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112
112화
크리스 반 더치
영국 태생의 3위 랭커인 그는 20대의 외관과는 달리 나이가 많았다.
구체적인 연고지나 출생 연도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30년 전에 프락시온이 결성된 이후 그가 프락시온의 창설 멤버 중 아직까지 남아 있는 3인으로 유명한 것만 봐도 그가 이미 어느 정도 나이가 있다는 걸 의미했다.
그리고 그런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온 크리스에게는 요즘 골칫거리가 하나 있었다. 바로, 갑자기 나타난 최강이라는 존재였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라도 한 듯 갑자기 1년 전쯤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그는 근래에 있었던 큼지막한 사건은 죄다 휩쓸고 다닌 인물이었다.
물론 크리스는 살아온 세월답게 최강과 같은 유의 사람들을 많이 봐 왔다. 가끔 번쩍했다가 사라지는 별들도 많았고, 현 프락시온의 멤버 테리같이 그 빛을 유지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별도 여태까지 크리스가 진지하게 고민했던 자는 없었다. 적합하다 싶으면 아군으로 삼고, 부적합하다 생각되면 프락시온의 압도적인 힘으로 제거해 버리면 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강은 아니었다. 이 프락시온이 압도적인 전력을 두고도 신중하게 만드는 존재였으니 말이다.
-크리스, 우리 이번 일 조금 신중해지면 어떨까?
얼마 전 미국에 다녀온 쇼튼이 했던 말이었다.
아놀드와 플랭크의 영입을 목적으로 미국에 갔던 쇼튼은 결과적으로 두 사람의 영입에 실패했다. 이유를 듣자 하니 아놀드가 최강에게 상당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이유였다.
크리스는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 절대적인 공포를 심어 준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말이다.
“난처하군…….”
때문에 고민에 잠긴 크리스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지금 최강을 제거하더라도 피투성이의 승리를 해서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이이잉.
밤늦게 발코니에서 혼자서 고민하고 있는 크리스의 눈에 빛이 들어왔다. 휴대폰 액정의 빛이었다.
크리스가 무덤덤한 얼굴로 휴대폰을 받아 들자 휴대폰 너머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크리스. 왜, 무슨 일인데? 아무리 한 달간 통화가 안 된다고 해도 100통은 좀 심한 거 아니냐?
“파르키오, 문제가 생겼다.”
파르키오. 프락시온의 서열 2위이자 현 2위 랭커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이 남자 역시 뭐랄까, 상당히 앳된 목소리였다. 크리스와 마찬가지로 프락시온의 창설 멤버이면서도 말이다.
크리스에게서 그간 있었던 일을 들은 파르키오가 말했다.
-음, 그렇다는 말이지?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최강에 대한 준비를 좀 해서 나 혼자서 최강을 해치울까 생각 중이다. 다른 프락시온들을 끌어들여 봐야 걸리적거릴 테니까.”
크리스의 결정은 당연했다. 사실 크리스 개인 전력이 다른 1위, 2위를 제외한 프락시온 모두를 포함한 전력과 맞먹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크리스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최강은 클락과 케인이 함께 덤벼도 버거울 수 있는 상대라고. 아무리 프락시온끼리라 해도 자신의 구체적인 능력까지는 공개하지 않는다지만, 그만한 고위 화 속성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
전화기 너머로 무언가 생각하는 듯한 파르키오의 소리가 들렸다.
-근데, 크리스.
“왜, 무슨 할 말 있나?”
-그 녀석, 정말 그란디아 대륙 사람은 맞는 거냐? 너무 추측성 단서들뿐이잖냐?
크리스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쇼튼과 엘리자를 통해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뿐이지 단 한 번도 자신이 직접 최강을 확인해 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크크큭. 없지?
“…….”
파르키오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전부터 말했잖냐? 방구석에만 앉아서 일을 처리하려는 거. 그게 네 문제라니까?
차분했던 크리스의 목소리가 조금 변했다.
“천만에, 애초에 그란디아 대륙의 기술인 무형기를 사용하는 것만 봐도 더 논할 가치도 없는 이야기다!”
