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188
188화
최강은 솔직히 처음 발티온행이 결정됐을 때부터 이번 만남이 단순히 아이템을 사고파는 것만이 목적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금액의 결정부터, 물건의 운송 과정이나 대금을 옮겨 오는 작업이 곤란하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것만을 놓고 생각하기에는 조금 미심쩍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럼 물건을 지참하지 않고 가격을 합의한 후에 거래일은 따로 정하겠다는 최강의 의견에 듀랄이 흔쾌히 승낙한 이유였다.
‘그 속셈이 이거였나?’
뭔가 석연찮았던 것들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사실상 듀랄을 발티온으로 홀로 돌려보냈던 것도 혹시나 가는 길에 무슨 짓을 할까 조심했던 것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왕이 제안이랍시고 하는 말은 뭐랄까, 흥미로웠다.
솔직히 다른 시기 다른 사람으로 인해서 보급된 무형기가 서로 어떻게 다를지 최강도 몹시 궁금해하고 있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최강은 처음에 왕의 제안을 듣고 긍정적으로 응할 생각이었다. 돌연 무언가가 떠오르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 잠깐.”
“왜 그러지?”
왕의 물음에 최강이 답했다.
“방금 뭐라 그랬지? 방금 저 녀석이 최고의 기사라고 그랬나?”
갈딘. 분명히 왕은 저자를 갈딘이라고 불렀으며 방금 전에는 최고의 기사라고 말했었다.
“그렇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문제? 그래. 있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적어도 무형기라면 상당히 형편없는 수준이란 걸 최강이 방금 전 한번 겨뤄 봐서 알았기 때문이다.
들끓었던 흥미가 일순간에 곤두박질치자 최강이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하다가 돌아섰다. 그리고 주소희에게 말했다.
“네가 대신 할래?”
최강의 답을 기다리던 왕과 내전의 발티온의 대신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이유야 당연히 최강의 방금 전 행동과 발언 때문이었다.
제3자가 봐도 방금 전 행동은 뒤에 서 있던 여자에게 갈딘과의 대련을 떠넘기는 듯한 의도로 보였기 때문이다.
최고의 기사라며 최강의 상대로 지목된 갈딘은 최강과 자신만 아는 일이었지만 이미 승패를 떠벌리기라도 하는 최강의 태도에 수치심을 느꼈는지 터지기 직전의 화산처럼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내전이 시끄러워지자 대표인 왕이 말했다.
“잠깐! 방금 전 그게 무슨 의미인지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소.”
“의미?”
최강이 내전을 쓱 훑어보고는 말했다.
“의미는 이미 다 알고 있는 거 같은데 말이지.”
최강의 답변에 참지 못한 대신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발티온을 모욕……!”
“조용!”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치는 대신을 더 큰 목소리로 왕이 제지했다. 그리고 최강을 비교적 냉철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최강이 말했다.
“그래도 굳이 설명을 해 주자면, 일단은 대련인데 수준이 안 맞는 사람하고 할 수는 없다고나 할까?”
왕이 말했다.
“그럼 저 여인과 갈딘의 수준이 같다는 말인가?”
“글쎄…… 그렇지 않을까? 내가 볼 때는 비슷할 거 같은데.”
“…….”
왕의 표정이 난처해지는 것이 확연히 드러났다. 최강이 순순히 대련을 받아 주지 않으니 곤란한 이유였다. 무슨 근거로 저렇게 자신감을 부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이건 단순히 무력의 수준을 검증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무형기를 탐색하기 위함이었으니 말이다.
왕의 얼굴을 찬찬히 지켜보던 최강이 말했다.
“혹시 무형기 때문이라면 상관없거든?”
최강이 주소희의 손을 잡아끌어 옆에 세우며 말했다.
“이 녀석도 무형기 나한테 배웠거든. 물론 나보다는 못하지만.”
최강의 말을 들은 왕의 시선이 주소희를 향했다.
‘제자란 말인가……?’
그리고 잠시 후.
조용히 왕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감춘다고 감췄을 텐데 최강이 자신들의 의중을 이미 파악하고 있다는 듯이 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오히려 이편이 더 좋았다. 자신들의 목적을 이미 알면서도 저런 말을 해 온다면 적당히 협의점을 찾으면 될 일이었으니 말이다.
“좋아. 그대의 요청대로 대련은 갈딘과 그대가 아닌 저 여인이 하는 것으로 하지.”
“그래.”
최강이 왕의 말에 바로 답했을 때였다. 왕이 말했다.
“단!”
“단?”
“저 여인의 무형기가 갈딘보다 아래라는 것이 증명되면, 그때는…….”
최강을 향해 옅은 미소를 그린 왕이 말했다.
“그대가 해야겠지?”
***
주소희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두 사람의 대결은 그렇게 성립됐다.
