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183
183화
어느 때와 같은 주말 오후였다. 점심을 마친 최강이 거실 소파에 앉아 있자 주소희가 조심히 말을 걸어왔다.
“저, 최강 씨.”
책을 읽고 있던 최강이 슬쩍 주소희를 보고는 답했다.
“왜?”
최강의 답을 들은 주소희가 쭈뼛쭈뼛하며 말했다.
“그 왜, 1월까지 얼마 안 남았잖아요?”
1월. 어찌 됐든 주소희가 최강과 식을 올리기로 한 달이었다.
“그렇지. 근데 그게 왜?”
주소희가 최강의 말에 하고자 했던 말을 뱉었다.
“이제 슬슬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해서요.”
지금은 시간이 어느덧 12월 초였다. 아직 구체적인 날짜가 안 잡혔다고 한들 1월 말에 한다고 가정해도 한 달 반밖에 여유가 없는 것이었다.
최강이 주소희를 보던 시선을 다시 책으로 옮기며 말했다.
“나도 알지. 근데…… 준비할 게 있나? 식장 잡는 거 말고는 딱히 없지 않아?”
어차피 지금 살던 집에 계속 살 예정이었으니 혼수를 따로 준비할 필요도 없었고, 그렇다고 신혼집을 보러 다닐 필요도 없다.
그야말로 예식장을 정하는 것뿐인데, 사실상 벌써부터 준비한다고 바쁘게 뛰어다닐 정도일까 싶다. 무엇보다 1월은 식을 올리는 숫자도 적은 계절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최강이 주소희의 반응을 보고는 말했다.
“인생에 한 번뿐인 결혼이니까 제대로 준비해서 하고 싶다는 거냐?”
주소희의 고개가 빠르게 끄덕여졌다.
“근데 한 번뿐이라고 누가 그래? 요즘 두 커플 중 한 커플이 3년 내에 갈라선다며.”
주소희가 한숨 쉬었다.
“그런 말을 꼭 지금 해야겠어요?”
“내 말은 너무 기대하지 말라는 거야. 막말로 진짜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잖아? 특히 우리의 경우엔, 뭐 알아서 각방 쓸 거기도 하고…….”
“자…… 잠깐만요!”
최강이 말하고 있는데 주소희가 불쑥 말을 자르며 물었다.
“각방이라뇨?”
“그럼?”
최강이 책을 읽으며 태연하게 말하자 주소희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듯 말했다.
“아니, 그럼 결혼을 왜 해요!”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잖냐.”
최강이 책을 덮고서 말했다.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우리가 뭐 보통 부부냐? 이 시대에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무려 일부삼처제 부부 아니야? 근데 이 넓은 방에서 굳이 같은 방을 넷이서 쓰자고? 무슨 일이 생기려고?”
“그치만 신혼인데!”
최강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자, 그럼 잘 생각해 보자. 너는 내가 나미사 쟤랑 안방으로 손잡고 들어가서 다음 날 아침에 같이 손잡고 나오면 어떤 기분이 들 거 같냐?”
“…….”
주소희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보였다.
“거봐. 당장에 상상만 해도 그 정돈데. 어? 눈앞에서 펼쳐진다고 생각해 봐. 멀쩡하겠어? 그냥 지금처럼…….”
“안 돼요!”
최강이 주소희가 소리를 지르는 타이밍에 맞춰서 귀를 막았다가 떼면서 말했다.
“아, 또 뭐가?”
“그럼 손도 마음대로 못 잡고 뽀뽀도 마음대로 못 하는 게 무슨 부부예요.”
최강이 어느 유치원생의 희망 사항 같은 거나 늘어놓는 게 귀여웠는지 피식 웃었다.
“아니, 그 정도라고는 안 했는데…….”
최강이 손을 뻗어 주소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자. 됐지? 여하튼 합방은 안 된다는 거지.”
뭔가 복잡 미묘한 얼굴의 주소희가 앓는 소리를 내다가 그래도 안 되겠는지 결국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요.”
“뭐가 이상한데.”
한 손으로 뒤집어 둔 책을 다시 집어 올리며 최강이 말하자 주소희가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별문제도 없는데 각방 쓴다는 건…….”
“말했잖아. 우리가 애초에 보통 부부가 아니라고……. 심지어 내 나이가 보통 나이냐? 합방해도 예전에 옥탑방 살 때랑 다를 거 없을걸.”
