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117
117화
그날 저녁 최강은 주소희와 통화 중이었다. 청화수와 대화를 마치고 걸었던 최강의 전화가 불발로 끝나고 생겼던 부재중 목록을 보고 주소희가 걸었기 때문이다.
“뭐? 지금 오겠다고?”
다행히 차원 균열은 그다지 난이도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시간상 오후에 도착했을 텐데 불과 한 시간 전쯤에 클리어를 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8:05…….
벽에 걸린 시계를 통해 시간을 확인한 최강이 말했다.
“그냥 자고 내일 아침에 오는 게 좋지 않겠냐?”
최강의 말에 주소희가 무언가 말하려 할 때였다. 때마침 부엌에서 의욕 충만하게 저녁을 준비하던 나미사가 문을 열고 말했다.
“저 최강 씨, 식용유 어디 있어요?”
주소희의 차가워진 목소리가 들렸다.
-아~ 그러시려고 내일 오라고 그런 거구나?
“하…… 일단 네가 생각하는 그건 오해다.”
-오해는 무슨…… 최강 씨 부탁대로 내일 갈 테니까 목적하신 뜨거운 밤 되셨으면 좋겠네요.
최강이 전화가 끊어지는 소리를 듣고 한숨 쉬었다. 그냥 번거로운 일로 번지지만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최강이 나미사를 보고 말했다.
“너, 일부러 그런 거냐?”
부엌으로 들어간 지 30분이 넘은 녀석이 이제 와서 식용유를 찾을 이유가 없었다.
“도대체 왜 그런 거야?”
나미사가 장난기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재밌잖아요.”
“재밌다고?”
“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좁은 방에서 최강 씨랑 그간 같이 산 거잖아요?”
최강은 나미사의 말을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젠장, 너무 부럽다고요!”
“그러니까…… 뭐, 심술부리고 싶다 이런 거냐?”
“아무리 저라고 해도 동거녀는 용납할 수 없거든요.”
자세하게 따지고 들면 끝도 없이 할 말이 많았지만 최강이 그 점은 포기했는지 핵심만 말했다.
“동거녀는 무슨……. 그냥 순수하게 가족 같은 느낌이었거든?”
나미사가 말했다.
“뭐…… 배우자도 가족이지만 하시고 싶은 말이 뭔지는 알고 있어요. 두 분에게서 쿵떡쿵떡 하는 느낌은 나지 않았으니까요.”
“쿵떡…… 뭐?”
“쿵떡쿵떡이요.”
나미사가 최강의 앞에 공손히 무릎 꿇고는 말했다.
“모르시면 알려 드릴까요?”
“아니. 충분히 의미는 전해졌으니까 사양한다.”
“유감이네요.”
최강의 말을 들은 나미사가 코웃음 쳤다. 마치 비웃는 듯한 느낌을 받은 최강이 슬쩍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려고 하는 나미사의 양어깨를 눌렀다.
“아니, 잠깐만.”
“네?”
“뭐 오랜만에 나쁘지 않겠네.”
최강이 나미사의 어깨를 잡고 바닥으로 밀어 눕혔다. 최강이 누르는 힘대로 순순히 방바닥으로 드러누운 나미사가 최강이 한동안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자 말했다.
“제가 벗을까요?”
얼굴색 하나 안 변하는 것은 물론이고 눈 밑의 애교 살이 뇌쇄적이게 웃음치자 최강이 혀를 찼다.
츳…….
“너는 무섭지도 않냐?”
“절제하는 입장에서 덮쳐 주시면 오히려 땡큐랄까나……?”
최강이 나미사를 위협하듯 잡고 있던 저지의 지퍼에서 손을 떼고 일어나자 나미사가 말했다.
“그래서 안 하는 건가요? 저 지금 엄청 콩닥콩닥한데?”
“그래, 콩닥콩닥인지 쿵떡쿵떡인지, 여하튼 내가 졌으니까 그만하자.”
“음…….”
나미사가 뭔가 생각하는 듯하다가 잠시 후 말했다.
“뭐, 그럼 봐 드릴게요. 밥이나 먹어요.”
부엌으로 다시 들어가는 나미사의 모습이 보이고 10여 분쯤 지났을 때였다. 차려진 상을 들고 나미사가 들어왔다.
“드세요. 이래 봬도 이날을 위해 많이 연습했답니다.”
상차림을 쭉 훑어본 최강이 말했다.
“근데 이거 한식이네?”
“이쪽을 더 좋아하실 거 같아서요. 일식으로 다시 차릴까요?”
그러라고 하면 정말로 그럴 녀석인 것을 알기 때문에 최강이 황급히 말했다.
