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197
197화
발티온을 벗어난 최말숙 일행이 튤란 평야에 도착했을 때였다.
최말숙의 일행 앞에도 두 마리의 데몬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섯 마리의 데몬 중 텔라스와 멜폰이라 불리던 두 데몬이었다.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두 녀석을 보고는 최지우가 말했다.
“뭐야? 뭔가 나타났는데?”
“데몬……이라는 녀석들일 거예요, 아마.”
최말숙도 알고 있다. 마왕의 탄생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데몬이라는 종족을 말이다. 그때 미국에서는 너무 난데없는 등장이라 채 알아보지 못했지만 지금이라면 돌아가는 상황상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데몬이라…….”
최지우가 두 녀석을 가늠하고는 최말숙에게 속삭였다.
“꽤 귀찮게 생겼는데?”
당연했다. 최지우가 보기에도 정면에서 붙는다면 그저 한두 번의 공격으로 제압할 만큼 데몬은 하급 몬스터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최말숙이 최지우의 말에 긍정했다.
“맞아요. 상당히 귀찮은 것이에요.”
그도 그럴 게, 물론 지금의 최말숙이라면 데몬 하나 정리하는 것쯤 자신이 있었지만 체력적인 부분이 문제였다. 아무리 쉽게 해결할 수 있대도 상대하는 데 많은 마나를 필요로 할 것은 당연했기 때문이다. 이제 저 녀석들보다 더한 녀석을 만나러 가야 하는데 여기서 마나를 소비하기는 상당히 껄끄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한참을 생각하던 최말숙이 내린 결론은 결국 혼자서 두 체의 데몬을 해치우는 것이었다. 최지우의 도움을 빌리고는 싶지만 최지우는 어디까지나 마왕을 상대할 때 전방을 맡아 줘야 할 사람.
여기서는 차라리 자신의 마나를 소비하는 게 맞았기 때문이다.
결정을 내린 최말숙이 한 걸음 데몬을 향해 걸었을 때였다. 최말숙을 불러 세우는 목소리가 있었다.
“기다려라.”
최말숙이 확인해 보자니 크리스였다.
크리스가 알베르토와 마왕의 전투의 여파를 느끼듯 멀찍이 바라보다가 최말숙을 향해 말했다.
“너희는 먼저 가라. 여기는 우리가 맡겠다.”
최말숙이 크리스를 비롯한 파르키오와 쇼튼, 엘리자를 순서대로 바라보고는 말했다.
“자신…… 있으신가요?”
최말숙이 보기에 데몬은 상당히 강했다. 반면에 프락시온의 멤버들은 드러나는 마나만 놓고 볼 때에 데몬보다는 한층 아래였다.
“솔직히 자신이 있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아무렴 저쪽으로 가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있는 것보단 낫겠지.”
당장에 데몬의 마나만 해도 소름이 다 끼칠 정도인데 저 말도 안 되는 마나의 격돌 사이로 들어가는 것은 아무리 봐도 무리가 있었다.
‘이마저도 근래에 강해졌다고 생각한 수준인데…….’
말타이스의 병기를 재료로 해서 한층 성장한 자신을 시험할 겸 자신 있게 따라나선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질 수준이었다.
“후…….”
깊게 심호흡을 한 번 한 크리스가 말했다.
“여하튼 가라. 가능하면 빨리 돌아와 주면 더 좋고.”
“노력해 볼게요.”
최말숙과 최지우가 크리스의 말에 곧이어 사라졌다.
쭉 지켜보던 두 마리의 데몬은 어째선지 최지우와 최말숙을 쫓아가지 않았다.
아마도 최말숙과 최지우가 자신들이 가로막을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탐색하는 동안에 자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혹, 그게 아니면…….
‘자신들을 충분히 위협할 존재들로 판단한 이유겠지.’
크리스가 말했다.
“우리들로 만족해 주는 건가?”
“…….”
데몬이 크리스 일행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충분하다. 그럼 시작해 볼까, 인간?”
텔라스가 지팡이를 하늘로 치며 들어 보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맑았던 하늘엔 어느새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
크리스가 하늘의 먹구름이 갈라지는 것을 보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미 그 전부터 시작해 있었다.”
쿠구구궁…….
하늘에 깔린 먹구름을 뚫고 두 마리의 데몬을 향해 강력한 냉기 기둥이 덮쳤다.
완벽하게 허를 찌르는 기습이었다.
***
톨의 돌발 행위로, 시끄럽던 전장에 침묵이 흘렀다.
마왕의 시선을 받은 톨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마왕님. 하지만 저는…….”