소파에 앉아서 귀를 쫑긋 세운 채 듣고 있던 류세란이 말했다.
“최강 씨 나이가 어때서요?”
나미사도 불쑥 다가오더니 말했다.
“불끈불끈하실 나이 아니신가?”
최강이 두 사람을 확인하고는 시선을 책으로 옮기면서 말했다.
“네가 말해 줘라.”
주소희가 별로 내키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 어쩌면 최강의 속알맹이의 실체를 안다면 두 사람이 심경의 변화가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서요? 그럼 지우 씨도 고려 시대 사람이에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두 사람의 반응은 신기해하는 듯한 느낌이었으니까.
최강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뭐 그렇지.”
“그래서 형수님이었구나…….”
류세란이 새하얀 얼굴에 홍조를 그리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그리자 주소희가 말했다.
“왜 그쪽이 좋아해요? 백서화랑 그쪽이랑은 완전 다른 사람인데?”
류세란이 주소희의 말을 무시하고는 최지우의 방으로 뛰어갔다. 아마도 백서화라는 사람이 궁금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미사가 괜히 심술이 났는지 최강의 남은 손을 잡고는 그의 옆자리에 퐁 하고 앉았다.
때마침 휴대폰에 전화가 울리자 두 사람의 손을 동시에 빼낸 최강이 전화를 받았다.
“어. 무슨 일인데?”
주말에도 열심히 균열에서 일하고 있을 안토니의 전화였기 때문이다.
***
안토니는 지금 균열 바깥쪽의 카페에 있었다. 안토니가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이미 한 번 얼굴을 본 적이 있는 남자였다. 듀랄이었으니 말이다.
“지금 곧 온다는군. 조금만 기다려라. 곧 만날 수 있을 테니.”
지금으로부터 한 시간 전쯤 안토니는 자신의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불쑥 2차 베이스캠프에 모습을 드러낸 발티온의 기사와 1장로가 싸우고 있다는 말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안토니가 급히 달려가 확인했을 때는 상황이 정리되어 있었다. 1장로가 자신을 발티온의 사자라며 신분을 밝힌 상대를 제압했기 때문이다.
안토니는 사로잡은 병사에게 뒤늦게 대화를 요청했다. 그리고 그 결과, 지금 듀랄과 마주하고 있었다.
듀랄은 앞서서 1장로와의 전투를 치렀던 병사에게서 들었는지 어째서 1장로가 무형기를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안토니에게 물어 왔다. 안토니가 살아 있는 이상 신기의 회수가 불가능해진 만큼 발티온의 기사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무형기를 사용하는 자의 정체에 대해서 알아 갈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울티노와 듀크를 죽인 자가 이곳에 존재하는 자들에게 무형기를 가르쳐 줬다는 게 진짜입니까?”
듀크라면 몰라도 울티노는 그야말로 그란디아 대륙 내에서도 30위 안에 드는 엄청난 기사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허무하게 죽었다니, 안토니의 말은 여러 가지로 믿기 힘들었다. 현 발티온의 최고의 칼페온인 갈딘이라 할지라도 울티노를 쉽게 처리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귀찮은 티를 팍팍 내며 말하려던 안토니가 때마침 카페의 문이 열리는 것을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강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가 사라졌군.”
최강이 안토니를 보고 다가와 말했다.
“이 녀석이야?”
“직접 대화를 해 보면 될 것이다.”
안토니가 최강을 스쳐 지나가자 최강이 안토니가 앉아 있던 자리에 앉았다. 듀랄의 질문이 이어졌다.
“당신이 무형기를 이곳의 전사들에게 알려 줬다는 게 사실입니까?”
“그래. 내가 알려 줬지.”
듀랄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어떻게 무형기를 알고 있는 겁니까? 무형기는…….”
말을 하던 듀랄이 최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것을 보고는 말을 멈췄다. 듀랄의 말이 정지하자 최강이 말했다.
“질문은 하나씩. 알아 가는 게 있으면 알려 주는 것도 있어야지. 안 그래?”
“좋습니다. 말해 보시죠.”
“이곳에 온 발티온의 병사는?”
“균열 바깥에 최고의 칼페온 열 명과 정예 기사 3천입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아직 상대의 정보가 부족한 마당에 자신과 정예 병력 50기뿐이라고 말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으니 말이다.
“칼페온이 뭔데?”
“질문은 하나씩이라고 안 하셨습니까?”
최강이 듀랄의 말에 픽 웃었다.
