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23
23화
최강은 지금 몹시 당황한 상태였다.
첫째로 여자아이의 나이가 엄마나 아빠를 착각할 나이가 아니라는 것이었고, 둘째로…….
‘얼레……?’
여자아이의 말대로라면 족보가 어떻게 되는지 생각이 닿은 것이었다.
심각한 얼굴이 된 최강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소희를 바라봤다. 최강이 흥미롭다는 투로 말했다.
“혹시 과학의 발달로 인류는 같은 공간에서 잠만 자도 번식이 가능해지는 수준에 이른 건가? 여러 의미에서 소름 끼치는군, 현대 문화.”
“무슨 헛소리예요. 그럴 리가…….”
말을 하던 주소희가 주변을 바라봤다. 사방에서 속닥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맞은편의 류세란도 적잖게 쇼크 먹은 듯한 모습이었다.
상황을 파악한 주소희가 여자아이를 바라보며 턱을 쓰다듬고 있는 최강의 옆구리를 슬쩍 찔렀다.
최강이 반응했다.
“왜?”
“저는 일단 창피해서라도 이곳을 벗어나야겠으니까 최강 씨는 최강 씨 알아서 하세요.”
최강에게 속닥인 주소희의 눈이 비장해지더니, 전력으로 질주하는 모습이 보였다.
최강이 순식간에 멀어져 가는 주소희를 보고 따라 뛰었다.
쇼크에 빠진 류세란이 중얼거렸다.
“유치원 다닐 나이의 딸이…….”
***
전력 질주한 주소희와 최강이 감시망을 피해 돌아다니다가 두 시간 뒤쯤에나 옥탑방 앞에 도착했다.
“너 왜 도망갔냐? 정말로 걔가 네 딸이야?”
“제가 그 애 엄마면 최강 씨는 진짜 아빠예요?”
“아니?”
“그럼 왜 저한테만 그래요?”
“아니, 내 말은 진짜 엄마가 아니면 차라리 오해를 푸는 편이 좋잖냐.”
“아…….”
주소희가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 했는지 말했다.
“제가 좀 당황했나 봅니다. 애 엄마로 오해받는 건 처음이라…….”
앞장서 걷던 주소희가 그렇게 말하며 방문을 열었을 때였다.
“다녀오셨사와요, 어머님.”
“…….”
현관 앞 문턱에서 인사를 건네는 여자아이를 본 주소희가 문 앞에서 얼어붙었다.
주소희가 붙잡고 있는 문틈으로 최강이 들어갔다. 여자아이가 말했다.
“어서 오시와요, 아버님.”
“그래, 오셨다.”
여자아이의 인사를 대충 받은 최강이 방으로 들어가서 TV를 켜고 누웠다.
그러자 잠시 후 부엌에서 처음 보는 중년 아줌마가 걸어 나오더니 최강에게 물을 내려놓았다.
최강이 아무렇지 않게 물 잔을 비우고 내려놓자, 어느새 슬금슬금 들어온 주소희가 최강에게 속삭였다.
“최강 씨, 여기 우리 집 맞죠?”
“보면 알잖냐? 우리 집이 아니라 내 집이긴 하지만.”
최강의 말을 들은 주소희가 말했다.
“그럼 저 화장실에서 청소하는 여자랑 부엌에서 설거지하고 있는 아줌마는 누구예요?”
“몰라.”
주소희가 답답한 속내를 토로하듯 말했다.
“모르면 어떡해요…….”
최강이 시선을 TV에 고정한 채 말했다.
“궁금하면 쟤한테 물어봐라. 쟤가 조종하고 있는 거니까.”
“네?”
주소희가 방으로 따라 들어와 옆에 얌전하게 무릎 꿇고 있는 여자아이를 바라봤다. 여자아이가 생긋 웃었다.
“이 여자애가요?”
“어, 저 붉은 눈. 어디서 봤나 했더니, 방금 기억났거든.”
주소희가 궁금했는지 캐물었다.
“어디서 봤는데요?”
“나한테 그 옷 준 애.”
“이 옷……?”
주소희가 자신이 입고 있는 보라색 추리닝, 정확히는 천주갑을 내려 봤다. 최강이 말하는 바를 깨달은 주소희가 말했다.
“엘리트 아라크네 말하는 건가요?”
