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120
120화
주소희의 생각과는 달리 최강은 나미사와 시시덕거리고 있지는 않았다. 해 질 녘이 되어서야 주소희가 모습을 드러내자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최강이 말했다.
“생각보다 늦었다?”
“…….”
최강이 자신의 물음에 답은 하지 않고 자신의 옆자리를 슬쩍 흘기는 주소희를 보고는 말했다. 최강의 옆에는 지금 나미사가 앉아 있었다.
주소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래 말숙이가 앉아 있지 않았나요?”
나미사가 끼어들어 답했다.
“제가 비켜 달라고 부탁했사와요.”
“왜요?”
“아시면서.”
나미사의 여우 같은 눈웃음을 본 주소희가 기분 상한 듯한 얼굴을 해 보였다. 주소희가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서 있자 최강이 말했다.
“뭐? 왜?”
“자요.”
주소희가 손에 들고 있는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겉표지에 대한무인협회라고 쓰여 있는 것이 분소회와 관련된 서류 봉투인 것 같았다.
최강이 서류 봉투를 열어 보자 구체적인 변경 사항이 보였다.
‘음…… 4급으로 올랐네.’
사실상 성과라면 이미 채우고도 남았지만 기간 부족으로 보류되던 것이 이번 분기에 오른 것 같았다.
‘뭐 좋을 것도 없지만.’
급이 올라 봐야 하는 일만 늘어난다. 최강의 입장에서 볼 때 좋을 것이 하나도 없는 일이다.
그 외에도 4급으로 오르면서 배당받은 차원 균열이 부쩍 늘어났다거나 B급 균열도 균열 중에 끼어 있다거나 새로운 점은 많았지만, 대충 흘겨본 최강이 봉투에 다시 담아 테이블 위로 봉투를 툭 내려놓았을 때였다.
좀 전부터 느껴지던 주소희의 시선에 최강이 눈을 맞추자 주소희가 말했다.
“저한테 뭐 할 말 없어요?”
최강이 푹 한숨 쉬고는 말했다.
“그래. 미안하다, 미안해.”
“알면 됐어요.”
대화가 끝나도 주소희가 자신의 옆에 서 있자 최강이 말했다.
“뭐 더 할 말 있냐?”
“옆으로 좀 비켜 봐요.”
“왜? 내가 뭐 깔고 앉았냐? 아닐 텐데?”
최강이 주소희의 말에 나미사랑 옆으로 반 칸씩 이동하자 주소희가 그 자리로 냉큼 앉았다. 3인용 소파에 네 명이 앉자 비좁음을 느낀 최강이 말했다.
“야, 저기 반대편에 앉으면…….”
주소희와 눈이 마주친 최강이 단념하듯 말했다.
“그래, 안 되시겠지.”
최강이 반대편으로 가서 앉으려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주소희가 이번에는 최강의 팔을 덥석 잡았다.
“뭐야, 왜…….”
말을 하던 최강의 시선이 주소희의 손등에서 머물렀다. 주소희의 손등이 뻘겋게 부어 있었기 때문이다.
“뭐냐. 여기 왜 이래.”
“아! 그…….”
최강의 말에 주소희가 기억이 난 듯 추임새를 넣자 최강이 말했다.
“너, 분소회 다녀온 거 맞지?”
“당연하죠! 제가 무슨 농땡이라도 피우다 왔겠어요?”
“그럼 이건 뭔데?”
주소희가 분소회장을 나왔을 때 있었던 소란에 대해서 말했다. 다행히 주소희가 맞닥뜨렸던 규모는 크리스가 만났던 천인대 규모가 아닌 백인대 규모의 비교적 적은 숫자였다.
주소희가 천주갑을 앞세워 그들을 제압하고 협회로 넘겼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최강은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런 일이 있었다는 말이지?’
최강은 전이랑은 다르게 지금은 그란디아 대륙의 존재가 끼치는 해악에 대해서 알고 있다. 최강이 말했다.
“그래서 협회에서는 뭐래?”
“뭐 알아내는 정보가 있으면 알려 주겠대요.”
“음…….”
“왜요?”
주소희의 말에 잠시간 생각하던 최강이 답했다.
“한번 만나 볼까 해서.”
***
미국은 로버트를 잃어버리긴 했지만 여전히 세계의 리더 국가였다. 아마도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중국이 내분으로 스스로 몰락해 버림과 동시에 미국은 전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아놀드와 플랭크를 프락시온으로부터 지켜 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미국은 어째선지 요즘 상당히 골머리 썩이고 있는 일이 있었다.
