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152
152화
다음 날.
최강이 정상적으로 사무실에 출근했을 때였다. 전날 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최성주가 들여보내 준 이유인지 소파에 앉아 있는 크리스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어제 찾아왔다 그랬나?’
어제 크리스가 찾아왔던 일은 주소희를 통해 전해 들은 바가 있었다. 마침 듀크에 관한 일도 전해 줄 겸 잘됐다고 생각한 최강이 크리스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어제 찾아왔었다며? 듣기로는 찾아온 이유도 말 안 해 줬다던데.”
크리스가 최강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이템이 다 만들어졌다.”
“아이템?”
최강이 기억난 듯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일전에 만들어 주겠다고 했었던 것이 생각난 것이었다.
“어딨는데?”
“공방에 있다. 함께 가겠나?”
최강의 표정이 조금 난처하게 바뀌었다.
“아니, 그건 좀…….”
“왜지? 무슨 사정이라도 있는 건가?”
“아니. 그냥 좀 귀찮아서.”
“귀찮……다고?”
크리스가 어이없다는 듯한 얼굴로 말하자 최강이 한숨 쉬며 말했다.
“거기 머냐?”
“뭐…… 그렇게까지 멀지는 않다. 빨리 다녀온다면 넉넉히 잡아도 한 시간이면 충분하지.”
“한 시간이라…….”
크리스의 말을 들은 최강이 사무실에 들어와 업무 준비를 하는 직원들을 슬쩍 보고는 말했다.
“나 말고 저 녀석들이 다녀오면 안 되냐?”
“저 녀석들이라면…….”
최강이 크리스의 말에 엄지손가락으로 뒤편에 모여 있는 주소희를 비롯한 사무실 사람들을 가리키자 그들을 확인한 크리스가 말했다.
“안 된다!”
최강이 번거롭다는 듯이 말했다.
“아, 왜! 어차피 저 녀석들한테 주려고 했는데. 그런 거면 내가 안 가도 상관없는 거잖아.”
크리스가 못 들을 말을 들은 것 같은 얼굴을 해 보였다.
“주…… 주다니? 아이템을 말인가?”
“어. 왜? 안 돼?”
“당연한 이야기다!”
크리스가 책상을 탁 치며 몸을 일으키자 최강이 화들짝 놀랐다.
“아, 왜 소리는 지르고 그래!”
“그쪽이야말로 아이템을 어째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거냐! 언제 듀크 녀석이 움직일지도 모르는…….”
말을 하던 크리스가 멈추라는 듯한 최강의 손짓을 보고 말을 멈췄다.
“뭐냐?”
최강이 말했다.
“그 듀크 녀석 말이 나와서 말인데, 죽었거든?”
차분한 눈동자로 멀뚱멀뚱 두어 번 깜박이던 크리스가 말했다.
“죽었다고? 듀크가? 혹시 농담을 하는 건가?”
“아니. 죽었거든. 진짜로.”
“진심이라는 건가? 진짜로 듀크가 죽었다는 건가?”
“그래.”
크리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듀크가 죽다니, 도대체 누가 죽인 거지? 마땅한 사람이 없을 텐데?”
최강이 엄지로 이번엔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없긴 왜 없어. 여기 있잖아.”
“농담하지 마라. 시간상 도저히…….”
말을 하던 크리스의 입이 다시 한번 멈췄다. 최강이 허공을 향해 손을 쓱 내밀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는지 조용히 지켜보던 크리스가 최강의 손에 나타난 한 자루의 검을 보고 말했다.
“그…… 그건.”
본 적이 있는 검이었기 때문이다. 단 한 번뿐이긴 했지만 듀크 녀석이 사용하던 검이 분명했다.
“어…… 언제? 아니지. 그보다, 듀크를 정말로 죽였단 말인가?”
“너도 숙소가 거기에 있으니까 알 거 아니냐. 일요일에 불난 거.”
“일요일이라면…….”
크리스도 알고 있다 일요일에 최강이 청화수를 동네 한복판에서 꺼냈다는 것 정도는.
무슨 일이 있어서 최강이 청화수를 꺼냈을까 의문이 가는 부분이긴 했지만, 설마하니 그때 듀크를 죽였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청화수의 불꽃은 분명히 엄청난 규모의 화재를 일으켰지만 화재의 규모로 볼 때 그 정도로는 듀크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준의 화력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무슨 수를 쓴 거냐? 그 정도 화염으로는 듀크를 제압할 수 없었을 텐데.”
“불이 아니야.”
“불이 아니라고?”
최강이 크리스의 시선을 받으며 보란 듯이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베어 버렸지.”
“목을 말인가?”
“그래.”
크리스가 허탈한 얼굴을 지어 보였다. 듀크는 검술의 달인이다. 그런 그를 검술로 제압했다니. 여태 최강이 무투가이며, 청화수는 그것이 가진 능력 때문에 들고 다닌다고 생각했던 크리스에게는 상당한 충격이었던 것이다.
