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165
165화
최말숙의 변화가 일어난 그때, 그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사람은 최정숙이었다.
“으오옷…….”
최말숙과 마찬가지로 갑자기 몸이 빛으로 뒤덮이는 모습이 보였다.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실상 최정숙은 대모라는 직책을 맡는 만큼 세대로 따지자면 최말숙보다 10배는 더 이전 세대의 아라크네이고 나이로 따지면 5배는 더 살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정숙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베르티! 대모님이 빛나요.”
“맞아요. 근데 에미리도 빛나고 있는데요?”
뒤늦게 돌아가는 상황을 깨달았는지 ‘0.0’ 이런 눈을 만들어 서로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을 지켜보던 최정숙이 귀를 의심했다.
방금 전까지 ‘꺄르르르륵’이라거나 ‘우왘’ 같은 옹알이나 의성어 비슷한 소리밖에 내지 못하던 녀석들이 단체로 말문이 트였기 때문이다.
잠시 후 빛이 조용히 사그라드는 것을 목격하고 최정숙의 머리에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진화…….”
그래, 자신 이전에 대모를 맡았던 이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여왕이 각성했던 일과 함께 그 세대의 아라크네들이 방대한 힘을 가지게 된 전설 같은 이야기 말이다. 대모는 그 시대를 하이 아라크네의 시대라고 말했고 당시 아라크네는 다른 고위 마족들에 비견할 정도로 강성한 힘을 가졌었다고 대모는 그렇게 우수에 젖은 눈으로 말했었다.
“어쩌면…… 아니, 확실하다.”
틀림없이 하이 아라크네로 진화한 것임을 최정숙은 확신했다. 천 년을 훌쩍 넘긴 세월을 대모직을 겸해 오면서 태어난 시기가 다르던 녀석들이 이른 시기에 동시다발적으로 말을 떼는 모습이라거나 빛으로 뒤덮이는 모습은 처음으로 보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력한 힘이 느껴진다. 도대체 얼마나 강해진 거지?”
최정숙이 자신의 주먹을 강하게 쥐며 중2병스러운 대사를 읊었다.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엄청난 힘의 성장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전보다 족히 5배는 거뜬히 넘어선 것 같은 마나의 성장에 최정숙이 최강을 떠올렸다.
“어쩌면 최 사장도…….”
그도 그럴 게 그동안 최강에게는 항상 맞아 왔는데 어쩌면 그 설욕을 할 수도 있겠다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절레절레.
최정숙이 생각을 털어 버리듯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몸에 오한이 드는지 부들부들 떨었다. 맞은 만큼 최강의 강함을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었다.
“큼…… 아직은 좀 무리가 있겠지.”
일순간에 꼬리를 말고 다시 생각을 시작한 최정숙이 최말숙에 대한 생각을 떠올렸다.
자신은 못하지만 최말숙이라면 어쩌면 가능할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신과 달리 최말숙은 이전에도 엄청난 마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자신이 이 정도일진대 최말숙은 과연 얼마나 강해졌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최 사장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때다. 이 얼마나 경사스러운 일인가.”
최말숙의 각성을 축하해 줄 생각에 벅찬 가슴으로 날을 지새우고 다음 날이 되었을 때였다. 아침 일찍 최강의 집 앞을 서성이던 최정숙의 앞에 최강이 나타났다.
귀신처럼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최강의 모습에 최정숙이 반사적으로 말했다.
“뭐…… 뭡니까?”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최정숙은 직접 마주하니까 어제 잠시나마 했던 생각을 관둔 것을 다행이라 여겼다. 최강이 자신의 코앞에 나타나기까지 그의 기척을 전혀 못 느꼈기 때문이다.
다행히 자신이 그러한 생각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때문에 마음을 추스른 최정숙이 조심히 말했다.
“그, 헬레나를 만나고 싶습니다. 최 사장.”
“헬레나라면…… 말숙이?”
“그렇습니다.”
“정말로 그거뿐이야? 이상한 짓거리 하려는 건 아니고?”
“이……상한 짓거리라니요!”
