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
‘하…… 진짜 어이가 없어서!’
주소희는 오늘 기분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 분소회 때문이냐고?
물론 아니었다. 이틀 전에 파견 다녀온 사람, 돈 아끼자고 땜빵 세우는 것쯤 최강의 평소 성격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뭐, 까놓고 말해서 솔직히 최강을 위해서라면 이따위 것쯤 못 해 줄 것도 없었다. 그런데 자기를 이곳에 보내 놓고 최강이 사무실에서 나미사랑 시시덕거릴 것을 생각하니까 괜히 얄미웠다.
‘그렇게 가슴이 좋냐?’
본인은 아니라지만 류세란이나 나미사를 대하는 것만 봐도 자신과는 상당히 대우가 상이하다. 최강은 미드충이 분명한 것이었다.
‘뭐 그리고 솔직히 나도 작진 않잖아?’
주소희가 나름 볼륨감 있는 편인 자신의 흉부를 바라보다가 그래도 역시 두 사람에 비하면 많이 모자라다는 것을 느꼈는지 불편한 얼굴로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코웃음 치며 주소희가 중얼거렸다.
“뭐, 이 이상 커 봐야 전투에 방해만 될 뿐이고 생존성만 떨어질 뿐이잖아?”
뭔가 슬픈 중얼거림을 분소회 내내 중얼거리던 주소희가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적 보고를 비롯한 계획에 대한 설명이 끝났기 때문이다. 이제 이번 분기에 최씨 특전대 앞으로 배분된 차원 균열에 대한 서류를 챙겨서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주소희가 최강과 나미사를 한시라도 빨리 떼어 놓기 위해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할 때였다. 누군가 주소희의 앞을 막아섰다.
“오랜만에 보는구나.”
“…….”
주민석과 주연석을 확인한 주소희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러게요, 오랜만이네요.”
“최강 그 녀석은 요즘 어떻게 지내지? 잘 지내나? 듣기로는 프락시온이 관심을 보인다던데.”
주소희가 픽 웃었다.
프락시온? 최강이 프락시온과 끝을 본 게 벌써 보름이 되어 가는데 시기상으로 놓고 보면 몇 달은 더 된 한참 전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웃겼기 때문이다.
“왜 그런 게 궁금하시죠?”
주민석이 속을 긁는 듯한 말투로 답했다.
“혹시라도 최강이 프락시온으로 가면 주씨세가로 돌아와야 하는 거 아닌가 해서 말이다.”
주민석의 비릿한 웃음을 본 주소희가 차갑게 말했다.
“유감이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으니까 신경 끄시죠. 아! 그리고 ‘그 녀석’이라뇨. 입조심 좀 하셔야겠네요. 제가 최강 씨에게 그대로 전해 드릴까요?”
“뭐…… 뭐라고?”
사실 별일은 아니었지만 주민석도 최강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인지하고 있었는지 고자질하겠다 말하는 주소희의 말에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도 최강의 존재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곳이라면 단연코 주씨세가와 류씨세가였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런데 최강의 눈 밖에 난다면? 이건 주민석이 가주가 되고 말고의 문제를 떠나서 심각한 문제였다.
“그…… 그건 미안하게 생각한다.”
주소희가 픽 코웃음 치고는 주민석을 스쳐 지나가며 말했다.
“그것도 전해 드릴게요. 잊지 않고.”
도도하게 머리를 뒤로 휙 넘기며 주민석을 뒤로한 주소희가 서류를 챙겨서 회장을 나왔다. 그리고 회장 입구 계단 앞에 주소희가 딱 모습을 드러냈을 때였다.
“빌어먹을 발티온 녀석들! 어디 숨었느냐!?”
회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이곳저곳 때려 부수는 소리가 들려왔다.
***
크리스가 균열을 확인하고 이동한 지 2일이 지난 지금, 크리스는 영국의 저택에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모이라고 한 이유는?”
크리스의 개인 방으로 사용하다시피 하는 2층 끝 방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에는 쇼튼을 시작으로 파르키오까지 총 여덟 명의 프락시온이 존재하고 있었다.
