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139
139화
아침이었다. 밤새 뜬눈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거실이 시끄러워지자 안토니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방문을 연 안토니의 눈에 TV를 응시하며 가만히 서 있는 소녀가 보였다.
안토니가 소녀에게 가벼운 인사라도 건네려던 차였다. 우연히 TV의 화면을 바라본 안토니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었다. TV에 자신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군…….’
물론 화질이 좋은 영상은 아니었지만 얼굴은 몰라도 인상착의나 전반적인 분위기 정도는 충분히 전달되는 효과는 있어 보였다. 즉, 소녀가 자신을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자리에서 우뚝 선 채 생각하던 안토니가 수배범 취급이나 받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간밤에 정을 베풀어 준 소녀가 충격을 받지 않도록 조용히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라고 깨달았을 때였다. 조용히 TV를 지켜보던 소녀가 리모컨으로 TV를 끄는 모습이 보였다.
의아한 소녀의 행동을 안토니가 말없이 지켜보고 있자 이어서 TV 뒤편의 코드까지 뽑고서야 일어나는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숙였던 허리를 편 소녀가 방문을 열고 서 있는 안토니를 발견했는지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아, 그…… 편히 주무셨나요?”
“그래. 덕분에 잘 잤다.”
안토니가 어제와 같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답하자 소녀가 황급히 부엌 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잠시만요. 금방 아침을 드릴게요.”
딱히 거절해도 상관은 없었지만 안토니는 구태여 그녀를 불러 세우지 않았다. 어젯밤에 그녀의 호의를 받아들였던 것이 단순히 동정심 때문이었다면 지금은 흥미가 생겼기 때문이다.
‘궁금하군.’
방금 전 TV를 끄던 행위.
안토니는 그 행위에 무슨 의미가 담긴 것인지 궁금해진 것이었다. 소녀는 분명히 자신을 알아봤을 것이다.
잠시 후 수프와 가벼운 빵을 차린 소녀가 말하자 식탁 의자에 앉은 안토니가 별다른 말 없이 식사를 시작했을 때였다.
안토니의 눈치를 보며 조금씩 식사를 하던 소녀가 조심스레 말했다.
“저…… 혹시 언제 가실 생각인가요?”
“식사를 끝내면 갈 생각이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근데 혹시…… 딱히 할 일이 있으신 게 아니라면 조금 더 머물다 가시는 건 어떨지…….”
소녀의 말을 들은 안토니가 생각했다.
‘밀고할 생각인가?’
설령 그런다 하더라도 소녀를 탓할 생각은 없었다. 소녀의 입장에서 본다면 소녀는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을 보인 것이었으니 말이다. 안토니가 결과를 지켜볼 생각으로 말했다.
“원한다면.”
***
주말 아침이었다.
오전 7시라는 상당히 이른 시간에 최말숙이 눈을 떴다.
“푸하…….”
잠수를 하며 참았던 숨을 들이켜는 해녀처럼 최말숙이 크게 숨을 들이켰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분명히 요즘 눈을 붙일 때는 주소희의 품에서 잠이 드는데 항상 눈을 뜰 때면 반대편의 나미사의 품에 안겨 있었기 때문이다.
나미사의 품에서 슬쩍 빠져나온 최말숙이 방금 전까지 자신을 호흡곤란으로 만들던 나미사의 가슴골을 바라봤다.
“이런 게 가슴 공포증이라는 것인가 싶은 것이에요.”
방금 전까지 자신을 살해하려고 하던 나미사를 향해 중얼거린 최말숙이 부엌으로 가서 요리를 시작했다. 어찌 됐든 오늘 빨리 일어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분주하게 가스레인지 앞에서 가볍게 된장국을 비롯한 계란말이와 반찬 몇 가지를 준비한 최말숙이 최강이 자고 있는 거실에 상을 내려놓고 조용히 그 옆에 무릎 꿇었다.
“아…… 오늘이었던가?”
최말숙이 베개에 얼굴을 묻고 말하는 최강의 목소리에 답했다.
“그렇사와요.”
최강이 잠에서 깨어 나른한 숨을 뱉으며 말했다.
“말숙아, 내가 전에 뭐라 그랬지?”
최강의 물음에 최말숙이 줄줄 답했다.
“외출 시에는 두 시간에 한 번씩 연락해야 하는 것이에요. 또 혹시 급한 일이 생기면 반드시 들러서 이야기해야 하고, 남자는 아버님 빼고는 다 짐승이니 필요한 대화 이외에는 말도 섞지 말라고 하신 것이에요.”
“그래. 잊지 말고.”
저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꿈틀대던 최강이 말했다.
