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32
32화
쓰러진 최말숙을 이상호가 밟았다.
쿨럭.
피를 토해 내는 최말숙의 모습이 보였다.
“후~ 이제 대충 정리된 거 같구만.”
주소희가 자신에게 한 걸음 걸어오는 이상호를 주시하며 뒤편을 슬쩍 흘겼다.
조금 전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 줬던 무인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최말숙이 빈사 상태에 빠지며 의식을 잃은 것이었다.
“자, 어디부터 베어 줄까? 허벅지가 좋을까? 아니면 나처럼 팔?”
주소희가 주변을 살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법한 것을 찾기 위함이었다.
‘틀렸어…….’
안타깝게도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찾지 못한 주소희가 망연자실한 눈으로 최말숙을 바라봤다.
가슴에서 죄책감이 느껴졌다.
최말숙의 의견에 따랐어야 했는데 무책임한 고집이 괜한 최말숙까지 말려들게 했다.
후회하는 주소희의 머릿속에 갑자기 최강의 얼굴이 떠올랐다.
‘일을 나갔다 하면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돌아오곤 했는데…….’
최강의 생각을 하던 주소희가 자조적인 웃음을 그렸다.
자신의 손으로 해내 보이겠다며 고집부릴 때는 언제고, 결정적인 순간이 되자 최강을 떠올리는 자신이 우스웠기 때문이다.
“아니! 역시 시작은 허벅지가 좋겠어.”
주소희가 어느덧 코앞까지 다가온 이상호를 보고 검을 강하게 쥐었다.
“뭐랄까? 다리가 잘려서 벌벌 떠는 모습. 기분 좋거든.”
주소희가 이상호의 손이 들리는 모습을 보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결과가 변하지 않더라도 쉽게 죽어 줄 마음은 없었기 때문이다.
“아, 조심조심.”
여유롭게 주소희의 공격을 피해 낸 이상호가 공격하려다 말고 화들짝 놀라며 주소희를 강하게 밀어냈다. 10여 미터쯤을 주소희가 주르륵 밀리는 모습이 보였다.
한쪽 팔이 사라진 탓일까, 무게중심에 휘청거리던 이상호가 중얼거렸다.
“아 씨~ 한쪽 팔이 없으니까 조준하기 힘들단 말이지.”
검을 휙휙 휘두르며 푸념하던 이상호가 영점을 잡은 듯 주소희를 바라보며 서서히 다가갔다.
이번에는 성공하겠다는 집착이 느껴졌다.
점점 걷는 속도를 올리던 이상호가 갑자기 자리에서 멈춰 서는 모습이 보였다.
쿠구구구궁.
일대를 흔드는 지진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
“여긴 어디지……?”
주소희가 주변을 급하게 두리번거렸다.
방금 전 지진이 났다고 인지한 순간.
그다음, 눈을 한번 깜박였을 때 이미 이곳이었기 때문이다.
주소희가 순백의 공간에서 홀로 두리번거리길 잠시였다.
주변의 모습이 고풍스러운 연회장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정면에 펼쳐진 연회장 내부의 계단 꼭대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환영하는 바이네, 여인이여.”
주소희가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올렸다.
처음 보는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
“그렇군. 그대와 나는 초면이었구나.”
주소희가 여인을 관찰하듯 바라보자 여인이 말했다.
“반갑구나. 나는 고귀한 아라크네의 여왕. 엘리스라고 한다, 여인이여.”
‘여왕……?’
주소희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변했다.
아라크네의 여왕이라면 최강에게 죽었다고 그랬는데, 살아 있는 것도 이상했을뿐더러 더군다나 겉으로 드러난 태도가 적의가 아닌 호의였기 때문이다.
엘리스가 자신의 소개에 주소희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말했다.
“왜 그러지? 무슨 반응이라도 보여 줬으면 좋겠구나.”
주소희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 네, 죄송해요.”
엘리스가 붉은 눈동자를 인자하게 만들며 말했다.
“그대의 무례를 눈감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지.”
다행히 목소리에서 적의를 느끼지 못한 주소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때였다.
또각. 또각. 또각.
귀부인의 복장을 한 엘리스가 계단을 내려와 세 칸 정도를 남기고 멈춰 서는 모습이 보였다.
“그럼 나의 청을 들어준 그대들에게 약속한 보상을 주어야겠지.”
“약속……이요?”
엘리스가 웃으며 말했다.