테리의 물음에 크리스가 말했다.
“그란디아 대륙에 조만간 전쟁이 일어날 것 같다.”
뜬금없는 크리스의 발언에 모두가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란디아 대륙에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마나의 공명.
반드시 일어난다는 법은 없었지만 국가 간의 전쟁 규모라면 일어날 확률이 너무 높았다. 무엇보다 근래 들어 일반적인 소규모 균열의 빈도도 높아지는 것 역시 그란디아 대륙에서 이곳으로 넘어온 마나의 양이 점점 늘어나 양 세계 간의 경계가 약해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문제였다. 하지만.
그 전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었다. 바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정보에 대한 확인이었다.
쇼튼이 말했다.
“확실한 거야? 그란디아 대륙은 입수한 정보로 근 수백 년간 전쟁 한번 없었던 곳이잖아. 애초에 몬스터를 비롯한 이종족도 존재하기 때문에 앞뒤 안 가리고 국력을 소모할 만큼 여유 있는 곳이 아니고.”
“확실하다. 지금부터 내 이야기를 잘 들어 보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할 거다.”
크리스가 쇼튼의 말에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의 시작은 크리스가 이틀 전에 만났던 균열에 대한 것부터 시작이었다.
당시 60미터 남짓 되어 보이던 균열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천인대 규모의 군대였다. 발티온 소속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깃발까지 확인한 크리스는 솔직히 당황했었다.
‘많군…….’
이 정도의 그란디아 대륙인이 한 번에 넘어온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양 세계 간의 경계가 약해졌다는 말이기도 했지만 크리스는 그것보다 다른 생각에 휩싸였다.
이 녀석들과 우호적인 상황을 만들어야 하나, 죽여야 하나 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천인대라고 해 봐야 대충 마나의 흐름을 지켜본바, 천인장 한 명과 백인장 열 명 수준을 제외하면 그나마 100위권의 랭커 수준에도 못 미치는 자들이었기에 크리스의 손짓 몇 번이면 정리할 수 있는 수준이었음에도 고민하고 있는 것이었다.
최강과의 접점이 생기기 전에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전이었다면 망설일 것도 없이 이미 도륙을 내 놓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
고민하던 크리스가 결국 내린 결론은 녀석들과 대화를 하는 것이었다. 적절한 합의점을 찾고 강한 마나를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 활동할 것을 강요한다면 어쩌면 공존이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물론, 공존이 가능하다면 이득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마나의 공명이 점점 빈번해지는 분위기를 보아할 때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란디아 대륙과 이쪽 세계는 결국 경계가 무너지고 하나가 될 수밖에 없는 날이 찾아올 수밖에 없는데, 이들로 말미암아 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도 몰랐으니 말이다.
적절한 무력행사를 통해 천인대를 제압한 크리스가 천인장과 대화를 나누던 상황을 돌이키며 말했다.
“최근 사이가 안 좋던 페르간과 발티온의 사이가 더욱 악화되는 일이 일어났다. 페르간의 손에 발티온의 백인장이 피살당한 일이었지.”
쇼튼이 기억이 나는지 말했다.
“잠깐만. 그거 혹시……?”
“그래, 최강과 접촉이 있고 얼마 후에 이쪽으로 넘어온 녀석이다.”
쇼튼이 한국에서 죽였던 발티온의 백인장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거 뭔가 이상하잖아. 원래 발티온과 페르간의 소규모 분쟁이라면 그 전부터 쭉 있어 왔던 일 아니야?”
확실히 쇼튼의 말대로 이상한 일이었다. 분쟁으로 백인장 정도의 기사가 죽는 것은 발티온과 페르간 사이에서는 비교적 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명분이다.”
“명분?”
“그래. 발티온이 페르간을 공격할 명분인 셈이지.”
“다른 물밑의 원인이 있다는 거야?”
크리스가 말했다.
“근래에 페르간의 왕비가 바뀌는 일이 있었다더군. 사유는 전 여왕의 갑작스러운 돌연사.”
“…….”
