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180
180화
서울 한복판의 균열로 세계 각지의 내로라하는 랭커들이 하나씩 모여드는 현상은 계속되었다.
러시아의 랭커 겐디와 미국의 랭커 아놀드는 시작에 불과했다.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미국 다음으로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거액의 로비로 참석한 중국 등 다양한 선진국들이 이미 참석해 있을뿐더러 추가적인 선정이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내부 상황 때문에 비교적 늦게 참석한 아놀드가 균열로 참석한 건, 그래도 흔히 말하는 선진국의 랭커들이 모두 모인 이후였다.
아놀드가 게이트에 도착하자 게이트를 지키고 있던 최씨 문중의 무인 중 한 명이 다가왔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따라오시죠.”
아놀드의 유명세도 있겠지만 이미 그가 도착할 것이라는 정보를 들은 탓인지 무인은 별다른 절차 없이 아놀드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아놀드가 2~3미터쯤 앞장서서 걷는 최씨 문중 무인의 등을 바라보며 따라 걷고 있자 등 뒤에서 슬쩍 옆으로 자리를 옮긴 동료 랭커 한 명이 속삭였다.
“저자, 제법인데요?”
동료 랭커는 우방국인 한국에서 큰 피해를 입히고 처벌받은 로버트의 후임자 격인 랭커였다. 본래라면 여러모로 한국어에 능통한 제이스와 파트너 레베카가 한국으로 와야 맞았지만 제이스는 얼마 전 사건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뒤 이제 요양을 시작한 참이었고 레베카역시 그를 간호하는 중이었다.
“그렇지. 나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미국은 사실 꽁꽁 감추고 있지만 당시 금전적인 문제보다 다른 문제에 더 큰 고민을 안고 있었다. 바로 인력난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폭발 당시 균열 인근에는 고위 랭커만 아놀드 포함 열 명이 상주하고 있었고 2군 멤버까지 포함한다면 서른 명에 가까운 인원이 대기 중이었다. 그런데 그날 그곳에서 생존한 사람은 아놀드와 제이스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미국이 인력난에 처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눈앞의 남자는 그런 인력난에 허덕이는 미국에게는 너무나도 탐나는 실력의 남자였다.
일단 대충 느껴지는 마나의 양만 감안하고 생각해도 고위 랭커에 준하는 실력은 되어 보였고, 만약 감추어 둔 무언가가 있다면 어쩌면 이번에 한국으로 따라온 두 명의 랭커 데릭과 알리송과도 비벼 볼 만한 실력일 테니 말이다.
아놀드의 옆에서 따라 걷고 있던 동료 데릭이 말했다.
“한번 슬쩍 스카우트해 보는 건 어떨까요?”
아놀드가 인상을 찌푸리며 데릭을 바라보자 데릭이 움찔했다.
“제가 무슨 실수라도?”
동료들 간에 상하 관계는 없다지만 아놀드는 그런 걸 떼고 봐도 압도적인 피지컬을 가진 랭커이다. 때문에 1군 멤버들 사이에서도 아놀드와 플랭크, 이 두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사실상 한 단계 위의 입김을 자랑했다.
“행여라도 저자에게 이상한 바람 넣지 말게.”
“…….”
데릭에게 한마디 하고는 아놀드의 고개가 다시 조금 멀어진 최씨 문중 무인의 뒤로 향했다. 걸음을 내걸으며 아놀드가 말했다.
“이곳은 최강의 나라라는 걸 잊지 마.”
“죄송합니다, 아놀드 선배.”
아놀드가 먼저 따라 걸어가자 알리송이 데릭의 등짝을 탁 쳤다.
“멍청하긴.”
분위기를 싸하게 만든 데릭에게 장난스럽게 한마디를 던진 알리송이 머리를 긁적이는 데릭을 뒤로하고 아놀드 뒤편에 바짝 붙었다.
“근데 아까 게이트를 지키던 다른 녀석들도 제법 하던데, 최강의 효과일까요?”
지금 눈앞의 남자 수준은 아니었지만 단순히 게이트를 지키던 인원들만 해도 100대 고수 수준은 거뜬해 보였다.
“아마도 그렇겠지.”
알리송도 아놀드의 위용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최강은 그런 아놀드보다 개인의 무력은 물론이고 인재를 양성하는 것에도 재주가 남다른 남자였다.
“최강이 새삼스럽게 참 대단하다 싶네요.”
“그래, 대단한 남자지. 그러니까 적으로 삼게 될 만한 짓은 해서는 안 된다.”
“예. 당연하죠.”
