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189
189화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서 전투가 시작된 직후 주소희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어라……?’
갈딘의 움직임이 너무 잘 보이는 탓이었다. 백날 훈련이랍시고 최강에게 얻어맞기만 해서 몰랐는데 최강의 속도에 익숙해진 주소희에게 갈딘의 속도는 그저 평범한 수준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왜 말을 안 해 준 거야?’
사실을 말해 주지 않은 최강에게 순간적으로 분해하던 주소희가 상당히 수월함을 느끼고 가볍게 반격하려다가 창대를 잡은 손을 주춤했다.
‘근데…….’
갈딘의 차림새 때문이었다.
‘찔러도 되는 건가?’
갈딘의 차림은 자신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가벼운 경갑과 망토를 걸친 멋들어진 모습이었지만 동시에 겉보기에 방어력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던 이유였다.
꼭 자칫 잘못 찌르면 유혈 사태가 벌어질 것만 같았다.
티잉.
주소희가 멈칫하는 사이에 이번에도 자신의 갑주를 치고 가는 갈딘의 검을 흘겼다. 기분이 묘했다.
‘이거 힘든데……. 전혀 감이 안 잡혀…….’
몇 번을 공격을 지켜보고 반격해 보지만 적절한 힘의 배분은 점점 힘들게만 느껴졌다. 매 공격에 완급을 조절하며 해 오는 갈딘의 공격 때문이었다. 분명했다. 공격이 비교적 묵직했다가 가벼워졌다가 하니 어느 정도의 힘을 실어야 할지 오히려 감을 잡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주소희가 갈딘의 공격을 받으며 난처해할 때였다.
“칫…….”
주소희의 귓가에 혀를 차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코앞에서 맹공을 퍼붓는 갈딘이 낸 소리였다.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느라 몰랐는데, 그러고 보니 갈딘의 입장이 되어 보면 상당히 당연한 반응이었다.
공격하는 족족 갑옷에 막혀 흠집도 못 내니 자괴감이 들 만도…….
“갈딘!”
주소희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멈춰 섰다. 그건 방금 전까지 공격해 오던 갈딘도 마찬가지였다.
‘포킨? 그게 뭐지……?’
주소희의 의문은 루디암과 갈딘의 대화가 이어지고 다음에 바로 풀렸다. 갈딘이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대충 갈무리하고는 뽑아 든 다른 검이 보였기 때문이다.
‘저게 포킨이구나…….’
주소희가 능력을 사용해서 포킨이라는 검을 확인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 청화수랑 비슷한데…….’
검 내부에서부터 분출되는 또 하나의 마나. 2개의 핵으로 이루어진 듯한 병기가 일반적인 병기랑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느껴지는 분위기에서부터 보통 무기가 아님을 직감한 주소희가 잔뜩 긴장한 다음 순간이었다.
스릉.
분명히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허벅지 부분의 갑옷에 흠집이 나는 것이 보였다.
다음 순간도 마찬가지였다. 주소희 스스로는 피한다고 피했는데 또다시 갑옷이 상하는 것이 보였다.
주소희가 갈딘의 이어지는 몇 차례의 공격을 응대하며 뒤로 물러나자 갈딘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피어나는 것이 보였다.
비웃음이 분명했다. 너 정도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간단하다는 듯한 비웃음 말이다.
‘아오, 콱 쑤셔 버릴 수도 없고.’
여전히 갈딘의 공격은 예측하기 어려웠다. 포킨이라는 저 검을 꺼내 들고 나서부터는 움직임도 체감상 훨씬 날렵해진 듯한 느낌이 들었고 공격력은 말할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힘을 감추어 놓은 건 아닌 것 같았다.
‘어쩌지…….’
순전히 ‘무기빨’로 몰아붙이는 주제에 기세등등한 갈딘이라는 자를 꺾어 주고는 싶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 차라리 그냥 질까……?’
이대로 가면 자신의 패배는 분명했다. 이쯤에서 그냥 포기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주소희가 슬쩍 최강을 흘겼을 때였다.
눈이 딱 마주친 최강이 언성을 높였다.
‘아 씨…… 찌르라고? 진짜로?’
최강이 시킨 거니까 사고를 쳐도 최강이 책임질 것이다.
‘누군 지고 싶어서 지나…….’
