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137
137화
빛에 잠시간 멀었던 안토니의 시야가 돌아왔다. 확 달라진 주변의 모습을 확인한 안토니의 눈에 순간적인 동요의 빛이 돌았다. 하지만.
“그렇군…….”
그건 정말이지 찰나간의 스침이었다.
사방이 우주 공간처럼 칠흑의 빛으로 뒤덮인 낯선 환경에서도, 과연 안토니는 수준급의 기사답게 냉철함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이었나?’
이곳이 어딘지 뭐 하는 곳인지 따위는 몰랐지만 한 가지, 안토니는 확실히 알겠는 것이 있었다. 바로 팔콘을 더불어 동부 전선의 핵심 전력들이 어디로 갔는지에 대한 추측이었다.
“조금 살펴볼 필요가 있겠군.”
안토니가 칠흑의 공간을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걸을 때였다. 갑자기 저 멀리 차원이 벌어지며 빛이 새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안토니가 벌어진 균열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빛을 향해 걷던 안토니가 균열을 통해 밖으로 나갔을 때였다. 안토니의 눈에 10여 명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백인장 수준은 되어 보이는군…….’
사람들의 마나의 양은 전반적으로 제법 많은 편이었지만 안토니의 평가는 박했다.
일단 양은 많더라도 가지고 있는 마나가 저 순도의 별 볼 일 없는 마나인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저런 마나를 가지고 있어서는 사실상 그 양이 많다고 한들 같은 위력을 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소모를 일으킬 것이기 때문에 당연했다.
흥미가 식은 안토니가 조용히 휙 돌았다. 그리고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눈앞의 남자들은 마음만 먹으면 손짓 몇 번에 정리해 버릴 수 있었지만 딱히 안토니에게 약자를 살육하며 희열을 느끼는 버릇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전 발티온의 군대를 몰살시켰던 것도 국왕의 명령이 아니었다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안토니가 걷고 있을 때였다. 안토니의 앞을 누가 막아섰다. 아까 무리 중에서 그래도 조금 쓸 만해 보였던 남자 중 한 명이었다.
“기다려라.”
넓은 그란디아 대륙은 하나의 공국에도 수많은 언어와 방언이 존재한다. 때문에 당연히 언어의 장벽을 해소해 주는 유니버셜 랭귀지를 안토니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익혔다.
덕분에 남자의 말을 알아먹은 안토니가 말했다.
“무슨 볼일이지?”
“방금 전 균열에서 빠져나왔을 것이다. 맞나?”
안토니가 조용히 뒤를 돌았다. 그가 확인한 것은 자신이 빠져나왔음에도 아직 사라지지 않은 거대한 균열이었다.
안토니가 남자를 향해 천천히 돌아섰던 몸을 돌이키고는 말했다.
“그랬지. 그게 무슨 문제라도 되나?”
“…….”
안토니를 막아선 남자는 프랑스의 30위 랭커 루이스였다.
루이스가 본래 맡았던 임무는 균열을 처리하기보다는 피해가 확산되지 않도록 대처하는 것에 있었다. 무엇보다 균열의 크기가 무려 300미터 수준으로, 이 앞에 일어났던 베트남의 균열과 거의 비등비등한 크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상했다.
균열이 발생하고 열두 시간.
프랑스 각지의 랭커들이 모두 소집돼서 대기한 지 한참이었지만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다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게 이 남자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균열이 발생한 곳은 프랑스. 미국과 중국에는 조금 밀리지만 세계 3위의 강국이었다.
부랑자 느낌이 나는 초라한 안토니의 복장을 보고 루이스가 말했다.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쉽게 말해 네놈의 대답 여하에 따라서 변할 수 있다는 거다.”
잠시간 루이스를 바라보던 안토니가 픽 웃고는 말했다.
“그렇군. 심문하겠다는 건가, 이 몸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순순히…….”
“113.”
“113?”
“아니지. 방금 전까지 114군. 여하튼 이 숫자가 뭘 의미하는지 알고 있나?”
“글쎄, 무슨 의미지?”
“내가 여기 있는 열셋을.”
루이스가 갑자기 횃불처럼 타오르는 안토니의 검은색 마나에 압도되어 뒤로 나자빠지는 것이 보였다.