“손 줘 봐.”
최강이 손을 내민 최말숙의 손에 주머니에서 꺼낸 반지를 하나 내려 두었다. 일전에 크리스 녀석이 찾아 줬던 리플렉트링이었다.
“뭐 하는 건지는 알지?”
“물론인 것이에요.”
“조심히 다녀와.”
최말숙이 조심히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다녀오겠사와요.”
현관문을 조용히 연 최말숙이 모습을 감추고 잠시 후였다. 최강이 말했다.
“지우야.”
최강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현관문 밖에 인기척 하나가 느껴졌다. 당연히 최지우였다.
“내가 이제 평일엔 딱히 여기로 출근하는 건 말리지 않겠는데, 주말엔 너도 좀 푹 쉬고 연애도 좀 하고 그러라니까?”
“도련님께서 새장가 가시면 저도 연애든 결혼이든 할 테니 그건 너무 걱정 마십시오.”
“하…….”
최강이 말했다.
“그럼 알았으니까, 미안하지만 부탁 하나만 하자.”
“말숙입니까?”
“그래. 혹시 저번처럼 위험한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오늘 하루만 부탁하자. 무슨 일 있으면 너라도 연락하고.”
“알겠습니다.”
최지우가 최강의 말에 답하고 사라지자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있던 최강이 잠이 달아났는지 일어났다.
머리맡에 차려진 상을 본 최강이 비엔나소시지를 하나 집어서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비엔나소시지는 가성비 하나는 최고였다.
입맛이 돌았는지 이불에서 나온 최강이 상 앞에 앉아 이른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10분 정도 여유롭게 식사를 마친 최강이 남은 반찬과 식기를 냉장고와 싱크대에 각각 넣고 나올 때였다.
주소희가 잠수를 마친 해녀처럼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나미사를 노려보던 주소희가 마침 최강을 목격했는지 최강에게 말했다.
“최강 씨! 최강 씨도 보셨죠! 방금 전에 나미사 씨가 저 살해하려고 했다니까요?! 이래도 거짓말이에요?!”
이미 전과가 한두 번이 아닌 것처럼 주소희가 나미사를 강하게 매도했다. 주소희와 나미사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던 최강이 주소희를 안쓰럽게 바라볼 때였다. 옆에서 자고 있던 나미사가 소란에 깨어났는지 말했다.
“최강 씨도 살해 위협 한번 느끼게 해 드릴까요? 어때요?”
일어나자마자 졸린 눈으로 뱉는다는 말이 수위 높은 농담이라 과연 나미사답다 싶었다. 최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
“다음에 내키면.”
“이제 싫다고는 안 하시네요? 좋은 현상이네요.”
주소희가 최강을 한심스럽게 바라보자 최강이 말했다.
“뭐! 왜!”
“누가 변태 아니랄까 봐.”
최강을 매도한 주소희가 최말숙이 사라진 것을 이제야 깨달았는지 말했다.
“근데 말숙이는요?”
“집 보러.”
개체 수가 부쩍 늘어 버린 아라크네들이 머물 주거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미 며칠 전에 주소희와 한번 이야기했던 일이었다. 주소희가 말했다.
“말숙이 혼자 간 거예요?”
“아니, 지우랑.”
***
최강은 주소희에게 지우랑 같이 갔다고 말했지만 사실 명확하게 따지면 최지우를 빼도 최말숙은 혼자가 아니었다.
이미 사전에 협회와 이야기가 되었고 협회 측에서 알선한 전문가들이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건물 한두 채 매입하는데 무슨 협회의 도움까지 필요하냐 싶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몰라서 하는 말이었다. 오늘 최강이 구매할 것은 최강의 집이 위치한 원룸촌은 물론이고 동네의 모든 건물.
즉, 무리하게 진행하면 아무리 웃돈을 주고 매입해도 주민의 반발이 일어날 가능성도 존재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강은 이 부분을 고려해 협회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웃돈을 주고 건물을 매입하는 만큼 역으로 너무 과한 바가지를 쓸 염려도 있었기 때문이다.
최말숙이 집을 나서고 두 시간쯤 지난 때였을까?
협회의 도움으로 최말숙은 의외로 쉽게 건물들을 매입할 수 있었다. 심지어 건물에 세 들어 있는 실거주자들까지 모두 사전에 정리해 두는 철두철미한 준비성을 협회에서 보였을뿐더러 이동하며 계약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건물주들까지 한곳에 모아 버리는 능숙한 일 처리를 기획한 것이었다.
덕분에 생각보다 빠르게 일을 마친 최말숙이 오전이 채 가기도 전에 협회에서 차출된 전문가들과 헤어졌을 때였다.