괜히 갈딘에게 화풀이하려는 듯 도끼눈을 뜬 주소희가 거대한 창을 휭휭 돌려 갈딘을 날려 버리고는 창대를 고쳐 잡았다. 그러고는.
“먼저 돌격하는 데 한 번.”
엄청난 속도로 수백 미터를 밀려난 갈딘을 향해 주소희가 돌진했다. 순간적인 속도만 놓고 본다면 최강의 속도와 비견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주소희가 자신의 공격에 검을 내려치는 갈딘의 공격을 보고 눈을 빛냈다.
“공격을 피하는 데 두 번.”
주소희가 관성을 무시하듯 옆으로 ‘Z’ 자를 그리듯 질주해 갈딘의 후면에서 나타났다.
주소희가 넓은 갈딘의 등짝을 보고는 창을 찔러 넣었다.
“크읏…….”
주소희의 공격에 어깨를 스친 갈딘이 피를 뿌리며 물러나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주소희의 공격은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최강의 특훈. 오로지 그것은 최소한 네 차례의 질주를 할 수 있도록 목적을 둔 훈련이었기 때문이다.
최강은 전투를 할 때 크게 네 가지로 주소희에게 주입시켰다. 먼저 상대에게 접근하는 데 한 번. 그리고 반격을 피하는 데 한 번. 이어서 추격하는 데 한 번. 그리고 혹시라도 공격을 해 올 때 벗어나는 데 한 번까지…….
총 네 번으로 말이다.
때문에 최강의 특훈 합격점은 최소한 모든 마나를 운용한 상태로 감속 없이 네 번의 질주를 할 수 있을 때까지였다.
그리고 주소희는 그 네 번 중에 아직 두 번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세 번째 질주를 사용해 갈딘의 코앞까지 질주하자 놈의 얼굴에 난색이 선명해졌다. 재빨리 검을 치켜올리며 내리치는 갈딘의 모습과 포킨이라는 검에서 강력한 마나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목격했지만 주소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최강이 가르쳐 준 일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발격!”
포킨에서 뿜어진 파도를 일순간에 분쇄해 버리고는 주소희의 창이 갈딘의 심장으로 직진했다.
이미 공격을 거두어들이기 힘든 상황이 되어서야 주소희는 정신이 번뜩 들었다. 이대로면 정말로.
‘죽여 버린…….’
쿠우우우웅.
장내에 엄청난 소음이 울려 퍼졌다.
***
정말이지 주소희가 사라지고 일순간에 비무장 주변이 번쩍번쩍하더니 결국 바닥과 함께 산산조각으로 일그러지며 비무장이 사라지는 폭발이 일어났다. 루디암은 얼빠진 얼굴로 그윽한 흙먼지를 바라볼 뿐이었다.
제법 긴 시간을 수많은 대신들과 함께 흙먼지를 바라보던 루디암이 번뜩 정신 차렸다.
“갈딘!!! 무사한가?”
이상했다. 갈딘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그나마 유일하게 내세울 게 갈딘뿐인 발티온의 입장에서는 정말이지 갈딘이 죽기라도 했으면 엄청난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루디암이 흙먼지로 가려진 비무장의 마나를 탐색했다. 그리고 잠시 후.
루디암의 얼굴에 안도의 표정이 걸렸다.
‘다행이군…….’
비무장 중앙에서 갈딘의 마나가 아주 강하고 정상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갈딘이 무사하다는 생각에 맥이 풀린 루디암이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난 직후였다.
터벅. 터벅. 터벅.
흙먼지 속에서 걸어 나오는 두 사람이 있었다. 최강과 주소희였다.
“아니, 죽이란다고 진짜 죽이려고 그러냐?”
“아니요…… 그러니까 소리 좀 치지 마요. 최강 씨가 소리 지르면 멀쩡하던 머리도 새하얗게 된다니까요?”
“그러니까 너도 실망시키지 좀 마. 잘할 수 있으면서 매번 타박을 안 하면…….”
말을 하던 최강이 루디암을 보고는 주소희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야, 이 녀석이 이겼다?”
“갈딘은…… 갈딘은 어딨는가?”
최강이 뒤편을 향해 돌자 아직 덜 사라진 모래 먼지 사이로 갈딘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너무나도 정상적인 모습이었다. 그런데.
터벅터벅 걷던 갈딘이 최강의 앞에 섰다. 최강이 말했다.