바로 3일 전부터 세계 각지의 미국의 동맹국들이 지원을 요청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 마나의 공명은 한국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한국은 다행히 크기가 작았기에 주소희가 우연히 처리할 수 있었지만 세계 각지에서는 그 이상의 균열이 수십 개는 더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 조지가 말했다.
-그래서 눈으로 직접 보니 어떤가?
미국은 기타 선진국들과 다르게 가장 큰 규모의 균열들을 하나씩 처리해 나가고 있었다.
아놀드가 여러 아티팩트들로 무장한 중세 유럽풍의 군대를 멀리서 내려다보며 말했다.
세 명의 천인장의 기운을 느낀 아놀드가 말했다.
“강한 마나를 지닌 존재가 셋 정도 있습니다.”
-강하다 하면 어느 정도 수준인가?
“저보다는 약합니다. 하지만 다른 멤버들에게는 역부족인 상대입니다.”
최소 1군 멤버 이상의 실력. 즉, 고위급 랭커 수준의 전력이라고 볼 수 있다는 말이다. 대통령이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생포가 가능하겠나?
그간 생포가 가능한 상황에서는 가급적이면 생포해 왔기 때문이다.
아놀드가 말했다.
“불가합니다. 희생자가 나올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그 정도란 말인가?
아놀드는 당연히 혼자 균열로 간 것이 아니었다. 여차하는 상황을 위해서 플랭크는 미국에 잔류시켜 두었지만 제이스나 레베카 같은 10여 명의 1군 멤버들과 함께였으니 말이다.
대통령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어쩔 수 없군. 전투의 의사가 없는 상대면 생포하고, 아니라면 처리하게.
“알겠습니다.”
아놀드가 옆에 서 있던 남자에게 무전기를 돌려주고 주변에 서 있는 일행들에게 말했다.
“무리할 필요는 없다. 안전을 제일로 생각해.”
아놀드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 300미터가 넘는 절벽에서 암석 지대로 뛰어내렸다.
쿠웅.
아놀드가 착지하는 소음에 1킬로미터 남짓에서 대치 중이던 3천여 명의 병력 사이에서 세 사람이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강력한 기운.
저들이 바로 세 명의 천인장들이었다.
아놀드가 자신을 향해 세 명의 남자가 엄청난 속도로 거리를 좁히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아놀드의 옆으로 여섯 명의 1군 멤버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보였다.
“오른쪽 놈을 맡아라. 둘은 내가 처리하지.”
아놀드가 그렇게 말하고 동시에 화살처럼 날아가자 다음 순간 아놀드의 전방에 보이는 오른쪽 남자를 강력한 뇌기가 덮치고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레베카의 원거리 사격이었다.
레베카의 지원을 시작으로 1군 멤버들이 달라붙어 한 명을 무리에서 멀리 데리고 가자 아놀드가 기다렸다는 듯이 둘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아놀드의 주먹을 검으로 막아 낸 남자가 주먹을 버텨 내다가 끝끝내 튕겨져 날아가 바닥을 굴렀고, 잠시 후였다. 아놀드의 공격을 방어하던 사이, 다른 한 명의 천인장이 아놀드의 옆구리를 베고 지나갔다.
아놀드의 옆구리를 베고 지나간 천인장이 혀를 찼다. 아무래도 아놀드의 단단한 피부를 뚫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방심하지 않는다.”
그때 바실리스크 때와 같은 실수를 범할 수는 없었다. 모든 가능성을 배제할 생각이었다. 그것이 독이든 뭐든 간에 말이다.
아놀드가 앞뒤로 자신을 에워싸고 빙글빙글 천천히 돌기 시작하는 두 천인장을 보다가 기운을 끌어모았다. 일전에 마지막 순간 아놀드가 준비한 기술과 같았다. 폭발하던 아놀드의 기운이 그의 신체로 스며들자 잠시 후 아놀드의 두 팔이 검게 물드는 모습이 보였다.
피슝.
아놀드가 천인장 중 한 명에게 엄청난 속도로 튀어 나갔다. 100미터 남짓 되는 거리였는데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 거리를 좁힌 아놀드가 주먹을 내질렀다. 천인장이 검으로 막아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검을 그대로 가루로 만들어 버리며 직진한 주먹이 천인장의 면상에 직격했기 때문이다.