“검술도 할 줄 알았던 건가……?”
“당연한 거 아니야? 뭐, 물론 청화수 덕을 좀 보긴 했지만.”
불꽃은 듀크에게 직접적인 타격은 줄 수 없었지만 순간적인 고통을 전하기에는 충분했고, 그 덕에 최강은 듀크가 주춤하는 찰나에 듀크의 목을 쉽게 벨 수 있었다. 아마도 정상적인 접전이 벌어졌다면 최강도 그렇게 주변 피해를 최소화하며 듀크를 처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최강이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그럼 아이템은 저 녀석들에게…….”
크리스가 최강의 말을 어림도 없다는 듯이 중도에 잘랐다.
“그래도 그건 안 된다.”
최강이 투덜대며 말했다.
“뭐야, 까탈스럽기는.”
“까탈스러운 게 아니다. 양보할 일과 양보하지 못할 일이 있는 것이지. 애초에 듀크가 사라졌다고 해도 근래에 균열의 상태를 보면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태가 된 게 사실이다. 본래라면 그래도 수십 년은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던 균열이 이제 정말 언제까지 버텨 줄지 모르…….”
“알았다, 알았어.”
최강이 질린다는 듯 말했다.
“내가 사용하면 되잖냐.”
크리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말했다.
“잘 선택했다.”
“선택이 아니라 강요겠지. 그래서 그거, 쓸 만하긴 해?”
최강의 질문을 들은 크리스가 자신감이 느껴지는 미소를 그렸다.
“물론.”
***
울티노는 조용히 바리스 공국을 벗어나 발티온 공국으로 향했다. 바리스 공국의 경우 페르간 공국으로 들어가려면 발티온을 경유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울티노가 자신의 뒤를 따라 걷는 세 명의 종자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듀크라는 녀석의 행방이 묘연해진 게 전쟁 도중이었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마스터.”
턱을 짚고 생각하던 울티노가 말했다.
“토도. 안토니 녀석이 마지막에 수행하던 임무가 뭐였는지 알아?”
얼마 전 울티노에게 사과로 얻어맞았던 그 남자의 이름이 토도였는지 세 명의 종자 중 가운데 걷던 남자가 앞으로 한 발 걸어 나오며 말했다.
“겉으로는 발티온의 동부군을 말살하는 것이라고는 알려졌지만 그 뒤로 행방이 묘연해진 것으로 볼 때…….”
울티노가 넘겨짚듯 말했다.
“듀크 녀석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토도의 답을 듣고 몇 걸음 걷던 울티노가 이번에는 오른쪽에 있던 장발의 붉은 머리 여성을 호명했다. 그녀에게 제국의 뮬러에 대한 동향을 파악하고 있으라고 명했기 때문이다.
“벨, 제국 쪽은 어때?”
여성치고는 두 남종자에 비해서 전혀 부족하지 않은 다부진 체격과 걸걸한 목소리를 지닌 여성, 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뮬러 쪽은 겉으로 별다른 움직임은 없지만 저희와 마찬가지입니다. 아마도 이번 기회가 말타이스의 신기를 모을 수 있는 적기인 만큼 수면 아래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몇 차례 적발됐습니다.”
“그래? 서둘러야겠네?”
“그러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뮬러. 자신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2개의 말타이스의 신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그는 애초에 신기를 보유하기 전부터 대륙 전체에 유명세를 날리던 인물이었다. 신기를 손에 넣고도 공국 한정으로 겨우 근위 기사단에 포함될 수준인 자신과는 다르게 말이다.
때문에 사람들에게 2개의 신기를 가진 뮬러와 울티노는 항상 비교의 대상이었고, 패자는 항상 울티노였다. 그래서 울티노에게 있어서 뮬러는 자격지심의 근원이었던 것이다.
‘이번 기회에 3개의 신기를 차지하고 기회를 틈타 뮬러도 제거한다.’
5신기를 다 모은다면 제국은 오히려 뮬러를 쓰러트린 자신을 포섭하러 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평소부터 바리스 공국 따위 자신을 품기에 너무나 작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울티노의 입장에서는 아주 반가운 일이었다.
여차하여 뮬러 쪽에서 움직인다면 상당히 골치가 아파질 것을 감안한 울티노가 말했다.
“가자. 여유 부릴 틈이 없으니 내일 안으로 발티온에 진입한다.”
울티노가 세 명의 종자와 함께 사라졌다. 언제 그곳에 사람이 있었냐는 듯…….
***
크리스를 따라서 이동한 최강은 충청도 어느 작은 마을에 도착해 있었다. 유선 케이블이 깔렸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외진 작은 마을에 도착한 최강이 크리스를 따라서 조금 더 걸었을 때였다.
마을과는 떨어진 집이 한 채 보였고, 잠시 후 크리스가 철문으로 된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최강이 따라 들어갔다.
