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200
200화
그란디아 대륙을 뜨겁게 달구는 소식이 있었다.
마왕이 소멸했다는 소식이었다. 등장만큼이나 갑작스러운 마왕의 죽음에 사람들은 안도했지만 동시에 새로운 생각이 피어났다.
과연 마왕을 실질적으로 사냥한 영웅이 누군가에 대한 것이었다.
“근데 아무래도 역시 알베르토 경 아니겠어?”
“크…… 역시 그렇지? 죽은 줄 알았던 대륙 최강 알베르토가 살아 있었다니. 그야말로 제국뽕 차오르는구만그래.”
마침 선술집에서 테이블에 마주 앉은 두 남자도 요즘 뜨거운 대화 소재인 마왕 사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이 선술집에서 술 한 잔씩 걸치며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듣고 있던 남자가 합석하며 말했다.
“그치만 당사자인 알베르토 경은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며?”
“겸손이겠지, 겸손.”
이 선술집의 단골인 세 사람은 주로 이곳에서 만남을 가지고는 하는 듯했다.
“겸손 같은 소리 하네!”
남자가 그렇게 말했을 때였다. 주방에서 덩치 좋은 여자 한 명이 걸어 나오더니 남자의 귀를 잡아끌었다.
“아아아아, 왜 이래, 여보.”
테이블에 아무렇지 않게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던 남자는 선술집을 운영하는 부부 중 남편 되는 사람이었다.
“사장이라는 양반이 허구한 날 기회만 되면 어떻게든 농땡이 부리려고 안달이 났을까? 손님안 보여, 이 화상아!”
“아…… 아! 알았으니까 일단 좀 놓고 말해 봐.”
안사람이 귀를 놓아주고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빨리 서빙이나 해!”
남자가 뭐 씹은 듯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아, 씨…… 중요한 순간이었는데…….”
“뭐 해, 서빙 안 하고!”
주방에서 보채는 목소리에 남자가 인사했다.
“이렇게 돼서 난 이만 간다. 재밌게 놀다 들어가, 친구들.”
주방에서 나온 음식을 바쁘게 서빙하는 모습을 보고는 두 남자가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픽 웃었다.
역시 결혼은 미친 짓이었다.
***
결혼은 미친 짓.
어쩌면 정말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태어나서 수십 년을 따로 지내오다가 길어 봐야 몇 년 연애하다가 결혼하는 게 보통이었으니 말이다.
두 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그만큼 어려운 일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 미쳐도 단단히 미친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바로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서 벌써 인생 세 번째 식을 올린 최강이었다.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일도 어려운데, 최강은 구태여 그 난이도를 2배로 올려서 네 명이서 하나가 되는 일을 택한 것이었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최강이 현관에 들어서자 최말숙이 어떻게 알고는 쪼르르 달려 나와 신발을 깔아 줬다.
“다녀오셨사와요.”
최강이 최말숙의 모습을 보고 기껍게 웃었다.
“어, 그래. 말숙이 잘 지냈어?”
“물론인 것이와요.”
최강이 신발을 신고는 안방으로 들어가면서 뒤따라 들어오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난 잠잘 거니까 너희는 할 일 해라. 짐을 풀든 말든 내 건 남겨 놔. 내가 자고 일어나서 할라니까.”
최강이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가자 네 명의 꼬맹이가 놀고 있었다. 최지숙, 최재숙을 비롯한 베르티와 에미리였다.
여하튼 최강이 꼬맹이들을 피해서 이부자리를 구석에 깔고 방문을 닫자, 잠시 후 안방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이 있었다.
나미사였다.
주소희가 그런 나미사를 불러 세웠다.
“잠깐, 지금 어디 가요? 짐 안 풀어요?”
“아, 저도 피곤해서 한숨 자고 나서 할 거랍니다.”
“그럼 2층 본인 방에서 주무시면 되잖아요. 가뜩이나 구석에 자리 펴시더만.”
나미사가 손으로 입을 가로막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저, 궁금한 게 한 가지 있는데, 왜 2층이 제 방이죠? 앞으로 한 달간은 저기가 제 방인 거잖아요?”
주소희가 윽 소리 내며 정곡을 찔린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당연했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온 다음 날, 주소희가 신혼 보호 기간이랍시고 한 달 동안 밥 먹고 씻을 때 말고는 1층에 가급적 발길을 돌리지 말아 달라고 통제했으니 말이다.
즉, 자신의 업보라는 것이었다.
“저도 하려고요. 신혼 보호 기간이라는 거. 불만 없죠?”
