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34
34화
최강이 최말숙과 주소희를 대동한 채 도착한 곳은 꼭대기 층의 회의실이었다.
최강이 들어서자 회의실에 앉아 있던 남자가 말했다.
협회장 우범하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최강 씨 되시죠?”
자리에서 일어나 살갑게 다가오는 우범하가 안내하듯 말했다.
“이쪽으로 오시죠.”
우범하를 따라 세 사람이 이동하다가 회의실 옆에 만들어진 작은 문을 통과하려고 할 때였다.
문 앞을 지키던 두 남자가 주소희와 최말숙을 제지했다.
“여기서 기다리시죠.”
최강이 우범하를 바라봤다.
우범하가 두 남자에게 말했다.
“들여보내 주게.”
가로막던 두 남자의 팔이 내려가자 세 사람이 문을 통과했다.
문 안쪽은 15평이 조금 더 되는 방의 모습이었다.
우범하가 자연스럽게 걸어가 다과가 준비된 테이블의 안쪽 자리에 앉았다.
최강 일행이 우범하와 마주 앉았고 이어서 우범하가 찻주전자를 들어 작은 다기에 차를 따르는 모습이 보였다.
“저를 부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차를 따르던 우범하의 입가에 옅은 웃음이 걸렸다.
“급한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뇨…… 그건 아닙니다만.”
“그럼 일단 차나 한 잔씩 마시면서 이야기하십시다.”
최강이 마지못해 우범하가 건네는 차를 홀짝였다.
옅은 꽃잎 향이 입안에 퍼졌다.
“차는 입에 맞으십니까?”
“네…… 뭐.”
“그것참 다행이군요.”
보란 듯이 주름진 얼굴로 웃어 보이던 우범하가 말했다.
“최강 씨,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
“저희 협회로 오시죠. 최고의 대우를 약속하겠습니다.”
최강이 고민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거절하겠습니다.”
우범하가 말했다.
“이유를 듣고 싶군요.”
“제가 원래 어디 소속되고 하는 성격이 아닙니다.”
재밌다는 듯이 허허롭게 웃은 우범하가 말했다.
“세가를 세운 것도 그 때문이십니까?”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근데 거절했다고 무슨 불이익이 있다거나 하는 건……?”
“물론 없습니다. 그 부분은 안심하시죠.”
뭐랄까? 잠시간의 대화가 지나간 후에는 그야말로 정적 그 자체였다.
어찌나 조용하던지 네 사람이 차를 마시는 소리 외에는 기침 소리조차 실례가 될 것 같은 분위기였으니 말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10분쯤 지나고 차가 식을 무렵이 되자 우범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충 잔을 비우신 것 같으니 배웅해 드리겠습니다.”
최강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주소희가 말했다.
“저,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말씀하시죠, 주소희 씨.”
주소희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왜 언급하지 않으시죠?”
“어떤 걸 말입니까?”
“피해액이요. 저라면 최강 씨를 스카우트할 마음으로 부르신 거라면 차라리 그것을 들고 협박했을 거예요.”
주소희는 알고 있었다. 협회는 자선 업체가 아니다. 무림인과 무림인 간의 사소한 다툼으로 발생한 피해액까지 감당해야 할 의무가 없는 것이다.
“3조 7천억 원.”
우범하가 방긋 웃었다.
“주소희 씨는 이 금액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아…… 아니요.”
주소희가 얼떨떨한 얼굴로 말하자 우범하가 말했다.
“이씨 문중과 관련해 발생한 예상 피해액입니다.”
“…….”
최강이 말하지 않아서 몰랐는데 생각보다 엄청난 금액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부숴 먹은 거야?’
주소희가 괜히 말을 꺼냈다 생각할 때였다.
우범하가 말했다.
“그런 표정 지으실 필요 없습니다. 지금도 배상하라 할 마음은 없으니까요. 바라는 것이라면…….”
우범하가 문을 열며 말했다.
“다음부터는 주변을 조금 신경 써서 다뤄 주셨으면 좋겠군요.”
***
협회장 우범하가 최강을 돌려보내고 5분쯤 지났을 때였다.
회의실을 나오는 우범하에게 문 앞에서 기다리던 비서관이 물었다.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4조 원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협회의 1분기 예산과 맞먹는 금액이기도 하고요. 개인에게 지우기에는 무거운 금액이긴 하지만 다른 것이라도 얻어 내는 편이 좋지 않았을지…….”