“어. 사람 조종하는 거, 그 녀석이 쓰던 기술이거든. 아마 엄마니 아빠니 하는 것도 그거랑 관련 있는 거 같은데, 적의는 없는 거 같으니까 정 궁금하면 직접 말 걸어 보든가.”
최강의 말을 들은 주소희가 여자아이를 멀뚱멀뚱 바라봤다. 주소희가 잠시 후 최강을 쿡쿡 쑤셨다.
“최강 씨가 물어보면 안 돼요?”
자신 없는 주소희의 목소리에 최강이 말했다.
“내가? 왜?”
“솔직히 좀 자신 없어서…….”
사실 방금 전에 주소희는 최강의 말을 듣고 능력을 사용했었다. 여자아이는 천주갑만큼 순도 높은 붉은색은 아니었지만 붉은빛의 내공을 소유하고 있었다.
주소희처럼 내공을 확인하진 못하지만, 감으로나마 여자아이가 주소희보다 강하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던 최강이 주소희의 말뜻을 이해하고 한숨 쉬었다.
“한마디로 쫀 거잖아.”
몸을 일으킨 최강이 방바닥을 손바닥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일로 와 봐.”
“네, 아버님.”
여자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최강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너, 아라크네 맞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종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그렇답니다.”
아라크네의 말을 들은 최강이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내가 왜 네 아빠냐? 난 아라크네가 아니잖아.”
아라크네가 최강의 뒤편에 앉아 있는 주소희를 바라봤다. 정체를 몰랐으면 모를까, 정체를 알아 버린 주소희가 움찔하며 최강의 뒤편으로 숨었다.
여자아이가 말했다.
“아라크네는 수컷이 없고 암컷만 존재하는 종족인 것이와요, 아버님.”
“그래서? 그게 무슨 상관인데?”
최강의 물음에 여자아이가 말했다.
“쉽게 말해 드리자면 생물의 정수를 모아서 번식하는 아라크네에게는 일반적인 왕위 계승이 일어날 수 없다는 말인 것이와요. 수컷이 없으니까요.”
최강이 더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말했다.
“이상한데? 그렇다면 내가 더 너한테 아빠라고 불릴 이유가 없잖냐? 암컷만 있는데.”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렇사와요. 하지만 이번 왕위 계승에서 문제가 생겼답니다.”
“문제?”
여자아이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천주갑은 아라크네에게 있어서 왕관 같은 것이와요. 때문에 다른 종족에게 여왕이 죽게 되었을 때 천주갑은 왕관의 의미를 잃고 함께 사라지는 게 원칙이지요. 여왕보다 강한 아라크네가 나타나 여왕을 죽이고 천주갑을 취하는 게 왕위 계승법이니까요.”
최강이 여자아이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확실히 엘리스도 그렇게 말했다. 자신이 그냥 죽으면 천주갑이 사라질 것이라고.
여자아이가 말했다.
“그런데 어째선지 전대 여왕은 타 종족이신 아버님께 왕관을 넘겼사와요.”
이야기를 듣던 최강이 말했다.
“잠깐만. 그렇게 따지면 나도 천주갑을 쟤한테 줬는데?”
최강이 자신의 뒤에 들러붙은 주소희를 옆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그럼 얘 죽일 생각?”
여자아이가 말했다.
“그렇게 묻는다면 아닌 것이와요.”
“왜? 여왕을 죽여서 천주갑만 가져가면 문제가 사라지는 거잖아?”
“아라크네에게 전대 여왕보다 약한 여왕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와요.”
여자아이의 말을 이해한 최강이 말했다.
“한마디로 내가 죽지 않는 이상 얘는 여왕이 아니라 죽여도 의미가 없는데, 동시에 천주갑을 가지고 있으니까 명령은 따라야 한다는 거냐?”
“네, 상당히 복잡한 상황이 된 것이와요.”
최강이 주소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댄다. 축하해, 꼬봉 생겼네.”
***
최강과 여자아이의 대화가 끝나고 잠시 후였다.
현관문을 열고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명령대로 돌려보내고 왔사와요.”
“그래, 잘했다.”
명령대로 조종하던 사람들을 돌려보내고 온 여자아이가 부엌으로 가서 의자를 밟고 올라서서 설거지를 시작했다. 주소희가 최강에게 말했다.
“최강 씨, 저 애 몬스터잖아요?”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예요. 설마 데리고 살 건 아니죠?”
최강이 주소희의 얼굴을 보다가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럼 죽일까?”
