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16
16화
예정됐던 인원이 전부 모이자 토벌대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주씨세가가 선두로 이동하고 류씨세가가 후미를 이루어 이동하고 있었다.
류씨세가의 제일 앞에서 이동 중이던 류세란에게 박지원이 다가와 말했다.
“아가씨, 프리저의 제안을 왜 받으신 겁니까?”
류세란이 일말의 주저 없이 말했다.
“딱히 손해 볼 건 없어 보였거든요.”
류세란의 답을 들은 박지원이 확인하듯 말했다.
“아가씨는 프리저의 말이 맞았을 때는 위험을 예방해서 좋고, 반대로 틀렸을 때는 기정의 이득을 고스란히 챙길 수 있다고 생각하셔서 수락한 게 맞으시지요?”
“네. 왜요?”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파악한 박지원의 말을 류세란이 긍정하자 박지원이 난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거라면 손해 볼 게 있기는 합니다.”
류세란이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
“그게 뭐죠?”
“최종적인 우리의 목적은 프리저를 포섭하려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류씨세가는 주씨세가와는 달리 아직도 최강의 포섭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 질문인 듯했다.
박지원이 말했다.
“그렇기에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떤 문제요?”
“프리저의 말이 맞든 틀리든 프리저가 일을 주도해서는 관계를 쌓게 되더라도 대등한 입장으로 인식될 확률이 높을 텐데, 그러면 목적을 달성하기 버거워지지 않겠습니까?”
류세란이 박지원의 말에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류세란이 무언가 의문이 드는 것이 있다는 듯이 말했다.
“그…… 그렇다고 처음부터 고자세로 나가면 더 반감을 사지 않았을까요?”
박지원이 말했다.
“아니요. 굳이 강압적인 자세가 아니라 높은 자세로 회유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번 같은 경우엔 차라리 트롤 한 마리 선심 쓴다는 듯이 프리저에게 던져 주는 것이 더 이상적이었겠죠.”
박지원의 말에 크게 공감하듯 류세란이 말했다.
“어쩌죠? 지금이라도 가서 없던 이야기로 할까요?”
박지원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이미 늦었습니다. 다음부터라도 잘해 보는 수밖에요.”
***
선두의 주씨세가의 무리 중에서도 주소희는 제일 뒤에서 이동 중이었다.
주소희가 류씨세가의 무리에 끼어 있는 최강을 슬쩍 보고는 김준영에게 말했다.
최강이 자신이 아닌 류씨세가와 함께 이동하는 것이 상당히 불만스러운 목소리였다.
“어떻게 저럴 수 있죠?”
김준영이 말했다.
“뭐 어쩌겠습니까? 프리저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한번 속여 먹은 전례가 있는 우리보다야 류씨세가가 좋을 수도 있는 일이지 않겠습니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정이라는 게 있지. 부탁하길래 노력해서 토벌대에 끼워 놨더니, 저러는 건 아니잖아요!”
김준영이 주소희를 말없이 바라봤다. 주소희가 말했다.
“뭐예요, 그 표정?”
주소희의 말에 김준영이 번뜩 정신 차리며 말했다.
“아! 별것 아닙니다.”
“사실대로 말하세요. 지금 살짝 기분 안 좋아지려고 그러니까.”
주소희의 말에 슬금슬금 눈치 보던 김준영이 마지못해 말했다.
“진짜 별거 아닙니다. 그냥 혹시 프리저가 단발이 취향일까, 생각했을 뿐…….”
김준영의 말을 이해한 주소희의 표정이 굳었다.
김준영의 말을 의역하자면 ‘최강이 너보다 류세란이 더 취향인 거 아니야?’라는 뜻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김준영의 생각도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좁은 단칸방에.
그것도 젊은 남녀가.
같이 사는 입장에서 눈이라도 맞을 법하건만 쫓겨나지 않으면 다행인 상황을 이어 가는 주소희와는 달리, 잠시 잠깐 대화한 것으로 최강이 류씨세가 쪽으로 홀라당 넘어갔기 때문이다.
주소희가 스리슬쩍 물었다.
“그…… 제가…… 류세란보다 못생겼다는 건가요?”
김준영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일단 그건 아닙니다. 그저 취향 차이지 않나 싶습니다.”
