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36
36화
정씨 문중에 방문했던 세 명의 가주가 돌아갔다.
직사각형 구조의 커다란 방에 다섯 사람이 모여 모의를 나누고 있었다.
방에 존재하는 수십 개의 문턱과 문턱마다 반쯤 접어진 접이식 문이 거대한 방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문주 정대욱이 말했다.
“그대들은 어찌 생각하는가? 프리저라는 자가 그 정도로 강력하다고 생각하는가?”
“…….”
방을 낮게 울리는 정대욱의 물음에 침묵이 깔리고 잠시 후였다. 좌측에 앉아 있던 사람이 말했다.
“문주, 이대군이 나서진 않았지만 정황상 장자 이소군을 필두로 일대제자 다수가 나선 것으로 예측됩니다. 고작 20대 애송이가 해냈다고는 믿기 힘듭니다.”
“…….”
남자가 정대욱의 침묵을 틈타 말을 이어 갔다.
“그래서 말인데, 혹 협회의 개입이 있지는 않았을까 예상해 봅니다.”
“강성훈 말인가?”
부문주가 긍정하듯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까끌까끌한 턱주가리를 쓰다듬으며 생각하던 정대욱이 말했다.
“그대들의 생각도 같은가?”
커다란 방에 침묵이 깔렸다. 이견은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결정 났군. 그럼 이제 어떻게 프리저를 해치우냐, 이것인데…….”
정대욱이 네 명의 남자를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말했다.
“프리저가 차지한 주씨세가와 덤으로 조씨 문중이 내려놓은 류씨세가를 되찾아와야겠네. 좋은 의견 없는가?”
정대욱의 물음에 이번에는 반대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최씨 문중을 이용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최씨 문중을?”
정대욱이 남자의 의견을 검토하다가 옅게 입꼬리를 올렸다.
“하긴 가만히 놔둔 지가 제법 오래됐던가?”
정대욱의 미소는 잊고 있었던 장난감을 떠올린 듯한 미소였다.
***
다음 날 최강이 사무실에 출근했을 때였다.
최강의 눈에 못 보던 빨간색 추리닝이 보였다. 류세란이었다.
보나 마나 주소희의 소행이 분명했다.
“안……녕하세요.”
최강이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부끄러운지 슬쩍 눈을 피하는 류세란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구석에서 태연한 척하지만 입꼬리가 옅게 올라간 주소희의 모습이 보였다.
‘그게 그렇게 좋냐?’
하긴 자신도 주소희에게 강요하고 있는 신세이니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최강이 돌아가는 상황을 애써 외면하며 소파에 앉았다.
최강이 잠시간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류세란이 얼음물 한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어, 고맙고~”
“아…… 아니에요.”
스리슬쩍 최강에게 접근하는 류세란을 주소희가 여유로운 얼굴로 바라보다가 말했다.
“자! 이제 최강 씨도 출근했겠다, 출발해 볼까요, 세란 씨?”
“네?”
류세란이 문가로 향하는 주소희를 보고 말했다.
“어디 가시게요?”
“순찰 가야죠.”
“순찰이요?”
곤란해하는 류세란의 얼굴을 캐치한 주소희가 톡 쏘듯 말했다.
“왜요, 싫으세요?”
“아…… 아뇨. 그럴 리가요.”
자신이 들고 온 검을 들고 주소희를 따라 나가는 류세란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최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독하다, 독해.’
작정하고 첫날부터 런웨이를 시킬 작정이 분명했다.
“나도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지~”
엄청난 괴물을 길러 낸 것 같아서 어쩐지 묘한 죄책감이 밀려드는 최강이었다.
***
“끄으으응.”
최말숙과 하루 종일 사무실을 지키던 최강이 기지개를 켰다.
밖은 벌써 해가 떨어져 있었다.
‘돌아왔나 보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주소희와 류세란의 모습이 보였다.
최강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고생했다. 이제 퇴근해.”
류세란이 퇴근을 준비하는 주소희를 보다가 결심한 듯 말했다.
“저도 오늘 같이 당직 서면 안 될까요?”
출근 첫날부터 자진해서 야근을 하겠다니 정말 기특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지만…….
주소희가 불쑥 끼어들며 말했다.
“무슨 소리세요, 세란 씨? 첫날부터 야근을 시킬 리 없잖아요. 호호~”
친근하게 류세란의 어깨에 손을 올린 주소희가 말했다.
“저희 그렇게 질 나쁜 회사 아니라구요.”