뒤늦게 합류한 데릭까지, 세 사람이 안내를 받아 균열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이미 1차 베이스캠프가 존재하고 있었다.
“시선이 꽤 따갑네요.”
아놀드가 시선이 느껴지는 곳곳을 순서대로 쓱 훑었다. 미국에서 사전에 지원한 기술국의 트럭 위에라거나, 열려 있는 빌딩의 창문이라거나, 카페의 창가라거나, 여하튼 예전이었다면 느껴지지 않았을 시선이었다. 그야 그럴 게, 시선의 종류가 적대심이었기 때문이다.
‘골치 아프겠군.’
감히 예전 같았으면 미국의 랭커인 자신에게 적대심을 드러내는 일 따위 할 수 있었을 리 없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는 걸 아놀드가 새삼 깨달았는지 한숨 쉬었다.
그리고 아놀드가 한숨을 뱉었을 때였다. 안내하던 무인의 걸음이 멈추었다. 돌아선 무인이 아놀드 일행에게 말했다.
“숙소는 저쪽에 보이는 호텔입니다. 짐은 미리 옮겨 뒀으니 시간 나실 때 들러서 확인하십시오. 그럼.”
아놀드에게 말한 무인이 안내했던 길을 되돌아 사라지자, 잠시 후 아놀드의 앞으로 한 남자가 다가왔다. 영국의 랭커 스미스였다.
“어제 도착했다고 들었는데, 많이 늦었네?”
아놀드가 스미스를 대충 보고는 말했다.
“사정이 있었지.”
먼저 최강을 만나서 감사의 인사를 하고 협회장 우범하에게 주의 사항을 듣는 등 넉넉하게 하루를 소모한 것이었다.
아놀드가 스미스의 물음에 답한 순간이었다. 아놀드의 시선이 방금 전 따갑던 시선들을 다시 한번 쓱 훑었다.
‘기류가 바뀌었다.’
어째선지 스미스가 자신에게 다가오고 나서 적대심에서 호기심으로 분위기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아놀드의 물음을 들은 스미스가 한쪽 입꼬리를 옅게 올리며 말했다.
“아놀드, 당신의 랭킹이 23위였던가?”
“아마 그랬던 것 같군.”
마치 숫자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듯한 아놀드의 답변에 스미스의 약간 빈정 상한 듯한 말이 이어졌다.
“근데 바깥에서 당신이 23위라고 해서 여기서도 23위는 아니거든?”
“맞는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이 끝났다면 지나가도 되겠나? 이곳 책임자를 만나고 싶은데.”
아놀드가 스미스의 말에 쉽사리 긍정하며 그를 스쳐 지나가자 스미스가 휙 뒤돌았다.
“잠깐!”
스미스의 목소리에 아놀드의 걸음이 멈추자 스미스가 이어 말했다.
“당신 말처럼 바깥의 랭킹이 소용없다면 서열을 정해야지 않겠어?”
“서열?”
아놀드가 주변을 쓱 다시 훑었다. 왜 시선의 분위기가 바뀌었나 했더니 이러한 이유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텃새라고는 보기 힘들겠지만 어느새 이곳은 이곳 나름의 문화가 잡혀 있는 듯했다.
‘그런 거라면 초장에 입지를 다져 둘 필요는 있겠군.’
아놀드가 스미스를 향해 비스듬히 뒤돈 순간이었다.
부우우우우웅.
강력한 바람이 스미스의 얼굴을 강타했다. 스미스의 길게 기른 장발이 바람을 따라 흩날렸다.
꿀꺽.
스미스가 언제 뻗었는지 모를 코앞에서 멈춘 아놀드의 주먹을 보고 침을 꼴깍였다.
기습이었다고는 하나 눈으로 좇지 못할 정도의 주먹에 기세를 압도당한 스미스가 잠시 후 주변의 술렁임을 인식했는지 표정을 구기자 아놀드가 말했다.
“원한다면 누구든 상대해 주지. 안내해.”
***
스미스가 아놀드와 함께 이동한 곳은 균열 너머의 그란디아의 사막 한가운데였다. 2차 베이스캠프가 건설되는 곳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장소였기에 사실상 주변을 신경 쓰며 싸울 필요가 없는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아놀드가 그곳에 도착하고 정확하게 20분쯤 지났을 때였다. 이번 기회에 아놀드를 잡아먹을 생각을 하고 있던 랭커들의 분위기는 참담했다.
“이봐. 지금 다섯 명째지?”
불과 20분 만에 스미스를 비롯한 랭커들이 나가떨어졌기 때문이다. 때마침 한 명 더 날아가는 랭커를 확인한 랭커가 말을 수정했다.
