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162
162화
벨의 말에 최말숙이 주소희, 류세란과 시선을 주고받더니 입을 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최말숙의 말을 듣던 벨이 한숨 쉬었다. 전반부까지만 듣고도 답을 예측했기 때문이다.
“그래, 그렇겠지. 사실 별 기대 안 했었다.”
그래, 원래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애초에 그것을 빌미로 시간을 잡아먹히느니 저렇게 단칼에 거절해 주는 편이 더 좋았다. 여튼 호기심에 취해 마냥 시간을 낭비할 정도로 여유롭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벨이 한 손으로 들고 있던 그랜드 소드를 다시 양손으로 쥐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예상보다 마나를 더 소모하겠군.’
초반에 벨이 느꼈던 주소희 일행은 정말이지 가소로운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오판이었다. 누구에게 배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시했던 셋은 무형기를 보유하고 있었고 거기에 더불어 껄끄러운 능력도 각자 소지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마나를 일부만 사용해서는 가장 중요한 시간 부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벨이 짓누르고 있던 마나를 조금 더 개방했다. 그리고 움직였다. 목표는 최말숙이었다. 신속하게 움직인 벨이 나타난 곳은 최말숙의 후미였다. 조금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속도에 최말숙의 눈에 동요의 빛이 감돌고, 다음 순간이었다.
투두둑.
최말숙의 피가 바닥에 흘렀다. 그래도 흐릿한 신형 정도는 감지했던 최말숙이기에 다행이었다. 어깨춤을 베인 최말숙이 상처를 부여잡고 뒤로 물러났다. 그마저도 무형기를 제때 사용하지 못했다면 그대로 팔 하나는 잘려 나갔을 것이다.
“말숙아!”
주소희가 상처 입은 최말숙의 이름을 부른 순간이었다. 벨이 한 번 더 움직였다.
벨이 방금 전 최말숙을 노린 이유는 총 세 가지. 첫째, 자신의 움직임에 최말숙이 반응할 수 있느냐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둘째, 최말숙이 가장 강했기 때문이다. 전략적으로 봐도 가장 강한 아군이 무너지면 정신적인 대미지를 입으니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
‘빈틈.’
진형을 붕괴하기 위해서였다. 교묘하지만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기에 셋의 호흡은 완벽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여유가 있을 때의 이야기.
어디로 움직일지 어떻게 대처할지 서로의 간격이 어떤지 아군조차 알 수 없는 돌발 상황이 나온다면 서로의 움직임을 아군조차도 예상할 수 없는 것이다.
주소희가 최말숙에게 다가가면서 천주갑의 범위에서 벗어난 류세란을 향해 벨이 달렸다. 벨의 눈에 당황해하는 류세란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벨은 그런 류세란을 가차 없이 베었다. 상반신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류세란의 모습이 벨의 눈에 그려졌다.
‘일단 하나…….’
쓰러진 류세란을 확인한 벨의 인상이 구겨졌다. 눈에 동요의 빛을 그린 벨의 고개가 자신의 흉부를 향했다. 뒤에서부터 관통한 검이 보였다.
“쿨럭.”
입으로 피를 게워 내는 벨을 확인한 류세란이 빠르게 주소희의 곁으로 붙었다.
다행히 심장을 노렸던 류세란의 일격을 직전에 틀어서 직격은 피한 벨이 주소희의 옆에 도착해 핀잔을 놓는 류세란을 바라봤다.
“정신 안 차릴 거예요?”
“미…… 미안해요. 너무 놀라서.”
관자놀이에 식은땀을 닦아 내는 류세란을 본 벨이 방금 전 자신이 베었던 류세란이 있는 뒤편을 바라봤다. 여전히 피로 바닥을 붉게 적시며 죽어 있는 류세란이 보였다. 신기한 일이었다.
당황해하는 건 벨뿐만이 아니었다. 주소희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전까지 멀쩡하던 벨의 상태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주소희가 말했다.
“근데 어떻게 된 거예요? 갑자기 왜 저러는 거죠? 그리고 방금 전 공격은 대체…….”
