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126
126화
그날 길었던 접전 끝에 패주한 파르키오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자신이 패배했으니 일단 팔콘이라는 이름의 녀석을 이길 사람이 이제 듀크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크리스는 자신과 전혀 다른 방식의 전투를 구사하긴 하지만 종합적인 전투 능력을 고려하면 자신과 대등했고, 일전에 딱 한 번 자신이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던 최지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팔콘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한숨을 쉰 파르키오가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필사적이었던 자신과 달리 항시 여유가 있던 팔콘.
‘젠장…….’
파르키오가 소리 냈다.
‘나는 죽일 가치도 없다는 거냐?’
그날 압도적인 전력 차이가 있었음에도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끝내 이길 수 없음을 판단하고 도주하던 자신을 녀석이 추격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름 도주하는 과정에서 팔 하나는 내어 줄 각오 하고 등을 보였던 자신의 각오를 마치 비웃듯 말이다.
이건 파르키오의 자존심에 상당한 스크래치로 다가왔다. 최지우에게 패배했을 때는 그나마 파르키오도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팔콘과의 전투는 달랐다. 전력이었다. 만반의 준비를 다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패배한 것이었다. 그것도…….
비참하게 말이다.
하…….
한숨을 푹 쉰 파르키오가 생각했다. 일단 패배를 인정하고 사건의 해결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일단 크리스 녀석과 합류해야 하나?’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자신이 어제 죽지 않았기에 크리스와 합류한다면 어찌어찌 팔콘을 쓰러트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파르키오가 오랜 시간 지속되던 생각을 마치고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넓은 호텔의 숙소에서 일행들은 각자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마음이 심란할 만도 하겠지.’
솔직히 말하자면 프락시온은 오늘 같은 일이 올 것이란 걸 진작에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이렇게 빨리 일어날 줄은 몰랐었다. 그리고…….
‘이렇게 강할 줄도 몰랐지…….’
파르키오가 가라앉은 방 안의 분위기를 상기하고자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켜져 있던 호텔 숙소의 TV가 속보를 떠들듯 화려한 색상을 발하는 것과 동시에 뉴스가 시작됐다.
***
파르키오가 어젯밤 패배한 것은 아직 크리스에게 전해진 상황이 아니었다. 파르키오 스스로도 워낙에 충격적이기도 했고, 더 직접적으로는 그것까지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파르키오와 마찬가지로 뉴스를 확인한 쇼튼이 말했다.
“크리스, 이건?”
“…….”
침묵하던 크리스가 말했다.
“그래, 아마도 어제 파르키오가 졌나 보군.”
솔직히 말하면 충격이었다. 상대가 누구였는지 몰라도 영상이 시작하기 전에 점멸하던 문자에서는 파르키오가 패배했다고 말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설마, 죽은 것은 아니겠지?’
죽었다면 큰일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 해결책인 협공조차도 사용할 수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TV에서 어젯밤 파르키오가 치렀을 전투로 예상되는 영상이 재생되는 것을 크리스가 지켜볼 때였다. 쇼튼이 그답지 않게 흥분한 목소리로 숙소 문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이딴 걸 어째서…….”
당연히 비밀로 지켜져야 할 모습이, 그것도 패배한 모습이 언질 하나 없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기다려라, 쇼튼.”
문고리를 잡은 쇼튼이 멈춰 서자 크리스가 말했다. 그가 어디로 향하려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 그곳으로 가서 뭘 어쩌겠다는 거지? 이 상황에 일반인에게 보복이라도 할 셈인가?”
당연히 영상은 미국이 찍었을 것이다. 그토록 자랑하던 이글아이를 이용해서 말이다.
“…….”
쇼튼이 말없이 손잡이의 손을 놓자 크리스가 조용히 영상을 바라봤다.
하지만 쇼튼을 불러 세운 자신도 지금 미국이 이 같은 영상을 송출한 걸 보고 상당히 의아해했기 때문이다. 프락시온이 패배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린다는 것은 자신들을 자극하는 짓임을 알고 있을 것이고 이것은 명백히 자신들과 척을 지겠다는 의미와 같았으니 말이다.