나미사의 통보에 당황한 주소희가 마땅한 사유를 찾다가 황급히 말했다.
“그…… 류세란. 맞아, 세란 씨는 어쩌고요! 설마 셋이서 그런 추잡한 짓은 안 하실 거죠?”
나미사가 말했다.
“물론이랍니다. 제가 먼저 그리고 다음이 세란 씨예요. 안됐네요. 두 달이나 최강 씨 냄새도 못 맡아 볼 텐데.”
나미사가 안방 문을 열면서 말했다.
“여튼 저는 최강 씨 팔베개 베고 킁카킁카나 할라니까 소희 씨는 최강 씨 짐이나 푸세요. 풉.”
“아니, 잠깐 기다려요. 킁카킁카라니. 뭔데요, 그거!”
나미사가 주소희를 무시하고 방문을 닫고 들어갔다.
주소희가 문밖에서 방 안쪽에 귀를 대고 엿들어 봤지만 방 안에서 떠드는 최재숙과 최지숙의 목소리밖에 안 들렸다.
류세란이 말했다.
“거기서 그러지 말고 짐이나 같이 풀어요. 본인도 다 했던 거면서 뭘 새삼스럽게.”
주소희가 터덜터덜 걸어와서 소파에 쓰러지듯 몸을 파묻었다.
“이런 기분인 줄 몰랐어요.”
“네. 그런 기분이에요. 그러니까 버티세요. 아니면 지금이라도 이혼 서류에 도장 쾅 해 버리시는 것도 나쁘진 않고요.”
평소라면 대판 싸웠을 텐데 주소희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몰라요. 말 걸지 말아요.”
류세란이 픽 웃고는 다시금 짐을 풀기 시작했다.
최강이나 나미사나 자신이 짐을 풀겠다고 놔두라고 했지만 혼자서 푸느라 시간이 제법 걸렸다.
한 시간쯤 대략 흘렀을 때였을까?
돌연 방 안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후에에에엥.”
류세란이 소란에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울고 있는 베르티와 베르티를 달래고 있는 최강의 모습이 보였다.
“이빨 아파…….”
“뚝! 울지 말아 봐……. 나 참, 네가 깨물어 놓고서 네가 아프다고 하면 어쩌냐…….”
최강의 다리에 이빨 자국을 보아하니 같이 낮잠을 자던 베르티가 최강의 종아리를 문 것 같았다.
“그치만 닭다리가…….”
“닭다리?”
“꿈에서 닭다리가 나왔단 말이에요.”
최강이 여전히 부르마블을 하면서 놀고 있는 다른 세 아이를 바라보자 최재숙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베르티가 잠꼬대로 닭다리가 어쩌고 하는 소리를 했던 것 같은 것이에요.”
“아, 그래……? 그럼 먹여 주면 되겠네. 닭다리.”
최강이 울고 있는 베르티를 달래며 말했다.
“그만 울면 내가 치킨 사 줄게.”
“치킨?”
“그래. 이빨 많이 아프면 순살로.”
“한 마리?”
“아니. 너 원하는 만큼.”
베르티의 얼굴이 헤벌쭉해졌다.
“치킨 치킨 뼈치킨.”
최강이 베르티가 울음을 뚝 그치자 어이없는 웃음을 그릴 때였다. 부르마블을 하며 놀던 에미리가 꿈틀꿈틀 기어오더니 최강의 반대편 다리를 앙 물고 있는 에미리를 보며 말했다.
“뭐 하냐? 넌?”
“취……킨.”
“그래, 알았어. 치킨.”
에미리와 베르티가 신이 나서 최강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고 있자 최강이 최재숙과 최지숙을 부르며 말했다.
“가자. 치킨 먹으러.”
***
우여곡절 끝에 긴 시간이 흘러 약 2년쯤 흘렀을 때였다.
일 때문에 정신없이 이동하던 최강이 전화를 받고는 후다닥 협회 인근의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나미사의 진통이 시작됐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최강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유감스럽게도 이미 나미사가 순산한 뒤였다.
뒤늦게 도착하긴 했지만 고생한 나미사의 곁을 한참 지켜 주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생아실에서 자신의 아이를 보기 위함이었다. 거울 너머로 아직 이름조차 없는 자신의 셋째 아이와 눈을 맞추고 있을 때였다.
최강과 함께 이동한 최말숙이 아이의 모습을 보고는 말했다.
“어머, 귀여워라…… 아! 물론 우리 윤아가 더 귀엽지만 말이에요.”