최강의 눈빛은 여전히 못 미더운 눈초리였다. 정확히 묘사하자면 질 나쁜 친구와 놀지 못하게 견제하는 부모의 눈빛 같았다. 하지만 그런 눈빛을 알 턱이 없는 최정숙이 마음을 읽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지 최강의 시선을 슬쩍 피하자 최강의 경고 소리가 들려왔다.
“애들한테 혹여라도 이상한 바람 불어 넣지 마. 진짜 죽는다. 내가 말숙이 때문에 너 살려 두고 있는 거야. 알고 있냐? 근데 그것도 슬슬 한계라고 할까?”
“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최 사장은 죄 없는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인간은 아니지 않습니까.”
최강에게 슬쩍 마음에도 없는 아부를 던지며 최정숙이 결백을 주장하자, 잠시 후 최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몰라? 그럼 자세히 말해 줘야지. 마지막 경고다. 다른 애들이면 몰라도 재숙이나 지숙이한테 멋대로 교육하지 마.”
최지숙도 최재숙도 과거가 어쨌든 지금은 최말숙의 동생이라며 데리고 온 애들이다. 그런 애들에게 여왕이니 뭐니 사상을 주입하는 건 오히려 최말숙과 두 아이와의 관계에 얇은 벽을 치는 일인 것을 최강은 알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최강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일전에 아라크네를 지키겠다며 쓸쓸하게 서 있던 최말숙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최재숙과 최지숙의 존재는 최말숙의 일을 거들게 하기 위한 목적도 분명히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이것에 있었다.
막말로 처음과 달리 많은 사람이 함께 살고 있지만 여전히 서열 꼴찌인 최말숙이 마음 둘 곳도 있어야 한다는 것.
“…….”
최정숙이 지도 찔리는 게 있는지 별다른 변명을 하지 못하자 최강이 말했다.
“알았으면 들어가 봐. 말숙이는 부엌에 있을 거다.”
최강이 열린 대문을 통해 들어가는 최정숙에게 말했다.
“아, 그리고! 어떻게 될지 시험해 보고 싶으면 해 보든가.”
최정숙이 최강의 미묘하게 올라간 입꼬리를 보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
최강의 말대로 최말숙은 부엌에서 두 아이와 함께 아침 식사의 뒤처리를 하고 있었다.
부엌에 들어선 최정숙이 낯선 최말숙의 뒷모습을 보고 감동한 눈빛을 지어 보였다. 과연 아라크네가 각성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저 아름다운 자태. 은연중에도 느껴지는 방대한 마나. 과연 자신과 같은 아라크네의 마나인가 의구심이 들 정도의 초월함이 느껴졌다.
“축하드립니다, 여왕 헬레나.”
여왕이 태양이라면, 대모라는 위치는 달의 느낌이다. 태양이 가장 앞에서 빛이 날 수 있도록 그녀를 보조하는 것이 대모인 것이다. 때문에 최말숙이 천주갑을 손에 넣은 지금이라면 명백히 서열상 최정숙은 최말숙보다 아래지만 여전히 예의만 차릴 뿐 극존칭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설거지를 하면서 최정숙의 말을 듣던 최말숙이 축하받을 일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는지 말했다.
“축하라니요, 레오나?”
“각성을 하셨지 않습니까……?”
“각성이요?”
최말숙의 표정을 본 최정숙이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최말숙은 모른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사실상 나이로 따지면 최말숙은 300살을 갓 넘긴 어린아이일 뿐이니 말이다.
“그렇군요. 헬레나는 모를 수도 있겠습니다.”
“음…… 그러니까 각성이라는 단어는 처음 듣긴 하네요.”
“걱정 마십시오.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헬레나.”
최정숙이 머릿속에서 단어를 정리하다가 말했다.
“헬레나, 혹시 현재 아라크네의 상황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아니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최말숙의 말에 최정숙이 답했다.
“지금 아라크네는 어제 헬레나의 성장으로 진화했습니다.”
“진화요?”
단연코 아라크네가 진화할 수 있다는 말은 최말숙 입장에서 처음 듣는 것이었다.
