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134
134화
류세란이 사무실로 들어왔을 때였다. 때마침 주소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최강 씨. 그거 한 번만 해 주면 안 돼요?”
류세란이 주소희의 목소리에 관심을 가졌다. ‘그거’라는 상당히 추상적인 단어가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거?’
입구에 선 채로 류세란이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자니 이어서 최강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돼.”
“아, 왜요. 방금 전에 열심히 수련하라고 한 건 최강 씨였잖아요.”
“혼자서 열심히 하라는 소리였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냐?”
“그러지 말고 한 번만 해 줘요 네? 네!?”
최강의 말에도 주소희가 귀찮게 조르자 최강이 마지못해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
이어서 최강이 주소희와 펼치는 행각을 눈으로 목격한 류세란이 죄 없는 자신의 눈을 비비기 시작했다. 잘못 본 건 아닌지 의심한 것이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류세란이 목격한 장면은 현실이었다.
최강이 등 뒤에서 주소희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 여전히 보였으니 말이다.
자신이 없는 곳에서 평소 이런 빌어먹을 행각을 계속해 왔다는 것에 대해서 배신감을 느낀 류세란이 최강의 이름을 부르려 할 때였다.
“알겠냐? 느낌을 잘 기억해 둬. 아무리 졸라도 오늘은 더 안 해 줄 거니까.”
“네. 알았으니까 빨리해 봐요.”
류세란의 표정이 한차례 다시 변화했다. 이번엔 당황한 듯한 얼굴이었다.
‘어……?’
주소희의 손을 바깥에서 보조하듯 맞닿은 4개의 손 가운데서 ‘원’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류세란이 알기로 주소희는 오늘 오전까지 ‘원’을 제자리에서 생성하는 것조차 힘들어하던 상황이었다. 때문에 도대체 영문 모를 상황을 류세란이 얼어붙은 얼굴로 지켜볼 때였다.
잠시 후 생겨났던 원이 천천히 작아지더니 사라지자 최강이 주소희의 손을 놓고 떨어졌다.
“자, 끝. 이제 혼자서 해.”
“네.”
류세란이 주소희의 지도를 마치고 책을 집어 드는 모습을 보고 류세란이 성큼성큼 다가가 말했다.
“저, 최강 씨.”
최강이 류세란의 대답에 책을 읽으며 답했다.
“오늘 훈련은 벌써 끝났냐?”
최강의 말에 류세란이 뜨끔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말했다.
“혹시…… 알고 계셨나요?”
“뭐 매일 둘이 같이 붙어 다니니까.”
하긴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마나를 느껴 본 적이 있는 대상이라면 수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마나도 느끼는 게 최강이다. 하지만 류세란은 이 사실을 알 리가 없었고, 여태 혼자서 착각했던 것이었다. 최강이 과외를 받고 있는 것을 모른다고 말이다.
최지우가 별일 없을 것이라며 단언했던 이유가 다 있다는 것을 깨달은 류세란이 자신감을 얻었는지 말했다.
“저 최강 씨, 저도 방금 그거 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거?”
류세란의 눈에 고민하는 듯한 최강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최강이 흔쾌히 승낙했다. 류세란도 어찌 보면 자신의 제자나 다름없다. 그간 최지우가 맡아서 키우고 있었지만 알려 달라면 알려 줘야 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뭐 좋아. 지금 진도가 어디까지 나갔는데?”
류세란이 의형화의 단계에서 정체되었음을 알리자 최강이 류세란을 말없이 바라봤다. 류세란이 최강의 시선을 느끼고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요?”
“아니, 그냥 제법이다 싶어서. 혹시 재능 있는 거 아니냐?”
류세란의 표정이 환하게 바뀌었다.
“정말요?”
“그래. 누구랑 다르게 재능 있는 거 같아.”
듣고 있던 주소희가 발작했다.
“혹시 그 누가 저는 아니죠?”
“글쎄다.”
최강이 주소희를 무시하고 말했다.
“그래서 뭘 만들고 싶은 건데?”
류세란이 주소희를 힐끔 보고 어물쩍거리자 최강이 주소희에게 말했다. 주소희를 신경 쓰는 것을 알아챈 것이었다.