혼자서 걷기 시작한 최말숙이 조용한 골목으로 들어서더니 말했다.
“이제 나오셔도 되는 것이와요.”
“뭐야, 알고 있었어? 제법인데?”
즉각적인 반응을 위해서 안전거리를 유지한답시고 거리를 내어 주긴 했지만 의외였다. 최지우가 대놓고 기척을 드러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보다 삼촌이 여기 계시다는 건, 아버님이 보내신 건가요?”
“뭐 그렇지. 왜? 돌아갈까?”
최말숙이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최지우를 달가워하든 말든 중요한 것은 최강의 호의였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최강의 호의를 거절할 마음은 없었다.
“음…… 그러면 뭐, 같이 다니고.”
최지우의 말을 들은 최말숙이 어디론가 걷기 시작했다. 최말숙의 뒤를 세 걸음 정도 떨어져서 걷던 최지우가 물었다.
“근데 생각해 보니까 방금 전 걸로 볼일은 끝난 거 아닌가?”
협회 측 사람이 전부 다 돌아간 거 보면 분명할 것이다. 최말숙이 답했다.
“아직 할 일이 남은 것이에요.”
“할 일? 무슨 할 일?”
“이사 갈 집을 정해야지요.”
“이사? 뭐야, 도련님 이사 가시기로 하신 거야?”
최말숙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솔직히 요즘 인원이 너무 늘어서 곤란하니까요. 계약한 건물들 중에 하나를 정해야 하는 것이에요.”
“음…… 생각보다 오래 걸리겠네.”
“불편하시면 돌아가셔도 되는 것이에요. 물론 아버님께 말씀 안 드린다고는 보장 못 하겠지만요.”
묘하게 뼈가 있는 말을 뱉은 최말숙이 조용히 뒤돌자 최지우가 픽 웃고는 마찬가지로 답했다.
“호오…… 도련님이 요즘 조금 귀여워한다고 너무 자신만만한 거 아닌가? 근데 어쩌나? 도련님의 일이라면 내 일이나 다름없는데, 내가 불편해한다고? 과연 우리 말숙이다운 귀여운 발상이네. 이래서 물심부름도 경력이 있어야 한다니까?”
최말숙이 최지우의 말에 받아쳤다.
“경력이 중요한 게 아닌 것이에요. 얼마나 신뢰하느냐가 중요한 것이겠지요. 애초에 삼촌이 아닌 저에게 이사 갈 곳을 마련하는 일을 전담시키신 게 그 증거 아니겠사와요?”
“그냥 겸사겸사 부탁한 거에 의미 부여하기는. 귀. 엽. 다. 우리 말숙이.”
평소 얌전하던 최말숙에게 어째선지 최지우의 도발이 강하게 먹혀들어 갔다. 아마도 최강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인 듯했다.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하겠사와요. 요즘 류세란 씨를 은근슬쩍 아버님 곁에 밀어 넣으시던데, 그거 삼촌 작품이죠? 그거 무척이나 방해되는 일인 것이에요.”
“방해? 방해는 누가 하고 있는데. 도련님의 진짜 짝도 못 알아보고 말이야.”
최말숙이 픽 웃었다.
“누가 봐도 류세란 씨보단 어머님이 더 잘 어울리세요.”
“주소희 씨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 형수님에 비할 바는 아니라고 답할 수 있겠네.”
두 사람 다 완만한 성격 덕에 사이가 나쁘다기보다는 오히려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관계였지만 두 사람의 사이가 완전히 갈라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최말숙이 말했다.
“좋아요. 이렇게 된 이상 이 기회에 결판을 지어야겠사와요.”
“누가 할 소리를.”
최말숙이 오늘 계약한 집들의 사진과 정보가 들어 있는 파일 2개 중 하나를 최지우에게 넘기며 말했다.
“제한 시간은 오늘 저녁 6시까지인 것이에요. 아버님이 더 마음에 드실 거라고 생각하는 집을 찾아서 오는 걸로 안목 대결을 하는 것이에요. 이견 있사와요?”
“아니! 아주 좋아. 근데 괜찮겠니, 말숙아?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도련님 기침 소리만 들어도 콜라인지 펩시인지 구분 가능한데.”
“저는 칠성인지 킨인지 스프라이트인지도 구분 가능한 것이에요.”
최지우가 말했다.
“자신 있다니 다행이네.”
“이번 기회에 부족한 안목을 좀 자각시켜 드릴 테니 공부하도록 하시와요.”
두 사람이 픽 입꼬리를 올린 순간이었다. 골목에서 두 사람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들만의 대결이 시작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