진심이었다. 주소희가 냉철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냉미녀 상이라면, 류세란은 활발하고 따듯한 분위기의 온미녀 상의 미인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정반대 느낌의 미녀인데 외모가 누가 낫고 누가 부족하다 논하기에는 큰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준영이 자신의 답을 듣고도 충격에 빠져 있는 주소희를 향해 말했다.
“그보다 아까 하시던 이야기를 하시죠?”
“아까 하던 이야기요?”
김준영이 기억을 되새기듯 말했다.
“그 있잖습니까? 두 도련님의 성장에 대해.”
“그랬었죠, 참?”
주소희의 얼굴에서 어둠이 가시며 화색이 돌았다.
“그래서 뭔데요?”
다행히 쉽게 충격에서 벗어나는 주소희를 보며 김준영이 말했다.
“아가씨가 파견을 나가시고부터 그런 소문이 돌았었습니다.”
“소문이요?”
“아라크네 사건 이후로 두 분 도련님이 큰 성장을 이루셨다는 이야기요.”
“그래서요? 그게 끝은 아니죠?”
“물론입니다.”
주소희의 물음에 답한 김준영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입을 대고 속삭였다.
“두 분 도련님이나 아가씨나 비슷한 소질을 가진 건 세가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주소희가 공감했다. 만약 누군가의 재능이 월등했다면 후계자 경쟁이 이루어질 필요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음…… 뭐 그렇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겁니다. 그렇다면 아가씨에 비해 두 분만 갑자기 성장하신 것에 이유가 있었을 테니까요.”
“이유가 있었나요?”
김준영이 보란 듯이 씩 웃으며 말했다.
“제가 좀 조사를 해 본 결과, 원인이라면 이거뿐입니다.”
“뭔데요?”
“두 분이 부쩍 성장하신 건 프리저에게 얻어맞은 탓입니다.”
***
인원에 섞여서 걷던 최강이 걸음을 멈췄다.
열셋?
거리를 유지한 채 뒤를 따라오는 나미사의 존재 때문이었다. 최강이 생각했다.
‘생각보다 너무 많이 붙네.’
나미사가 물론 독보적이었지만 다른 이들도 상당한 수준의 무인들이었다.
트롤을 놓고 거래를 한 만큼, 최강은 지금 눈앞에서 느껴지는 트롤들보다 뒤쪽의 무리가 돌발 행동을 하지는 않을까 더 신경 쓰이는 것이었다.
10여 분쯤 최강이 걸었을 때였다. 주씨세가의 선두가 소란스러워졌다.
토벌대를 반기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트…… 트롤이다!”
“조…… 조심해, 한 놈이 오른쪽으로 돈다!”
류세란이 소란을 듣고 최강에게 다가와 말했다.
“우리도 빨리 합세하죠.”
끄덕.
최강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하자 류세란이 류씨세가의 무인들과 함께 빠르게 전방으로 합세하는 모습이 보였다.
뛰어가는 류씨세가의 모습을 본 최강이 비스듬히 뒤돌았다.
“…….”
아무것도 없는 지나온 길을 노려보던 최강이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다시 돌아섰다.
스슥.
최강이 한창 트롤의 난입으로 소란스러워진 전방으로 몸을 옮겼다.
어느덧 전장의 가운데서 분위기를 살피는 류세란의 옆에서 최강이 불쑥 나타났다.
“아…… 깜짝이야. 언제 오셨어요?”
최강의 귀에 자신을 발견한 류세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강이 말했다.
“뭐…… 방금 왔수다.”
최강의 말을 들은 류세란이 묘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말했다.
“뭐, 그건 그거고. 그보다 트롤이 세 마리밖에 없어요. 정말로 여섯 마리 맞는 거죠?”
“확실해.”
류세란의 질문에 그렇게 답한 최강이 한창 접전 중인 트롤을 바라봤다.
‘생각보다 잘 싸우네.’
마찬가지로 싸움을 구경하던 류세란이 말했다.
“근데 저희가 끼어들 틈이 없네요.”
“확실히.”
전방의 트롤 두 마리와 오른쪽으로 돌았던 트롤을 주씨세가가 빠짐없이 마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강이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접전지를 바라봤다.
3미터에 다다르는 거구의 트롤을 다른 두 곳은 열댓 명의 무인들이 무리를 이루어서 치고 빠지고를 반복하는 반면에, 그곳은 고작 두 명이서 트롤을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민석과 주연석이었다.
‘저 녀석들은……?’