“아니, 여섯 명이야.”
첫 타자로 아놀드를 도발했던 스미스의 랭킹은 28위였다. 사실상 아놀드만큼이나 세계적으로 주목받던 유망주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고작 5분을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랭커들의 분위기를 냉랭하게 만든 것에 스미스의 패배는 겨우 일부분을 차지할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게 아놀드가 조금 지쳤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덤빈 비슷한 순위의 중국의 랭커도, 프랑스의 랭커도 채 5분이 되지 않은 짧은 시간 안에 정리해 버렸기 때문이다.
스미스의 평가가 거품이 껴 있었던 건가 의심하던 주변을 싸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심지어 방금 전에 날아간 사람은 한국의 여론에 몰매를 맞고 이제 막 캠프에 복귀해 아놀드에게 화풀이하려던 21위 겐디였다.
“진짜 괴물이군. 지치지도 않는 건가?”
방해가 되지 않도록 빙 둘러서 구경하고 있는 랭커들이 들을 수 있도록 아놀드가 마나를 사용해 말했다.
“더 덤빌 사람은 없나?”
“…….”
아놀드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섣불리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아마도 아놀드를 이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놀드가 주변의 분위기를 살피며 다음 지원자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았다. 1장로와 안토니였다.
“저 친구 제법이군. 이름이 뭐지?”
1장로가 말했다.
“아놀드라는 자입니다.”
안토니가 아놀드를 분석하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말했다.
“아직 숨기고 있는 게 많은 것 같은데 그쪽이 끌어내 보는 게 좋겠군.”
그날 사실 안토니와 1장로의 대결은 당연하지만 안토니의 승리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생각하는 만큼 1장로가 쉽게 패배한 것은 아니었다. 안토니도 내심 1장로의 저력을 인정할 정도로 1장로는 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유니크 무기로 내공이 급상승한 것도 이유였지만 유형기를 비롯한 의형기의 위력 때문이었다.
1장로가 너털웃음을 작게 흘리며 말했다.
“뭐 원한다면 그리해 보겠습니다.”
1장로가 천천히 아놀드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자 안토니가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아놀드의 수준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 이곳에 서열 같은 문화가 짧은 순간에 자리 잡은 것은 사실상 안토니와 1장로가 바람을 잡은 이유가 컸다.
인원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을 해 둬야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도전자인가?’
아놀드가 저 멀리 흩어져 있던 랭커들 사이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한 명의 노인을 보고 눈을 빛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오늘 상대했던 어느 누구보다 강한 상대라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먼저 들어오시겠습니까? 아니면 이 노인이 먼저 들어갑니까?”
아놀드가 말없이 가지런히 서 있던 두 다리 중 한쪽 다리를 뒤로 뺐다. 자신이 먼저 하겠다는 의미였다.
‘탐색을 해 볼까?’
파앙.
아놀드가 탐색을 할 생각으로 1장로를 향해 뛰쳐나갔다. 일순간에 1장로와의 거리를 지우고 나타나는 모습을 보고 랭커들이 경악했다.
그도 그럴 게 방금 전까지의 아놀드도 굉장했지만 그 실력이 빙산의 일각 수준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이어 랭커들이 더 놀랄 일이 벌어졌다.
그런 엄청난 움직임과 연계된 강력한 아놀드의 주먹을 1장로가 그저 허무하게 손등으로 탁 쳐서 옆으로 흘려보냈기 때문이다.
주르르르륵.
아놀드가 자신의 공격을 피한 뒤 파고들어 날리는 복부의 일격을 반대 손으로 받아 내고 주르륵 밀려나는 모습을 본 랭커들이 속삭였다.
“왜 아놀드가 밀려났지? 방금 전에 공격한 것 아니었나?”
“젠장?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내로라하는 랭커들조차도 두 사람의 일순간의 공방을 제대로 본 사람은 없었다. 아놀드가 주먹을 내지르는 모습 정도나 예측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1장로가 자세를 잡으며 말했다.
“탐색을 하시려거든 있는 걸 다 끌어내셔야 할 것입니다.”
아놀드가 조금 난처한 얼굴을 보였다. 확실히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단한 번의 공방이었지만 1장로가 보통 상대가 아님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었다.
아놀드가 마나를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새하얀 백인의 피부였던 아놀드가 피부가 변하다 못해 이제는 시커먼 검은 오라로 둘러싸이는 모습이 보였다. 전에는 그저 피부가 변하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마치 검은색 불꽃이 전신에서 일렁이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놀드가 말했다.
“그럼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