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163
163화
주소희와 류세란을 클로로 단숨에 해치운 벨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은 크롬과 토도가 남아 있던 곳이었다.
‘조용하군. 어째서지?’
시기상 벌써 전투가 끝났을 리 없다. 벨이 생각하는 최지우는 분명히 강한 사내였지만 크롬과 토도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뛰어난 병기를 소유하고 있다. 3대 대장장이가 만든 것은 아니더라도 아류작이나 그에 버금가는 유니크 아이템은 제법 있는 편이기도 하고, 크롬과 토도 역시 이러한 아이템을 소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에 벨이 의문을 품었을 때였다.
벨의 표정이 굳었다.
‘마나가 없다.’
마나를 탐색해 봤지만 어찌 된 일인지 토도도 크롬도, 심지어 적인 최지우의 마나도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벨이 마침 이쪽 일도 해결되었겠다, 황급히 몸을 옮기려고 할 때였다. 몸을 완전히 돌이키려는 벨이 위화감을 느낀 얼굴로 멈칫했다.
“피……?”
바닥에 간헐적으로 흩뿌려져 있는 혈흔이 보였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이곳에 이러한 피가 있어야 할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없었다.
‘도망쳤다?’
빠르게 두뇌를 회전시키던 벨이 망설였다. 저 혈흔의 정체가 최말숙의 것임을 알아차렸고 어쩌면 이곳에 있는 총 네 구의 시체가 전부 다 가짜임을 눈치챈 것이었다.
벨이 진지한 얼굴로 고민했다. 토도와 크롬이 있는 쪽으로 가야 하나, 아니면 이곳의 마무리를 지어야 하나 고민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간 고민하던 벨의 선택은 결국 ‘이곳의 일을 마무리한다.’였다. 마나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 신경 쓰이는 것은 물론이었지만 최지우의 마나도 안 느껴진다. 녀석들이 패했다는 단정을 지을 수 없는데 이쪽의 일을 내팽개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벨이 전력으로 달렸다. 여하튼 우선순위를 정하긴 했지만 저쪽도 빨리 합류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벌어진 상처에서 문득 통증이 강하게 느껴졌는지 벨이 인상 썼다.
‘츳…….’
원래라면 자신을 이렇게까지 골머리 썩이게 만드는 상대를 만난 것에 대해 벨은 기뻐했어야 맞다. 원래 전투를 즐기고 저돌적인 그녀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벨은 지금은 짜증이 몰려오고 있었다. 이곳에서 자꾸만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빨리 말타이스의 신기를 회수해서 합류해야 하는 자신의 임무가 지연됨을 느낀 것이었다. 가랑비에 옷 젖듯 어느덧 출혈도 무시할 수준이 아닌 것이다.
벨이 빠르게 정리하고 지혈할 것을 계획한 순간이었다. 벨의 달리던 걸음이 갑자기 멈췄다. 경계심 느껴지는 얼굴의 벨이 말했다.
“모습이 바뀌었군.”
삐거덕삐거덕.
백은의 중갑을 걸치고 있는 기사를 확인한 벨이 그렇게 말했다.
벨은 지금 눈앞의 기사를 알고 있는 것이다. 느껴지는 마나가 영락없는 주소희였기 때문이다.
“…….”
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벨은 애초에 답을 기다렸다는 것이 아니라는 듯 움직였다. 주소희를 해치울 생각인 것이었다. 모습이 보이지 않는 다른 둘의 행방은 걸렸지만 이쪽을 해치운 뒤에 찾아도 된다.
철컹이는 중갑옷의 철제음과 동시에 당황한 기색이 여실히 벨에게 느껴졌다. 벨은 비장하게 웃음 지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거동도 불편해 보이는 갑옷을 걸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전에도 자신의 움직임에 따라오지 못했던 그녀였다.
‘지금이라고 다를 게……!’
스슥.
벨의 눈에 동요의 기색이 비쳤다. 그도 그럴 게…….
일순간이었지만 주소희의 모습이 채 눈으로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사라졌기 때문이다. 벨의 등 뒤에서 주소희가 나타났다. 손에 들고 있던 창대를 강하게 쥐고 작살 찍듯 내려찍는 주소희의 모습에 벨이 황급히 그 자리를 도망갔다.
자신 대신에 바닥을 꼬챙이질한 주소희의 창을 중심으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쿠웅.
