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195
195화
폴탄 제국의 황궁 뒤편에는 엄청난 넓이의 정원이 있다. 물론 이 정원은 오로지 한 사람, 황제 로이를 위한 것이다.
“알베르토.”
황궁의 뒤편 정원을 거닐던 로이가 말하자 잠시 후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공간을 가르며 사람 하나가 걸어 나왔다. 단정한 금발을 하고 있는 이 남자가 아마도 알베르토 같다.
황제 로이가 슬쩍 알베르토를 흘기고는 말했다.
“그대도 가고 싶나?”
로이의 말에 알베르토의 주먹이 꽈득 소리가 나도록 쥐어졌다. 그도 가고 싶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로이도 들었을 그 소리를 만든 장본인인 알베르토는 말했다.
“아닙니다. 그 혼자서도 잘 해낼 테지요.”
아니라고.
알베르토의 답을 들은 로이가 쓰게 웃었다. 그는 자신의 그림자.
그렇다. 황제의 그림자가 황제의 곁을 떠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신경 쓰이는 일이 있더라도 말이다.
“저는 폐하의 그림자. 그림자가 주인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들려오는 답에 로이가 말했다.
“베리어스 번스타인. 그대의 동생이지 않은가. 그래도 가고 싶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한번 결정을 내렸기 때문인지 두 번째 대답은 쉽게 들려왔다.
“걱정되는가?”
“걱정되지 않습니다. 그는 강하니까요.”
로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래, 강할 테지.”
공식적인 대륙 최강, 베리어스 번스타인.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경우이다. 오래전 죽은 것으로 알려진 알베르토 번스타인이 이렇게 살아 있는 한은 말이다.
로이가 걷던 걸음을 멈추고는 뒤돌아 말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강해도 자네만큼은 아닐 테지.”
“…….”
부정도, 그렇다고 긍정도 딱히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로이는 알고 있었다. 남은 8개의 구터의 장비 중 6개를 독식하고 있는 이자야말로 진정한 대륙 최강.
그렇기에 로이는 그를 그림자로 삼았다. 어린 나이 황제가 된 그에게는 강력한 무력이 필요했으니까.
“마지막으로 묻겠네.”
“…….”
“가고 싶나?”
“…….”
얼마나 지났을까? 꾹 닫혔던 알베르토의 입이 열리지 않으니 로이가 말했다.
“나는 말이네. 자네의 원망을 사고 싶지는 않네. 그대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탓하지 않을 테니.”
“가고…… 싶습니다.”
로이가 픽 웃었다. 아까 지었던 쓰디쓴 웃음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웃음이었다.
“그래, 그럴 테지. 그럼 다녀오게. 그대는 나 폴탄 제국의 유일무이한 황제의 그림자이니, 이 대륙의 진정한 주인인 내 그림자가 닿지 못할 곳은 없을 테지.”
“감사합니다.”
알베르토가 11년 만에 자신의 곁을 떠났는데 로이는 어느 때보다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11년간 한 존재의 인생을 갉아먹고 있다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혼자가 되었군.”
***
제국에서 또다시 대군이 움직였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500만이라는 거대한 군대가 아닌 10만이라는 소규모였지만 그들이 이동하는 발걸음 소리는 대륙 전체를 진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제국에서 베리어스 번스타인이 이끄는 대군이 움직였다.’라는 소문이 패닉에 빠진 대륙에 희망을 가져다주기 시작한 것이었다.
모두가 현 대륙 최강 베리어스의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공국들은 혼란스러웠다. 설마하니 가장 영향권 밖인 제국이 가장 먼저 움직임을 보일 줄은 몰랐던 이유였다.
발티온의 국왕 대리 루디암이 얼마 전 바리스 공국이 멸망하면서 발티온으로 망명한 한 남자를 보며 말했다.
“파비가스 경.”
파비가스라 불린 사내는 백발이 그윽한 노인이었다. 하지만 역시 겉보기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었으니, 그는 베리어스와 마찬가지로 대륙 최강의 3인 중 한 명이었다. 파비가스의 시선을 얻은 루디암이 말했다.
“저희도 슬슬 움직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흐음…….”
졸지에 망국의 기사가 되어 버렸지만 파비가스는 바리스 공국에 충성을 맹세했던 만큼 바리스 공국의 복수를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적절한 시기를 엿보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고 말이다.