조용히 톨을 바라보던 마왕이 돌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자신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알베르토의 공격이 멈췄기 때문이다.
“재밌군.”
마왕이 별다른 말 없이 알베르토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톨의 경고 때문인지 알베르토는 별다른 저항 없이 공격을 얻어맞고 바닥으로 내리찍히는 모습이었다.
알베르토가 내려찍히면서 일어난 거대한 화염을 일으키는 폭발 속으로 마왕이 뛰어들었다. 알베르토의 위에 올라타기 위함이었다. 연신 무자비한 주먹을 날리며 마왕이 말했다.
“재밌다. 재밌어!!”
자칫 불경하다며 화를 낼 법도 했지만 마왕은 지금 다른 의미로 재미있었다.
뭐랄까……?
자신과 비등비등하던 존재가 고작 패배자 하나 때문에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모습이란…….
구역질 날 정도로 역겨웠기 때문이다.
그런 정의의 사도 놀음이나 하려는 알베르토를 묵사발 내며 희열을 느끼던 마왕이 더 이상 알베르토가 미동도 하지 않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알베르토가 떨어트린 단검을 주워 들었다.
“넓은 아량으로 살려 주고 싶지만 네놈은 예외다. 솔직히 역겨웠으니까.”
마왕이 들고 있던 단검을 알베르토의 목을 향해 무심하게 휙 던졌을 때였다.
번쩍.
‘방패?’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자신이 던진 단검을 막아 내는 방패가 허공에 갑자기 나타났기 때문이다.
마왕이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잠시간 멍하니 있자니 최말숙이 모습을 드러냈다.
알베르토를 부축하는 최말숙과 마왕의 눈이 마침 딱 허공에서 마주쳤다.
잠시간 눈빛을 주고받던 최말숙이 훌쩍 물러났다. 그런 최말숙의 옆에 베리어스를 들쳐 멘 최지우의 모습도 나타났다.
“톨은…….”
마왕의 고개가 뒤편으로 향했다. 최지우에게 들려 있는 녀석.
그 녀석은 분명히 톨이 목을 겨누고 있었던 녀석이기 때문이다.
마왕의 눈에 목이 떨어진 채 죽어 있는 톨의 모습이 보였다. 베리어스에게 팔을 절단당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보라색 혈흔으로 바닥을 물들이며 말이다.
“그렇군…… 죽은 건가?”
마왕이 허탈한 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마왕의 두뇌가 냉철하게 돌아갔다. 자신보다 약한 존재 한둘쯤 죽은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약 소란이 일어났다면 내가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다. 아마도 단 한순간에 톨을 해치웠다는 것이겠지.’
생각을 마친 마왕이 최지우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저자도 꽤 강하다는 건가?”
한편 마왕이 멀뚱멀뚱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최말숙이 최지우에게 말했다.
“용케 해내셨네요. 좀 전의 녀석들보다 강해 보이던데.”
당연하지만 최지우가 베리어스를 구해 내고 최말숙이 기회를 봐서 알베르토를 구해 낸다는 것은 사전에 합의된 내용이었다. 기동성은 여전히 최지우가 최말숙을 훨씬 웃돌았기 때문이다.
최지우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뭐 기습하는 것쯤이야.”
말은 저렇게 하지만 최말숙은 알고 있었다. 말이 쉽지 최지우 정도 되기에 기습도 가능한 일이었음을 말이다.
최지우가 최말숙의 말에 답하면서 동시에 마왕이 입맛을 다시는 것에 대한 감상을 토했다.
“근데 그보다, 저 녀석 뭔데 날보고 입맛을 다시냐?”
최말숙이 최지우를 놀리듯 말했다.
“왜요. 마왕이 좀 독특한 취향인가 보죠.”
“이 와중에 장난하고 싶냐?”
“평소에 당한 게 좀 많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에요.”
최말숙이 마왕을 응시하며 최지우의 말에 답했을 때였다. 알베르토가 정신을 차렸는지 기운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베르토는 잘생긴 얼굴이 묵사발이 나 있었고 이빨도 절반 이상이 나가 있었기 때문인지 바람 새는 소리가 상당히 심했다. 하기야 다른 녀석도 아니고 저 마왕의 공격을 쉴 새 없이 처맞고도 얼굴만 박살 난 정도면 충분히 선방했다고 볼 수도 있었다.
“베리……어스는?”
“이 녀석이 베리어스면 무사하긴 한데……. 귀찮아서 기절시켰는데 상관없지?”
최말숙이 왜 그랬냐는 듯 말했다.
