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20
20화
최강은 지금 두 가지 이유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유성 때문에 그냥 쓸데없이 복수심이 꿈틀거린 탓이었고, 또 하나는 자신이 쫓는 사람들의 정체가 어렴풋이 짐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왜구……?’
일본인이라는 존재는 최강에게 있어서 이씨 문중과는 다른 의미로 심기 불편한 존재였다.
이씨 문중이 가문에 대한 원수라면, 일본인에게는 전우들에 대한 원한이 있었던 것이다.
“흘렸군…….”
일격씩 먹여서 백귀대를 날려 보낸 최강이 중얼거렸다.
왜구 특유의 생존을 위해 발달한 보법의 특징 때문이었다. 공격이 제대로 들어갔음에도 위력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던 것이다.
왜구 놈들을 팼을 때 나던 특유의 느낌. 이로써 확신이 선 것이었다.
최강이 자신의 말에 적대감을 표출하는 무인들을 봤다.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것 같은 백귀대를 만류하는 기모노 차림의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의외야. 당장이라도 달려들 거라고 생각했거든. 너희들 자존심 강하잖아?”
나미사가 여유롭게 말했다.
“시대는 변하는 법이니까요.”
나미사가 무인들을 뒤로 물리고 한 발 앞으로 걸었다.
“일단 대표가 저이긴 한데, 설마 막는 것도 안 되지는 않겠죠?”
“물론 가능하지. 근데 그게 궁금했냐?”
“네, 당연하죠.”
말을 하던 나미사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솔직히 그만한 위력을 정면으로 받으면 저도 자신 없거든요.”
최강의 눈에 흔쾌히 방어 자세를 취하는 나미사의 모습이 보였다. 손에 들린 쥘부채를 슬쩍 흘긴 최강이 말했다.
“경고하는데, 칼을 드는 게 좋을 거다?”
“싫다면요?”
최강이 개의치 않는다는 듯 말했다.
“딱히 상관은 없어.”
최강의 권유가 단순한 무인으로서의 자존심, 또는 존중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한 나미사는 무시하려다 말고 자세를 풀었다. 한쪽 손을 허공에 펼친 나미사가 말했다.
“하야토.”
나미사의 말에 옆에 나타난 하야토가 그녀의 손바닥에 자신의 검을 올려 두고 다시 사라졌다. 시퍼런 예기를 뿜는 좋은 칼이었다.
나미사가 말했다.
“됐나요?”
나미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최강이 말했다.
“그럼 준비하시고…….”
최강이 주먹을 꽉 쥐자 주먹으로 바람이 일시에 빨려 드는 기류가 형성됐다. 나미사가 주변의 묘한 기류를 느꼈는지 다급히 말했다.
“잠시만요.”
“안 돼!”
나미사의 타임 요청을 단칼에 거절한 최강이 주먹을 내질렀다.
“고려 좌군 첫 번째 주먹.”
당황한 나미사가 최강의 주먹을 향해 칼을 내리쳤다.
마침내 엘리스도 이유성도 한 방에 보내 버린 천지 가르기가 나미사의 차례가 된 것이었다.
나미사가 최강의 주먹과 맞닿은 자신의 칼을 바라보며 인상 썼다. 애초에 최강의 공격을 막기보다는 흘려보낼 심산이었던 나미사로서는 난감한 상황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바로 질러진 최강의 주먹이 오히려 검을 밀어내며 천천히 다가오는 이유였다.
‘아니…… 이거 맨주먹이잖아?! 불똥이 튀면 안 되는 거잖아!’
나미사가 칼날과 빗면 사이에 주먹을 댄 채 흘려 내려고 해도 오히려 빠꾸 없이 직진해 오는 최강의 주먹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잠시 후면 최강의 주먹이 직격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일까?
나미사의 가슴께 앞에서 돌연 최강의 주먹이 우뚝 멈춰 섰다.
‘멈췄……네……? 끝난 건가?’
최강의 주먹이 멈춘 것을 본 나미사가 영문 모를 얼굴로 고개를 들어 최강을 바라봤다.
“천지.”
그러면 그렇지. 기다렸다는 듯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리는 최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르기.”
나미사가 다급한 얼굴을 지어 보였고, 그것을 최강이 눈으로 담은 다음 순간이었다.
쾅.