“뭐야. 할 말 있냐?”
최강의 말을 들은 갈딘이 갑자기 털썩 무릎 꿇더니 고개 숙였다.
“발티온의 새로운 왕을 뵙습니다.”
최강이 검지로 볼을 긁적이다가 주소희에게 말했다.
“너, 이 녀석 머리 때렸냐?”
***
최강이 주소희에게 머리 때렸냐고 물은 것은 당연히 머리에 이상이라도 생겼나 싶어서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갈딘은 지금 매우 정상적이었다. 한마디로 갈딘의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그 척준경이라는 사람이랑 약속을 했다고?”
왕궁 내곽에 위치한 어느 접객실에서 루디암과 대화를 나누던 최강이 이렇게 말했다. 듣자 하니 발티온의 왕가는 오래전 이곳에 무형기를 전수한 척준경이라는 자와 약속을 했다는 모양이었다.
척준경이라는 자가 발티온에 처음 도착했을 때 발티온은 정말이지 국운이 다한 망국의 수준이었다고 루디암은 말했다. 그도 그럴 게 천 년 전 마왕이 등장한 당시 가장 죽음의 땅과 근접한 국가인 발티온이 방패막이가 되어 엄청난 국력의 손실을 피할 수 없었다고 한다.
국력의 쇠락은 당연히 멸망. 그렇게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발티온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척준경이라는 자가 돌연 나타나 발티온의 무신이 되어 외부적인 분쟁을 죄다 틀어막아 버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압도적인 무형기를 바탕으로 한 완성형에 가까운 절대적인 의형기는 당시 발티온을 탐하던 공국들로 하여금 눈치 보며 한 발 물러나게 하기에는 충분했고,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나며 발티온은 회복되어 갔다.
“사실상 당시 국왕이시자 당대의 국왕께서는 연세가 상당하셨는데 돌아가시면서 핏줄이 아닌 척준경 공에게 왕위를 물려주시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척준경 공은 애초에 그런 것 따위 바라지도 않는 것처럼 거절하셨습니다. 하지만 당대의 국왕은 그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발티온의 영웅이자 이미 국왕 이상의 입지를 가지고 있던 척준경 공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으면 발티온이 혼란스러워질 것을 예측하신 것이었지요.”
“그래서?”
“당연히 당대 국왕의 제안은 귀찮을 정도로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척준경 공도 지쳤는지 이런 말을 툭 뱉으셨습니다. 그러면 나 말고 혹여나 나처럼 나중에 이곳으로 오는 자신의 후손이 있다면 그 녀석에게나 왕위를 물려주라고요.”
최강이 말했다.
“뭐, 명분을 만들어 준 건가?”
“그렇지요.”
척준경은 당시 발티온의 국가적인 영웅이었다. 그런 구국의 영웅에게 마땅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당연히 무신 척준경과 왕가 사이에 불화가 있을 것이라고 백성들은 생각할 것이다. 척준경은 그런 왕가에 최소한의 명분을 제공한 것이었다. 발티온을 안정시킬 명분을 말이다.
“척준경 공은 후손임을 알아보는 증거가 뭐냐는 물음에 이렇게 대충 말했다고 합니다. ‘무형기. 나보다 무형기 잘 쓰는 놈이 내 후손이다.’라고 말이죠. 그러면서 발티온의 무인들에게 전수해 준 것이.”
“무형기라는 거지?”
“그렇습니다.”
루디암이 말했다.
“최강 공께서는 지금 발티온 최고의 무형기를 보유한 갈딘에게 직접 인정받은 분이십니다. 더 강한 무형기를 가지신 분이 없다면 당연히 발티온의 왕이 되시는 겁니다.”
루디암의 말을 들은 최강이 팔짱을 끼고 곰곰이 생각하자 나미사가 옆에서 귀에 대고 속삭였다.
“어머, 저 졸지에 왕비가 되는 건가요?”
“아직 한다고 안 했거든?”
귓속말 자세의 나미사의 이마에 딱콩을 먹여 물리친 최강이 루디암을 향해 말했다.
“근데 나 궁금한 게 하나 있다.”
“말씀하십시오.”
최강이 주소희를 검지로 가리키며 말했다.
“근데 사실, 저 갈딘이란 녀석을 제압한 건 이 녀석이잖아. 그럼 왕은 이 녀석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