“맞습니다, 헬레나. 진화입니다. 이건 아라크네의 역사 속에서도 딱 한 번 존재하는 전설적인 일이지요. 여왕이 각성을 해야만 나오는 일이니까.”
최말숙이 말했다.
“그러니까 레오나의 말은, 제가 각성했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것도 아주 훌륭하게 각성에 성공하셨지요.”
솔직히 최말숙은 본인이 어제와 비교한다면 눈에 띄게 성장했음은 알고 있었지만 이게 각성이라는 대단한 것인지까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그에 대한 지식도 없을뿐더러 어제 눈을 뜨고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최강이 어떻게 생각할까로 관심이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각성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도 솔직히 좀 무덤덤한 것이다. 아마도 당장에 생활에 변화는 없기 때문인 것 같았다. 최말숙이 말했다.
“참 잘된 일이네요.”
“그렇습니다.”
어쩐지 뜨뜻미지근한 최말숙의 반응을 살피다 조심히 물었다.
“안 기쁘십니까?”
“아니요. 여왕으로서 기쁘답니다. 하지만 당장에 생활이 변화할 일은 아니잖아요, 각성이란 게.”
최말숙이 설거지를 도와주는 두 아이를 보며 말했다.
“그치?”
“맞아요.”
“그래요.”
설거지가 끝난 최말숙이 고무장갑을 벗고 돌아섰다.
“근데 하실 말씀은 그게 다인가요?”
의외의 반응에 벙쪄 있던 최정숙이 헛기침하며 말했다.
“물론 아닙니다, 헬레나.”
최말숙이 말해 보라는 듯 조용히 시선을 주자 최정숙이 말을 했다.
“그…… 대모로서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이만 최 사장의 품을 벗어나는 것은 어떻습니까?”
최말숙의 표정이 굳었다.
“지숙이랑 재숙이는 이제 나가서 놀아두 돼.”
“네!”
두 아이가 최말숙의 말을 듣고 현관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두 아이를 의도적으로 내보낸 최말숙이 말했다.
“불과 반년도 안 지났지 않나요?”
아라크네의 둥지가 현세로 넘어와서 고초를 겪었던 일이 고작 몇 개월 전이다. 그런데 조금 성장을 이뤘다고 이런 말을 한다니. 최말숙은 최정숙의 말에 상당히 회의적이었다. 무엇보다 두 번 다시 최강과 주소희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다릅니다. 그때보다 수배는 강력한…….”
“들을 필요도 없어요. 기각하겠어요, 레오나.”
“하지만 헬레나…….”
최말숙이 최정숙의 말을 잘랐다.
“한 번만 더 같은 이유로 발언하시면 혼날 줄 아세요!”
레오나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정말로 여차하면 자신을 죽이겠다는 듯한 최말숙의 마나가 자신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마치 태양 앞의 반딧불 신세를 떠올린 최정숙이 잠시 후 최말숙이 마나를 거둬들이자 털썩 무릎 꿇었다.
“알겠습니다, 여왕이시여.”
“이만 돌아가 보세요.”
자신보다 무려 5배 가까이 어린 최말숙에게 혼날 줄 알라는 듯한 자존심 상할 법한 처우를 받고서 쫓겨난 최정숙이 터덜터덜 현관을 나와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아…… 어느새 이렇게 어엿한 모습을 갖추셨단 말인가.”
최정숙이 감격에 젖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정숙이 감동을 받은 것은 이 부분이었다. 감히 어떠한 존재도 넘볼 수 없을 듯한 아득한 고고함이었다. 과연 자긍심과 기품이 넘치기로 유명했던 전대 여왕 엘리스에게서도 볼 수 없던 기품을 최정숙은 엿본 것이었다.
최정숙은 당장의 선택이 손해일지라도 누구보다 여왕의 성장이 향후에는 아라크네의 더 큰 영광을 불러올 것임을 알고 있으니 진심으로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저 또한 최선을 다해 보좌해 드리겠습니다.”
최정숙이 어느 때보다 뛰어난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신이 나서 뛰어갔다. 아라크네가 언젠가 모든 마족 위에 우뚝 서는 날을 떠올리며 행복 회로를 굴리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