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182
182화
류세란의 말과 함께 거실의 분위기가 싸해졌다. 얼마나 싸해졌냐 하면, 안방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는 최지숙의 목소리가 거실까지 들려올 정도의 침묵이었다.
“야, 왜 그래. 그만…….”
“아니요. 번거롭게 두 번이나 식 올릴 바에, 기왕 하는 거 1월에 같이 해요.”
류세란이 옆자리의 주소희를 보고 말했다.
“괜찮죠, 소희 씨? 아니면 혹시 두 명에서 세 명으로 변한 게 불만이시면 지금이라도 빠지셔도 상관없는데요?”
평소 조용하던 성격과는 다르게 류세란은 엄청난 추진력을 보이고 있었다.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이러는지 지켜보는 최강이 다 불안할 정도로 말이다.
‘이거…… 연기 맞지?’
분명 최강이 가장 먼저 판을 깔았는데 이제는 연기인지 아닌지 최강조차 헛갈릴 정도였다.
최강이 옆의 주소희의 상태를 살필 겸 슬쩍 시선을 옮겼을 때였다. 때마침 올라가는 주소희의 입꼬리가 보였다.
“웃기지 마시죠, 세란 씨? 누구 마음대로 1월에 셋이서 한다는 거죠? 뭐 저도 딱히 상관없지만 그건 싫거든요?”
“그럼…….”
류세란이 말하려고 할 때였다. 주소희가 말했다.
“아, 그리고 혹시 오해할까 봐 그러는데, 어디까지나 세 명이서 하는 게 싫다는 거예요. 어디 학예회 하는 것도 아니고.”
말하던 주소희가 최강을 바라보며 말했다.
“최강 씨. 왜 그, 소원권 있잖아요?”
최강이 주소희의 말에 답했다.
“어? 그렇지. 그게 왜?”
“두 명이면 그러려니 하려고 했는데 세 명이면 너무 복잡할 거 같아서요. 저 두 분은 2월에 하라고 하고, 1월엔 저랑 먼저 해요. 그 정도는 상관없죠?”
“그러니까…… 소원권을 쓴다는 거지?”
“네, 맞아요. 뭐, 저 두 분이 2월에 할 용기나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그러……든가.”
최강이 주소희의 말에 순순히 동조했다. 본래라면 이런 소원권, 거절했겠지만 누구랑 하겠다 못을 박지 않는 이상 끝나지 않을 만큼 상황이 이상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굳이 한 명을 꼭 고르라면 최말숙도 있겠다, 최강은 주소희 쪽이 더 낫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었다.
주소희가 소원권을 가지고 있는 줄 모르고 있었던 류세란과 나미사가 낭패를 본 듯 물었다.
“소원권이라뇨?”
“소원권이 있었어요?”
주소희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저는 누구 씨처럼 쾌락주의자가 아니라 신중하게 쓰는 편이거든요.”
누가 봐도 나미사를 지목하는 듯한 말투였다. 나미사의 표정이 굳는 게 보였다. 판을 제일 먼저 벌인 것은 자신이었지만 흐름이 완전히 주소희의 것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였다. 주소희의 부친 주진강이 현관문을 열고 류종규와 함께 헐레벌떡 들어왔다. 주소희와 류세란이 몰래 2층으로 올라가 전화로 상황을 알렸기 때문이다.
주소희가 거실의 분위기를 읽는 것이 한창이던 주진강에게 말했다.
“아버님, 1월에 최강 씨랑 하기로 한 결. 혼. 식. 말이에요.”
1월에 결혼식이라니, 난생처음 듣는 이야기였지만 거실의 분위기를 살피던 주진강이 짐짓 알고 있는 이야기라는 듯 눈치껏 답했다.
“그래, 결혼식 말이냐?”
“세란 씨는 2월로 사정이 있어서 미루게 됐고요. 그 덕에 최강 씨랑 저만 하게 됐네요. 알아 두시라고요.”
주진강이 최강의 표정을 살피다가 별다른 반응이 없자 환하게 웃었다. 최강을 류씨세가도 아니고 일본 놈이 사위로 데려가려는 수작을 부린다는 말에 헐레벌떡 뛰어왔는데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경사가 이런 경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주진강이 류종규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아쉽게 됐수다. 껄껄껄.”
류종규가 어깨에 손을 떼며 말했다.
