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26
26화
경고장의 내용은 이러했다.
[현시간부로 주씨세가와 류씨세가, 두 곳과 관계된 모든 사람은 적으로 간주하나니.이들과 관계를 끊고 몸을 낮추는 자, 불어올 피바람을 피할 것이요, 방자한 정승들은 목을 잃을 것이다.
살고자 하는 나그네들은 고개 숙여 다가올 왕께 경배하라.
그리하면 죽음을 면치 못할 죄인을 제하고, 왕의 발아래 거할 은혜를 베풀 것이니.]
‘죽음을 면치 못할 죄인이라…… 재밌네.’
경고장을 읽은 최강은 죽음을 면치 못할 죄인이 자신을 의미함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된 원인이 자신이 그날 산에서 죽인 그 남자와 관련이 있으리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주진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제로도 3일 전부터 다량의 사망 사건이 발생해서 저희 세가만 벌써 사망자가 100여 명을 넘은 상태입니다.”
“그렇습니까? 그거 큰일이네요.”
벌써 100여 명의 사망자가 나온 큰 사건임을 말했음에도 미적지근한 최강의 말투에 주진강이 조금 더 어필했다.
“이런 말 드리기는 부끄럽지만, 그 일 때문에 세가의 많은 무인들이 위약금까지 물면서 계약 해지를 원하고 있기도 한 실정입니다.”
“그래서요?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최강의 물음에 주진강이 굳은 얼굴로 망설였다.
주진강은 사실 김준영에게 주소희가 최강과 나름 우호적 관계를 이어 가고 있음을 전해 들은 바 있었다.
실제로도 그런 것 같았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반응은 뭐란 말인가?
원래 정에 이끌려 살아갈 수만은 없는 현대사회라지만 되레 남보다 못한 싸늘한 반응 아닌가?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짚이는 구석이 없자 주진강이 떨리는 입술을 열어 말했다. 무림을 쥐락펴락하는 문중도 아니고 자신보다 배 이상 어려 보이는 청년에게 부탁하는 것이 몹시 낯설었다.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최강은 사실 주씨세가에 대한 인상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
일전에 트롤 사냥에 대한 수익을 주씨세가 측에서는 한 푼도 남김없이 꿀꺽했음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무료로 도와줄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물욕이 있어서가 아니라 뭔가 부당한 대우를 받은 듯해서 그때의 보복이었다.
“저는 무보수로 일 안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무…… 물론입니다.”
주진강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원래 정확한 금액을 제시하지 않고 뭉뚱그려 말하는 이런 유의 협상이 가장 위험함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최강이 말했다.
“그럼 그 전에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하시죠.”
흔쾌히 주진강이 말하자 최강이 말했다.
“정씨 문중……이었나? 여하튼 뒷배가 있으시다면서요. 그놈들은 어쩌고 저한테 부탁하십니까?”
“…….”
주진강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정씨 문중도 경고장이 무서웠나 봅니다.”
주진강의 침울한 목소리를 들은 최강이 속으로 실소를 터트렸다.
한마디로 최고의 세력이라고 생각하던 정씨 문중조차도 꼬리 말고 포기한 상대를 막아 달라고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일개 개인에게 말이다.
하지만 뭐, 그렇다고 해서 불쾌하거나 그런 기분은 아니었다. 오히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적당한 명분도 생겼겠다, 가책 없이 죽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혹시나 개과천선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단순한 기우로 밝혀진 이후였다. 거리낄 것이 없는 것이다.
“자…… 잠시.”
주진강이 최강을 따라 급하게 일어섰다.
주진강이 자신의 목소리에 반쯤 뒤돌아서는 최강을 보고 말했다.
“화장실은 저쪽입니다만.”
“화장실……?”
무슨 소린가 싶어 잠시간 생각하던 최강이 이해한 듯 주먹으로 손바닥을 툭 쳤다.
“아하! 화장실 가는 게 아닙니다만?”
“그, 그럼……?”
“당연히 일하러 갑니다.”
“일……이라고 하시는 건, 이씨 문중 말씀이십니까?”
주진강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최강이 다시 뒤돌아섰다. 대수롭지 않은 듯한 최강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오래는 안 걸리겠지만…… 뭐 적적하시면 이참에 주씨세가의 목숨값이라도 미리 생각하고 계시든가요. 얼마 정도가 적당할지.”
***
서울 도심 한복판에 세워진 60층짜리 타워빌딩.
대한민국 무림을 총괄하는 ‘대한무인협회’라는 명칭의 정부 측 기관이었다.
총 60층으로 이루어진 타워는 10층 단위로 카드 등급에 따라 출입 제한이 걸린다.
