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29
29화
이소군이 검강에 베이는 순간.
이소군을 보호한 물건이 있었다.
이소군이 지난 10년간 엘리트 몬스터들을 잡으며 수집했던 프로텍트링이었다.
크윽…….
쓰러진 이소군이 신음하며 중지와 검지에 끼워진 반지를 확인했다. 붉은색 수정으로 된 반지 1개와 푸른색 수정으로 된 반지 3개가 보였다.
반지의 숫자를 확인한 이소군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빌어먹을…….’
본래 5개였던 프로텍트링이 3개밖에 없었다.
일격에 2개가 부서졌다는 소리였다.
프로텍트링을 일격에 2개를 부숴 버리는 녀석이 존재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이제 여벌 목숨이 3개밖에 남지 않았음을 명심한 이소군이 최강의 움직임을 얌전히 주시했다.
가까이 다가온다면 기습을 할 생각이었고, 녀석이 달아난다면 기회를 봐서 도망갈 생각이었다.
잠시간 기다리자 최강의 기척이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소군이 미친 듯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사방을 덮은 모래 먼지 덕에 숨 쉬기는 곤란했지만 몸을 감추기에는 편해서 도망가기에는 더 용의했다.
한참을 어둠 속에서 달리던 이소군이 멈춰 섰다.
프로텍트링으로 흡수하고 남은 충격이 몸에 부담을 줬기 때문이었다.
숨을 헐떡이며 멈춰 선 이소군이 토막 난 건물 벽을 잡고 잠시간 숨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오싹.
이소군이 화들짝 놀라며 뒤돌아섰다. 모래 먼지 속에서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최강이었다. 최강을 확인한 이소군이 말했다.
“어떻게…… 네놈이!”
최강이 이소군의 물음에 말했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설마해서 돌아와 봤으니 망정이지.”
“…….”
최강이 어이없다는 말투로 말했다.
“너 어떻게 살아 있냐?”
“빌어먹을…….”
겁먹은 얼굴로 물러나는 이소군을 보고 최강이 말했다.
“말해 봐. 어떻게 살아 있냐니까?”
필시 손에 베는 감촉이 있었는데, 의아한 일이었다.
“글쎄, 왜일 거 같냐?”
쿠웅.
최강의 주먹이 신경질적으로 이소군의 복부에 박혔다.
“모르니까 물어본 거거든?”
이소군이 복부를 움켜쥐고 무릎 꿇은 채 속을 게워 내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을 차갑게 내려 보던 최강이 말했다.
“다시 한번 묻는다. 어떻게 살아 있냐?”
“허억…… 허억…….”
소맷자락으로 입가를 닦아 낸 이소군이 독기 가득 찬 눈으로 말했다.
“궁금하면 무릎이라도 꿇어 보든지.”
최강이 이소군을 향해 주먹을 쥐었다.
“됐다. 흥미 없어졌어.”
뭔가 할 것 같은 최강의 모습에 이소군이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곧이어 건물 벽에 가로막혀 걸음이 멈춘 이소군이 어색하게 웃으며 최강에게 말했다.
“후회할 텐데?”
“고려 좌군 첫 번째 주먹.”
이소군이 최강의 주먹이 내질러지는 것을 확인하고 입꼬리를 올렸다.
“천지 가르기.”
“병신, 후회할 거랬지이!”
말을 하던 이소군의 얼굴에 주먹이 직격했다.
이소군이 벽을 뚫고 통통 튀며 10여 미터를 날아가 쓰러졌다. 잠시 후 비틀거리며 일어난 이소군이 뭉개진 얼굴로 웃기 시작했다.
“으하하하하!”
마치 실성이라도 한 것처럼 광소하던 이소군의 웃음소리와 함께 천지 가르기의 효과가 뒤늦게 나타났다.
콰과과광.
이소군의 방향이 아니었다. 여전히 내지르는 자세를 하고 있던 최강을 향해서였다.
되돌아온 천지 가르기가 지나간 자리가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변해 갔다.
잠시 후 폐허가 된 그곳에는 최강이 들고 온 듀랑달만 덩그러니 떨어져 있었다.
***
이듬해가 되는 열세 살 봄이었다.
처음에 누구의 생각이었는지 모를 의견 때문에 나는 그해 동맹제에 참가하게 되었고, 동시에.
“승자 최강.”