인형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예쁜 외관 때문인지 최강의 주먹에 터져 나갈 걸 생각하면 못 할 짓 같았는지 주소희가 말했다.
“아…… 아니요. 그런 말은 아니고…….”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쫓……아내는 건 안 되겠죠?”
최강이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너 방금 전에 그 말 할 때가 지금껏 본 모습 중에 젤 못나 보였다.”
“…….”
주소희도 알고 있었다. 그냥 아라크네도 아니고 엘리트 아라크네를 야생에 풀어놓자는 말이 얼마나 이기적인 말인지 말이다.
최강이 말했다.
“죽이라고 말할 거 아니면 저 녀석이랑 친해질 생각이나 해. 그편이 더 낫겠다.”
최강의 말에 주소희가 생각에 잠겼다.
곧이곧대로 몬스터의 말을 덥석 믿고 신뢰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열심히 방법을 생각하던 주소희의 머릿속에 때마침 누군가의 목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일단 예전에 프리저에게 얻어맞았던 게 아직 유효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 잠깐만.’
정신이 번쩍 든 주소희가 시선을 최강에게 던졌다.
주소희가 최강에게 말했다.
“그, 최강 씨.”
TV를 보며 최강이 답했다.
“뭐.”
“저 좀 기절할 정도로만 때려 주세요.”
주소희의 말에 TV를 보던 최강이 고개를 돌렸다. 멀뚱멀뚱 주소희를 바라보던 최강이 갑자기 인상을 팍 썼다.
“너 진짜…… 갑자기 나한테 왜 그래?”
“네?”
최강의 말을 들은 주소희의 얼굴이 붉어졌다. 최강이 오해를 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대화를 쭉 듣고 있었던 건지 여자아이가 발판으로 쓰던 의자에서 내려와 말했다.
“걱정하지 마시와요. 저는 어머님의 성적 성향에 대한 부분은 듣지 못한 것이와요.”
“자…… 잠깐만.”
주소희가 자리를 피해 주려는 여자아이를 붙잡았다.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
최강이 주소희에게 주민석과 주연석을 비롯한 세가 의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뭐야, 그런 거였냐?”
“그쪽으로 오해한 최강 씨가 이상한 거거든요?”
최강이 어이없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야, 솔직히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봐라. 갑자기 기절할 정도로 때려 달라고 그러면 오해할 만한지 안 한지.”
“어쨌든요! 알았으면 그 이야기는 그만하세요.”
주소희의 말에 최강이 이야기했다.
“하지 말라니까. 여튼 그 이야기는 안 하긴 할 건데, 부탁은 들어주기 힘들 거 같다.”
주소희가 물었다.
“네? 왜요? 혹시 아까워서 그러는 건 아니죠? 식모 일 더 하라고 하면 더 할게요.”
“아니, 아까운 건 아니고.”
주소희가 말했다.
“그럼 왜요?”
“내가 예전에는 힘 조절 잘했는데 지금은 힘 조절을 잘 못해.”
“네?”
“사실 그날 걔들 죽으면 어쩔 수 없다는 각오 하고 팬 거야. 망설이면 희생이 더 늘어난다고 생각했거든.”
최강이 자신의 주먹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래도 맞아 볼래? 성공 확률은 장담 못 해.”
최강의 주먹을 보던 주소희가 침을 꼴깍였다.
“아니요.”
“그치?”
최강이 실망한 듯한 주소희의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최강도 근래에 엘리스나 나미사 등을 보면서 일단은 협력 관계인 주소희가 성장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바가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지금은 너무 약하단 말이지…….’
결심한 최강이 입을 열었다.
“야, 그럼 이렇게 하자.”
주소희가 눈을 빛냈다.
“무슨 방법이 있는 건가요?”
“아니, 맞아서 강해지는 건 포기해. 다만.”
최강이 주머니를 뒤지더니 신문지로 포장된 무언가를 꺼내 놨다. 최강이 신문지를 벗기자, 붉은색 내단과 초록색 내단이 보였다.
“이게 뭐예요?”
“내단.”
붉은색은 엘리스의 것이었고, 초록색은 이유성을 쓰러트린 직후에 안 보는 틈을 타서 쓱 챙긴 트롤의 것이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알 수 있지?”
진품의 여부를 확인한 주소희가 반사적으로 말했다.
“원하는 게 뭐예요? 그냥 주는 건 아니잖아요?”
최강이 씨익 웃었다.
“계약 연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