“움직이긴 할 생각이네. 그런데…….”
파비가스가 자리에 앉아 있는 다른 이들을 보며 말했다.
“저자들도 함께 말인가?”
방에는 파비가스 말고도 마왕의 처리를 위해 공국에서 한가락씩 하는 기사들이 많이 모인 상태였지만 파비가스의 눈은 유독 한 일행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최말숙을 비롯한 최지우 일행이었다.
루디암이 쩔쩔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그 역시도, 공국 내 최강의 기사를 대함에 있어서는 조심스러운 것이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실력이 상당한 자들입니다.”
“도저히 그렇게는 보이지 않네만. 심지어 저 여인은 마족이 아닌가?”
파비가스의 말에 최말숙을 향하던 방 안의 시선이 따갑게 변했다.
“마…… 마족이라뇨? 저분은…….”
“들어서 알고 있네. 이번에 새로 왕으로 취임한 자의 딸이라지?”
파비가스가 의심 섞인 눈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 겉모습을 따라 하는 것쯤은 얼마든지 흔한 방법이지. 안 그런가, 마족 아가씨?”
“…….”
최말숙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방 안의 분위기는 더욱 심각해졌다.
이곳에 있는 자들은 지금 마족의 왕 마왕과 싸우려는 자들이다. 그런데 마족이라니, 용납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개중에는 흉흉한 기세로 병기에 손을 올리고 위협하는 자들까지도 보였다.
눈치를 보던 루디암이 말했다.
“공주님, 무슨 말씀 좀 해 보십시오.”
“…….”
최말숙이 아무런 말도 없자 루디암이 대신 황급히 말했다.
“지금 당황하셔서 말을 못 하시는 걸 겁니다. 마족이라뇨. 당치도…….”
루디암이 최말숙을 변호할 때였다. 최말숙이 그의 말을 끊고 들어왔다.
“맞아요. 마족이죠. 그런데 마족은 마왕을 토벌하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나요?”
최말숙의 말은 오히려 방 안의 분위기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어지간히도 급했나 보군. 한다는 거짓말이 고작 그건가?”
“빌어먹을 마족 새끼가 뻔뻔하게 거짓말을!”
참다못한 한 사내가 검을 뽑았을 때였다. 조용히 눈을 감고 듣고만 있던 최지우가 말했다.
“야, 너! 지금 검 뽑았냐?”
최말숙도 최지우가 나서는 것은 의외였는지 그를 바라봤다.
검을 뽑은 사내가 말했다.
“그렇다면 어쩔 거지? 왜, 네놈도 똑같은 마족 새끼인가 보지?”
쾅.
말을 뱉은 남자가 최지우의 한 손에 멱살이 들려 벽에 들이박혔다.
켁켁…….
벽이 무너져 내렸고 과연 한가락 하는 사내인 만큼 외상은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켁켁거릴 뿐 최지우의 손에 들려 꼼짝도 못 하는 모습이었다.
“왜, 더 말해 보지. 똥개 새끼처럼 깽깽거리지만 말고.”
“그만.”
멱살을 쥐고 있던 최지우가 최말숙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의 주인이 최말숙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하세요, 삼촌.”
“뭐, 조카가 그러라면 그래야지.”
최지우가 멱살을 놓아주자 바닥에 무릎 꿇고 충혈된 눈으로 가쁜 숨을 내뱉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최말숙이 말했다.
“죄송하지만 분위기를 보아하니 저희는 역시 따로 움직여야겠네요.”
최말숙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얌전히 상황을 지켜보던 크리스와 프락시온 일행도 일어났다.
최말숙을 따라 일행이 방 바깥으로 나가자 루디암이 눈치를 보다가 잽싸게 최말숙을 따라나섰다.
“공주님!!”
급히 따라오던 루디암이 뱉은 말에 최말숙 일행의 걸음이 멈췄다.
“무슨 일이시죠?”
“혼자 가셔선 안 됩니다.”
최말숙이 말했다.
“저들의 모습을 보셨잖아요. 애초에 섞이기 힘든 자들이에요.”
“정 그렇다면 다른 이들을 구해 보겠습니다. 망명한 자들이라면…….”
“아니요.”
루디암이 입을 닫고 자신을 바라보자 최말숙이 말을 이었다.
“뭔가 착각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 제가 저들과 만남이라도 가졌던 건 어디까지나 대리님의 부탁이 있어서였어요. 더 이상은 하고 싶지 않네요.”
