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2
2화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와 어울리지 않는 더벅머리. 그리고 거기에 후줄근한 추리닝 차림의 최강의 모습이 보였다.
보도를 터덜터덜 걷던 최강이 자신의 호주머니를 뒤집어 까 내용물을 손바닥 위에 올렸다.
“8,720원이라…….”
최강이 막막하다는 듯이 고개를 쳐들었다.
이번 달도 일거리라면 가리지 않고 되는대로 했음에도 살림살이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기 때문이다.
거뭇거뭇 옅게 물든 잿빛 하늘에서 내리던 눈이 얼굴에 닿아 녹자, 최강이 다시 걸음을 옮기며 투덜댔다.
“내 신세가 어쩌다 이렇게 됐냐…….”
3개월…….
최강이 현대로 넘어오고 벌써 3개월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최강의 형편은 보다시피 그렇게 좋지 못했다.
많이 바뀌어 버린 현대의 언어를 배우고, 또 변해 버린 의식주를 체감하고, 사회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에도 3개월이라는 시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닌데, 심지어 거기에다가 경제활동까지 해야 하니 지난 3개월이 순탄하다면 오히려 이상한 것이었다.
“어이, 최강. 홰 이제 화?”
최강이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자,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는 얼굴이 보였다.
까무잡잡한 피부의 동남아 계열의 외국인, 띠움이었다.
최강이 띠움의 뒤통수를 치며 말했다.
“이제 와는 반말이고, 새끼야.”
“자꾸 반말한다코 때리는데 최강 몇 뇬생?”
최강의 뒤통수 찜질이 아픈지 뒤통수를 문지르며 최강을 노려봤다.
띠움의 말에 최강이 즉답했다.
“응, 52년생.”
확실히 알아본바, 1352년생이었으니까 거짓말은 아니었다.
띠움이 말했다.
“아니, 커짓말 치지 말롸니카? 띠움 90년생, 최강 딱 봐도 나보다 어리다. 한 95년생츰?”
20대 초중반 정도로나 자신을 봐 주는 띠움의 말에 최강은 고마웠지만 이러한 실랑이가 한두 번 있는 것이 아니었나 보다.
최강이 말했다.
“개똥 같은 소리 하지 말고…… 52년생 맞으니까 그런 줄 알아. 일거리는 찾았냐?”
“아뉘, 이차매 학실하게 홰야 해. 민증 까 봐, 최강.”
띠움의 말에 최강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런 게 있으면 내가 이 고생 하겠냐?’
그렇다. 졸지에 유령 국민 신세가 되어 버린 최강에게 주민등록증이 있을 리 만무했다.
최강이 한숨 쉬고 있자 띠움이 말했다.
“이고바, 못 까는 거 보니까 최강, 띠움보다 어리다.”
속을 긁는 듯한 띠움의 말에 최강이 다시 한번 띠움의 뒤통수를 치려는 양 손을 들어 올렸다.
최강의 행동에 띠움이 양손으로 가드를 올리고 기다렸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자, 띠움이 잠시 후 놀란 조개처럼 올렸던 팔을 살짝 벌리며 틈 사이로 최강을 살폈다.
최강이 들었던 손을 슬며시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고는 결국 말없이 쓱 걸어가는 것이 이어졌다.
띠움을 뒤로한 채 혼자서 걸음을 옮긴 최강이 한숨 쉬었다.
후…….
‘저놈이나 나나.’
최강이 띠움을 때리려다 그만둔 것은 불법체류자 띠움이나 유령 국민인 자신이나 신세가 다르지 않음을 느낀 최강이, 동병상련을 느낀 이유였다.
‘아니, 어쩌면 녀석이 더 나을지도 모르지.’
적어도 저 녀석은 자기 고향에 가족들이 있었으니까.
띠움이 최강을 쪼르르 따라붙으며 말했다.
“최강, 홰 안 때려?”
“왜, 맞고 싶었냐?”
“아뉘.”
띠움이 도리질 치며 거부했다.
“최강, 일거리 찾아쏘?”
“아니.”
“사실 나도 허탕 쳤다. 미안, 최강.”
최강이 체념하듯 한숨 쉬며 말했다.
“아니, 됐다. 나도 못 찾았고 너도 못 찾았는데 미안은 무슨. 밥이나 먹자.”
“알았다.”
