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24
24화
그날 밤 으슥한 공원에 최강과 주소희의 모습이 보였다.
주소희가 초록색 내단을 집어 들고 말했다.
“그럼 먹을게요.”
나무 정자에 턱을 괴고 앉은 최강이 말했다.
“그래, 먹어 봐라.”
2개의 내단을 1년 연장하는 것으로 받은 주소희가 먼저 초록색 내단을 입에 집어넣었다.
“…….”
내단을 먹은 주소희가 가만히 서 있자, 최강이 말했다.
“어떠냐?”
주소희가 자신의 두 손을 쥐락펴락하면서 몸을 점검했다. 별다른 느낌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소희가 그것을 말로 표현하려는 그때였다.
“최강 씨, 이거 가짜는 아니…….”
말을 하던 주소희가 갑자기 자신의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숨이 탁 막혀 오는 기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최강…… 씨, 갑자기 숨이…… 안 쉬…….”
최강이 그 자리에서 웅크린 주소희를 바라봤다. 주소희의 몸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초록빛의 기운이 보였다.
“야, 그게 얼마짜린데 밖으로 흘리고 그래? 단전으로 모아, 단전으로! 단전이 뭔지는 알지?”
“그건…… 알긴 아는데, 어……떻게…….”
최강이 웅크리고 앉아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주소희를 보고 말했다.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쩌냐? 넌 평상시에 운기도 안 해?”
“…….”
주소희의 답은 없었다. 벌써 말할 여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잠시 후 주소희의 몸에서 나오던 초록색 빛이 솟구치는 지경에 이르는 것을 본 최강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사실 기대했는데, 역시 혼자서는 힘들려나?”
최강이 최선을 다하는 주소희를 조금 더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때마침 최강의 뒤편에서 집에 남겨 두고 왔던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와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최강이 당연하다는 듯 나무 정자로 폴짝 뛰어 옆에 앉은 여자아이를 슬쩍 흘기고는 말했다.
“조금만 더 지켜보고.”
최강의 말에 여자아이가 최강을 따라 주소희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아버님은 어머님이 저렇게 될 거 알고 계셨죠?”
“뭐…… 대충은.”
“그럼 저대로 두면 폐인이 될 거란 것도 아시겠네요?”
“그렇지. 그런 녀석들 많이 봤으니까.”
너무나도 태연하게 답하는 최강을 보고 여자아이가 말했다.
“아버님.”
“왜.”
“혹시 보험금이라도 노리시는 건가요?”
풉.
실소를 지은 최강이 말했다.
“그런 건 또 누구한테 들었냐?”
“그냥 이쪽 세계로 넘어오고 이것저것 정보를 수집할 때 들은 정보인 것이와요.”
여자아이의 답에 최강은 딱히 더 캐묻지 않았다. 그녀의 고유 능력이 약자를 조종하는 능력임을 알고 있었으니, 정보 수집 정도는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을 것임을 알아챈 것이었다.
‘부럽다, 부러워. 나는 몸으로 부딪쳐서 배웠는데.’
여자아이의 말에 최강이 짤막한 감상을 남겼을 때였다.
주소희가 뿜어내던 빛이 한층 더 강해지는 장면을 확인한 여자아이가 말했다. 여자아이가 보기에는 주소희가 이미 되돌릴 수 있는 한계점을 넘었기 때문이다.
“저…… 아버님, 죄송한 말씀이지만 어머님은 이미 늦은 것 같사와요.”
“…….”
여자아이의 말에 조용히 주소희를 지켜보던 최강이 한숨을 푹 쉬었다. 여자아이의 말과는 조금 생각이 달랐지만, 그렇다고 이 이상 지켜보기에는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서 일어난 최강이 주소희에게 걸어갔다.
“쩝, 아깝네…… 그래도 3할 정도는 흡수했겠지……?”
다가오는 최강을 방해하려는 듯 초록색 기운이 가시 같은 형태로 변화해 파고들었다.
하지만 당연하다는 듯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가볍게 피하며 주소희의 앞에 도착한 최강이 말했다.
“힘 조절에 실패해서 몇 주간 요양 좀 하더라도 너무 원망하지는 말자.”