“일격에 베어 버릴 수 있었던 기회다.”
***
듀크는 그날 이후 분열된 프락시온의 멤버들과 함께 행동하고 있었다.
일행과 합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듀크는 숙소의 TV를 보고 믿을 수 없는 충격에 한번 빠졌던 기억이 있었다. TV에 최강이 나왔기 때문이다.
‘인간? 그것도 그란디아인도 아닌 이쪽 인간이었단 말인가?’
착각해도 단단히 착각하고 있던 듀크에게는 당시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도 그럴 게 그란디아 대륙에서 부단히 수년간 수련한 결과가 최강에게는 한 수 아래이거나 겨우 비등한 수준.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차이가 나는 존재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듀크는 그 뒤로 상당히 소극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기회를 틈타 크리스를 죽이고 프락시온을 흡수한 뒤 그란디아 대륙 간의 경계를 허물려던 기존 방식을 과감하게 접어 버린 것이었다. 이제 크리스를 죽여도 최강이 역소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듀크가 시간을 보낼 때였다.
“음……?”
우연히 아침 뉴스를 켜 놓고 생각에 잠겨 있던 듀크의 시선을 낚아채는 뉴스가 있었다.
프랑스에서 어제 낮에 있었다는 사건의 영상이었다. 이글아이 같은 첨단 장비가 아니라 주변의 카메라에 우연히 찍혔던 영상이니만큼 상당히 화질은 안 좋았지만 듀크는 알아볼 수 있었다.
‘안토니!’
최고. 그야말로 최고의 패였다. 손발이 묶인 것이나 다름없던 자신에게는 말이다.
듀크가 숙소의 문을 열고 나섰다. 마침 호텔의 복도에서 마주친 아멜리아가 말했다.
“왜? 무슨 일 있어?”
듀크가 말했다.
“잠시 다녀올 곳이 생겼다.”
아멜리아를 스쳐 복도를 성큼성큼 걷는 듀크의 입에는 회심의 미소가 걸려 있었다.
***
최말숙을 따라 출발한 주소희는 집으로 전력을 다해 달렸다. 최강이 화난 이유가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오늘 식사 당번이 자신과 류세란이었기 때문이다.
“그, 최강 씨, 죄송해요.”
현관문을 열고 주소희가 방으로 뛰어 들어왔을 때였다. 텅 빈 방 안을 확인한 주소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뒤돌았다. 주소희의 뒤에는 함께 집으로 들어온 최말숙이 있었다.
“그…… 최강 씨는?”
최강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 세 끼는 꼬박 챙겨 먹는 사람이다. 현재 시간이 저녁 8시를 넘은 시점이니까 사실상 이제 식사를 준비해서 먹기는 조금 힘든 시간이었다. 결국 들어오자마자 따가운 잔소리가 이어질 줄 알았던 주소희는 잔소리는커녕 자신을 찾았다는 최강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으니 의아함을 느낀 것이었다.
최말숙이 마침 도착하는 다른 기척을 느끼고 현관문 쪽을 바라봤다. 류세란이 숨을 헐떡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최말숙이 주소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버님의 추가 전언이시와요. ‘밖에서 밥 먹고 올 테니 벽 보고 손 들고 있으라고 해. 감시는 말숙이가 하고.’라고 하셨사와요.”
최말숙이 구석 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정확하게 저쪽 벽을 지목하시면서 말씀하셨사와요.”
“농담이지? 무슨 유치원생도 아니고.”
코웃음 치는 주소희의 말에 최말숙이 말했다.
“추가로, 돌아오셨을 때 농땡이 피운 게 들키면 집에서 쫓겨날 각오 하라고 말씀하셨사와요.”
확실히 최강이라면 뱉은 말을 지킬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주소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감시자가 최말숙이었기 때문이다. 적당히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하는 시늉만 해도 충분한 것이었다. 주소희가 최말숙에게 말했다.
“에이, 말숙아. 그러지 말고 우리…….”
“유감이지만 안 되는 것이에요. 아버님이 혹시 들키면 저도 혼날 줄 알라고 경고하신 것이에요.”