당연히 낮은 층부터 위로 올라갈수록 그 보안이 강해지며 50층 이상부터는 어지간한 유명 인사도 함부로 출입 못 하는 1급 보안 장소였다.
그리고 때마침 최고의 보안을 자랑하는 마지막 층에 위치한 회의실에 들어서는 남자가 있었다.
회의실에는 남자의 자리 빼고는 벌써 만석이었다.
검은 계열의 양복을 빼입은 60대 남성이었다.
“현재 상황은 어떤가?”
남자가 자신의 자리에 앉으며 말하자 서서 대기하고 있던 안경 쓴 남자가 말했다.
“일반인은 이미 모든 인원이 대피를 완료했고, 현재는 무림인만 남은 상태입니다.”
남자가 잠시간 생각하더니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이해가 안 돼서 말이야. 김 비서관, 자네 생각엔 어째서 100여 년 만에 움직인 이씨 문중이 고작 주씨세가와 류씨세가에 연연하는 것 같은가? 역시 조씨 문중과 정씨 문중을 대적하는 움직임인가?”
남자의 물음에 김 비서관이 답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그럼?”
“사실 처음에는 별다른 정보가 없어서 그렇게 추측했지만 석연찮은 점이 있지 않았습니까?”
“석연찮은 점?”
“이씨 문중이 아무리 힘을 키웠다고 해도 조씨와 정씨 문중을 동시에 상대할 만한 수준이라는 건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정씨 문중보다도 못한 수준이겠지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나도 그 점이 이상하던 차였네. 너무 과하게 일을 키우는 느낌이었어.”
김 비서관이 말했다.
“앞에 놓인 보고서를 읽어 주시겠습니까?”
비서관의 말에 자리에 앉아 있던 10여 명의 사람들이 보고서를 읽고 각양각색의 표정들을 그렸다.
남자가 말했다.
“트롤……? 아아, 기억나는군. 그때 보고받았던 기억이 있어. 프리저와 관련이 있다고 해서 자네가 보냈던 보고였지.”
남자의 말을 듣고 맞은편 남성이 흥미로운 말투로 말했다. 남자는 한눈에 봐도 50~60은 되어 보였는데 나이대에 맞지 않게 건장한 체격이었다.
“프리저……? 요즘 매스컴에서 떠드는 그 의문의 고수 말인가?”
“그렇네. 혈기 왕성한 무림인들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그런 인재가 필요할 것 같아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
남성의 이름은 강성훈.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수이며 세계에서도 100위권 내로 인정받는 고수였다.
협회는 바로 이러한 고수들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강성훈이 갑자기 대화에 끼어든 자신 때문에 이야기가 끝나길 기다리는 비서관을 보고 말했다.
“아아, 미안하네. 이야기 계속하게나.”
강성훈의 말에 가볍게 고개 숙인 비서관이 말했다.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이렇습니다. 사실 크게 보면 조씨 문중과 정씨 문중의 비호를 받고 있는 두 세력을 건든 이씨 문중도 이해가 안 되지만 사건에 대해 침묵하는 두 문중의 행동도 의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해 봤습니다. 애초에 이씨 문중이 주씨세가와 류씨세가를 표적으로 삼은 것은 조씨 문중과 정씨 문중이 소극적인 자세를 보일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공격할 수 있었던 것일 뿐이고, 이번 주씨세가와 류씨세가가 표적이 된 원인은 근본적인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근본적인 이유?”
“보고서에 보면 유일한 사망자가 나옵니다.”
비서관의 말에 남자가 보고서에 적힌 사망자의 이름을 읽었다.
“이유성? 그런 거였나?”
어째서 류씨세가와 주씨세가가 표적이 됐는지 알 것 같았다. 트롤 사건을 처리한 것은 주씨세가와 류씨세가였기 때문이다.
남자가 잠시간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럼 김 비서관, 자네의 생각엔 어떤가? 프리저가 이번에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사실 협회 측의 입장에서 놓고 보면 최강의 승리를 기원하는 것은 당연했다.
최강을 협회 쪽으로 끌어들이려던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정씨 문중과 조씨 문중만 해도 당장에 문제인데 또 다른 거대한 무력 단체가 하나 더 생긴다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김 비서관이 남자의 그런 속내를 읽은 것인지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프리저가 강력한 고수인 것은 맞습니다만 이씨 문중은 집단입니다. 집단을 이겨 내기엔 프리저는 너무 어립니다.”
예상대로의 답변이 들려왔다.
속으로 아니길 바라고 있었지만 예상했던 그대로의 답이 들려온 것이었다. 어쩐지 입맛이 썼다.
“후…….”