“그치만…….”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일행들이 먼저 걷기 시작하자 최말숙이 비스듬히 뒤돌며 말했다.
“처음부터 저희끼리 해결할 생각이었으니까요.”
***
3일 후였다.
나름 최정예로 꾸린 군대인 만큼 엄청난 속도로 이동한 제국의 군대는 마왕이 머물고 있는 튤란 평야를 코앞에 두고 있는 상태였다.
급히 오느라 피로가 쌓였을 부대를 베리어스가 살펴볼 때였다.
멀리서부터 느껴지던 강력한 마나 하나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베리어스가 전군을 향해 지시했다.
“전군 전투준비.”
마왕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보병 부대는 쓸모가 없기에 10만 명의 군대는 오로지 마법사들로 이루어진 마병대였다.
베리어스의 말에 마병대가 산개해서 정해진 대형을 막 갖췄을 때였다.
마셀로 후작의 모습을 한 톨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누구십니까? 대륙 최강의 기사, 베리어스 경 아니십니까?”
“마셀로 후작……이라고는 부르지 않겠습니다.”
“네, 그러셔야지요. 마왕님의 심복을 그렇게 부르면 안 되지요.”
마셀로 후작의 살가죽을 찢고 거대한 데몬의 모습이 나타났다.
“전군 발포!”
수천여 명의 마법사들이 모여서 준비한 마법 대포가 데몬을 향해 쏘아졌다.
대기를 찢어 버리듯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쏘아진 마법 포탄을 본 데몬이 포탄이 날아오는 곳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데몬의 앞에 거대한 배리어가 나타났다.
수십 방, 수백 방. 산과 들을 통째로 녹여 버릴 만큼의 위력적인 포격이 계속되었지만 조금의 물러섬도 보이지 않는 데몬을 보며 베리어스가 허리춤의 칼집에 손을 올렸을 때였다.
“안 됩니다. 조금이라도 마나를 비축해 두셔야 합니다.”
베리어스가 자신을 만류하는 부관의 말에 인상을 구기며 칼집에서 손을 뗐다. 아직 마왕과 만나지도 않았는데 사실상 잔챙이인 데몬에게 마나를 소모해서는 이후의 전투에 영향을 미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는지 데몬 톨이 말했다.
“상당히 얕잡아 보인 듯하군요. 마나를 아끼시겠다니…….”
톨이 두 손을 하늘 높이 들었다. 그러자 톨의 몸이 하늘로 붕 떠올랐고 곧이어 하늘에 검은 먹구름이 끼는 것이 보였다.
톨이 손을 들면서 공격에 집중한 탓인지 배리어는 곧이어 마나를 공급받지 못하고 깨지는 모습이었다. 당연히 배리어가 사라진 톨이 이어서 마법 포탄에 직격당하는 모습이 보였다.
펑. 펑. 퍼엉.
그칠 줄 모르는 포화 속으로 톨의 모습이 사라졌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지금도 계속해서 쏘아지는 마법 포탄의 모습을 보면서도 베리어스에게 묘한 불안감이 엄습한 순간이었다.
하늘 높이 끼었던 먹구름이 갈라지면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 모두 사격 중지! 배리어를 전개하라!”
군대를 모조리 삼켜 버리고도 남을 만큼 거대한 운석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데몬이 어떤 존재인지 그 몸에 새겨 드리겠습니다!”
쿠구구구궁.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소음이 튤란 평야의 인근을 집어삼키는 모습을 내려다보던 톨이 씩 웃었다.
“마나를 비축하시겠다던 생각은 접으셨나 보군요.”
불길을 헤치고 모습을 드러낸 베리어스의 손에 들려 있는 검을 보았기 때문이다.
운석이 충돌하기 전에 베리어스가 베어 버려서 다행히 군대는 큰 피해를 입지 않은 모습이었다.
베리어스의 위용을 지켜본 군대의 사기가 탱천하는 것이 느껴졌다. 제국의 최강이 함께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은 이유였다. 하지만.
“그럼 이제 준비운동은 끝난 것 같고.”
그 들떴던 분위기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톨이 이렇게 말한 순간이었다. 먹구름에 구멍이 생겨나며 그 틈에서 수십 개의 운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톨이 말했다.
“그럼 얼마나 버티시는지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이제 시작이라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