“여기가 공방이냐?”
“그렇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처음 보는 검은색 금속을 슬쩍슬쩍 흘기며 최강이 크리스를 따라 걷고, 잠시 후였다. 넓은 뒤뜰에 보이는 20평 남짓 되는 대장간에서 테리가 나왔다.
“드디어 오셨구만.”
“필요 없다니까 하도 귀찮게 굴어서 말이야.”
최강의 말에 테리가 픽 웃으면서 자신감 있는 분위기로 말했다.
“물건을 보게 되면 그 말, 반드시 후회할 거라고 장담하지.”
“그랬으면 좋겠네.”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답한 최강이 테리가 열고 나온 입구를 통해 함께 들어가자 시선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보였다.
‘진열장……인가?’
검은색 천막으로 덮인 진열장을 최강이 확인했을 때였다. 진열장을 덮고 있는 검은색 천막에 손을 올린 테리가 말했다.
“자! 기대하시라.”
테리가 천막을 벗겨 내자 진열된 3개의 장비가 보였다. 장비에서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빛을 확인한 최강이 떠오르는 물건이 있다는 듯 중얼거렸다.
“머리띠…….”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다.”
장비에서는 최말숙의 생일에 선물했던 머리띠의 보석에서 뿜어져 나오던 반투명한 분홍빛이 전체적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딸바보 최강이 여전히 아쉬운 듯 입맛을 삼켰다.
‘우리 말숙이 주면 참 좋아할 텐데.’
슬쩍 최강이 바라보자 크리스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 된다.”
“츳…… 알았거든.”
최강이 크리스의 말을 듣고 이렇게 말하고는 장비를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 자그마한 의문이 남는지 테리를 향해 말했다.
“근데 말이야. 이거 그렇게 방어력이 좋아 보이지는 않는데?”
물론 겉모습은 그럴싸해 보인다. 하지만 대충 만지작거리며 확인해 본 재질은 가죽이 베이스인 것도 모자라서 상당히 얇았고 무게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게 방어력이 좋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최강의 질문에 테리가 말했다.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방어력을 고려해서 만들 만큼 재료에 여유가 있었던 게 아니거든.”
“그럼?”
갑옷에 방어력보다 중요한 게 무엇이 있을지 도저히 생각이 되지 않자 던진 최강의 질문에 테리가 답했다.
“마법이다.”
“마법?”
이전이라면 그냥 넘어갔을 단어였다. 하지만 불과 어제 최강은 안토니와 대화를 나누었다.
“혹시 그 구터의?”
“구터를 알다니! 어디에서 들었지?”
“그건 비밀이고. 여튼 구터의 비전 기술 맞아?”
그란디아인이라면 모를까, 최강이 알고 있는 게 신기했는지 흥미로운 눈빛을 해 보인 테리가 답했다.
“그래, 맞지. 비록 구터의 제자의 제자로 이어지는 기술을 우연히 전수받긴 했으니까 비교할 바는 못 돼도 명맥으로 따지자면 맞겠지.”
최고의 대장장이로 손꼽힌다는 구터의 마법 부여. 하긴 그러고 보니 일전에 최말숙도 프락시온과의 싸움에서 머리띠의 효과를 보았다고 했었다.
최강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수지맞았다는 생각에 말했다.
“장비 3개 다 마법이 부여된 건가?”
“그렇지.”
“몇 개씩?”
절정에 달했던 구터의 경우 4개 이상을 장착한 장비도 있다고 안토니는 말했었다. 테리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아쉽게도 1개다. 이마저도 근래에나 가능해진 능력이지.”
최강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이해가 안 됐기 때문이다. 일전에 최말숙의 경우엔…….
“전에 머리띠는 3개도 했었지 않나?”
테리가 기억해 주어서 기꺼웠는지 웃는 얼굴로 말했다.
“맞다, 3개였지.”
테리의 답이 들리기 바쁘게 최강이 캐물었다.
“그럼 어째서 이건 1개지? 전에는 3개였을 텐데?”
테리가 자신이 만든 3개의 장비를 바라보며 말했다.
“일전의 머리띠와 차이가 있기 때문이겠지.”
“차이?”
“간단하다. 그때 그 사건이 있은 뒤 머리띠는 어떻게 됐지?”
최강이 최말숙이 지금도 애지중지하며 매일같이 차고 있는 머리띠를 돌이켜 생각해 봤다.
“그렇군. 일회성인 거냐?”
“그래. 바로 그러한 차이다. 장비에 마법을 부여하는 건 사실 구터에게 영감을 받고 그를 모방하는 대장장이들이라면 모두가 어느 정도씩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그럼에도 구터가 아직까지 최고의 대장장이로 취급받는 것은 그 마법이 영구적이기 때문이지.”
최강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갑옷을 비롯한 신발과 목걸이를 바라봤다. 테리가 말했다.
“자. 능력은 차차 설명해 줄 테니 입어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