“아니! 그냥 먹자.”
***
식사가 무사히 끝났지만 나미사는 아직도 최강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애초에 오늘 나미사가 이곳에 있는 이유가, 편애를 들먹이며 주소희가 없는 오늘 하루만 자게 해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미사가 노리는 그런 것이 일어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말라고 못을 박아 놓은 뒤에야 허락한 것이었지만 뭔가 사람이 바뀌었을 뿐인데 묘하게 어색한 것은 사실이었다.
여하튼 그렇게 오늘 한정으로 나미사와 같은 방에서 자게 된 최강이 식사가 끝나고 정리를 했음에도 9시도 되지 않은 시계를 확인했고 적적한 듯 드러누웠다. 드라마 황금 타임인 10시까지 아직도 한 시간이 넘게 남았기 때문이다.
방구석으로 마침 시선이 이동한 최강이 구석에 정리해 둔 화투 패를 꺼내며 말했다.
“야, 너 맞고 할 줄 아냐?”
나미사가 말했다.
“맞고요?”
최강이 룰을 설명해 주자 듣고 있던 나미사가 말했다.
“하나후다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뭐야, 그럼 할 줄 알아?”
“아니요. 알기만 알지 한 번도 해 본 적은 없답니다. 그렇게 대중성 있는 게임은 아닌지라…….”
“몰라?”
나미사의 말을 들은 최강이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한번 해 볼래?”
주소희에게 항상 맞고로 얻어맞기만 해서인지 나미사를 두들겨 팰 마음에 신이 난 최강이 패를 돌리고, 잠시 후였다.
굳은 얼굴의 최강이 보였다.
“제가 이긴 건가요?”
나미사의 목소리에 최강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 잘하는데…….”
“이제 안 봐주셔도 돼요.”
나미사의 말에 기껏 유지하던 최강의 포커페이스가 살짝 무너졌다.
“무…… 물론이지.”
최강이 눈을 감고 패를 섞으며 생각했다.
‘침착하자……. 맞고는 솔직히 운도 상당 부분 차지하는 게임이다. 전 판은 운이 안 좋았어.’
최강이 패를 나누고 5분쯤 지났을 때였다. 또다시 광박에 피박까지 쓰고 패배한 최강의 굳은 얼굴을 보고 나미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혹시 봐주신 게 아니라든가?”
“…….”
최강이 아무 말도 없자 나미사가 픽 웃으며 말했다.
“귀여우셔라.”
최강의 관자놀이에 힘줄이 한 가닥 솟는 모습이 보였다. 부모 욕을 하지 않는 이상 어지간하면 싸움이 나지 않는 남자들 사이에서도 거의 불문율인 게임부심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최강이 부자연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호오…… 꽤나 자신감 좀 붙었나 봐?”
“네?”
“우리 그러지 말고,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까 내기나 할까?”
나미사가 흥미로운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
“내기요? 어떤 내기요?”
“음…….”
주소희와의 예전 일을 떠올린 최강이 별생각 없이 말했다.
“그래! 소원권 걸고 하자.”
“소원권이요?”
“그래. 왜? 자신만만해하더니 쫄리시나?”
나미사가 도리질 치며 말했다.
“아니요, 할게요. 무조건 합니다.”
최강이 현란하게 섞은 패를 나누었다. 5분 후 자신이 얼마나 고뇌하게 될지 모른 채 말이다.
***
내기 맞고가 끝난 뒤 최강은 몹시 고뇌 중이었다. 고뇌 중인 최강의 얼굴은 그야말로 마누라가 외출한 사이 집문서까지 담보 도박으로 꼬라박아 버린 가장의 표정 같았다.
샤아아아아.
화장실에서 샤워기의 물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히 씻는 사람은 나미사였다.
마지막 맞고 그 판은 유감스럽게도 최강의 패배였다. 그리고 소원권을 획득한 나미사는 그 자리에서 선언했다.
오늘 최강을 자빠뜨리겠다고.
“차라리 잠든 척을 할까?”
상당히 실용적인 방법이었다. 설마하니 자는 사람 깨워서 그 짓을 하자고 보채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최강이 생각을 실행에 옮기려는 듯 구석에 접어 둔 이불을 깔고 베개에 손을 옮겼을 때였다. 최강의 머릿속에 나미사의 웃는 얼굴이 떠오르더니 외마디 음성이 들렸다.
-귀여우셔라.
최강이 발작하듯 구석으로 베개를 집어 던졌다. 사나이 최강, 여인네에게 그런 무시를 당할 수는 없었다.
