더 뜨고는 입을 닦고 일어났다.
“권유는 고맙다. 하지만 역시 나의 대답은 같아. 그리고 미안한 말이지만 플랭크에게도 나의 의견을 전해 줄 생각이다. 부정적인 이야기가 되겠지.”
쇼튼이 아놀드가 아닌, 방금 전까지 아놀드가 앉아 있던 그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얼굴은 그답지 않게 조금 굳어 있었다.
“마음대로 해. 뭐 그런 것까지 우리가 관여할 일은 아니니까.”
“…….”
식판을 들고 여전히 앉아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던 아놀드가 말했다.
“미안한 짓을 하는 것 같으니 한 가지 충고해 주겠다. 최강과는 대화로 푸는 걸 추천하지.”
돌아서 걸어가는 아놀드를 힐끔 보는 쇼튼의 귀로 그가 마지막 남긴 말이 전해졌다.
“권유는 고마웠다. 프락시온의 제의라. 인생에 다시없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군.”
***
얼마나 지났을지 모를 시간이 흘렀다. 아놀드가 내보냈던 사람들이 다시 들어와 식사를 하고 전부 돌아갔으니 제법 상당한 시간이 지난 것은 분명했다.
웬일로 얌전히 앉아 있던 엘리자가 말했다. 사실 아직까지 그곳에 앉아 있는 이유가 쇼튼 때문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고민하고 있어.”
“뭐를?”
쇼튼이 테이블 위로 팔깍지를 껴 턱을 받치더니 말했다.
“엘리자의 말대로 ‘최강을 건들면 안 되는 걸까?’라고.”
엘리자의 눈동자가 동지를 만난 듯 화색의 기미를 보이다가 곧이어 사라졌다. 헛기침한 엘리자가 물었다.
“갑자기 심정의 변화가 생긴 이유는?”
“아놀드 녀석은 우리랑은 달리 아무것도 몰랐던 녀석이야. 이번에 사실 한 명이 아닌 네 명이 죽었다는 사실도 최강과 관련 있다는 것도 전혀 몰랐지.”
쇼튼이 짐짓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그의 눈동자는 심연에 두려움 같은 것이 옅게 깔려 있었다.
“그런데 녀석은 내가 부정하지 않자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다면 관심이 없다는 양 떨어져 나갔어.”
쇼튼이 엘리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엘리자는 무엇이 녀석을 그렇게 예민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해?”
“…….”
엘리자가 답이 없자 쇼튼이 말했다.
“녀석은 그나마 최강이 싸우는 모습을 가장 직접적으로 목격했어. 그럼 그 경험이 녀석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겠지.”
“…….”
“녀석은 저울질한 거야 프락시온 전체와 최강. 그리고 결과는 최강이었겠지.”
“그래도 그건…….”
너무 과한 생각이지 않은가, 라고 말하려던 엘리자의 말을 쇼튼이 알고 있다는 듯한 느낌으로 받았다.
“알아. 그런 일은 없겠지. 하지만 확실히 최강 그 녀석, 엘리자의 말대로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야.”
쇼튼은 얼마 전에도 알티스에게 사소하게 시비가 걸렸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13위인 알티스가 9위인 자신을 만만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쇼튼은 알티스와 100번 겨루면 98~99번 이상은 이길 자신이 있었지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그런 것이 아니었다.
설령 자신보다 약자라고 하더라도 절대적인 두려움을 심어 주기가 힘들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었다.
하지만 최강은 해냈다. 그것도 오늘에서야 훈련을 관람하고 알았지만 알티스보다 강한 아놀드에게 말이다.
쇼튼이 말했다.
“크리스에게 말하자. 최강을 상대하려면 준비를 더 제대로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고 말이야.”
쇼튼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지만…….
***
토요일 오전이었다. 최정숙이 분에 찬 얼굴로 나오더니 최말숙의 옆에 달라붙어 재잘거렸다.
“헬레나, 저놈은 정말 고약한 인간입니다.”
“레오나, 무슨 일이 있었나요?”
여자의 본래 이름은 레오나였다.
“글쎄, 저 인간 놈이 다 된 밥을 자꾸 다시 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최말숙이 픽 웃었다.
“아버님은 고두밥이 아니면 드시지 않는 것이에요. 물을 조금 적게 넣어서 만든 밥을 의미하죠. 아마도 물 조절이란 걸 못 하면 몇 번이고 다시 지으라고 하실 거예요.”
최정숙이 의문이 풀린 듯 말했다.
“호오…… 과연 꼬들밥이란 게 물이 적게 들어간 밥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까?”
최말숙이 그녀의 머리에 난 몇 개의 혹을 보고는 말했다.
“그런데 레오나, 혹시 처세술이란 것을 알고 있나요?”
“그건 또 뭡니까?”
최정숙의 물음에 최말숙이 말했다.
“인간 세상에는 처세술이란 것이 있답니다. 풀어 말하자면, 강자에게는 수그리고 약자는 철저하게 짓밟는 것이지요.”
최정숙이 이해했다는 듯이 말했다.
“아, 약육강식 말씀하시는 겁니까, 헬레나?”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것이에요.”
“처세술이라……. 조금 공부가 필요할 것 같군요.”
최말숙이 픽 웃으며 말했다.
“기회가 된다면 꼭 익히도록 하세요. 그편이 편히 생활할 수 있을 테니까요.”
“조언대로 하겠습니다.”
최말숙의 말에 답한 최정숙이 유심히 보다가 말했다. 그나저나 최말숙이 대화하는 내내 무언가 꼼지락대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무엇을 하시는 겁니까?”
“아, 이거요?”
최말숙이 수건에 물을 묻혀 조심스럽게 닦고 있던 머리띠를 머리에 꼈다.
“어때요?”
“음…… 그냥 평범한 머리띠인 것 같습니다만. 그것보다 더 예쁜 것이라면 있지 않습니까?”
최말숙이 조용히 입꼬리를 올리고는 말했다.
“그래요? 하지만 저는 이것이 마음에 드는 것이에요.”
최말숙이 그렇게 답했을 때였다. 최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정숙의 눈에 최말숙이 황급히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곧이어 최정숙의 귀에 방 안에서부터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그 머리띠, 아직도 가지고 있었냐?”
“물론인 것이에요. 아버님이 선물해 주신 것이니까요.”
머리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플로라이트가 떨어져 나간 머리띠는 이제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보통 머리띠였지만 최말숙은 앞으로도 사용할 생각 같아 보였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이 바로 그 처세술이란 것을 레오나가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