“야.”
“네?”
“너 잠깐 휴게실 가 있어.”
주소희가 약간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망설이다가 마지못해 일어났다. 최강의 단호한 표정을 보아하니 자신이 뭐라 한다고 결정이 바뀔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주소희가 휴게실로 가자 최강이 말했다.
“말해 봐.”
“…….”
류세란이 최강의 귀에 대고 속삭인 뒤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그건 안 되는 건가요?”
“아니, 안 될 것도 없지. 형식적인 것만 놓고 보면 1차원적인 거긴 하니까. 근데 이거 나한테 말해 줘도 되겠냐? 들어 보니까 꽤 쓸 만한 거 같은데, 내가 사용할지도 모르잖아?”
“괜찮아요. 최강 씨라면…….”
시선을 슬쩍 피하며 얼굴을 붉힌 류세란을 보다가 최강이 조용히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방금 전에 주소희가 앉아 있던 자리였다.
“그럼 여기 앉아 봐.”
류세란이 자신의 등에 닿는 최강의 가슴을 느끼며 생각했다.
‘진작에 최강 씨에게 배울 걸 그랬나?’
잘생긴 남자 강사가 있는 요리학원에 어째서 아줌마들이 몰리는지.
류세란은 어쩐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
그날 오후였다. 최강의 사무실에 크리스가 찾아왔다.
“할 말이 있다.”
“뭔데? 아이템이랑 관련된 거냐?”
크리스가 고개를 저었다.
“유감이지만 그건 아니다.”
잠시간 생각하던 최강이 말했다. 뭐 들어 주는 것쯤이야 마침 한가했으니까 문제없었기 때문이다.
“말해 봐.”
크리스는 여러 가지를 이야기했다. 듀크에게서 들었던 그란디아 대륙의 이야기와 듀크의 목적. 그리고 앞으로의 균열에 대한 위협과 프락시온의 목적이었다.
최강이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
“그러니까 그걸 나한테 말하는 의도가 뭐냐? 협조해 달라는 거냐?”
크리스는 당황했다. 다른 이유라면 몰라도, 어쩌면 인류를 위해 도와 달라고 한다면 내심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크리스가 애써 당황하지 않은 척 말했다.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대답은?”
최강이 잠시간 고민하다가 말했다.
“뭐…… 상황 봐서 내키면.”
“내키면……?”
“그래, 사명감을 가지고 전력으로 힘쓰는 건 너무 귀찮을 것 같거든.”
최강의 답을 들은 크리스가 진지하게 고민했다. 자신은 방금 전 대화로 모든 패를 공개한 상황이다. 이제 사실상 최강에게 제시할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최강의 대답이 아무리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이 선에서 빠져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부탁하겠다. 다시 한번만 더 생각해 보는 게 어떻겠나?”
크리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바닥에 무릎 꿇었다. 이렇게 된 이상 지금 이 순간 답을 받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괜히 꾸물거리다가 늦어 버려서 혹시라도 최강을 잃어버린 뒤에는 정말이지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무리한 부탁을 한다거나 절대 부담이 가는 일을 하라고는 하지 않겠다.”
“…….”
크리스를 말없이 바라보던 최강이 한숨 쉬더니 입을 열었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냐?”
“…….”
크리스가 자신을 바라볼 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최강이 재차 질문했다.
“나한테 무릎을 꿇으면서까지 부탁하는 이유가 뭐냔 말이야. 솔직히 말해서 너희는 그란디아 대륙과 이쪽이 하나가 된다고 해도 손해 볼 녀석들은 아니잖아?”
그란디아 대륙이 지배층이 된다고 하더라도 솔직히 프락시온 정도의 수준이라면 결국 그란디아인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잘나가는 수준의 사람들일 것이다. 녀석들 정도라면 욕 좀 먹더라도 잘 빌붙어서 굽신거리면 편히 살 수 있을 텐데 자신에게 무릎을 꿇으면서까지 부탁하는 이유를 모르겠는 것이다. 무엇보다 처음 만났던 프락시온은 최강이 알기로 상당히 자존심이 강했던 녀석들이었으니 말이다.
‘근데 그러고 보니…….’