마땅한 방법을 찾아 또다시 고뇌에 잠기고, 잠시 후였다. 최강의 머리에 번뜩이는 의문 한 가지가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최강이 말했다.
“어째서지?”
문뜩 떠오른 생각은 이것이었다. 어째서 나미사와의 잠자리를 지금 껄끄러워하는가?
새삼스럽지만 고려 시대를 살아가던 당시 최강은 자신의 안사람 백서화와 상당히 금슬이 좋았다. 얼마나 좋았는지 구태여 설명하자면, 눈이 마주치면 안방에서 조용히 레슬링 한판 하던 수준이었다.
그 정도로 본능에 충실하던 최강이 어째선지 지금은 굴러들어 온 기회마저 피하고 있었다.
‘저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물론 예전에는 일본인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서 부정적인 생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단연코 지금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미사 같은, 객관적이나 주관적이나 확실한 미인이 적극적인 어필을 해 오면 쌍수 들고 환영해야 할 판이었다.
“어째서지?”
최강이 진지하게 이 문제로 고민할 때였다. 목욕탕 문이 열렸고, 추리닝 차림의 나미사가 나왔다.
자신의 눈앞까지 걸어와서 다소곳하게 앉은 나미사의 얼굴을 최강이 바라봤다. 때마침 나미사의 눈이 고혹적인 눈웃음을 그렸다.
“안 씻으실 거예요?”
“…….”
나미사를 바라보던 최강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 생각났다.”
“네?”
최강이 나미사의 이마에 꿀밤을 놨다.
“어린 게 발라당 까져 가지고!”
나미사가 지금 상황이 이해가 안 됐는지 그녀답지 않게 넋이 나간 얼굴을 해 보이다가 말했다.
“네?!”
“여자가 말이야, 으이! 조신할 줄 알아야지, 엣헴!”
그랬다. 최강은 선비도 그냥 보통 선비가 아니라 씹선비였던 것이다.
백서화와 최강이 그럴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백서화가 자신의 반려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지 백서화가 쉬웠기 때문도, 또 최강의 이성을 마비시켜 버릴 정도로 예뻤기 때문도 아니었다.
반면에 지금은 백서화의 경우와 극명한 차이가 있었다. 나미사가 아무리 자신을 좋아한다고 한들 최강과 나미사는 결국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혼례도 올리기 전에 살부터 섞는 것은 최강의 입장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암, 그건 짐승이나 할 짓이야.’
최강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 잠시 후 나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는 최강 씨도 제 또래잖아요!”
나미사도 류세란도 주소희도 다 외관만 놓고 보면 또래의 여성이다.
“아니면 제가 더러울까 봐 그래요? 저 이래 봬도 결백하거든요?”
“누가 뭐래? 나는 아직 식도 안 올린 남녀가 살을 섞어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 네 뇌 구조가 괘씸한 거라고!”
나미사가 어이없는 얼굴로 말했다.
“어차피 최강 씨랑 반드시 결혼할 건데 순서가 뭐가 중요해요?”
“누구 마음대로 나랑 결혼해?”
최강이 나미사를 설교하듯 말했다.
“그리고 내가 전에도 말했지! 사람 앞일은 모르는 거라고! 너, 막말로 전에 그 이소군인가 하는 녀석이랑도 원래 정략결혼 할 사이 아니었어? 그래서 그 녀석이랑은 결혼했냐?”
나미사는 참고로 최강에게 그 사실을 말한 적 없다. 말해서 좋을 건 없었기 때문이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척 하면 척이지.”
차라리 시치미라도 뗐으면 모를까, 방금 전 대답으로 인정해 버린 셈이란 걸 깨달은 나미사의 표정이 굳어질 때였다. 최강이 말했다.
“아니 잠깐, 그보다 너. 그런 뇌 구조로 정말 결백하긴 한 거냐? 순 뻥 아니야?”
“화…… 확인해 보면 되잖아요.”
“응, 싫어.”
“뭐예요. 그럼 어떻게 증명하란 건데…….”
최강과 나미사가 대화를 주고받을 때였다.
탕탕탕.
때마침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최강 씨! 최강 씨!! 안 돼요!!!”
현관문 밖에서 들리는 류세란의 목소리를 들은 최강이 현관문을 열었다.
얼마나 급히 뛰어왔는지 땀범벅이 된 류세란의 얼굴을 보고 최강이 말했다.
“뭐야? 뭐가 안 된다는 건데?”
“그…… 거사…….”
말을 하던 류세란이 ‘아차’ 하는 듯한 기색으로 말꼬리를 돌렸다.
“가! 아니고, 그보다 저도 오늘 하룻밤만 재워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