크리스가 문뜩 한 사람을 떠올렸다.
‘그자 때문인가?’
최강.
크리스가 떠올린 사람은 최강이었다.
자신들이 최강에게서 손을 떼라고 압력을 가하기 전까지 상당한 교류를 하고 있던 미국이기에, 아니 어쩌면 이번에 책임을 맡게 된 아놀드라는 인물이 존재하기에 미국은 프락시온이 아닌 지금이라도 최강의 편으로 돌아섰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럼 이 영상은…….’
최강을 위한 밥상을 차리는 용도라는 말이었다. 최강이 멋지게 등장해서 처리하는 물밑 작업 말이다.
냉철하게 미국의 의중을 파악한 크리스가 의미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확실히 그자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
크리스가 당해 본 최강은 확실히 강한 자였다. 사전에 특기인 화 속성을 대비하고 도전했지만 비참하게 패배했으니 말이다. 때문에 크리스는 최강이라면 영상 속의 남자야 어찌어찌 쓰러트리는 것이 가능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다음은?’
최강의 끝이 어딘지는 자신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란디아 대륙의 성장과 이곳의 성장 차이를 언제까지 이겨 낼지는 의문이었던 것이다.
크리스가 생각을 이어 갈 때였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네.”
몇 시간 동안 이어지던 영상의 시청을 마친 엘리자가 이렇게 말했다. 영상 속에서는 파르키오가 무사히 도주하는 것으로 끝이 났기 때문이다.
영상이 끝이 난 것을 크리스가 마찬가지로 확인하자 마침 파르키오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아마도 뒤늦게 알리기보다는 시기상 끝난 뒤에 대화를 하는 편이 좋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다 봤겠지?
“그래.”
다짜고짜 말해 오는 파르키오의 목소리에 크리스가 답하자 파르키오가 물었다.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강하더군. 혼자서는 힘들 것 같은 상대다.”
파르키오의 공격도 완벽했지만 상대는 그런 파르키오의 공격에 싸움이 끝날 때까지 작은 상처 몇 개를 제외한다면 상처다운 상처는 전혀 입지 않은 모습이었다. 크리스가 말했다.
“우리가 그쪽으로 가겠다. 듀크가 없는 상황에 그 방법밖에 없을 테니까.”
***
당연하지만 프락시온은 일반인들에게는 항상 베일에 싸인 존재였다. 그도 그럴 것이 프락시온이 주로 활동하는 무대가 음지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때문에 일반인들은 그런 프락시온의 존재를 항상 궁금해했다. 도대체 인류에서 가장 강하다는 열세 명이 어떤 사람들일지 의문을 품은 것이었다. 가뜩이나 가끔 싸우는 모습이 공개되는 하위 랭커들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무위를 보인다. 그런데 그 100여 명의 정상에 위치한 프락시온이란…….
상상력이 아무리 풍부하다고 해도 감히 예상하기란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런 수십 년간 베일에 싸여 있던 프락시온의 모습이 공개되는 일이 생겼다. 그것도 무려 프락시온의 최정상 멤버 중 하나인 파르키오의 전투 장면이 말이다.
무잘알은 지금 무척이나 시끄러웠다.
└뭐야 첫 등장부터 패배…….
└믿었던 그들조차 거품이었단 말입니까?
└그래도 솔직히 엄청나단 거는 알 수 있겠는데요? 뭐 빤스런한 건 좀…….
└프하다 추락시온…….
당연한 일이었지만 사람들은 프락시온의 첫 번째 모습이 패배라는 것에 실망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한차례 실망의 목소리가 휩쓸고 지나간 다음이었다. 다양한 의견들이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ㅋㅋㅋ 근데 솔직히 화면이 번쩍번쩍하면서 주변이 터져 나가는 것만 보여서 누가 뭘 한 건지 모르겠음.