동맹제의 우승자가 되어 있었다.
사회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동경과 축하의 목소리들.
기뻤다.
그저 순수하게 기뻤다.
나의 재능을 칭찬받은 것 같아 기뻤고, 또 형님이 가르쳐 주신 맨손 박투라는 능력으로 이겨 더욱 기뻤다. 형님의 호의에 보답한 것만 같았다.
“상장군, 경하드립니다.”
“경하는 무슨, 다 강이 녀석이 잘나 일어난 일인 것을. 정 칭찬을 하려거든 오늘 만찬 때 강이에게나 해 주게나.”
“암요, 암요! 안 그래도 하려고 했습니다. 마지막에 방어를 무너트리는 천지 가르기와 이어지는 천지 울리기는 정말이지 이게 고작 열세 살짜리가 맞나 싶더랍니다.”
비무대에서 내려서던 나의 눈에 측근들과 기꺼운 대화를 나누는 아버님의 모습이 보였다.
나의 눈이 아버님을 떠나 분주하게 누군갈 찾았다.
회장 어딘가에 있을 형님이었다.
“형님!”
회장을 빠져나가려는 형님의 모습을 겨우 발견한 내가 전력을 다해 형님에게 달렸다.
“형님!!”
나의 목소리를 못 들으신 걸까?
아랑곳하지 않고 걸어 나가는 형님의 모습이 보였고, 나는 그럴수록 발을 더욱 보챘다.
마침내 사람들을 헤치며 회장 밖까지 나온 내가 형님의 등 뒤까지 도착해 말했다.
“형님.”
형님이 걸음을 멈추며 뒤돌았다.
“무슨 일이냐?”
형님의 차가운 눈을 본 내가 잠시 움찔했다가 용기를 내었다.
“저 우승했습니다.”
“그래, 그렇더구나. 축하한다.”
“아닙니다. 형님 덕분입니다. 맨손 박투는 형님이 알려 주신 거 아닙니까?”
형님의 입가에 자조적인 웃음이 피어났다.
“그랬지. 내가 알려 줬었지……. 멍청하게.”
“네……?”
“아무것도 아니다. 별다른 용무가 없으면 이만 가 보마.”
형님이 점점 멀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멀어지는 형님의 좌우에서는 자주 뵈어 왔던 아버님의 측근 두 명이 무언가 연신 조잘거리고 있었다.
***
그날 집에서는 거한 만찬회가 열렸다.
동맹제의 우승자가 배출된 곳에서 곳간을 열어 축복을 기리는 관습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날 음식이 남아 도성의 거렁뱅이들에게까지 밥을 내어 줄 정도로 성대하게 만찬을 열었던 것을 보면 비단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두 도련님들이 날이 갈수록 장성해지시니 장군께오서는 듬직~하시겠습니다.”
“누가 아니랍니까? 이거 몇십 년 뒤에는 둘째 도련님께 무신이라 불러야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사람 참…… 아무리 그래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아직 먼 소리네!”
아버님이 두 가신의 말에 도드라지게 말했지만 얼굴은 웃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버님도 사람들이 나더러 차기 무신이라며 띄워 주는 것이 싫지는 않은 듯했다.
가신 하나가 아버님과 대화를 하다가 나를 보고 말했다.
“그런데 오늘 만찬의 당사자께서는 별로 기분이 좋지 못하신 듯합니다?”
낮에 형님과의 일 때문에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 있었나 보다.
내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냥 좀…… 피곤해서요.”
가신이 장사치 같은 웃음을 그리며 말했다.
“피곤하시다니 걱정입니다만, 그럴수록 좀 더 즐기시는 게 어떻습니까? 열세 살에 동맹제의 우승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첫째 도련님도 10년 전에 4위밖에 하지 못했던 게 동맹제입니다.”
10년 전에 4위…….
형님이 올해 스물다섯 살이시니 열다섯 살 때의 일이라는 것이었다.
평균연령대가 10대 후반의 경쟁자들과 겨루어야 하는 동맹제에서 10대 중반의 출전자가 4위면 나름 쾌거를 이룬 것이라 말할 수 있었다.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형님이 뭔가 부족한 사람 취급받는 것 같은 느낌에 불쾌함을 느낀 내가 말했다.
“4위면 잘한 거 아닌가요?”
벙찐 얼굴을 하던 가신이 잠시 후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그…… 그렇지요.”