“…….”
최강이 주소희의 말을 듣지도 않고 주먹을 꽉 쥐었다. 지금이라면 천주갑과 저 초록색 기운 덕에 주소희가 죽지는 않으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개미를 죽지 않도록 밟는 건 어렵지만 사마귀나 메뚜기 같은 곤충은 적절하게 힘 조절이 가능한 것과 비슷한 원리인 것이었다.
최강이 주먹을 주소희를 향해 휘둘렀다.
다음 순간 주소희를 지키려는 듯 뿜어져 나와 방패를 형성하는 천주갑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와…… 터프하셔라.”
최강의 주먹이 방패에 닿았을 때 이렇게 중얼거리는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주갑을 일격에 박살 낸 최강의 주먹이, 초록색 기운을 몰아낸 것도 모자라 주소희의 뺨을 직격하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빙글빙글 회전하며 공원 바닥에서 물수제비 튀듯 멀어지던 주소희가 50미터쯤 날아가 축 늘어지는 것이 보였다.
몸에서 솟구치던 초록색 기운은 잠시 후 서서히 약해지더니 마침내 사라지는 모습이었다.
상황이 끝났음을 확신한 여자아이가 주먹을 말없이 바라보는 최강을 향해 걸어와 말했다.
“죽은 건가요?”
“아니, 기절.”
여자아이가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데 왜 그러시죠?”
“힘 조절을 실패했었어. 순간 실수했나 싶을 정도로…….”
“네?”
최강이 조금 전 주소희의 뺨을 때리기 전 아찔한 순간을 떠올렸는지 미세한 표정의 변화를 보였다.
그때 분명 자신의 판단과는 다르게 너무 쉽게 사라진 초록색 기운 때문에 주먹의 위력이 많이 남았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여자아이가 주소희가 살아 있는 것을 먼발치에서 확인하고는 말했다.
“살아 계신 거 같은 것이와요.”
“말했잖아, 기절한 거뿐이라고. 문제는 그게 아니야.”
“그럼요?”
“내가 거둬들이려던 힘이 중간에 사라졌어.”
여자아이가 무언가 떠오르는 바가 있었는지 말했다.
“어머님의 오라버니들이 강해졌다는 그것과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니겠사와요?”
최강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어디까지나 조절에 실패한 기의 양을 신체가 버텨 낼 수 있는 범위였을 때의 이야기. 애당초 맨몸으로 버텨 낼 만한 양이었다면 거둬들이려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거다.”
최강이 짚이는 것이 있는지 여자아이에게 말했다.
“천주갑과 관련이 있을 확률은?”
“…….”
여자아이가 잠시간 말없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저도 잘 모르겠사와요. 소녀, 아직 나이가 어린 것이와요.”
여자아이의 말을 듣고 최강의 얼굴이 심각하게 바뀌었다. 어디로 그 힘이 사라졌는지 모를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주소희의 옷 위로 올라와 있는 천주갑을 노려보던 최강의 머릿속에 엘리스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이것이 천주갑. 천 년 이상 산 아라크네의 여왕만이 뿜어낼 수 있는 실로 만든 갑옷이니라.
‘천 년이라…….’
엘리스의 말을 되새기며 조금 더 생각하던 최강이 돌연 새삼스러운 눈빛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눈앞의 이 녀석은 몇 살인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보기에는 딱 유치원생 수준인 것이었다.
“야, 넌 몇 살이냐?”
“…….”
최강의 말에 여자아이가 부끄러운지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부끄럽게도 300년밖에 못 살았사와요.”
***
화르륵.
어두운 동굴을 밝히는 횃불에 의지해 걷던 이소군이 마침내 절벽 가운데 난 출구로 빠져나왔다.
발아래 펼쳐진 광경을 눈으로 바라본 이소군이 말했다.
“10년 만이로군…….”
끝이 보이지 않는 울창한 숲 가운데 커다란 크기의 군락지.
꼭 옛 도읍지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이씨 문중의 은거지를 향해 이소군이 발을 옮겼다.
주변의 풍경이 일순간에 휙휙 넘어가더니 10분쯤 후에 이소군은 시끄러운 주변 소리를 들으며 궁궐과 다를 바 없는 커다란 문을 보고 서 있었다.