“자…… 잠깐만요.”
류세란을 반강제로 끌고 나가며 주소희가 말했다.
“그럼 고생해요~”
주소희가 나가고 얼마나 지났을까?
따분함을 달래기 위해 TV를 시청하던 최강이 벽시계를 바라봤다.
‘이것밖에 안 됐나?’
시간은 이제 12시를 향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채널을 찾아 헤매던 최강이 마땅한 채널을 찾지 못하자 비장한 얼굴로 리모컨을 조작했다.
“크크크…… 이럴 때를 위해 아껴 두었던 녀석이 있지.”
최강이 익숙한 리모컨 조작으로 드라마의 결제창을 켰다.
드라마의 이름은 ‘하늘 성’이었다.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다니…….
콕TV, 그야말로 위대한 문명의 산물이었다.
“범인이 누구려나…….”
최강이 거사를 치르듯 익숙하게 결제를 진행할 때였다.
따르르릉.
때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최씨 특전대입니다. 네. 네네. 자이언트 스네이크요?”
최강이 전화를 끊으며 혀를 찼다.
“아~ 하필 걸려도 지금 걸리냐?”
구역이 좁아서 일이 터지면 1주일에 한 번이나 발생하는 게 보통이었는데, 하필이면 지금이었다.
최강이 자리에서 일어나 하품을 늘어져라 하며 기지개를 켰다.
“빨리 다녀와야지.”
***
콰앙.
오밤중에 커다란 소음이 들려왔다.
최강이 자이언트 스네이크를 처리하며 난 소리였다.
‘어디 보자. 어디 부서진 데는 없나?’
최강이 담벼락이나 도로 위라거나 파손된 곳이 없나 주변을 살펴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과는 달리 협회장 면담 이후로는 나름 신경 쓰는 부분이었다.
상습범이 되면 또 귀찮은 일이 생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주변을 살핀 최강이 돌아서며 말했다.
“어디 다친 곳은 없죠?”
“네. 저는 신고했을 뿐이니까요.”
신고자는 밤늦게까지 공부하다 귀가하던 여고생으로 보였다.
여고생의 답변을 들은 최강이 말했다.
“아니요, 신고자분 말고.”
최강의 고개가 옆에 서 있는 남자 회사원을 향했다.
“아! 으에엑…… 저 말인가요? 저도 일단 괜찮습니다.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네요.”
남자는 통째로 삼켜졌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서 온몸이 찐득찐득한 액체로 뒤덮여 있었다.
시큼한 냄새를 맡고 울상이 된 회사원을 대충 살펴본 최강이 말했다.
“혹시 뒤늦게라도 어디 아픈 곳이 있으면 협회로 연락합시다. 사무실 말고요.”
“아……? 네! 꼭 그러겠습니다.”
최강이 남자의 답을 듣고 바쁘게 뒤돌아섰다. 사무실에서 콕TV가 기다리기 때문이었다.
발걸음을 옮기려던 최강이 자신의 뒷소매를 당기는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왜요? 어디 다쳤어요?”
“오빠, 프리저 맞죠?”
어색하게 웃어 보인 최강이 손을 떼어 내며 말했다.
“응, 아니다.”
그때 찍힌 사진 때문인지 근래 들어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다.
붙잡히면 사인을 해 달라느니 사진을 찍자느니 귀찮은 일에 말려드는 것을 알고 있는 최강이 급하게 몸을 옮겼다.
샤샥.
저 멀리 자신을 찾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여고생의 모습이 보였지만 최강은 무시하고 환전소로 향했다.
단숨에 환전소에 도착한 최강이 몬스터를 처리하고 환전소를 나왔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최강의 속도는 그야말로 엄청났다.
“위 올 라이~”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드라마의 OST 노래를 따라 부르며 이동하던 최강은 사무실과 빠르게 가까워져 갔다. 그런데.
어째선지 거대한 바람을 몰며 이동하던 최강이 인상을 쓰며 갑자기 멈춰 섰다.
사무실과는 채 300미터도 안 남은 상태에 벌어진 일이었다.
최강이 이동하며 생긴 바람이 뒤늦게 일대에 몰아쳤다.
‘기분 탓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처음 수상함을 느낀 건 사무실과 3킬로미터 정도 남았을 때였다.
하지만 지금이 되니 확신할 수 있었다.
사무실 주변에는 무인들이 몸을 감추고 있었다.