졸지에 대련의 당사자가 되어 버린 주소희가 입을 연 것은 왕과 대신들이 먼저 내전을 빠져나가 외곽의 대련장으로 이동한 뒤였다.
“아니…… 최강 씨.”
“왜?”
최강의 무뚝뚝한 답에 주소희가 말했다.
“저랑 결혼하기가 그렇게 싫어요?”
“여기서 결혼 이야기가 왜 나와?”
“그냥 다 짜고서 저 담그려는 거 아닌가 해서요.”
최강이 혹여나 뒤에 있는 다른 녀석들이 동조할까 봐 주변을 살핀 뒤에 주소희의 얼굴을 보고는 말했다.
“내가 교살할 사람으로 보여?”
“아니요. 그럴 분은 아니죠.”
당황한 최강의 말을 듣고 한결 안심한 듯한 주소희의 얼굴을 보고 그가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주소희가 말했다.
“직접 죽이면 되니까.”
“평소에 나를 뭘로 보는 거냐……?”
“몰라요. 근데 어쨌든 안심이 되네요. 위험하면 도와주실 거죠?”
“뭔가 그런 이유로 안심된다는 게 좀 억울하다만…….”
최강이 말했다.
“근데 애초에 도움이 필요하진 않을걸.”
“무슨 근거로요?”
“그냥 딱 보면 알아.”
주소희의 얼굴이 묘해졌다. 그 이유는 주소희가 마나를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갈딘이란 남자는 안토니와 마찬가지로 주소희가 보기에 거의 생소한 색의 마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회색이었지…….’
딱 봐도 이전에 봤던 것보다 더욱 강한 마나의 색이 분명했다.
그리고 주소희는 아직 이것을 최강에게 말해 주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최강이 저렇게 호언장담하니 신기한 것이었다.
‘뭐…… 최강 씨니까.’
무슨 이유가 있을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주소희는 솔직히 여전히 불안했다. 정확히는 어느 날부터 자신의 마나 색이 사라져 버린 게 문제였다. 마치 최강과 최지우와 같은 현상이었다.
물론 천주갑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쯤 알고 있지만 유니크 무기를 들기 전부터 이미 색이 사라져 있던 상태이니 자신의 실력에 의심이 드는 것이 당연했다.
‘위안이라면…….’
최강에게 그동안 마나를 다루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지도받았다는 점이었다.
최강과 주소희의 대화가 끝나자 쭈뼛쭈뼛 지켜보던 듀랄이 슬쩍 끼어들며 말했다.
“저, 죄송합니다만 슬슬 이동하셔야 하는 게 아닌지…….”
최강이 듀랄의 말에 답했다.
“아, 그래. 가자.”
최강이 주소희의 어깨를 툭 치고는 말했다.
“여튼 너무 걱정 말라고.”
***
주소희가 최강을 따라 걸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아마도 30분쯤 지났을 것이라고 주소희가 생각했을 때였다. 듀랄의 걸음이 멈췄다. 마침내 외곽에 도착한 것이다.
무려 30분을 걸어야 외곽에 도착하는 왕궁이라니. 6개의 세력 중 가장 작은 규모인 발티온이 이 정도인 걸 보면 새삼스럽게 그란디아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지만, 사실 주소희에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대련장에 도착했다는 점이지.
“많이 늦었군.”
“준비 좀 하느라고.”
최강이 왕과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본 주소희가 갈딘이 서 있는 대련장 중앙으로 걸어가며 대련장을 살폈다.
대련장은 뭐랄까, 특이한 형태였다.
일단 크기도 컸지만 콜로세움처럼 많은 관중이 구경할 수 있는 구조로 이루어진 대련장이라는 보기 드문 형태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주소희가 대련장의 중앙에 섰을 때 왕의 신호에 맞춰 돔구장을 연상시키는 듯한 마나로 이루어진 배리어가 경기장을 가득 덮는 모습이 상당히 특이한 점이었다.
‘충격이 외부로 전해지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장치인가? 니시키 도장 생각나네.’
니시키 도장은 저런 장치가 없었는데 그것에 비하면 이곳이 더 좋을지도 몰랐다.
경기장을 구경하는 주소희의 귀에 갈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작해도 되나?”
주소희가 경기장을 둘러보다가 움찔하며 감상에서 깨어났다.
“아…… 잠시만요!”
주소희가 허리춤의 검을 꺼냈다. 니시키 도장 때와 달라진 것 중 하나였다. 그리고…….
달라진 또 하나를 주소희가 검에 주입했다. 바로 마나였다.
주소희가 마나를 주입하자 검이 강렬한 빛을 뿜더니 곧이어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빛이 주소희를 삼키고 잠시 후 폭발하듯 엄청난 소음을 만들며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이 보였다. 다음 순간 오로라를 연상시키는 듯한 빛이 대련장을 비췄다.
주소희가 병기를 전개하며 발생한 소란에 긴장한 얼굴을 해 보이는 갈딘에게 말했다.