그 전까지의 벨의 모습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그녀는 허무하게 일격을 내줬다. 지켜보던 주소희가 보기에는 류세란이 서 있는 곳과는 조금 동떨어진 곳으로 가서 어림없는 칼질을 하더니 조용히 입꼬리를 올리는 벨의 모습과 그런 그녀에게 신속하게 접근해 칼을 찔러 넣는 류세란의 모습이 보일 뿐이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런데 정작 공격을 당한 입장인 벨도 아직까지 영문을 모르겠는지 아무것도 없는 뒤편을 귀신이라도 보이는 것처럼 연신 확인하는 모습이다. 궁금해하는 주소희의 물음에 류세란이 조용히 말했다.
“의형기를 사용했어요.”
“의형기? 그럼 세란 씨가 뭔가 한 거예요?”
류세란이 주소희만 들을 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별로 대단한 건 아니에요. 환상을 하나 보여 준 거뿐이니까.”
“환상…….”
류세란이 원으로 무언가를 형상화하기 전에 최강에게 물어봤던 것. 그것이 이것이었다. 환상.
정확히는 특정 상황에 대한 모습을 형상했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그리고 방금 전 류세란이 형상한 것은 벨에게 자신이 베이는 모습.
즉, 간단한 형상이 아닌 특정 상황 자체를 만들어 보여 주는 만큼 대상도 한정적이고 만든 상황이 대상이 예상했던 상황과 동떨어진 것이라면 바로 들켜 버린단 점도 분명히 존재하는 기술이었다.
“알죠? 제가 사용할 수 있는 원은 2개예요.”
아마도 벨에게 보여 주고 있는 환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하나의 원을 사용하고 있다는 말일 것이었다. 주소희가 말했다.
“알아요.”
다행히 가볍게 베인 정도인 최말숙이었기에 당장에 전투에 지장은 없겠지만 조심해야 했다.
연신 환상의 류세란과 진짜 류세란을 살펴보던 벨이 말했다.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벨이 자신의 가슴에서 철철 흐르는 혈흔을 한 손으로 틀어막으며 말했다.
“마나를 아낄 처지가 아니군. 인정하겠다. 그대들도 훌륭한 전사임을. 그리고 전사에게는 그에 맞는 대우를 해야겠지.”
벨이 마나를 끌어 올렸다. 방금 전 일격으로 지원을 가기 위한 시간에 쫓기는 게 아니라 출혈로 인해 쫓기는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벨이 마나를 전력 개방해 자신이 들고 있는 그랜드 소드에 때려 부었다.
그랜드 소드에서 쩍쩍 금이 가며 빛이 솟아나더니 잠시 후 눈부신 빛이 주소희 일행의 시야를 따갑게 만들며 점멸했다.
최강과 싸웠던 울티노처럼 고대 로마의 중무장한 전사처럼 휘황찬란한 빛깔의 갑옷을 걸친 모습으로 변한 벨의 모습이 보였다.
양손에 날카로운 클로를 착용하고 있는 벨의 모습을 일행이 확인한 순간이었다.
일순간에 최말숙의 뒤편까지 이동한 벨의 클로가 최말숙의 심장을 향했다. 주소희의 천주갑이 발동했지만 아주 찰나만 멈춰 세울 뿐 곧바로 으스러지는 모습이었다.
등을 관통당한 최말숙이 클로가 빠져나가자 한차례 꿈틀거리더니 한쪽 무릎을 꿇었다. 다행이 천주갑이 버텨 준 찰나의 시간 덕에 무형기를 발동했고 심장을 관통당하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중상임은 확실한 부상이었다.
“말숙아!”
중상을 입은 최말숙의 모습에 놀랄 새도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벨의 모습을 류세란이 확인한 순간이었다.
“컥…….”
동시에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가슴을 관통당하는 류세란의 모습과 주소희의 모습이 보였다.
***
최지우는 지금 주소희 일행의 전투를 조금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었다. 토도와 크롬은 상당히 강한 상대였지만 최지우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두 자루의 검을 이용해 타이밍을 이용해 하나를 먼저 처리하고 나니 남은 하나는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도 진즉에 도착한 최지우는 나서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바로 최지우의 옆에 서 있는 최강 때문이었다. 최지우가 말했다.
“저, 도련님. 말숙이 많이 다친 거 같은데…….”
“알아. 보고 있잖아.”