쇼튼을 비롯한 모두가 말이 없었다. 아마도 그 명분이란 것이 스스로 추측이 가능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페르간의 왕비는 전대 발티온 왕의 딸이자 발티온의 공주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크리스가 말했다.
“참고로 새로 왕비가 된 여자는 10대 후반에 페르간 출신이며 상당한 미인이라더군.”
프락시온이 알기로 마흔 살 남짓이었던 왕비가 갑자기 죽을 리 없었다. 페르간 입장에서는 돌연사라 칭했지만 누가 봐도 사살이었다. 왕비를 교체하기 위한 사살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 앞뒤 정황상 발티온의 입장에서도 똑같은 결론을 도출할 만한 사건일 것이다.
발티온의 전대 왕이 나름 앙숙인 관계를 완화하고자 보냈던 공주가 결국 전쟁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그란디아 대륙의 상황은 어떤데?”
“다행히 아직 전면전으로 번지지는 않고 있지만 양국 다 국경에 병력을 집중시키고 국지전을 벌이는 중이라는 정보다.”
파르키오가 말했다.
“이 정보, 듀크는 알고 있나?”
“일단 듀크에게는 오면서 연락을 이미 해 뒀다. 하지만 언제 볼지는 미지수지.”
파르키오가 잠시간 생각하다가 말했다.
“병력의 규모는?”
“최소한의 수비대를 제외한 전면전이라고 들었다. 양국의 병력을 합치면 100만이 넘을 것으로 추정한다.”
“미치겠군.”
천인대 규모의 분쟁이 60미터의 균열을 일으켰었다. 만약에 수십만 규모의 전투가 벌어진다면 어떤 규모의 균열이 열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 장소에 있는 그란디아 대륙인들이 넘어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상당히 곤란한 일이 될 것이다. 질보다 양인 편이 정예로 구성된 프락시온에게는 유리한데, 혹여 근처에 있던 고위 마족이 이곳으로 소환되거나, 또 오천인장 이상의 기사가 이곳에 소환된다면 감당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오천인장 이상의 기사.
비교적 그 정도 수준이면 그란디아 대륙에서도 인간 중에 0.001% 안에 드는 재능을 가진 수준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쪽 세계로 놓고 보면 자신들의 재능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문제는 그란디아 대륙의 환경이 문제였다. 마나의 밀도가 높은 그곳에서 오랜 시간 수련한 그들이 자신들보다 작은 재능이라고 할지라도 약하다는 보장이 없었으니 말이다.
파르키오가 말했다.
“이럴 때야말로 듀크, 그 녀석이 필요한데…….”
프락시온이 정보를 차단하고 최소한의 정예를 육성하는 데 힘썼던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그나마 떨어지는 아이템과 혜택을 독점하지 못하고 나눠 가지면 이런 대형 사건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으니 말이다.
크리스가 말했다.
“듀크는…… 그래도 위기의 상황이 되면 반드시 나타나 줄 거다. 그보다 문제는, 우리가 어떤 준비를 하느냐겠지. 지금부터 프락시온은 2인 1조가 아니라 4인 1조로 움직인다. 클락과 케인은 조를 갈라서 아멜리아 쪽과 엘리자 쪽에 한 명씩 붙어.”
클락이 크리스와 시선을 마주하다가 잠시 후 어깨를 으쓱이고는 테리 쪽으로 이동했다. 케인이 자동적으로 엘리자 쪽으로 가자 크리스가 말했다.
“파르키오.”
“알았다고.”
파르키오가 쇼튼의 팀으로 붙었다. 전력의 균형을 위한다면 상대적으로 약체인 쪽에 파르키오가 붙고 강한 쪽에 크리스가 붙는 것이 맞았기 때문이다.
조가 갈리자 쇼튼이 말했다.
“근데 크리스.”
“뭐지, 쇼튼?”
“이거와는 상관은 없는데 말이지, 궁금한 게 한 가지 있어.”
“말해 봐라.”
크리스의 동의를 얻은 쇼튼이 말했다.
“그래서 그 천인대는 어떻게 했어?”
“…….”
쇼튼을 잠시간 바라보던 크리스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