콘크리트 바닥에서부터 시작된 실금이 주변 사방으로 번져 나가더니 건물로 타고 올라가 건물도 산산조각 내는 모습이 보였다.
모르긴 몰라도 방금 전 일격을 허용했다면 패배가 확실했을 것이라고 벨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 주소희가 창을 지면에서 뽑아내는 것을 확인한 벨이 지혈이 안 된 상처에 손을 얹었다.
‘또 일어났군…… 이상한 일.’
***
주소희가 지금의 모습을 하기 싫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첫째, 앞서 말했듯 아직 창을 다루는 데에 미숙하다는 점이었고 둘째는, 움직임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었다. 주소희의 무기는 주소희의 모든 내공을 때려 부어서 발동되는 만큼 모든 능력치가 주소희의 마나에 비례해 상승했는데 그간 아무리 마나가 많아도 다룰 수 있는 마나가 극히 한정적이던 주소희가 감당할 만큼 상승한 신체 능력이 만만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캉캉캉.
때문에 지금도 그랬다. 벨이 연달아 클로로 주소희의 단단한 갑옷을 찔렀지만 주소희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주소희의 방어력이 벨의 공격력을 압도할 수준으로 올라갔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갑옷이 어떻게 됐을지는 보지 않아도 비디오였으니 말이다.
‘지금!’
주소희가 벨의 빈틈을 찾아서 쥐고 있던 창을 강하게 찔러 넣었다. 노렸던 공격인 만큼 방금 전의 벨의 후면을 잡았던 속도와 비슷할 정도로 빠른 찌르기였지만 이번엔 주소희의 한 방을 경계하고 있었던 탓인지 벨이 여유롭게 피해 훌쩍 달아나는 모습이었다.
‘아!!! 짜증 나게…….’
당연한 말이지만 주소희는 최강에게 배운 것이 있었다. 최강은 주소희에게 지금같이 무식하게 창을 찌르는 법만 알려 준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초부터 모든 것을 알려 줄 수는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주소희가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야말로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알려 줘서는 실전에 사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최강이 선택한 것은 이것이었다.
한 방.
단 한 방에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기술을 알려 준 것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최강이 알려 준 것은 너무 도박적인 부분도 있었다. 한 방에 모든 걸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피하거나 빗나가기라도 하면 무조건 망하는 것이다.
때문에 주소희는 벨의 눈치를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최적에, 최고의 순간에 한 방을 때려 넣어야 하니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거북이 걸어가듯 슬금슬금 시간만 잡아먹는 주소희의 전술은, 노린 것은 아니었지만 확실하게 벨의 숨통을 조여 가고 있었다.
주소희는 다른 데 집중하고 있느라 눈치를 못 채고 있었지만 벨은 지금도 류세란에게 입었던 상처를 지혈하지 못한 채로 시간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벨도 뛰어난 전사이니만큼 마나를 바탕으로 뛰어난 회복량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부위가 문제였다. 급소를 찔린 만큼 자가 재생 능력이 더딘 것이었다. 또 생각 이상의 마나 소모로 치료에 공급되는 마나의 양이 줄어든 것도 한몫하고 있었다.
여하튼 벨은 지금 이러한 이유로 현 상황에 행동에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자신의 클로로 이미 주소희를 수십 방 때려 봤지만 전신을 무장하고 있는 주소희의 갑옷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마나를 쥐어짜 내 공격한다면 상황은 달라지겠지만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자신이 탈진 상태가 되어 버린다는 것은 엄청난 위험도를 자랑하는 행동이었기에 망설여지는 것이었다.
‘차라리 도망가야 하나?’
지금이라도 몸을 빼서 토도와 크롬과 합류한 뒤 몸을 빼내는 방법이 있었다. 그렇게 하면 그런 위험한 선택을 할 필요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다. 다만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는 질책이 마스터 울티노에게서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분명히 나은 선택일 터인데 이상한 일이었다.
벨의 고개가 좌우로 한차례 저어진 것이었다.
‘고민할 가치도 없군.’
벨은 스스로를 전사라고 생각한다. 전장에서 적에게 등을 보이는 행동보다 주인의 명령을 이행하지 못한 것에 더욱 치욕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어려운 일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내는 방법을 벨이 선택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다소 위험한 방법이라도 도박 수를 선택한 벨이 양손을 X 자로 교차시켰다. 그리고 마나를 끌어 올린 뒤 잠시 후 양손의 클로를 겹치자 변화가 일어났다. 왼손의 클로가 오른손으로 합쳐진 것이었다.