최강이 사무실 안에 앉아 있는 기운을 느끼고는 중얼거렸다.
“손님은 아닌 거 같은데…….”
그런 거치고는 기세가 너무 흉흉했다.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주변을 말없이 둘러본 최강이 사무실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불이 환하게 켜진 사무실 문을 최강이 열었다.
깨진 창문과 박살 난 TV, 그리고 도둑이 든 것처럼 어질러진 사무실이 순서대로 보였다.
“하…….”
두 눈을 감은 최강이 화를 삭이듯 고개를 쳐들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다음을 기약하며 참았을 때는 견딜 만했는데 보려고 할 때 못 본다고 생각하니 더 그랬다.
드라마 중독자 최강이 분노를 삭이며 조용히 걸어갔다.
여전히 소파에 태연하게 앉아 있는 남자의 맞은편에 앉은 최강이 말했다.
“내가 지금 많이 참고 있거든?”
“큭큭큭…… 그러십니까?”
재수 없게 웃는 남자의 모습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주먹부터 휘두를 뻔했지만 참을인 세 번이면 사람도 살린다던가?
두 번째 위기를 넘긴 최강이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러시다. 그러니까 좋게 물어볼 때 말해. 사무실을 왜 이 꼴로 만들었지?”
최강 나름의 마지막 경고였지만 남자는 이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유로운 기색으로 말했다.
“이곳에 있을 줄 알고 찾아봤는데 없더군요.”
“찾아? 뭘?”
남자가 말했다.
“모르는 척하시는 겁니까? 계약하셨잖습니까? 주씨세가, 류씨세가와.”
최강이 머릿속으로 차분하게 생각했다.
주씨세가는 정씨 문중의 덕택을 보고 있던 세가였고 류씨세가는 조씨 문중의 덕택을 보던 세가였다.
상식적으로 두 군데 중에 한 군데여야지 이치가 맞는 것이었다.
‘근데 왜 이 녀석들이 온 거지? 그냥 기회를 봐서 날름하려고?’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해가 안 되자 생각이 길어지는 최강을 보고 남자가 오해했는지 멋대로 지껄였다.
“너무 긴장하실 것 없습니다.”
남자가 자신이 입고 있는 갈색 도복의 안소매에서 돌돌 말린 서류 봉투를 내려놓았다.
“사인하시죠. 위임장입니다. 본래 계약서가 목적이었으니까 얌전히 사인만 하시면 뒤탈은 없을 겁니다.”
“…….”
최강이 말없이 남자를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내뱉은 최강이 말했다.
“내가 경고하지 않았냐? 많이 참고 있다니까? 뭘 믿고 그렇게 막 나가?”
“크크크크크큭. 글쎄요.”
최강의 질문에 남자가 웃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사무실 바깥에 대기 중이던 기척들이 노골적으로 바뀌는 것이 느껴졌다. 필시 위협하는 것이었다.
“이제 느껴지십니까? 뭐 생각하지 못한 반응이라 재미있긴 했습니다만 저야말로 마지막 경고입니다. 사인하시죠.”
글렀다.
이곳이 자신의 사무실이기도 했고 급하게 매물을 구하느라 큰돈을 주고 산 건물이니만큼 참고 또 참으려고 노력해 봤지만 이제 한계인 것이다.
최강이 조용히 깔린 음성을 내뱉었다.
“어금니 꽉 깨물어라.”
남자가 최강과 시선을 맞추던 눈에 주름을 잡았다.
“이거 어느 정도 거품이 끼어 있다는 것 정도는 듣긴 했습니다만 생각보다 훨씬 형편없는 분이셨군요. 이 지경이 돼서도 본인의 처지를 모르다니.”
최강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섰다. 애초에 말이 안 통하는 상대였다. 괜히 자신답잖게 자비를 베푼 시간이 아까울 따름이었다.
“일단 맞자, 새끼야.”
한계에 다다른 최강의 주먹이 휘둘러졌다.
쾅.
사무실 반대편 벽이 으스러지며 남자가 튕겨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
남자는 의외로 멀쩡해 보였다. 말은 그렇게 해도 최강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공을 당한 남자가 큰 소리로 외쳤다.
“협상 결렬이다! 해치워!!”
남자의 외침이 조용한 일대에 울린 순간이었다.
번쩍.
사방이 붉은빛으로 뒤덮이더니 곧이어 사무실로 쏘아졌다.
쿠구구궁.
파도처럼 일대를 삼키며 전진하던 기운이 사무실을 삼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