끼이이익.
거대한 문이 요란스럽게 열리면서 문 중앙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오셨습니까?”
가슴께에 포효하는 범의 얼굴이 수놓아진 보라색 도복을 입은 무인을 확인한 이소군이 말했다.
“아버님은?”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소군이 자신의 말에 그렇게 답하면서 앞장서 안내하는 무인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궐의 내부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궐 외부와 달리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니었다.
시끄럽게 떠들던 사람들도 이소군이 걸으면 모두가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였기 때문이다.
물론 정확히는 이소군이 아닌 자신을 앞장서 걷는 보라색 도복의 남자, 일대제자의 존재 때문이었지만 말이다.
이것이 수천여 명에 달하는 무인 중에 채 서른 명도 안 되는 일대제자의 힘인 것이었다.
한참을 앞장서서 걷던 이소군이 연못 위로 놓인 석재 구름다리를 앞두었을 때였다.
앞장서 걷던 무인이 옆으로 슬며시 물러났다.
“…….”
조용히 고개 숙이는 일대제자의 배웅을 받으며 이소군이 석재 다리를 건넜다.
이소군이 10평 정도 넓이의 육각 나무 정자에 오르자, 반대편 끝에서 좌탁에 앉아 차를 홀짝이던 50대 후반 정도의 외관을 지닌 남자가 말했다.
“거기 대충 앉거라.”
이소군이 남자의 말에 조금 떨어진 곳에 마주 앉자,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도와 달라고?”
“그렇습니다.”
남자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훗…… 10여 년 만에 보는 아들놈의 부탁, 못 들어줄 것도 없는 일이지. 그런데 그 전에.”
남자가 눈을 예리하게 뜨며 말했다.
“후계는 도군이 녀석에게 주는 것에 대해 불만 없다고 생각해도 되는 것이겠지?”
“물론입니다. 제가 졌습니다. 도군이에게 뜻대로 물려주십시오.”
이소군의 대답을 들은 남자가 흡족한 얼굴을 만들었다.
“그래, 부탁이 무엇이냐?”
이소군이 말했다.
“봉문을 풀고 주씨세가와 류씨세가를 멸하는 것을 도와주십시오.”
이소군의 말을 들은 남자의 표정이 굳었다.
10여 년 전 자신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문중을 떠났던 이소군이 수그리고 들어오는 조건으로 무언가를 제시한다면 그것이 보통 사안이 아니라는 것쯤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예상했던 것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정씨 문중과 조씨 문중을 동시에 건드리자는 말이냐?”
“어차피 조만간 봉문을 풀고 기지개를 켤 생각이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후계 문제로 일어난 반발 세력만 규합하면 삼파전을 유도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그것이 문제가 아니지 않느냐? 여차하면 조씨 문중, 정씨 문중의 협공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다!”
이소군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이소군의 단호한 말에 남자가 물었다.
“뭐라? 확신할 수 있느냐?”
“물론입니다. 조씨 문중과 정씨 문중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흐음…….”
잠시간 자신의 까끌까끌한 턱주가리를 쓰다듬으며 생각하던 남자가 말했다.
“만약 내가 말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만약 그런 경우가 생긴다면 제가 홀로 책임지겠습니다.”
이소군의 말을 듣고 머릿속으로 주판을 두드리던 남자가 말했다.
“좋다. 네가 확신한다고 하니 일단은 뜻대로 하마.”
“감사합니다.”
자신을 향해 고개 숙인 이소군을 바라보던 남자가 말했다.
“그보다 궁금한 게 있다.”
“말씀하십시오.”
“후계를 위해 10년을 문중을 떠나 있던 네가 이제 와서 고작 이런 부탁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네 말마따나 어차피 머지않은 시일에 거사는 일어났을 것이다.”
이소군이 말했다.
“주씨세가와 류씨세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자가 이해가 되지 않았는지 인상 썼다.
“흐음…… 그곳에 무언가 있는 것이냐?”
“있습니다.”
남자의 말에 답한 이소군이 고개를 들어 올리며 뒷말을 뱉었다.
“제 손으로 죽이고 싶은 녀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