모든 것을 지켜보던 주소희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신했다.
‘찬스다!’
지금 저 행동으로 보아할 때, 상대가 승부를 결정지으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주소희는 알고 있었다. 상대가 공격해 들어오는 타이밍을 잡아서 자신도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움직임이 단조로워지는 순간이 공격해 오는 순간이라는 것을 주소희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타이밍을 재는 주소희의 눈에 벨이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히는 것이 보였다. 아까 정상적인 상태의 벨의 속도였다면 눈으로 잡아내지 못했겠지만 지금은 신체 능력이 강화된 상태인 데다가 심지어 벨이 체력적인 면에서도 저하를 보였기 때문에 확실하게 보였다.
주소희가 코앞에 나타난 벨의 클로가 자신의 심장을 겨눈 채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외쳤다.
“파갑(破鉀)!”
주소희의 백은의 전신 갑옷이 빛으로 둘러싸이는 것이 보였다. 벨의 클로와 허공에서 만난 백색의 기운이 팽팽하게 힘을 겨루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퍼엉.
갑옷이 폭발하자 그 폭발력에 버티지 못하고 주르륵 물러나는 벨이 보였다.
‘큭…….’
폭풍이 상처를 건드려 인상을 구긴 벨이 날아오는 물건을 발견하고 무심결에 쳐 냈다.
카앙.
뭔가 강철을 두드린 듯한 손을 타고 전해지는 감촉에 새삼스럽게 주변을 돌아보는 벨의 눈에 방금 전까지 없던 것이 보였다. 자신을 둘러싼 백은색의 검들이었다. 아까 벨이 쳐 냈던 물건을 바라봤다. 백은색 철제 장갑의 모습을 하고 있는 물건이 잠시 후 공중에 떠서 자신을 겨누고 있는 수십 개의 검과 마찬가지인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 보였다.
뭔가 위험한 느낌을 받은 벨이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주변을 탐색했다. 하지만 그건 이미 늦은 듯했다. 사방 360도를 전후좌우 할 것 없이 포위한 채 겨누고 있는 검을 보아할 때 퇴로가 이미 없었기 때문이다.
파갑은 유니크 아이템의 독자적인 기술이었다. 갑옷을 파괴해 공격 수단으로 이용하는 기술 말이다.
그리고 검으로 변한 장갑이 마찬가지로 벨에게 겨누어진 순간이었다.
검이 벨에게 비산했다. 전후좌우 할 것 없이 360도 모든 각에서 일제히 날아오는 검을 벨이 급소를 파고드는 것부터 급하게 쳐 내며 저항했다.
심장을 노리는 검도 목을 노리는 검도, 급소를 향하는 검을 모조리 벨이 쳐 냈지만 그래도 결과는 참혹했다.
벨이 고슴도치가 되는 것은 순간이었다. 반 청바지와 흰 티 차림으로 돌아온 주소희가 보였다.
주소희의 손에 들린 창이 자신을 향하는 것을 확인한 벨이 움직이려 해 봤지만 흰색 스파크가 검과 검을 타고 터지면서 마비 기운이 그것을 방해했다.
왼쪽 발을 앞으로 내밀고 무게중심을 뒤로 옮겼던 주소희가 중심을 왼쪽 발로 옮기며 들고 있던 창을 내던졌다.
“백련(白蓮)!”
주소희의 내공이 가득 담긴 창이 벨의 심장에 직격했다. 창이 벨의 피부에 닿자 흰색 가루가 되어 바람을 타고 흩어진 다음 순간이었다.
콰앙.
거대한 빛의 폭발이 벨을 중심으로 일어났고 벨은 점점 확산되는 그 빛과 함께 사라졌다.
청화수와 싸울 때 최강이 보였던 위력과는 천지 차이이긴 했지만 여전히 엄청난 위력이었다.
반경 수백 미터를 그대로 얼려 버리고 나서야 사라진 폭발 뒤에는 거대한 연꽃 모양의 꽃봉오리가 만개해 있었다.
정작 벨을 해치운 주소희가 뒤늦게 자신이 만들어 낸 참상을 확인하고는 중얼거렸다.
“혼나지는 않겠지?”
어쩐지 건물을 잔뜩 부숴 먹었다고 최강에게 혼날 것 같은 불길한 미래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