우범하가 비서관에게 물었다.
“자네는 내가 손해 보는 장사를 했다고 보는가?”
“그렇습니다.”
재밌다는 듯이 웃은 우범하가 비서관에게 물었다.
“우리가 프리저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지극히 한정적이지. 인정하는가?”
“…….”
비서관이 긍정의 침묵을 하자 우범하가 말했다.
“그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고 애국심은 어느 정도인지 또 사람 됨됨이는 어떤지 어느 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프리저를 자극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말을 하는 거네.”
우범하가 자리에서 멈춰 서며 뒤돌았다.
“이번에는 우리와 뜻이 맞아 이씨 문중을 막아섰지만 다음번에도 그러리라 보장할 수 있는가?”
“아닙니다.”
“그렇지. 그럴 거라면 차라리 4조 원 대신 내주지. 뭐 어떤가?”
우범하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오히려 그걸로 프리저의 마음을 산다면 오늘 했던 대답도 고쳐먹을지도 모르는 일이야.”
***
다음 날 모든 뉴스에서 이 사건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프리저, 협회장과 달밤의 밀회.
-주씨세가의 막내딸 주소희와 프리저 두 사람의 관계는?
-생각보다 훈훈한 외모의 프리저, 여심 용광로.
모든 인터넷 포털 사이트들이 최강과 관련된 기사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각종 기사들에는 네티즌들의 댓글이 순식간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이민영: 저 30분 전에 프리저 오빠 팬 됐는데 오빠 진짜로 주소희랑 사귀나여? 나랑 사귀지. 내가 더 이쁜데.
└돌아온 오태식 띠 ㅇㅇ 빼박. 추리닝 봐라.
└강만식└└ 그건 모르는 일임 저 옆에 있는 여자애는 그럼 뭔데?
└11222333 WHJ1122 사진 인증 ㄱㄱ
주씨세가 사위: 잘 가 소희야. 사랑해…… 아니 사랑했다. ㅠ
└정수park ㅋㅋㅋㅋㅋ 졸라 웃기넼ㅋㅋㅋㅋㅋㅋㅋ
└얼평남 근데 그나저나 외모 무엇? 애지간한 연예인들보다 더 이쁜 듯.
└이병구 여러분 이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남자가 능력이다 입담이다 해도 결국엔 얼굴이에요. 아시겠쥬?
박성훈: 근데 협회장은 프리저랑 만나서 뭔 이야기 했을 거 같음?
└추만수 그걸 알면 여기서 댓글이나 치고 있겠냐? 앞구정에 돗자리 깔았지.
인터넷으로 올라온 댓글들을 태블릿으로 살펴보던 류종규가 중얼거렸다.
“진짜로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인가? 분위기는 전혀 그런 거 같지는 않았는데……?”
류종규도 저번에 말은 안 했지만 사실 추리닝이 몹시 신경 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구태여 걸고넘어지지 않았던 건 결과적으로 양방에 공정한 결과를 제시했기 때문이었다.
주소희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면 조금이라도 주씨세가에 유리하게 계약했을 테니 말이다.
인터넷의 댓글들을 보던 류종규가 막상 불안해졌는지 중얼거렸다.
“그래. 적어도 둘이 눈 맞는 걸 견제할 필요는 있겠어.”
사춘기의 딸아이가 있다는 것은 충격이었지만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그 나이에 정식적인 혼인을 한 것은 아닐 테고 어린 날의 실수 정도로 치부한 것이었다.
“그래. 요즘 애 하나 딸린 게 무슨 대수야.”
가장 중요하다면 중요한 류세란도 다행히 최강에게 관심이 있어 보였다.
“그놈 딸은 되는데 내 딸은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어?”
류종규의 머리가 근래 들어 가장 바쁘게 돌아갔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 사이가 서먹서먹했다고 오늘도 젊은 남녀가 서먹서먹할 이유는 없다는 것을.
***
다음 날 점심이었다. 하나의 기사가 올라왔다.
[고심의 협회, 진심의 답변 내놓았다.당일 오전 우범하 협회장의 요청에 따라 기자회견이 열렸다.