참 오랜만이었다. 틈만 나면 무릎을 꿇던 최성주가 요즘 바깥일을 담당하면서 최강에게 무릎 꿇고 부탁할 만한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크리스가 말했다.
“그냥 포기하기엔 너무 큰 가능성이 존재하니까.”
“가능성? 무슨 가능성?”
최강이 바라보는 크리스의 눈은 확신에 차 있었다.
“모두가 행복할 가능성 말이다. 우리와 네가 힘을 합친다면 어쩌면 1할 정도는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
피식.
최강이 크리스의 말을 듣고 본인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1할. 1할이란다. 2할도 3할도 아니고 고작 1할.
‘그 작은 확률에 목숨을 걸어도 되는 건가, 이 녀석은?’
크리스의 이야기를 듣던 최강이 슬쩍 싱크대 앞의 식탁에 앉아서 다과를 즐기는 네 사람을 바라봤다.
‘하긴 저 녀석들도 그러면 곤란하려나?’
최강이 결정을 내렸는지 말했다.
“좋다. 뭐 까짓것, 적어도 앞으로는 뭘 하기 전에 규모가 큰 거는 너와 대화를 통해서 결정할게.”
크리스의 표정이 밝아지는 순간이었다. 최강이 말했다.
“대신에 부탁이 있다.”
“부탁 말인가? 뭐지?”
최강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따라와.”
***
최강이 크리스를 데리고 이동한 곳은 같은 건물의 사무실 위층이었다. 최강이 출입문을 열자 잠시 후 내부를 확인한 크리스가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이건……?”
크리스가 내부에 있는 물건 하나를 집어 들며 말하자 최강이 답했다.
“이번에 균열을 처리하고 나온 것들이다.”
그때 균열은 최강이 압도적인 힘으로 처리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녀석들을 전부 죽인 것은 아니었다. 핵심 인물과 끝까지 저항하는 녀석들만 죽였고 항복한 녀석들은 살려 준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방에 있는 것은 그때 녀석들을 무장해제 시키거나 혹은 미리 죽였던 녀석들 중에 멀쩡한 물건들을 챙겨 온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크리스가 최강의 말을 듣고 살펴보다가 말했다.
“그렇군. 꽤나 쓸 만한 아이템이 보이는 건 그 때문이었나?”
그래도 양국 간의 사활을 건 전쟁이었던 만큼 제법 질 좋은 무기들이 대부분이었다. 크리스가 말했다.
“그래서 부탁할 일이란 게 뭐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겠다.”
아이템의 처분이라면 경매장을 이용하면 되고, 그 밖에 일이라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떤 수를 써서라도 도와줄 생각이었다.
“여기서 쓸 만한 물건이 있을까?”
“방금 전에 말하지 않았나? 대부분 다 질이 좋은 물건들이다. 당장에 경매장에 올린다면 제일 싼 게 수십억은 호가할 테지.”
최강이 말했다.
“그런 거 말고.”
“그럼 어떤 걸 말하는 거지?”
“내가 그리고 혹은 너희들이 사용할 만한 수준의 장비를 찾아 줬으면 한다. 할 수 있나?”
“할 수 없는 건 아니다만, 그런 게 있을 리가…….”
크리스가 방 안을 가득 채운 장비들을 바라보며 걷다가 우연히 바닥에 떨어진 반지를 보고 허리 숙였다. 진홍의 붉은빛. 상당히 질 좋은 리플렉트링이었다.
‘못해도 상급…….’
아니, 어쩌면 최상급 수준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최상급의 수준이면 정말로 웬만한 공격을 전부 되돌릴 수 있을 만한 반지였는데 아마도 이걸 가지고 있는 녀석은 최강의 공격을 눈으로 좇지조차 못했나 보다. 제대로 사용했다면 상당히 골치 아팠을 텐데 말이다.
“왜, 그거 쓸 만한 거냐?”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 상당히 질이 좋은 리플렉트링이다. 내구성도 아직 충분한 것 같군.”
최강이 크리스가 넘기는 반지를 받아 들고는 말했다.
“그래서 다른 건?”
“모른다. 하지만…….”
크리스가 방 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쩌면 괜찮은 게 몇 개 나올지도 모르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