한차례 커다란 굉음이 들려왔고, 그 굉음이 멎은 후에 최강의 눈에 더 이상 나미사의 모습은 없었다.
나미사가 만들었으리라고 생각한 땅 위에 선명한 ‘二’ 자 모양만 보일 뿐이었지…….
***
나미사는 지금 엄청난 풍압에 떠밀려 밀려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나미사가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공포나 떨림 등이 아닌 ‘안도’였다.
자신의 손에 들린 것이 잠시 잠깐 머물렀다가 가루가 되어 사라졌을 쥘부채가 아닌 보도 ‘칠흑’이라는 사실에 대한 안도 말이다.
나미사가 자신을 집어삼킬 듯한 백색 기류에 저항하는 칠흑을 바라봤다. 이가 벌써 나가 버리고 날카롭던 예기는 온데간데없었다.
상황 파악을 한 나미사가 쓰게 웃었다.
최강의 마지막 경고가 단순히 대결에 대한 무인의 자존심과 고집이 아닌, 마지막 자비였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흘려 내?’
지금 생각해 보면 절로 웃음이 지어지는 생각을 했던 불과 몇 초 전의 자신이 그렇게 한심할 수가 없었다.
나미사가 벌써 한계라며 소리 지르는 듯 부들부들 떨리는 자신의 손을 보며 생각했다.
‘조금만 더 버텨 줘…….’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자신이 힘이 많이 빠진 만큼 눈앞의 백색 기류도 눈에 띄게 작아졌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견뎌 내면 되는 것이다.
나미사가 칠흑의 칼자루에 남은 손을 올렸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내 마지막 발악을 하려는 것이었다.
“끄아아아!!”
그리고 잠시 후.
츠르르륵…….
한계까지 버틴 나미사가 백색 기류의 압박이 마침내 사라짐을 느끼고 양손에 힘을 풀었다.
탱그랑.
그 자리에 그대로 칼을 떨어트리고 주저앉은 나미사가 앙상한 칠흑을 보고 기적을 맛본 듯이 중얼거렸다.
“……버텼다.”
연신 거친 숨을 몰아쉬던 나미사가 희열을 느끼며 바닥을 향하던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였다.
그녀의 눈앞에 주먹만 해진 작은 백색 기류가 둥둥 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게…… 뭐지……?’
나미사가 자연스레 제자리에 가만히 떠 있는 그것에 흥미를 가졌을 때쯤이었다.
펑.
“꺅.”
백색 구슬이 갑자기 팽창하며 폭발했다. 폭풍에 휘말린 나미사가 본인도 모르게 비명을 내지르며 데굴데굴 구르다가 본의 아니게 하늘을 바라보고 드러누웠다.
깜짝 놀라 간 떨어질 뻔한 나미사가 자신의 눈에 보이는, 반으로 갈라진 구름을 보며 중얼거렸다.
“사기야…… 이런 거.”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놀라게 만든 일격에 실없는 웃음을 지은 나미사가 몸을 일으켰다.
온몸은 탈진한 듯 저려 왔고, 옷은 이곳저곳 해져 엉망이었지만 궁금한 것이 생겼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나온 처참한 광경의 도심을 본 나미사가 한 차례 비틀거리더니 걷기 시작했다.
바스락…… 바스락…….
천천히 길을 따라 걷던 나미사가 돌연 웃었다.
마침내 저 멀리 사람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
“거봐, 저기 오잖냐.”
최강의 말에 피떡이 되어 엎드려 있던 하야토가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나미사의 모습이 보였다.
잠시 후 가까이 다가온 나미사가 말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갑자기 짜증 나게 덤벼들길래 한두 군데씩 부러트려서 못 움직이게 만들어 뒀다.”
최강이 선심 썼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도 약속은 지켰어. 죽이진 않았거든.”
최강의 말을 들은 나미사는 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알 수 있었다. 아마도 하야토를 비롯한 백귀대 전원이 자신이 당한 줄 알고 덤벼들었다가 역으로 당한 것이리라.
최강의 말을 들은 나미사가 주변을 다시 한번 둘러봤다. 하야토도 그렇지만 백귀대 전원이 처참하게 늘어져 있었다.
나미사가 자리를 비운 시간은 고작 5분 남짓.
백귀대 전원을 5분 안에 죽이지 않고 제압한 것이었다.
‘엄청난 남자야.’