└ㅇㅈ 그래서 나는 거의 다 넘기면서 봄
└근데 요즘 자주 균열에서 사람이 나왔다던데 엘리트 몬스터겠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솔직히 개 궁금하긴 하네.
물론 다양한 의견 중에는 최강과 관련된 목소리도 있었다. 긍정적으로 말이다.
└이 정도면 프리저가 더 굉장할 것 같기도 하고.
└오…… 나도 이 생각 했는데.
사람들이 누가 처음 시작한 최강의 이야기에 열을 올릴 때였다. 네임드 유저 ‘돈많으면쳐봐’가 말했다.
└여러분, 특종입니다.
***
특종은 당연히 최강과 관련이 있는 이야기였다.
“그래서요?”
최강이 오랜만에 자신의 사무실로 찾아온 우범하에게 묻자 그가 말했다.
“한번 고려해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할 수만 있다면 상당한 메리트가 있는 제안입니다.”
잠시간 생각하던 최강이 말했다.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말씀하시죠.”
“도대체 베트남의 사건에 미국이 저한테 빚까지 져 가면서 부탁하는 이유가 뭡니까?”
우범하가 사무실로 찾아와 나눈 대화의 내용은 요약하자면 파르키오가 실패한 균열을 해결해 달라는 미국의 부탁이었다.
“아마도 프락시온과 약간의 마찰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확히는 최강을 이용해서 프락시온의 견고한 입지를 이 기회에 무너트리고 동시에 최강과의 친분을 과시해서 프락시온의 보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목적이었지만 우범하도 그것까지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간 생각하던 최강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솔직히 별로 내키지는 않는데…….”
다시는 얽히지 말자고 말을 먼저 꺼낸 입장에서 프락시온이 관여한 일을 낚아채 가기도 조금 그랬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쪽이 알고 있는 정보가 미국에게 빚을 하나 지워 두는 것보다 영양가가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꼭 해야 하는 겁니까?”
최강의 물음에 우범하가 말했다.
“전혀 아닙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저희가 거절하면 상당히 곤란해하긴 하겠지만 필수적인 것은 아니죠. 어차피 부탁을 하는 입장이고 들어주는 입장이니까요.”
여전히 모든 면에서 놓고 본다면 한국보다 미국의 입김이 여전히 더 강했지만 최강의 존재 하나로 미국이 무작정 강압적으로 한국을 휘두를 수만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협회장님 의견은 어떤데요.”
“글쎄요. 솔직히 제 입장에서 놓고 본다면 최강 님이 직접 해결하시는 것이 더 좋긴 합니다. 그래도 우방인 미국의 부탁을 들어주는 편이 나중에 외교적으로도 실리를 따내기 편할 테니까요.”
잠시간 생각하던 최강이 말했다.
“뭐 좋아요. 그럼 내키진 않아도 제가 처리하도록 하죠. 대신에 이걸로 협회장님도 저에게 빚을 하나 진 겁니다.”
우범하가 주름진 입가를 옅게 올렸다.
“물론입니다.”
우범하의 답을 들은 최강이 말했다.
“그리고요.”
“네, 말씀하시죠.”
“그 균열 말인데, 녀석들과 먼저 대화로 넘겨받은 뒤에 처리할 거예요.”
“녀석들이라고 하면, 프락시온 측을 말하시는 겁니까?”
“네.”
“…….”
우범하가 말이 없자 최강이 말했다.
“왜요? 안 돼요?”
“아…… 아닙니다. 뭐 그렇게 가능하다면 그편이 저희에게는 좋긴 하겠죠.”
미국의 입장에서 노리는 건 결국 ‘프락시온이 아닌 다른 사람이 해냈다!’라는 상황을 연출하고 싶은 것일 테니 그다지 문제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과연 프락시온이 최강에게 그것이 넘겨줄지, 하는 문제였다. 프락시온도 미국이 그리는 그림의 목적을 알 테니 말이다.
‘뭐 알아서 하시겠지.’
생각을 마친 우범하가 말했다.
“그럼 미국 측에는 최강 님이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전해 두겠습니다.”
“네, 그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