주소희가 최말숙을 보다가 단호한 그녀의 눈을 보고 포기하듯 말했다.
“알았어, 알았다구. 하면 되잖아. 그쪽도 빨리 와요.”
주소희의 말에 류세란이 오자 같이 무릎 꿇고 앉아 벽을 보고 손을 들었다. 최말숙이 말했다.
“구체적으로 방법도 제시해 주셨는데…….”
“알았어. 내공은 쓰지 말라는 거지?”
“그런 것이에요.”
최말숙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자 주소희가 한숨 쉬며 몸의 내공 운용을 중단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주소희가 팔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팔을 슬쩍 내려 꼼수를 부리자 최말숙이 말했다.
“어머님, 아버님이 팔이 직각 이상으로 내려오면 안 된다고 하셨사와요.”
“말숙아. 왜 그래, 정말. 말숙이는 내가 힘든 게 좋아?”
평소 자신과 최강이 상반되는 의견을 말하는 때가 아니라면 항상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던 최말숙이다. 정으로 호소하면 이 정도 꼼수야 눈감아 줄 것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째선지 오늘의 최말숙은 아니었다.
“아버님의 명령인 것이에요. 어머님도 아시잖아요. 아버님 말을 순순히 듣는 게 신변에 좋을 거라는 거쯤은.”
최말숙의 말이 딱히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인지 주소희가 결국 다시 앓는 척하며 손을 들었다. 자세를 고쳐 잡은 주소희가 벌을 다시 받기 시작하고 5분쯤 지났을 때였다.
“끄응…….”
앓는 소리를 내던 류세란이 신경 쓰이는 것이 있는 듯 말했다.
“저 그런데, 말숙아. 나미사 씨는?”
“나미사 씨라면 아버님과 함께 식사하러 가신 것이에요.”
물어본 건 류세란인데 예민하게 반응한 것은 주소희였다.
“뭐? 둘이서?”
“네, 그런 것이에요.”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두 사람을 같이 보냈어?!”
최말숙이 그녀답지 않게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쉬고는 방구석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신문지 몇 개를 말아서 오더니 주소희의 팔뚝을 ‘툭’ 쳤다.
“그걸 아시는 분이 늦으신 것이와요?!”
주소희가 팔이 저린지 부르르 한차례 떨고는 눈물 맺힌 얼굴로 말했다.
“말숙아, 왜 그래…….”
“어머님은 항상 그게 문제인 것이에요. 정말로 아버님을 좋아하시기는 하는 것인가요?”
“나도 나름 최선을…….”
최말숙이 이번에는 주소희의 반대편 팔뚝을 건드렸다. 어쩐지 평소와 다르게 차원 안에서부터 기분이 안 좋은 것 같던 게 기분 탓만은 아니었나 보다.
“또 변명!”
주소희가 통증을 느끼며 양손으로 땅을 짚자 최말숙이 하소연하듯 말했다.
“왜 항상 벌어 놓은 점수를 오늘같이 실수를 해서 원점으로 만드시냐는 것이에요. 오늘만 해도 어머님이 조금만 더 아버님께 신경을 썼다면 나미사 씨랑 오붓하게 외출하시는 일 따위는 없었을 텐데!”
“미안해.”
주소희가 주눅 들어서 사과하자 최말숙이 말했다.
“아시면 되었으니 어서 손 다시 드시와요. 아버님이 이제 곧 들어오실 것이에요.”
“진짜?”
주소희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번쩍 들었고, 잠시 후였다. 최강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최강이 방으로 들어와 최말숙에게 말했다.
“잘 감시하고 있었어?”
“물론인 것이에요.”
최강이 생긋 웃는 최말숙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주소희를 바라봤다.
“손 내려.”
주소희와 류세란이 손을 내리고 앓는 소리를 내다가 최강이 한 손에 들고 있는 3단 찬합을 보고는 말했다.
“그게 뭐예요?”
“초밥.”
주소희가 감동한 눈으로 말했다.
“저희 거예요?”
“뭐 정확히는 말숙이 거지만.”
주소희의 말에 답한 최강이 최말숙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구석에서 신문지를 풀고 있는 최말숙을 보며 말했다.
“근데 그 신문지는 뭐야?”
최말숙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