우범하 협회장은 이번 대규모 피난 사태가 의문의 세력과 프리저의 사건과 연관이 있음을 밝히면서 장을 열었다.
우범하 협회장의 말에 따르면 3일 전 프리저는 주씨세가의 의뢰를 받아 의문의 세력과 단신으로 맞섰고, 사투 끝에 승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시간가량 이어졌던 기자회견에서 우범하 협회장은 현재 협회와 프리저의 관계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관계임을 과시하는 답변을 주로 했고, 간밤에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냐는 질문에는 ‘스카우트를 했었다. 하지만 단칼에 거절당했다.’라는 아쉬워하는 듯한 분위기의 답변을 남기기도 했다.
참고로 우범하 협회장은 최종 산정된 피해액을 전액 배상할 것을 약속했으며 배상은 익월 4일부터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주소희가 기사를 읽다가 말했다.
“근데 진짜로 협회가 전액 다 부담하려나 보네요.”
“그래, 본인이 그러겠다잖아.”
주소희가 불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뭔가 바라는 게 있는 건 아니겠죠?”
“바라는 건 무슨. 다음부터는 조금만 부숴 달라잖아. 주의하자. 알았지?”
“네.”
4조 원이나 되는 금액을 부담한 우범하가 들었으면 뒷목 잡을 법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날은 어느덧 초여름 날씨가 되었다.
한 달간 변한 것은 날씨뿐만이 아니었다.
최강에게도 마침내 멀쩡한 사무실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시간을 확인한 최강이 말했다.
“그럼 말숙이, 오늘 고생해라.”
“네, 맡겨 주시와요.”
당직인 최말숙을 놔두고 최강이 주소희와 밖으로 나왔다.
주소희가 말했다.
“최강 씨, 우리는 사원 안 구해요?”
“사원?”
“네네. 이제 사무실도 생겼겠다, 자리도 잡았겠다, 한두 명 정도는 있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요.”
최강이 골똘히 생각했다.
솔직히 최강도 지금 세 명이서 교대로 하루씩 당직 서는 생활에 불만이 없다면 거짓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구하자, 까짓것! 너한테 맡길 테니까 책임지고 구해 봐. 괜찮은 사람으로.”
“네!”
걸어가던 최강이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는 주소희를 보고 말했다.
“뭐 해? 집에 안 가?”
“네, 안 가요. 저, 협회에 구인 올리고 오늘은 사무실에서 잘게요.”
“그래? 그럼 그러든가.”
최강이 주소희가 사무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걷기 시작했다.
최강이 마치 마누라가 친정 간 남편처럼 웃었다.
“오늘은 넓게 잘 수 있겠네.”
***
그날 밤이었다.
퇴근해서 잘 준비를 마치던 우범하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비서관의 전화임을 확인한 우범하가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인가?”
-저 그게, 일전에 저한테 그러지 않으셨습니까? 프리저 관련된 거라면 다 보고하라고.
우범하가 잠시 기억을 더듬다가 말했다.
“그랬었지. 프리저와 관련해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겐가?”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다만, 구인이 올라와서요.
“구인?”
-네.
“그게 어때서 그런가? 얼마 전에 사무실을 구했다고 들었네. 구인해도 이상하지는 않을 텐데?”
-근데 구인이 조금 특별해서 말입니다. 자격 요건이 있습니다.
“…….”
협회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구인 글이 올라온다.
때문에 협회의 홈페이지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구인란에서 조회 수가 높은 구인 위주는 노출이 되고 낮은 글은 아래로 깔리도록 만드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한마디로 자격 요건이 있으면 초기 단계에 많은 조회 수를 형성하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했고, 동시에 시작부터 자연스럽게 깔릴 글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어떻게 할까요? 제가 슬쩍 바람이라도 잡아 볼까요? 이대로 두면 아마 한 세월은 걸릴 겁니다.
고민하던 우범하가 말했다.
“음…… 그럼 너무 티 나지 않도록 살살 거들게. 프리저 측에도 나중에 슬쩍 생색 좀 내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우범하와 비서관의 통화가 끝나고 몇 시간이 지난 새벽 시간이었다.
류세란이 작성한 글의 조회 수가 비상식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수년 전에 심해로 깔렸던 무명 가수의 쉰 곡이 역주행이라는 이름으로 갑자기 차트 상위권에 진입하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