“이제 시작해도 돼요.”
***
발티온의 왕의 이름은 루디암.
그는 누구보다 지금의 발티온 최고의 칼페온 갈딘을 믿고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열네 살 때였던가?’
루디암은 지금, 천재 기사 갈딘이 열네 살 때 칼페온이 되고 난 이후 처음으로 그가 지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도 갈딘보다 스무 살 가까이 어려 보이는 여인에게 말이다.
“어찌 이럴 수가…….”
상황의 시작은 대련이 시작됨과 거의 동시였다. 백색의 전신 갑주를 걸친 여인이 화려한 전투준비를 마치고 전투태세에 임하자 갈딘이 달려들어 일격을 날리는 순간에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티잉.
누가 봐도 완벽한 공격이었다. 그런데도 갈딘의 검은 갑옷에 흠집조차 내지 못하고 튕겨져 나온 것이었다.
발티온은 무형기를 숭배하는 만큼 왕도 스스로 무를 연마한다. 때문에 지금 루디암은 어떤 상황인지 잘 알았다. 갈딘의 공격에 실은 마나가 저 여인이 갑옷에 실린 마나보다 적다는 말이었다.
콰득.
왕이 이를 강하게 물었다. 물론 이 싸움이 무형기를 탐색하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었음을 알아도 이건 다른 의미에서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최고 기사가 싸움의 가장 근본이 되는 마나에서 밀린다는 걸 의미했으니.
덕분에 루디암은 물론이고 대신들도 이미 무형기의 탐색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왕의 시선이 반대편에서 비무대를 구경하는 최강을 향했다.
‘차라리 저 남자에게 밀린다면…….’
그래, 이렇게 비참하진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저 남자는 듣기로 일단 울티노와 안토니를 제압했다고 했으니 말이다. 애초에 안토니와 거의 호각을 이루는 갈딘이 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 갈딘의 상대는 저 최강이라는 남자가 아니다. 고작 최강과 함께 방문한 제자였다.
“그런데 어떻게…….”
팅팅팅.
지금도 쉴 새 없이 주소희의 몸을 공격해도 갈딘의 공격은 별다른 타격이 없었다. 압도당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적어도 마나에서는 말이다.
“갈딘!”
루디암이 참담하게 다물고 있던 입을 떼었다.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갈딘의 시선이 루디암을 향하자 루디암이 말했다.
“포킨을 사용해라!”
포킨. 볼카스의 7개의 병기 중 하나였다. 루디암은 상대가 상대인 만큼 무형기 탐색을 위해 갈딘에게 포킨의 사용을 금지했는데 그 위력 때문에 금지시켰던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스릉.
지금 갈딘의 손에 허리춤에서부터 그 포킨이 뽑히는 것이 보였다.
“됐다.”
역시나였다. 포킨을 들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전세가 뒤집히는 모습이 보였다. 여인의 갑옷에 하나둘 흠집이 나기 시작하는 모습이 펼쳐진 것이었다.
확실히 포킨을 든 만큼 갈딘의 공격이 훨씬 더 예리해지고 강해졌음을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병기를 이용해 이긴다는 게 찝찝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디까지나 저 최강이란 남자를 불러내서 무형기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파도의 정령이 봉인된 포킨이지만 그 능력은 사용하지 않고 예기만 사용해도 충분…….’
루디암이 유리해진 전세를 보며 기뻐할 때였다. 우연히 반대편의 최강의 모습을 본 루디암이 굳었다. 불만스러운 얼굴로 지켜보던 최강이 자리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야, 주소희! 똑바로 안 해?!!”
강하게 소리 질렀다. 어찌나 목소리가 크던지 넓은 대련장을 강하게 울렸다.
최강의 주변에 있던 두 여인도 귀를 틀어막은 모습이었다.
“그…… 그치만요.”
“그치만은 무슨. 저쪽도 검 뺐잖아.”
루디암이 때마침 자신에게 최강의 시선이 향하는 것을 목격했다.
“죽여도 뭐라고 안 하겠지.”
움찔.
루디암이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그리고 이어서 머리가 복잡해졌다.
‘죽여? 누굴?’
아니,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볼 때 죽는 것은 확실히 갈딘이 맞았다. 그런데 무슨 수로 도대체 갈딘을, 저 여인이 죽인다는 말인가. 그것도 포킨을 들고 있는…….
생각을 하고 있던 루디암의 눈이 똥그래졌다.
그도 그럴 것이 여인이 들고 있던 창끝에 서리는 마나 때문이었다.
“자…… 잠깐 멈추시오, 최강 공!”
어쩐지 더 이상 끌었다가는 되돌릴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급습했는지 루디암의 목소리가 급해졌다. 하지만.
분위기부터 달라진 여인 주소희는 그런 루디암의 목소리가 들리기 바쁘게 이미 사라진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