바람 불면 날아갈 듯한 크리스의 목소리가 조금 진지해졌다. 크리스가 저런 목소리를 내는 것은 녀석도 충분히 당황했기에 나오는 반응일 테니 말이다.
-내 말은, 그러니까 이야기나 한번 제대로 해 보란 거다. 다른 사람이 아닌 네 눈으로 그 녀석을 보는 거야. 그렇게 꽉 막힌 성격도 아닌 거 같으니까.
“…….”
파르키오의 말에 잠시간 침묵하던 크리스가 말했다.
“고맙다.”
-역시 그렇지?
약간 고지식한 크리스이지만 그래도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그가 끝내 자신의 조언을 받아들일 줄 알았다. 크리스가 가벼운 한숨과 함께 말했다.
“후…… 내가 어리석었다는 걸 인정하겠다. 그리고 네 말대로 내 눈으로 판단하겠다. 대신에…….”
크리스가 마침 불어오는 강풍에 묻혀 버리는 말을 남기고는 통화 종료 버튼으로 손가락을 옮겼다.
전화기 너머로 다급한 파르키오의 목소리를 들었음에도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전화를 끊은 크리스가 하늘에 떠오른 달을 보며 픽 웃었다.
“외출은 근 3년 만이로군…….”
***
이틀간의 준비 기간을 마친 크리스는 지금 한국에 도착해 있었다. 당연히 목적은 최강을 만나서 직접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크리스는 최강을 만나러 가는 길에 한 가지 문제에 당착해 있었다. 바로 주소지를 대충 던져 주고 최강의 사무실로 가 달라고 부탁한 택시가 도중에 몬스터를 만났던 것이다.
피식.
크리스가 옅게 입꼬리를 올렸다.
파이어 버팔로.
언제나 생각해도 참 웃긴 이름이었다. 물소 주제에 불 특성을 지닌 몬스터.
이름에서부터 벌써 모순덩어리인 몬스터였다. 마치, 섞일 수 없는 그란디아 대륙의 존재와 이쪽 세상의 존재가 어우러진 것 같은 느낌이랄까.
“번거롭더라도 어쩔 수 없지.”
크리스가 본래라면 택시 안에서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파이어 버팔로를 제거하기 위해 구태여 차에서 내렸다. 지금 녀석을 처리하지 않으면, 혼비백산하여 도주하는 시민들에게도 피해가 갈 것임을 생각한 것이었다.
그리고 크리스가 파이어 버팔로 앞에 서서 들이받을 것처럼 앞발을 구르는 놈을 바라볼 때였다.
“죽어, 이 짜식아!”
웬 서양인 여성 한 명이 날아와 파이어 버팔로의 미간을 발로 찍어 버리는 모습이 보였다.
음모오오오!!
주르륵 도로 위를 구르던 파이어 버팔로가 비명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크리스가 자신의 앞으로 다가와서 말하는 여자를 바라봤다.
“인간, 어디 다친 덴 없습니까?”
“…….”
크리스는 여자를 본 순간 알 수 있었다.
‘이자…….’
몬스터였다. 그것도 상당히 강한 몬스터였다.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는 걸로 봐서는 어느 종의 엘리트 몬스터인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어째서……?’
크리스가 문득 방금 전 여자가 쓰러트린 파이어 버팔로를 힐끔 쳐다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여자가 몬스터를 해치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말이 없습니까, 인간? 혹시 어디 다친 것입니까?”
크리스가 여자를 유심히 보다가 그녀가 입고 있는 추리닝에 눈이 가자 드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몬스터와 교감을 한다고 그랬던가?’
그렇다면 지금 상황도 어느 정도 이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크리스가 자신에게 명함을 쥐여 주고 가려는 여자의 손목을 붙잡고 말했다.
“당신이 가는 곳으로 데려가 주겠나?”
크리스가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의 눈을 보며 생각했다.
의외로 일이 쉽게 풀릴 것 같다고 말이다.
***
최강이 사무실에서 심부름을 보낸 최정숙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잠시 후 최정숙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최강이 최정숙을 타박하듯 말했다.
“음료 하나 사 오는데 공장까지 다녀왔냐?”