“그대의 정인이 말을 해 주지 않았나 보구나. 천주갑을 주기로 했었던 것을 말하는 바이다. 방금 전 지진으로 그대들의 소임이 끝이 났으니 이제 나의 차례인 것이다.”
‘지진……?’
그러고 보니 자신이 이곳으로 이동하기 전 지진이 있었다. 그것이 최강과 관련된 것임을 느낀 주소희가 말했다.
“여긴 어딘가요?”
“천주갑 안이다. 그대의 앞에 있는 나는 조그만 나의 파편이라고 보면 될 테고.”
“그럼 천주갑을 주겠다는 말씀은……?”
주소희가 자신이 입고 있는 천주갑을 바라봤다.
“하나 더 주신다는……?”
엘리스가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재밌는 농담을 하는구나. 천주갑은 아라크네의 왕관. 2개나 존재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
그러고 보니 최말숙도 전에 그런 말을 했던 것 같았다.
주소희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럼……?”
“천주갑을 놓고 하는 거래다. 이 몸이 아무런 의심도 없이 덜컥 천주갑을 넘겼을 리가 없겠지?”
엘리스가 한 칸 더 계단에서 내려왔다. 엘리스가 주소희의 가슴께에 손바닥을 대자 찬란한 붉은빛을 내뿜으며 안에 입은 천주갑이 빛나기 시작했다.
“가지고 갔던 천주갑의 진짜 능력을 돌려주겠느니라.”
번쩍.
극에 다다른 천주갑이 빛이 폭발하듯 번쩍이며 평소처럼 돌아갔다.
“끝인가요?”
“그렇다.”
“어떤 능력인데요?”
잠시간 생각하던 엘리스가 말했다.
“아라크네가 다른 종족의 수컷의 양기를 빼앗아 번식을 하는 것은 알고 있느냐?”
이것도 최말숙에게 들은 적이 있는 이야기였다. 주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방금 전에 돌려놓은 능력은 그 양기를 흡수해 정제하는 데에 특화된 능력이다. 쉽게 말해 주자면 착용자의 성장을 도와주는 능력이라 보면 되겠구나.”
“양기요……. 양기는 어떻게 흡수하는데요?”
엘리스가 주소희를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재밌다는 듯이 쿡쿡 웃음을 삼키며 말했다.
“생각보다 순진한 여인이로구나.”
“…….”
주소희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엘리스가 주소희를 보고 말했다.
“정 여의치 않다면 효율은 낮겠지만 단순히 손만 잡고 있어도 상관없느니라. 그도 아니면 저번처럼 때려 달라고 하는 것도 방법이겠지.”
말을 하던 엘리스가 입을 닫고는 주변을 바라봤다.
연회장의 모습이 다시금 순백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슬슬 마지막이구나. 녀석의 절망에 잠긴 표정을 직접 보고자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려나……?”
모래처럼 흩어지며 엘리스가 말했다.
“이해가 안 된다면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마침 상황도 딱 좋지 않았더냐?”
엘리스가 사라지고 잠시 후였다. 마지막 엘리스가 남긴 말이 울려 퍼졌다.
“이제 이 천주갑은 온전히 너희의 것이다. 무운을 빌어 주마. 고강한 기사와 젊은 배필이여.”
***
주소희가 다시금 로비의 모습이 보이자 놀란 눈을 해 보였다.
“자, 그럼 하던 걸 마저 해 볼까?”
하지만 놀라기도 잠시, 코앞의 이상호가 사라지는 모습을 본 주소희가 황급히 움직였다.
자신의 뒤를 점하려는 이상호의 움직임이 보였기 때문이다.
뒤돌아선 주소희가 이상호의 내리쳐지는 검을 막으려다 말고 얼빠진 얼굴을 해 보였다.
카앙.
처음 보는 형태의 순백의 방패가 보였기 때문이다.
카앙 카앙 카앙.
주소희만큼이나 당황한 이상호의 얼굴이 보였다. 아무리 후려쳐도 꿈쩍도 안 하는 게 아까와는 다른 분위기를 어렴풋이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연달아 터지는 쇠붙이 소리를 들으며 주소희가 생각했다.
“할 수 있어…….”
이전의 트롤 때와 비슷한 감촉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방패가 어째서 더 강력해졌는지는 알 겨를이 없었지만 지금의 이 감촉.