나의 말에 시끄럽던 만찬의 분위기가 점차적으로 조용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따가운 시선. 그리고 구경거리가 된 듯 작게 귀에 대고 수군대는 목소리들.
하나같이 불쾌한 것투성이인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하던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마도 죄의식을 느꼈던 것 같다.
“죄송합니다. 피곤해서 안 될 것 같습니다. 일찍 자러 가 보려는데 괜찮겠지요, 아버님?”
“그래, 그리하거라.”
방을 빠져나온 나의 귀에 가신을 달래는 아버님의 목소리와 다시 북적이는 수선거림이 들려왔다.
침소로 향하는 나의 머리에 복잡한 심정이 교차했다.
오늘 낮에 형님이 기분이 상해 계셨던 이유가 짐작이 됐기 때문이었다.
다음에 형님을 만나면 화해해야겠고…….
아니, 화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나는 침소로 그날 그렇게 들어갔던 것 같다.
그리고 3년…….
길다면 긴 시간이 흘렀다.
형님과의 사이는 나의 그날 의지와는 다르게 점점 멀어져 갔다.
얼굴을 대면하고 인사라도 나눈 게 마지막으로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서로 바빠졌기 때문일까?
아니었다.
애써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지만 은연중에 나는 이미 다른 이유가 있을 것임을 그 무렵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우연히 업무적인 상담을 하기 위해 아버님의 집무실 앞을 지나며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바로 받아들였던 것을 돌이켜 보면 말이다.
“장군…… 다시 한번만 생각해 보십시오. 후계를 둘째 도련님으로 정하시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문제? 무슨 문제 말인가? 내가 이 고려의 상장군이고 또 무신이거늘, 누가 감히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인가!”
“장군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큰 하자가 없으면 본래 장자에게 후계가 이루어지는 것이 관례라는 것을요.”
“능력 있는 자식에게 후사를 물려주겠다는 것이 이토록 문제란 말인가?”
“뜻하시는 바를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가신들은 첫째 도련님을 후계로 모셔 왔습니다. 갑작스러운 중대사의 변경이 내부에 분열을 야기할 겁니다.”
“하…… 이 이야기는 그만하세. 내 조금 더 생각해 볼 테니.”
“장군!”
“어허! 슬슬 강이 녀석이 올 시간이야. 돌아가 주게.”
집무실 밖에서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의 머릿속에 불현듯 형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날 나를 차갑게 바라보던 그 얼굴이었다.
“그렇구나…….”
후계 문제였다.
항상 커다란 벽이 하나 막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는데, 그 벽이 후계 문제였던 것이다.
그날 집무실 앞에서 갈등하던 형님의 어색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어서 형으로서의 정을 잘라 내지 못했던 자신을 탓하던 자조적인 웃음도 떠올랐다.
형님은 아마도 오래전부터 느끼고 계셨던 거다. 아버님의 관심이 자신에게서 나에게로 옮겨 가는 것을.
나는 어느새 형님에게, 품어야 할 대상이 아닌 정적이 되어 있던 것이었다.
형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나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어렵지 않게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제부터라도 천재가 아닌 범인의 인생을 살면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아버님의 기대를 다시 형님에게 되돌리면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워하시겠지만 곧이어 납득하시겠지.”
지금 생각해 보면 강율 장군의 아들 녀석에게는 미안하다. 그날 녀석에게 필요 이상의 힘을 가해서 고자로 만들어 버린 것도 단순한 연기의 일환이었을 뿐이니까.
***
건물 잔해 속에 묻혀 있던 최강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자신에게로 몰아치기 직전, 급하게 내공으로 몸을 보호한 덕에 그렇게 큰 타격은 없었다.
잔해 위에 앉아서 자신의 손을 쥐락펴락하며 바라보던 최강이 중얼거렸다.
“그런가……? 형님은 여기에 안 계셨지…….”
오랜 꿈에서 깨어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래된 쇠고랑을 내려놓은 듯한 느낌.
그렇다. 이제 더 이상 범인(凡人)인 척 연기를 할 이유가 없었다.
최강이 주먹을 꽉 쥐며 몸을 일으켰다.
“이 새끼가 자꾸 개수작을 부려…….”
뭔가 홀가분해진 듯한 기분을 느낀 내가 이번 의뢰를 마무리 짓기 위해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