최강을 바라보던 나미사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가식 따위 없는 웃음이었다. 자신을 포함한 전원이 거의 전투 불능이 되었지만 처음부터 최강이 살려 보내 줄 마음이 없었다면 애초에 사상자 몇 명이 아니라 전원이 저세상 사람이었을 것을 뒤늦게라도 알았기 때문이다.
“당신, 이름이 뭔가요?”
못마땅한 말투로 최강이 말했다.
“일본 놈들에게 딱히 알려 줄 마음은 없는데? 그리고 남의 이름을 묻기 전에 자신의 이름부터 소개하는 것이 예의 아니냐?”
최강의 말을 들은 나미사가 실수를 인정하듯 공손하게 말했다.
“제 이름은 토와 나미사.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최강이다.”
시큰둥한 최강의 말을 들은 나미사가 멀뚱멀뚱 눈만 껌벅이다가 잠시 후 다시 말했다.
“네?”
“최강이라고.”
최강의 이름이 외자라는 것을 깨친 나미사가 중얼거렸다.
“최……강…….”
그리고 잠시 후…….
풋.
푸하하핫.
한결같이 요염함이 느껴지던, 고품 있는 분위기를 유지하던 나미사가 처음으로 교양 없다고 느껴질 만큼 박장대소했다.
최강이 인상 썼다.
“왜 웃지?”
최강의 말에 최대한 빨리 웃음을 수습한 나미사가 잠시 후 고개 숙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 그런 소리 자주 들어.”
최강이 시선을 거두며 말하는 목소리에 가볍게 웃은 나미사가 말했다.
“저, 실례일 수도 있겠지만.”
“알면 말하지 마라.”
최강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나미사가 최강의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마치 애인을 탐하는 듯한 손짓이었다.
“혹시 일본 여자에 대한 로망은 없으신가요? 제가 사실 이상형이 강한 사람이랍니다.”
“그래? 근데 유감. 난 관심 없으시다.”
최강이 나미사의 팔을 떼어 내자 나미사가 말했다.
“어째서요?”
“내가 애국자라 국산파거든.”
‘위조된 신분이나 사용하는 유령 시민이긴 하지만.’
나미사가 요염하게 웃으며 말했다.
“에이. 그러지 마시구요. 데리고 살다 보면 의외로 유니크한 맛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나미사의 말에 최강이 인상 쓰며 말했다.
“내가 한 말은 지키자 주의라서 살려는 줬지만, 너희가 좋아서는 아니거든? 농담이나 따먹을 기분이 아니야. 볼일 끝났으면 빨리 사라져. 다음번에 주위에 거슬리면 죽는다는 거 명심하고.”
최강의 완고한 모습에 나미사가 옅게 웃으며 한 걸음 물러났다.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답니다. 오늘부로 저희 토와파는 본국으로 돌아갈 생각이니까요.”
최강에게 말한 나미사가 주변의 백귀대를 흘기고 소리쳤다.
“당장 일어나지 못하나요?”
오만상이 된 백귀대가 서서히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부상이 심한 사람은 부축받아 일어나는 것도 보였다.
전원이 자리에서 일어난 모습을 확인한 나미사가 다시 한번 공손하게 말했다.
“오늘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비꼬는 건가?”
“아니요. 진심입니다. 혹여 일본에 들를 일이 있다면 꼭 저희 토와파에 들러 주세요.”
시큰둥한 얼굴의 최강이 말했다.
“뭐, 마음 내키면.”
최강의 말에 생기 있게 웃은 나미사가 말했다.
“하야토, 돌아가도록 해요. 한국에서의 일은 끝났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미사의 말과 함께 하야토와 백귀대가 순서대로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남은 나미사가 혼자서 최강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자 최강이 말했다.
“뭐냐?”
“궁금한 게 많으실 텐데 별다른 말씀이 없으셔서요.”
“관심 꺼라.”
최강이 꺼지라는 듯 말하자 무언가 말하려던 나미사가 입을 다물었다.
“그럴게요.”
마침내 나미사마저 사라지자, 최강이 다시 산으로 돌아가기 위해 뒤돌았다.
출발하기에 앞서 나미사가 자신의 가슴께를 쓰다듬을 때, 나미사의 이곳저곳 해졌던 옷가지 사이를 본인도 모르게 흘겼던 최강이 중얼거렸다.
“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