이 감촉이 느껴지는 상태라면 이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주소희가 이상호를 향해 질주했다.
이전에 비한다면 배 이상은 신속했다. 그때는 엘리스가 천주갑에 흡수해 뒀던 질 낮은 양기가 공급된 것이었다면, 지금은 저번에 흡수한 최강의 내공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일순간에 이상호의 품까지 파고든 주소희가 검을 휘둘렀다.
캉.
겨우겨우 주소희의 검을 막아 낸 이상호가 수십 미터를 날아가 뒹구는 모습이 보였다.
이상호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어…… 어떻게 네년이!! 분명히 조금 전까지는 쓰레기였단 말이다! 쓰레기였는데!!!”
주소희의 검 끝에 검강이 발현되어 있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검강은 자신도 몇 년 전에야 겨우 다다른 경지. 반쪽짜리 무림인이 흉내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이었다.
“…….”
이상호의 물음에 답하기보다 오히려 자신감을 얻은 주소희가 무언가에 쫓기듯 이상호에게 달려갔다. 이를 꽉 깨문 이상호가 마지못해 달리는 모습이 보였다.
일순간에 중간 지점에서 충돌한 두 사람이 검을 맞대고 멈춰 서는 모습이 이어졌다.
“이럴 리가…….”
촤아아아아아.
어깨부터 심장까지 베인 이상호의 상처로 피가 솟구쳤다.
뒤로 넘어가는 이상호가 보였다.
주소희가 천주갑을 온전히 건네받은 순간.
한쪽 팔을 잃어버린 그에게 정해진 결말의 모습이었다.
***
이상호를 쓰러트린 주소희가 검을 대충 내려놓고 황급히 달려갔다.
‘마…… 말숙이.’
최말숙의 상태를 살피기 위함이었다.
주소희가 최말숙을 옳게 눕혀 뺨을 토닥였다.
“정신 좀 차려 봐.”
급소를 찔리고 이미 상당히 지났기 때문인지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놀란 주소희가 최말숙의 맥을 짚었다. 다행히 미세하게 이어지는 맥박이 느껴졌다.
조금은 안도한 주소희가 품속에서 무언가를 황급히 꺼냈다.
최강에게 분양받았던 내단이었다.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시도해 볼 가치는 있었다.
엘리스의 말에 따르면 아라크네의 생기(生氣)는 양기.
그리고 이 내단은 그런 엘리스를 잡고 나온 내단인 것이다.
‘제발…….’
최말숙의 입에 내단을 밀어 넣은 주소희가 입에서 눈 녹듯이 사라지는 내단을 목격했을 때였다.
번쩍!
“꺅.”
눈부신 빛과 함께 주소희가 날아갔다.
“으윽…….”
벽에 들이박은 주소희가 고통을 호소하다가 무언가가 생각난 듯 급하게 최말숙을 바라봤다.
“아, 맞다! 말숙이는…….”
최말숙의 상태를 확인한 주소희가 소리 냈다.
“어…… 어?!!!”
***
다음 날 점심, 최강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있었다.
주진강이 사건과 관련된 일 처리를 위해 3일간의 말미를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아버님, 여깄사와요.”
“어…… 그래.”
TV를 보던 최강이 최말숙이 내미는 물 잔을 받아 들며 어색하게 말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하루 사이에 외관이 좀 많이 변했기 때문이었다.
어제까지 유치원생 정도의 최말숙은 지금 열네 살 남짓의 중학생의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더 필요하신 건 없으신가요?”
“그래, 필요 없으시다.”
대화를 일단락 마무리하고 TV를 보던 최강이 슬며시 고개를 틀었다.
“왜, 무슨 할 말이라도?”
무릎 꿇고 최강을 지그시 바라보던 최말숙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최말숙이 내미는 정수리를 보며 최강이 생각했다.
‘근데 이 녀석…… 원래 이렇게 사근사근했던가?’
전에 꼬맹이 모습일 때는 별 부담 없이 머리를 쓰다듬었던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여튼 좀 묘했다.
최강이 최말숙의 머리에서 손을 뗐을 때였다.
똑똑.
때마침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제가 나가 보겠사와요.”
최말숙이 급히 일어나 현관문을 열었다.
최말숙이 아는 얼굴이 있었는지 방문자를 보고 반기며 말했다.
“어머……? 그땐 감사했사와요.”
최강이 슬쩍 시선을 옮겨 보니 문 앞에는 류세란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