최강이 말없이 띠움과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시장 구석의 어느 국밥 가게에서 최강이 멈춰 섰다.
최강이 국밥 가게로 들어가자, 주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늙은 할머니의 목소리였다.
“항상 먹던 걸로 줄까?”
“네.”
국밥 가게의 주인 할머니가 띠움을 보고 말했다.
“그쪽도?”
“넵입니다.”
바야흐로 2018년. 살인적인 물가 속에서 무려 3,500원에 국밥 한 그릇이라는 놀라운 가격을 자랑하는 국밥집은 최강이 자주 오는 집이었다.
국밥집은 어거지로 일곱 테이블이 겨우 들어갈 만한 가게였는데, 저녁때라 그런지 사람이 많았고 손님들의 상태도 최강과 띠움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주문을 마치자 주인이 주방으로 사라졌다.
국밥이 나오기를 기다리던 최강은 항상 꺼져 있던 TV가 오늘따라 켜져서 떠드는 소리에 자연스레 시선을 옮겼다.
-5년 전에 1만 명을 돌파한 공인 치안 자격시험, 속된 말로 무림인 자격시험으로 불리는 시험의 응시자가 연 단위로 껑충껑충 불더니 마침내 올해 청년 응시자만 10만 명을 돌파했거든요? 조 박사님은 이 현상이 어째서 일어났다고 생각하십니까?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몸 쓰는 일은 철저하게 천대해 왔던 반도적 직업 귀천 현상마저 뒤집힌 시국이거든요?
-음…… 뭐, 이유라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먼저 냉전 시대 당시 극비리 전쟁 기술을 개발하던 천재 과학자 넬슨의 연구소가 폭발한 이후부터 후유증처럼 몬스터가 나타나게 된 현상이라거나, 또 그 때문에 수면 아래 감추어져 있던 무림인이라는 존재가 전 세계적으로 수면 위로 드러났다는 환경적인 요인이 있겠고, 정책적인 요인으로는 근래 들어서 정부가 무림 친화적인 정책을 펼쳐서 경찰 인력을 점차 축소하는 반면에 치안을 무림인에게 맡겨 그에 대한 포상을 지급하는 성과제 치안 노선으로 바꿨다는 점 등 이유를 말하자면 셀 수도 없이 많겠지만, 일단 무엇보다…….
조 박사의 의견을 듣던 띠움이 조 박사의 말을 가로채듯 말했다.
“청년 실업 때문이겠지.”
-그러니까 조 박사님 말씀은 앞서서 언급했던 요인들도 영향이 있지만 해마다 청년들이 공인 치안 자격시험에 응시하는 이유가 일자리 부족 때문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띠움의 말마따나 조 박사가 그렇게 말하자 띠움이 TV를 보며 불만스럽게 구시렁댔다.
“나도 아는 내용을 박사란 놈이 나와서 조따위 마뤼나 하고 있눼.”
띠움의 말을 듣던 최강이 말했다.
“너 어떻게 알았냐?”
“최강, 몰라? 유묭하자나, 무리민.”
“그러니까 무림인이 뭔데?”
700년 전까지만 해도 군벌과 문벌이 있을 뿐 무림이라는 존재를 따로 두지 않았기에 최강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띠움이 최강을 보며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최강 외켸인이야? 어떻게 무리민을 몰라?”
띠움의 말에 최강이 얼떨떨한 얼굴로 말했다. 제아무리 뛰어난 갓민정음이라고 할지라도 3개월 속기로 배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외켸……인? 아니…… 난 한국인……인데?”
띠움이 최강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인 건지 오물 보듯 바라보며 말했다.
“최강, 구거 재미없다.”
“그러……냐? 아하하…….”
최강이 뭔가 잘못 말했다는 것을 눈치채고 어색하게 웃어넘기자 띠움이 말했다.
“무리민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띠움의 설명이 이어졌다.
띠움의 설명을 듣던 최강은 종종 들려오는 모르는 단어에 힘들어했지만 대충 이해할 수는 있었는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니까…… 나라에서 고용한 사냥꾼…… 같은 건가?”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최강이 먼저 나온 깍두기를 요깃거리로 씹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띠움을 보고 말했다.
“그 무림인이라는 거, 돈은 많이 버냐?”
“많이 볼지. 초큼 볼묜 저 난리들 피우게써? 아뉘긴 몰라도 가장 야칸 몬스터를 잡아도 10만 원은 받을 고야.”