“거짓말은 정보가 아니잖아?”
“거짓말이라니, 무슨 근거로…….”
말을 하던 듀랄의 눈이 강한 지진을 일으켰다. 몸을 겨우 움직이는 게 고작일 정도로 강력한 무형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지막 기회야. 한 번만 더 거짓말을 뱉는다면 이 자리에서 목이 떨어질 줄 알아.”
침을 꼴깍인 듀랄이 무형기가 사라지자 말했다.
“칼페온은 쉽게 말하면 왕궁 직속 기사단이라고 보면 됩니다. 각국마다 그 부르는 이름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안토니가 속해 있던 페르간의 경우 솔레스라고 부르고 우리 발티온의 경우 칼페온이라고 부릅니다. 자, 그럼 이제 제 차례…….”
최강이 듀랄의 말을 듣고는 답했다.
“아니지. 이번에도 내가 질문한다. 방금 전에 내가 무형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 줬잖아?”
듀랄이 한숨 쉬었다. 남자의 말은 일방적이긴 해도 그 전에 무형기에 대해서 물었던 것은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발티온에서 가장 강한 수준이 어느 정도지? 예를 들어서 알기 쉽게 답해 봐.”
듀랄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이번 질문은 간단한 듯하지만 아군의 전력을 발설해야만 하는 핵심적인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혹시 거짓말을 알아차릴 수 있는 아티팩트라도 있다면?’
아까 자신의 말이 거짓말인 것을 남자는 정확하게 짚어 냈었다.
냉철한 사고로 신중하게 듀랄이 한숨 쉬었다. 사실대로 발설하기로 판단한 것이었다. 아군의 기밀이 새어 나가는 것은 안타깝지만, 여기서 아무 소득 없이 자신이 죽는 건 지금쯤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르는 발티온에 엄청난 손해였기 때문이다.
“울티노라고 아십니까?”
“울티노?”
“안토니 경의 말대로라면 그쪽이 죽였다고 그랬습니다.”
“내가 죽인 녀석이라면…….”
기억을 회상하던 최강이 말타이스의 신기를 가지고 까불다가 동강 난 울티노를 떠올리고는 답했다.
“그 말타이스의 신기를 가지고 있던 녀석 말이야?”
“맞습니다. 그 울티노보다 한 수 위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듀랄의 말에 진지하게 생각하던 최강이 중얼거렸다.
“제법이네?”
눈을 들어 듀랄을 바라본 최강이 말했다.
“좋아. 이제 그쪽 차례.”
듀랄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무형기는 누구에게 배웠습니까? 발티온의 기사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일 텐데요?”
“가문 대대로 내려오던 비전이라고나 할까?”
정확히는 척씨 가문의 비전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최강의 입장에서 본다면 최씨 문중의 비전 기술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럼 이번엔 내 차례.”
최강이 말했다.
“나도 궁금한데, 어째서 너희들이 무형기를 사용하고 있지? 최초로 부대에 보급된 시기라거나, 그런 게 궁금한데?”
듀랄이 이번에도 별다른 소득이 없는 답변에 한숨 쉬고는 답했다.
“발티온에 무형기가 전수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천 년 전쯤. 마지막 마왕이 돌연 사라지고 난 직후입니다.”
“천 년 전이라…….”
최강이 잠시간 생각하고 있자 듀랄의 질문이 이어졌다.
“당신이 들고 있는 일곱 번째 볼카스의 신기의 정체가 궁금합니다. 도대체 어디서 나신 겁니까?”
최강이 궁금하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볼카스의 신기를 가지고 있는 걸 용케 알고 있네?”
“이곳에 오기 전에 어째서 2개의 불의 향기가 나는지 안토니 경에게 물어봤으니까요. 그래서 답은 뭡니까?”
“이 녀석의 이름은 청화수. 지금으로부터 약 천 년 전쯤부터 이 지방에 대대로 내려져 오는 명검이다. 설명이 됐으려나?”
듀랄의 질문에 답한 최강이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그도 그럴 게 방금 전 듀랄의 질문에 답을 하면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청화수가 돌연 세상에 나타난 시기와 마왕이 돌연 사라졌던 시기 그리고 무형기가 보급된 시기가 우연히 다 겹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미 최강은 청화수의 안에 들어 있던 게 마왕임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다.
최강이 말했다.
“혹시 무형기를 가르쳐 준 게 척씨 성을 가진 사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