“아쉽기는 뭐가? 1개월 미뤄졌을 뿐이라지 않는가? 그렇지, 세란아?”
표정이 굳어 있던 류세란이 류종규의 말에 답했다.
“네……?”
류종규. 그는 주씨세가에게만큼은 여전히 지기 싫어했다. 모양은 이상하지만 딸아이만 괜찮다면 말리고 싶지 않았다. 무려 상대가 그 주진강이었으니까.
류세란이 아이처럼 웃으며 답했다.
“네!”
갑자기 난입한 두 남자의 모습을 지켜보던 후미토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이대로 빠지면 지금이라도 다른 명문가를 알아봐서 나미사를 시집보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후미토는 결단을 쉽게 내릴 수 없었다. 요즘같이 최강의 입김이 전 세계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강한 마당에 다른 혼처를 따로 구한다고 한들 토와파에 큰 이득이 없음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최강과 불미스러운 일이 있다고 생각해서 토와파를 피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심지어 눈앞에, 자기 딸을 신혼 한 달 차 유부남에게 보낸다는 남자까지 있는데…….’
후미토가 두 눈 꾹 감고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2월로 알고 준비하고 있겠네, 최 서방.”
***
후미토는 물론이고 주진강과 류종규가 돌아간 직후였다.
“어째서 그런 거냐고……. 아무리 자존심이 상해도 그렇지.”
고개를 푹 숙이고 마른세수를 하던 최강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고려 시대 때도 마찬가지였고 현대도 마찬가지였고 일부일처제가, 조선 시대를 모르는 최강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상식적으로 맞는 일이냐?”
최강이 주소희를 바라보자 주소희가 변명하듯 말했다.
“뭐가요? 애초에 도움을 요청한 건 최강 씨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저 두 분에게 자연스럽게 빠질 기회를 드렸어요. 상황을 이상하게 만든 건 저 두 분이잖아요.”
주소희의 말을 듣고 있던 류세란이 말했다.
“물론 무리한 감은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 때문은 아니잖아요! 애초에 무리하게 일을 감행한 건 나미사 씨니까요.”
돌고 돌던 바통을 받은 나미사가 생긋 웃으며 여유롭게 받아쳤다.
“그렇게 해서라도 최강 씨와 함께 있고 싶을 만큼 사랑한 게 죄라면 죄겠네요.”
주소희가 말했다.
“뭐예요? 누구는 싫어서 그런 짓 안 한 줄 아세요?”
류세란이 주소희의 말을 거들었다.
“맞아요. 그런 짓을 하면 최강 씨의 의사는 무시하는 거잖아요! 저희는 그래서…….”
세 사람이 티격태격 싸우는 소리를 듣던 최강이 버럭 소리 질렀다.
“조용히 해!!”
이렇게 진심으로 소리 지르는 최강의 모습을 처음 본 세 사람이 입을 꾹 다물자 최강이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
“싸움은 절대 용납 안 해. 가벼운 말다툼도 마찬가지야.”
최강의 살벌한 표정을 봤는지 세 사람 모두 핼쑥한 표정이 되었다.
“만약에 조금이라도 싸우는 기미가 보인다? 그럼 그 사람은 그대로 집으로 돌아갈 각오 해.”
최강이 세 사람을 쓱 훑으며 말했다.
“불만 있으면 지금 말해. 지금이라도 안 늦었어.”
“아니요. 불만 없어요.”
“저도 없어요.”
“…….”
최강이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주소희를 보고 말했다.
“넌 왜 말이 없냐?”
“할 말이 있어요.”
“할 말? 나한테?”
“아니요. 이쪽.”
“뭔데?”
최강의 물음에 주소희가 말했다.
“말하기 전에 약속 하나만 해요 이거 싸우는 거 아니거든요?”
“알았으니까, 뭔데? 말해 봐.”
주소희가 말했다.
“저는요. 사실 제 위의 두 오라버니랑 배다른 남매예요.”
오랜 라이벌이었던 만큼 주소희만큼이나 그녀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하던 류세란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는지 흥미를 보였다.
“그래서요?”
“제 생모는요, 돌아가시기 전까지 1주일에 한 번 식사할 때 말고는 아버님 얼굴도 못 보고 저랑 매일 별장에서 같이 살았어요.”
주소희가 류세란과 나미사를 보고 말했다.