“10…… 10만 원…….”
10만 원은 최강이 평균적으로 일거리를 구해 무사히 임금을 받았을 때의 보수였다.
‘국밥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어…….’
최강이 소소하게 행복 회로를 돌리고 있자, 마침내 국밥이 나왔다.
“청년도 저 시험에 관심 있는가?”
“아, 네…….”
아마도 띠움과 최강의 이야기를 들은 듯한 할머니가 그렇게 말하자 최강이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잠시 후 서글서글한 웃음으로 공깃밥 2개와 국밥 두 그릇을 내려놓은 할머니가 다시 주방으로 사라졌다.
주인 할머니가 다시 주방으로 들어간 모습을 확인한 최강은 띠움이 국밥의 국물을 한 숟갈 뜨는 모습을 보고 입을 열었다.
“근데 저렇게 좋은 걸 너는 왜 안 하냐?”
“당욘한 거 아뉘야? 공인이묜 시눤 조회 홰야 하자너.”
띠움은 머리 박고 국밥을 먹느라 못 봤겠지만 띠움의 목소리를 들은 최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런 이유라면 최강도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시무룩해진 최강을 향해 띠움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 최강은 관심 있으묜 한본 시험 봐 보든가? 어차피 떨어지겠지만.”
***
국밥을 국물까지 비운 최강은 띠움과 만났던 장소에서 헤어지고 차가운 바람 사이를 걷고 있었다.
갈 때보다 바람은 더 차가워져 있었고, 주머니는 조금 더 가벼워져 이제 5,220원이 남아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던 최강이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는 포차 앞에서 멈춰 섰다.
방금 전에 국밥 한 그릇을 비우고 가게를 나섰지만 포차에서 나는 먹음직스러운 음식 향기에 허기가 몰려온 탓이었다.
꿀꺽.
포차에 적힌 ‘어묵 2개에 1,000원’이라는 단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눈을 못 떼던 최강이 결국에 포차 앞으로 걸어갔다.
“어묵 2개만 먹을게요.”
피 같은 1,000원짜리 한 장을 떠나보내는 것에 긴 결정이 필요했지만 결과적으로 배고픔에 패배한 최강이 꼬치 하나를 들어 어묵을 한입 베어 물었을 때였다.
방금 전까지 평화롭던 도로 위가 유독 소란스러워짐을 느낀 최강이 비스듬히 돌아섰다.
최강이 등 뒤에 펼쳐진 모습을 목격했는지 짤막한 감상을 남겼다.
“음…… 저게 그건가?”
어쩐지 처음 보는 광경이었지만 지금이라면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것 같았다.
몬스터.
방금 전 국밥집에서 그것들에 대한 정보를 학습한 이후였기 때문이다.
소와 인간을 합쳐 놓은 듯한 외관과 머리에 달린 허벅지 크기만 한 2개의 뿔.
마지막으로 한 손에 들린 트레이드마크 같은 양날도끼를 들고 날뛰는 이족 보행의 생명체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도…… 도망쳐!”
“미…… 미노타우로스다!!”
그간 운이 좋아서인지 나빠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도 마주하지 못한 몬스터를 때마침 딱 조우한 최강이 도로변의 혼란을 두 눈에 멀뚱멀뚱 담았다.
덩치만 2층 건물에 닿을 정도의 미노타우로스가 도로에 등장하자 차를 대충 세우고 도망가는 시민들의 모습이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아비규환을 생중계로 지켜보던 최강이 어묵 2개를 배 속으로 밀어 넣고 뒤돌며 빈 꼬치를 올려놓는 모습이 보였다.
포차 주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그새 위기를 느끼고 줄행랑을 친 것 같았다.
최강이 이때다 싶었는지 포차 위에 200원을 슬며시 올려놓으며 꼬치 하나를 슬쩍 집어 들었다.
‘이 정도면 원가는 충분하겠지…….’
콰앙!!
멋대로 어묵 하나를 200원으로 구입한 최강이 도로 위에서 날뛰는 미노타우로스가 만든 소음을 향해 돌아섰다.
버스를 반으로 쪼개 버리는 미노타우로스의 깽판을 목격하고도 멋들어지게 어묵을 한입 베어 문 최강이 마침내 녀석에게로 걸어갔다.
대충 짐작은 되지만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아이를 끌어안은 채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