“몇 번 말합니까, 인간? 그냥 콜라가 아니라 펩시는 도로변까지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상황을 지켜보던 류세란이 최지우에게 귓속말로 작게 말했다.
“근데 지우야. 최강 씨가 원래 펩시만 드시던가?”
“아니요. 아무거나 드십니다.”
“그렇지?”
최강이 최정숙의 말을 무시하고는 캔 콜라를 꺼냈다. 최강이 콜라를 최정숙에게 넘기자 최정숙이 말했다.
“뭡니까, 인간?”
“네가 따 봐.”
조금 당황한 듯한 최정숙의 관자놀이에 땀이 한 방울 흐르는 것이 보였다.
“그…… 그 정도도 스스로 못 합니까, 인간? 그 이상 게을러지면 살찝니다.”
“됐고, 네가 따라고.”
최강이 무섭게 노려보자 최정숙이 잠시 후 콜라를 땄다.
치이이익.
캔 뚜껑이 열리자 무섭게 치솟는 탄산이 순식간에 사무실 바닥으로 흘러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래서 눈치 빠른 인간은 짜증 난다니까.”
최강이 최정숙의 머리에 꿀밤을 놓았다.
“악…… 왜 때리는 겁니까, 인간?”
“이미 맞은 이유는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강이 최정숙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좀 전부터 신경 쓰이던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사무실 문 앞에 서 있던 남자를 바라보던 최강이 최정숙에게 말했다.
“근데 저 녀석은 뭐냐?”
최정숙이 휴지로 바닥을 닦다가 으스대며 말했다.
“이 몸의 아름다움에 홀린 녀석인 것입니다.”
최강이 최정숙의 개 같은 헛소리는 무시하고 문 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딱히 마리오네트에 걸린 듯한 모습은 아니었다. 아니, 그보다 애초에…….
‘음…….’
기운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마치 잔잔한 호수 같은 분위기이면서도 동시에 상당한 양의 기운이었다. 쇼튼이 강 상류 수준의 물이라면, 남자는 강 중류의 수준은 되어 보였다.
최강이 문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는지 말했다.
“너도 그 프락치인가 하는 거냐?”
프락치.
물론 프락시온을 말하는 것이었다. 최강이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먹은 남자가 말했다.
“일단은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
최강이 말했다.
“못 들었냐? 그런 거에 관심 없다니까?”
“들었다. 다만 오늘은 다른 이유로 왔을 뿐.”
“다른 이유?”
최강을 향해 천천히 걸어온 남자가 말했다.
“그란디아 대륙을 알고 있나?”
“어디선가 들은 거 같기도 하고.”
최강이 무언가 떠올린 듯한 얼굴을 했다.
“아! 그러고 보니 그 엘리…….”
“엘리자 말인가?”
크리스가 말하자 긍정의 표정을 지어 보인 최강이 말했다.
“그래, 그 엘리자인가 하는 녀석이 말했던 거 같기도 하네.”
“그 전에는 못 들어 봤나?”
“기억에 없네.”
질문을 던지고 최강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던 크리스가 말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더 있는데 말해 줄 수 있나?”
“긴 거냐?”
“앞의 질문과 비슷할 거다.”
“말해 봐.”
최강이 허락하자 크리스가 말했다.
“네가 무형기를 사용한다고 들었다. 맞나?”
“맞지.”
“무형기를 어디서 배웠지?”
“가문의 비기 정도라고 생각하면 편할 거다.”
최강을 잠시간 바라보던 크리스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역시…….’
알 수 없었다. 쇼튼의 말과 같았다. 거짓말을 한다면 얼굴에 티가 나기 마련이라지만 그것도 풋내기들이나 그러는 것이었다. 애초에 방금 전 질문에 상세하게 답하는 것이 아니라 가문의 비기라고 뭉뚱그려 말한 것만 봐도 그랬다. 자세한 건 묻지 말라는 식의 태도로 일관한다면. 거짓말을 해야 할 상황이라면 저런 수로 넘어가 버리면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크리스가 감았던 눈을 뜨고 말했다.
“최강, 너에게 결투를 신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