“저는 내연녀로 사는 어머님을 봤기 때문에 두 분의 선택을 솔직히 이해할 수 없어요.”
가장 먼저 식을 올리는 주소희를 제외하면 두 사람은 법적으로 부부가 될 수 없다. 대한민국은 어찌 됐든 일부일처제였고 고작 최강 한 사람 때문에 이 법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주소희가 말했다.
“그러니까 후회할 짓 하지 마시고 지금이라도 무르세요.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불행할지도 몰라요.”
“풋…….”
나미사가 그녀답지 않게 코웃음 쳤다.
“애초에 전제가 다르잖아요? 아니면 결혼하면 저희도 별장으로 쫓아내기라도 하시게요?”
주소희가 말했다.
“그건 딱히 아니지만…….”
주소희가 말을 삼키자 나미사가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쪽 어머님이 1주일에 한 번 얼굴 보는 삶을 보내는 게 불행했다고 직접 말하던가요?”
“그건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주소희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여전히 자신의 기억 속에서의 생모는 웃는 날이 거의 없었다.
나미사가 말했다.
“거봐요, 그럴 줄 알았어. 그쪽 어머님이 정말로 불행했다면 새 출발 하셨겠죠. 1주일에 얼굴 한 번 보는 것도 서방이라고 기다리고 살았겠어요? 그쪽 어머님을 불행했던 여자로 만들지 말아요.”
“…….”
나미사의 말을 들은 직후였다. 주소희의 머릿속에 스치듯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부엌에서 요리하는 어머니와 그녀를 거드는 어린 시절의 자신.
무엇보다 자신의 어머니는 웃고 있었다. 함께 식사를 할 아버지를 기다리면서…….
주소희의 입가에 갑자기 옅은 미소가 피어났다.
“정말이네요.”
“뭐가요?”
나미사가 묻자 때마침 주소희의 뺨을 타고 눈물 한 방울이 흘렀다.
“불행하지 않으셨군요.”
***
발티온에서 듀랄의 소수 정예가 출정하고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죽음의 땅에 들어서고 나서 몬스터들과의 수많은 전투를 치르며 목적지로 전진하던 듀랄의 정예는 그 수가 어느덧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
“듀랄 경. 발견했습니다.”
막사에서 보고를 기다리던 듀랄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략적인 목적지인 니할 사막으로 도착하고 1주일, 마침내 수색을 보냈던 부대로부터 보고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래, 어딘가?”
“북동쪽으로 이틀 정도 거리입니다.”
제법 먼 거리였지만 듀랄은 곧바로 부하에게 말했다.
“곧바로 이동하겠네. 출정 준비를 부탁하네. 벌써 시간을 많이 소모했어.”
“알겠습니다.”
즉시 잔존 병력을 전부 이끌고 이동한 듀랄이 보고가 들려온 북동쪽으로 2일간 이동했을 때였다.
중간중간 사막의 모래 속에 숨어 있던 샌드 스콜피온과 샌드웜 등 골치 아픈 몬스터들의 공격을 이겨 내며 도착한 듀랄의 눈에 소규모의 캠프가 보였다. 수색대의 것이었다.
자신이 이번 정예를 꾸리면서 부관으로 임명한 남자이자 이번에 수색대를 맡았던 사내가 듀랄을 반겼다.
“오셨습니까?”
“그보다 발견했다는 곳으로 안내해 줄 수 있겠나?”
“알겠습니다. 따라오시죠.”
듀랄이 부관의 안내를 받아 이동한 곳은 캠프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거리였다.
“저곳입니다.”
듀랄이 남자가 가리킨 방향을 뚫어져라 쳐다보자 저 멀리 소규모의 건축물이 보였다.
“처음 보는 건축물들이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마음 같아서는 반나절 정도 부대의 휴식을 감행한 뒤 신기를 회수하고 싶지만…….”
걸리는 것이 있었다.
안토니와 듀크, 그리고 울티노의 생사 여부였다. 만약 그 셋이 살아 있다면 애초에 지금의 전력으로는 회수 자체가 불가능한 일인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듀랄은 여기서 시간을 더 지체하기보다는 확실히 일을 처리하고자 했다.
“서찰을 하나 써 주겠네. 저들에게 우리의 전력을 드러낼 것 없이 대화를 먼저 시도해 보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