파악.
뼛조각 하나 남지 않고 피 반죽이 되어 사방으로 터지는 천인장의 모습이 보였다.
“그다음은.”
남은 한 명을 향해 돌아선 아놀드가 마찬가지로 빠르게 접근했다. 뒤로 훌쩍 물러나며 검을 내리치는 천인장의 모습이 보였지만 소용없었다.
휙.
아놀드의 잔상을 벤 남자가 잠시 후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아놀드의 주먹이 남자의 가슴을 뒤에서부터 관통했기 때문이다.
“후…….”
숨을 고른 아놀드가 멀리 떨어져서 천인장과 대결 중인 1군 멤버들을 보았다. 상당한 접전이었다. 아놀드가 남은 한 명도 처리하기 위해서 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였다.
“오…… 상당히 감이 좋은 녀석이네?”
자신의 가슴을 뚫고 나온 단검을 아놀드가 확인했을 때였다.
푸욱.
단검이 뽑히며 한번 휘청거린 아놀드가 중심을 잡고 서서히 뒤돌았다. 다행히 심장을 겨우 비껴 나간 것 같았다.
가슴에서 피가 철철 흐르면서도 덤덤한 얼굴의 아놀드가 호리호리한 체형의 경갑을 입고 있는 남자를 보며 말했다.
“한 가지만 묻겠다.”
“뭐지?”
“검에 독이 발라져 있었나?”
“아니.”
남자의 대답을 들은 아놀드가 말했다.
“그렇군. 그거면 충분하다.”
남자가 픽 웃으며 말했다.
“충분해? 가슴에서 그렇게 피가 철철 나는데?”
“그렇다. 이깟 상처쯤…….”
아놀드가 마나를 재차 끌어 올리자 상처가 빠르게 아물어 가는 모습이 보였다. 바실리스크 때 이후로 만든 기술이었다.
상처가 다 아물었을 때였다. 아놀드의 뺨을 타고 땀 한 방울이 흐르는 모습이 보였다.
“괴물이로군.”
“괴물이라……. 그러는 그쪽도 마찬가지 아닌가?”
찔리고 나서야 녀석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만약 피부를 꿰뚫기 시작하던 찰나에 고통을 느끼고 바로 반응하지 못했다면 이미 승부가 갈렸을 것이다.
아놀드가 전투준비를 취했다. 처음에 검게 물들었던 아놀드의 두 팔은 방금 전 상처를 치료했기 때문인지 한쪽 팔의 색은 원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간다.”
일순간에 거리를 좁힌 아놀드가 주먹을 휘둘렀다. 아놀드가 자신의 주먹이 남자의 잔상을 가르는 것을 목격하고 바로 뒤돌았다.
남자의 모습을 놓쳤다가는 다음은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라지려는 남자를 발견한 아놀드가 일순간에 튀어 나가 주먹을 휘둘렀다.
기척을 감추고 사라지기 직전의 남자의 단검에 아놀드의 주먹이 부딪쳤다. 그리고 잠시 후.
퍼엉.
팽팽하게 당겨지던 아놀드의 주먹과 남자의 단검을 기점으로 폭발하는 모습이 보였다.
거칠게 일어난 모래 먼지 뒤로 반쯤 은신이 걸렸던 남자가 온전히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직이다!”
“칫…….”
아놀드의 주먹이 불을 뿜었다. 도망치려는 남자와 아놀드의 추격전이 계속될 때였다. 바위산에 등짝부터 때려 박힌 남자의 앞에 나타난 아놀드가 남자의 멱살을 잡았다.
아놀드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먹을 내질렀다. 그리고 마침내 아놀드의 주먹이 남자의 복부에 박히는 모습이 보였다.
“커억…….”
속에서부터 올라온 붉은 피를 토하는 남자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남자가 붉은 피가 되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피를 뒤집어쓴 아놀드가 털썩 무릎 꿇고 주저앉았다. 아놀드의 팔은 그의 마나가 고갈됐음을 알리듯 원래 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shit…….”
숨을 헐떡이던 아놀드가 곧이어 숨을 고르고 일어났다.
아놀드가 아직 한창 전투 중인 1군 멤버들을 향해 뒤돌았을 때였다.
남자가 등을 대고 있던 거대한 바위산은 물론이고 주변의 작은 암벽들이 일순간에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아놀드가 중얼거렸다.
“아슬아슬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