남자가 말했다.
“어쩔 수 없구만. 아쉬운 대로 프리저가 최대한 이씨 문중의 전력이라도 갉아먹어 주기를 바랄 수밖에.”
***
주씨세가의 건물을 홀로 빠져나온 최강은 한적한 길을 걷고 있었다.
확실히 이미 피난령이 내려진 탓인지 도로변은 조용했다.
‘이쪽인가?’
가는 길은 누가 알려 주지 않아도 걱정할 일이 없었다.
주씨세가의 주변에는 도주를 고려한 이씨 문중이 무인들을 펼쳐 놨기 때문이다.
무인들의 수준은 확실히 류씨세가니 주씨세가니 하는 무인들과는 비교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뛰어났다.
최강이 기척이 있는 길을 따라 5분쯤 걸었을 때였다.
걸음을 멈춰 선 최강이 텅 빈 도로 중앙에 서서 말했다.
“이봐, 나와 보는 게 어떠냐?”
“…….”
나타나는 반응이 없었다.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면 최강이 다 낯 뜨거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하…….”
기다리다 못한 최강이 한숨을 쉬며 우측 대각에 위치한 건물 옥상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그 순간.
샤샥.
머리를 긁적이는 남자와 뭐가 그렇게 좋은지 킥킥대는 한 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자주색 도복에 가슴께의 호랑이 무늬.
이씨 문중의 일대제자들이었다.
“거봐, 새끼야! 네가 걸린 거 맞지?”
“아직 기다려! 물어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 아니냐?”
일대제자들을 쓱 훑어본 최강이 짤막한 소감을 남겼다.
‘음…… 뭐 쓸 만하긴 하네.’
이유성보다는 조금 약했고, 엘리스 수준 정도는 되어 보였다.
일대제자 중에 한 놈이 말했다.
“이놈이냐? 나냐?”
피식.
가볍게 웃은 최강이 말했다.
“은신을 말하는 거라면 두 놈 다다. 특히 옆에 놈은 더 형편없던데? 답이 됐냐?”
등장부터 쭉 웃음 일색이던 일대제자 쪽의 얼굴이 굳어졌다. 형편없다는 말을 들었으니 당연했다.
“뭐, 인마?”
최강을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는 동료를 말려 세우며 일대제자가 말했다.
“뭐 하는 놈이냐? 치안이나 담당하는 반편이 놈들이 은신을 꿰뚫었을 리는 없고, 다른 문중의 녀석이면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 텐데?”
최강이 말했다.
“글쎄, 뭐 하는 놈이냐고 물어보면 해 줄 말이 없다는 말이지?”
난처한 얼굴로 머리를 벅벅 긁던 최강이 말했다.
“꼭 말해 줘야 하냐?”
“아니. 말하기 싫다면 할 필요 없다. 다만, 선택할 필요성은 있겠군. 얌전히 돌아갈지, 아니면 맞고 돌아갈지.”
일대제자의 말을 들은 최강의 입꼬리가 옅게 올라갔을 때였다.
훅 꺼지듯 사라진 최강이 화를 내던 일대제자의 후면에서 나타났다.
우두득.
목이 두어 바퀴 돌아간 일대제자가 털퍼덕하고 드러누웠다.
“…….”
정적.
가뜩이나 조용한 도심 한복판이 고요하게 느껴질 정도의 정적이 흘렀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다른 한 녀석이 너무 놀란 나머지 얼어붙은 이유였다.
씨익.
정적을 깬 것은 최강이었다.
“너는 참 운이 좋단 말이야?”
섬찟.
최강의 목소리를 들은 일대제자가 화들짝 놀라 폴짝 뒤로 물러났다. 쓰러진 동료를 보고 일대제자가 말했다.
“어이, 뭐 해? 장난하지 말라고!”
동료 녀석의 실력은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안다. 기습을 허용했다고 하더라도 일격에 숨이 끊어질 녀석이 아니었다.
“젠장할…….”
이런 일은 꿈에서조차 벌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현실을 부정하던 일대제자가 최강을 바라보며 으득 이를 갈았을 때였다.
최강이 선심 쓰듯 말했다.
“가 봐. 너는 특별히 한 번만 살려 줄게.”
믿을 수 없다는 듯 일대제자가 말했다.
“뭐……라고……?”
“가 보라고. 살려 줄 테니까. 아님, 죽을래?”
“아…… 아니다.”
최강의 눈에 경계하며 물러나는 일대제자의 모습이 보이고, 잠시 후였다.
일정 거리까지 멀어진 일대제자가 잔상을 남기며 사라졌다.
최강이 기대된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자…… 그럼 기다려 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