최지우는 이어서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최강이 기분이 안 좋다는 것 정도는 누가 봐도 알고 있 수 있었으니. 최지우는 최강이 진짜 친딸처럼 최말숙을 아끼는 것을 알고 있다. 아마도 누구보다 먼저 나가서 돕고 싶은 것은 최강일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최강은 그 마음과 다르게 행동으로 옮기고 있지 않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실전. 실전 경험이 세 명에게는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도 겨뤄야 하는 일이 생긴다. 최강은 이번 기회에 저 세 명에게 그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주고 싶은 것이었다. 물론 죽을 위험에 처한다면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은.
‘근데 주소희 저 녀석은 뭐 하는 거야, 도대체!’
지켜보던 최강은 지금 몹시 불만스러웠다. 대상은 주소희였다.
피지컬적으로 놓고 보자면 주소희는 류세란보다 훨씬 뛰어나다. 천주갑으로 꿀이란 꿀은 몽땅 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에 선전하는 것은 주소희가 아닌 류세란이었다. 방금 전 벨에게 결정적인 일격을 최말숙이 허용한 순간 위기에서 일행을 다시 한번 더 살린 것도 류세란이었다.
아마도 류세란이 전에 말하던 그 환상이란 것을 보여 줬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네 차례라고.’
이제 더 이상 류세란의 도움은 받기 힘들 것이다. 2개의 원을 이미 사용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잠깐의 재정비의 시간을 번 것 같기는 하지만 들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최강이 답답했는지 속으로 다짐했다.
‘주소희 저 녀석은 역시 풀어 주면 안 돼.’
특훈. 진짜 돌아가면 특훈을 제대로 시킬 생각이었다.
***
류세란이 잠시간 벨에게 환상을 보여 준 결과 그 자리를 피할 수 있었던 주소희 일행은 비상 사태였다.
‘지우 씨는 아직인가?’
최말숙이 당했고 류세란의 힘을 더 이상 기대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은 온전하냐고 묻는다면…….
주소희가 이를 콰득 물었다.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지우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지금 자신은 천주갑도 일격에 부서지고 이제 남은 것은 자신의 손에 들린 검뿐이었으니까.
주소희가 자신의 손에 들린 검을 바라봤다.
‘해야 하나?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자신이 가장 오랫동안 다루어 왔던 병기는 당연히 검이다. 하지만 이 검은 능력을 개방하면 전혀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최강에게 끌려다니며 훈련받았다고는 해도 평생 동안 연습한 검이 아닌 다른 병기로는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최강이 답답해하는 만큼 주소희 역시 답답해하고 있었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벨의 그랜드 소드가 형태가 변할 때 주소희가 생각한 것은 이것이었다. ‘자신의 검과 같다.’라는 생각 말이다.
주소희가 벽에 기대 놓은 최말숙의 안색이 점점 안 좋아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결단을 내렸다.
“이건 말숙이가 가지고 있어.”
천주갑을 벗자 흰 티 차림의 주소희가 보였다. 주소희가 천주갑을 최말숙에게 가져다 대자 최말숙의 옷 위로 입혀지는 모습이 보였다. 주소희가 최말숙에게 천주갑을 입힌 건 당연했다. 일전에 주씨세가의 빌딩에서도 내단을 먹여서 효과가 있었던 만큼 천주갑 안에 있는 기운으로 상처의 지혈이라도 되길 바란 것이었다.
‘뭐 더 솔직히 말하면, 필요 없어지기도 했고…….’
망을 보던 류세란이 나타났다.
“소희 씨, 들킨 거 같아요. 시간이 없는데 장소를 옮길까요?”
아마도 최말숙의 혈흔이 추적의 발자취가 된 것 같았다. 잠시 후면 벨이 도착할 것이다. 도망치려면 지금 도망쳐야 했다.
“아니요.”
주소희가 내력을 끌어 올려 검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동시에 최말숙을 확인했는지 류세란에게 말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말숙이 좀 안전한 곳으로 옮겨 줘요.”
“믿는 게 있는 거예요?”
“…….”
주소희가 별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을 본 류세란이 말했다.
“알았어요. 그럼 조심해요. 저도 바로 지우 씨에게 가 볼 테니까.”
류세란이 잠시 후 최말숙을 들쳐 업고 사라졌다. 주소희가 남은 마나를 몽땅 때려 부었다. 그러자.
검이 최강의 기운처럼 투명한 빛으로 물들었다. 오로라처럼 밝은 빛이었다. 그리고 그 빛이 절정에 달했을 때였다.
번쩍.
검이 빛과 함께 폭발했다. 검의 본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