최윤아. 주소희와 최강의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여아였다. 지금 최말숙의 앞에 아기띠로 고정되어 있는 7개월 된 아이였다. 최윤아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최말숙이 짓고 있자니 잠시 후 최지우가 말했다.
“미안한데 조카, 뭐 윤아도 귀여운 건 인정하지만 우리 가람이 정도는 아니지.”
최가람. 역시 최강의 핏줄이었으며 류세란과의 사이에서 생긴 남자아이였다. 마찬가지로 최지우가 메고 있는 아기띠에 들어 있는 아이를 보며 헤벌쭉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치 누가 보면 제 아이인 줄 착각할 법한 표정이었다.
최강이 어이없다는 듯이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 자꾸 이제 막 태어난 애 앞에서 이상한 말 할 거면 어디 좀 가 있어라.”
최강에게 한소리 들은 두 사람이 숙연해졌다. 그러자 잠시 후, 두 아이가 울먹이는 것이 보였다.
“아이구, 왜 구뤠에에~ 아빠 여기 있어요~”
최강이 아이를 달래고 어르면서 겨우 두 아이를 진정시켰을 때였다. 때마침 핸드폰이 진동을 울렸다.
최강이 조용히 바깥으로 나가서 전화를 받자니 우범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최강 님, 지금 어디 계시는 겁니까?
아마 이 시간에 예정되어 있던, 그란디아 대륙 간의 대면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것 때문에 상당히 난처해하는 것 같았다.
“아니요. 그게, 지금 막 셋째가 태어나서…….”
몇 개월 전부터 예정된 약속이다. 원래라면 국가 간의 약속도 아니고 세계 간의 약속인 만큼 가정사보다 공적인 일이 앞서야 하는 게 맞지만 최강은 그래도 일 때문에 집안 관리를 소홀히 하기는 싫었다. 가뜩이나 안사람이 셋이나 되다 보니 잘 챙겨 주지 못하는데, 이런 것까지 소홀히 했다가는 볼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뭐 일을 갑작스럽게 펑크 낸 탓에 고생스러워질 우범하에게는 미안하지만 말이다.
우범하가 딱히 화내도 별말 하지 말아야지 하고 최강이 생각할 때였다.
어째서인지 우범하가 살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아이 때문이라면 어쩔 수 없지요. 언제 한번 또 찾아봬야겠네요.
귀여운 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우범하의 성격이 또 드러난 것이었다.
-제가 사정을 전하고 내일로 일정을 미뤄 볼 테니 걱정 마십시오.
당연하지만 역사적인 날인 만큼 전 세계의 언론이 집중된 사건이 최강의 집안일 때문에 미뤄지는 수준이 된 것이었다.
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근래에 그란디아 대륙과 이쪽 세계의 관계는 최강 덕분에 아주 완만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근래에 최강이 마왕을 처리한 게 뒤늦게 알려지면서 최강이 그란디아 대륙의 영웅으로 등극한 것이 크게 작용한 것이었다.
전화를 끊은 최강이 나미사가 있는 산모실로 다시 향했다.
최강의 전 세계적인 입지 때문인지 산모실은 VVVIP 수준의, 궁전 부럽지 않은 넓은 산모실이었다.
최강이 산모실에 들어서자 많은 사람이 보였다.
출산을 축하하는 최씨 문중 사람들과 정대욱과 조중일, 그리고 안토니와 안젤리카까지. 최강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최강이 방문 앞에 서 있자니 잠시 후 주소희와 주진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십니까, 장인어른.”
“아, 최 서방. 그 뭐냐, 셋째도 축하하네.”
장인이 자신의 딸이 아닌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출산을 연이어 축하해 준다는 게 참 이상한 일일 텐데, 어떻게 보면 참 아량 좋은 사람이 아닐 수 없었다.
최강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근데 여기 서 있지 마시고 저기 앉으시죠. 마침 사람들도 많이 모였는데 사진이나 한 장 찍게.”
휴대폰의 카메라를 켜고 고정하다 우연히 화면을 들여다본 최강이 돌연 픽 웃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 뚝 떨어졌을 때는 아는 사람 한 명 없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사뭇 달라졌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최강 씨, 빨리 와요.”
“어, 그래. 간다.”
최강이 나미사의 말에 답하고는 그녀의 옆으로 들어가 앉으면서 생각했다.
앞으로 얼마나 인생이 남았을지는 몰라도 자신의 남은 인생은 이들과 함께하는.
‘현대 라이프’이지 않을까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