최강이 두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고 눈을 빛냈다. 엘리스 때 눈을 뻘겋게 만들고서 귀찮게 하길래 한 대씩 후려 줬던 녀석들이었기 때문에 기억에 남아 있었다.
“안 죽이길 잘했네.”
최강이 스스로를 칭찬할 때였다.
“형님, 지금입니다!”
“알고 있다!”
주연석이 트롤의 몽둥이를 검으로 막아 내는 틈을 타서 주민석이 멈춘 몽둥이를 밟고 뛰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뒈져라!”
주민석이 상처투성이의 트롤의 목을 향해 일격을 날리고 트롤의 후위에 착지함과 동시에 잽싸게 앞으로 굴렀다.
쿵.
주민석이 착지한 곳에 트롤의 몽둥이가 내리꽂히자 주변에 작은 지진이 일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크아아아아아!”
허무하게 땅을 때린 몽둥이 위로 트롤의 혈액이 흘러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자신의 혈액을 확인한 트롤이 크게 울부짖는 것이 흥분한 모습이었다.
‘오, 열 받았다.’
영화를 관람하듯 흥미롭게 지켜보던 최강이, 그 모습을 보고 트롤의 저항이 본격적으로 거칠어질 것을 예감했을 때였다.
“……얼레?”
주민석을 향해 씩씩거리던 트롤에게 변화가 있었다. 갑자기 호흡이 천천히 일정해지더니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산 정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모두가 트롤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의아해할 때였다. 트롤이 갑작스럽게 다시 돌진했다.
“어림없다.”
주민석이 깜짝 놀라 옆으로 피하며 트롤의 팔을 베었지만, 주민석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전장을 이탈하는 트롤의 모습이 보였다. 보아하니 다른 두 마리의 트롤 역시 마찬가지의 모습이었다.
주민석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 있을 때였다. 주연석이 달려와 말했다.
“형님, 도망갑니다. 쫓아갈까요? 회복하기 전에 마무리를 지어야 합니다.”
“자…… 잠깐만 기다려!”
주민석이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거 같은 주연석을 말리며 트롤을 바라봤다.
‘도망간다고? 트롤이?’
***
산 중턱에서 돌아오는 세 마리의 트롤을 보는 남자가 있었다.
나미사와 하야토를 통해 대화를 주고받던 이유성이었다. 이유성이 말했다.
“어땠지?”
“꽤나 강력한 인간 두 마리가 섞여 있다. 저항 강했다. 죽는다.”
이유성이 새삼스럽다는 얼굴로 옆자리를 바라봤다. 이유성의 눈에 방금 전 복귀한 트롤의 상처를 안쓰러운 얼굴로 쓰다듬는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트롤과 같은 초록색 피부와 한 손에 쥔 뼈다귀 지팡이. 그리고 그 끝에 달린 주먹 크기의 녹색 보석이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내는 소년이었다.
이유성이 말했다.
“남은 두 놈과 네놈이 같이 싸워도 죽는다는 말인가?”
소년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건 아니다. 그렇게 된다면 당연히 죽인다. 하지만 우리도 많이 죽는다.”
소년의 말뜻을 어렴풋이 이해한 이유성이 말했다.
“이기긴 하지만 트롤도 많이 죽는다는 말인가?”
“그렇다.”
엘리트 몬스터이긴 했지만 아직 완전한 성장을 끝내지 못한 반쪽짜리 엘리트이기 때문일까?
다소 불편한 대화를 마친 이유성이 생각했다. 트롤 소년의 말이 사실이라면 제법 곤란했기 때문이다.
‘형님이 해외까지 나가서 힘겹게 데리고 온 엘리트 몬스터다. 고집 센 엘리스 녀석보다야 수준은 많이 떨어져도 상당히 고분고분한 녀석인데, 만에 하나 이번에 잃어버린다면?’
생각도 하기 싫다는 듯 이유성이 고개를 저었다. 트롤을 관리하라고 자신에게 이소군이 명령한 이유는 그런 경우를 만들지 말라는 이유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제법 강한 녀석 두 놈은 내가 해결해 주겠다. 그럼 어떻게 되지?”
“이긴다.”
엘리트 트롤의 자신만만한 즉답을 들으며 이유성이 자신의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토벌대의 선두를 보고 말했다.
“귀찮긴 하지만 오랜만에 몸 좀 풀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