“기절시켰다고요?”
“쫑알쫑알 시끄럽게 구는데 어쩌냐? 정당방위잖아, 그 정도면.”
쫑알대던 베리어스의 목소리에 답하기 귀찮아 기절시켰던 상황을 연상하듯 최지우가 말하자 당사자인 알베르토가 슬쩍 마왕을 흘기며 말했다.
“그럼 이제 도망쳐라. 내가 조금이라도 버텨 볼 테니.”
“버텨? 그 몸으로?”
최지우의 말에 걱정 말라는 듯 최말숙을 뿌리친 알베르토가 비틀거리면서 겨우 중심을 잡는 모습이 보였다. 솔직히 방금 전 모습만 봐도 알베르토는 누가 봐도 이제 싸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니었는데…….
알베르토가 품에서 손바닥만 한 크기의 모래시계 하나를 꺼내서 박살 내자 상황이 달라졌다.
빛에 휩싸인 알베르토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잠시 후 멀쩡해진 것이었다. 몸 상태를 점검하던 알베르토가 다시금 원상태로 돌아온 모래시계를 품에 넣으며 혀를 찼다.
“츳…… 70% 정도인가.”
방금 전 알베르토가 사용한 아이템은 ‘역행의 모래시계’라는 아이템이었다. 단검과 마찬가지로 구터가 만든 아이템이었는데 사용 횟수에 제한은 없지만 사용할수록 그 효과가 줄어드는 아이템이기도 했다.
유감스럽지만 방금 전 모래시계를 한차례 부숨으로써 알베르토가 돌려받은 마나는 3분의 2가량.
즉, 정상 상태라고 보기에는 확실히 무리가 있는 양이었다. 무엇보다 방금 전과 싸움의 전제 자체도 달랐다. 마왕 퇴치에 핵심인 단검을 빼앗긴 게 무척이나 컸으니 말이다.
최지우가 최말숙에게 말했다.
“도망치라는데?”
“지금 장난하시는 건 아니시죠?”
“장난 아닌데?”
최지우의 말에 최말숙이 말했다.
“뭐, 다 좋아요. 그럼 도대체 어디로 도망치실 건데요?”
“어? 그러네?”
최지우가 그제야 알아차린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최말숙 일행이 온 곳은 서쪽이었다. 서쪽은 지금 마왕이 서 있었고 동쪽으로 도망가면 발티온이 아닌 제국이 있는 곳이었다. 아무렴 마왕이 있는 곳을 지나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었다. 무엇보다.
“그러지 말고 같이 싸우죠?”
최말숙이 보기에 눈앞의 남자는 지금 퇴로 확보를 위해 죽기엔 너무 아까운 사람이라는 이유였다.
마왕 퇴치에 상당히 도움이 될 만한 존재였던 것이다. 아무리 봐도 말이다. 하지만 이대로 버리고 가면 필패.
더 말할 것도 없는 것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최강에게 떠넘기지 말고 셋이서 정리하는 편이 확실한 것이었다.
최지우가 말했다.
“아니, 조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도망가라는데 도망가 주는 게…….”
최지우의 의견도 분명히 일리는 있었다. 마왕은 직접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실력을 웃도는 존재였고, 이거 잘못하면 되레 역으로 당할지도 모른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말숙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잔말 말고 그분이나 주세요.”
최지우가 결국 졌다는 듯이 최말숙에게 베리어스를 넘기자 최말숙이 말했다.
“싸우세요. 제가 보조할게요.”
“후…… 그래그래. 알았다.”
한숨 쉰 최지우가 한 발 앞으로 걸으면서 말했다.
“뭐…… 따라올 수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말숙을 비웃듯 씩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최지우가 사라지자 알베르토가 깜짝 놀란 얼굴을 지어 보였다.
“자…… 잠깐!”
멋대로 대화를 나누더니 뛰쳐나가 버린 최지우 때문이었다. 최지우를 쫓아가려던 알베르토가 마왕과 최지우의 일격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는 말하려던 입을 다물었다.
‘이거 의외로…….’
예상외로 마왕의 공격에 최지우가 잘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톨을 베어 내고 자신과 베리어스를 구출해 낸 게 실력도 물론 작용했겠지만, 사실 마왕의 방심 덕분이라고 생각하던 알베르토로서는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이거 어쩌면, 정말로 협공하면 마왕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번쩍 든 것이었다.
‘이럴 게 아니지…….’
알베르토가 황급히 몸을 옮겼다. 바닥에 떨어진 단검을 회수하는 것도 잊지 않고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