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38
38화
‘어디 보자, 효과가 있으려나?’
말을 뱉은 최강이 노인의 얼굴을 살폈다.
최강이 강하게 요동치는 노인의 눈동자를 확인하고 입꼬리를 올렸다.
효과 만점이었다.
역시 주댕이만큼 상대의 정신을 무너트리는 데 좋은 기술은 없었다.
“네놈이 뭘 안다고!!!!!”
최강이 힘겹게 일어난 노인이 달려드는 모습을 보고 씩 웃었다.
이미 노인이 싸울 의지를 상실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라고! 나라고 이러고 싶은 줄 아느냐?!”
최강의 예상대로 노인의 공격은 너무 쉬워져 있었다.
그래도 조금 전 정문에서 싸울 때까지만 해도 다부진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은 꼭 투정 부리는 것 같았다.
최강이 노인의 장을 가볍게 걷어 냈다. 노인이 물러나는 최강에게 달라붙으며 연속적으로 공격했다.
“머리로는 벌써 수십 번…… 아니, 수백 번도 더 외면했었다!”
“…….”
“한 사람 때문에…… 고작 한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두의 모습, 이것이 잘못됐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으니까!”
최강이 노인의 빈틈을 확인하고 복부를 향해 주먹을 때렸다.
크억…….
득달같이 달려들던 노인이 복부를 움켜쥐고 두어 걸음 물러나는 것이 보였다.
털썩 무릎 꿇은 노인에게 최강이 천천히 걸어갔다.
“그런데 어쩌란 말이냐! 누구보다 옆에서 자리를 지키겠다 맹세했거늘…… 내가……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이냐…….”
가까이 도착한 최강이 괜한 죄책감에 휩싸였다.
‘엑…… 울어?’
노인이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괜히 머쓱해진 최강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다 늙은 노인네가 청승맞게 질질 짜기는.”
노인이 울분을 토하듯 말했다.
“말해 봐라. 난 어떻게 했어야 했지?”
최강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걸 왜 자신에게 묻는다는 말인가?
“몰라! 내가 그딴 걸 어떻게 알아? 하지만 적어도 이건 알겠네.”
“…….”
깊게 한숨 쉰 최강이 노인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고생했어. 그 말이 듣고 싶은 거잖아, 당신은? 아니야?”
숙여졌던 노인의 고개가 천천히 들렸다. 최강이 노인의 눈물을 닦아 주며 말했다.
“수고했어. 방법은 멍청했지만.”
구원받은 듯한 노인의 눈동자를 확인한 최강이 더 귀찮은 일이 생기기 전에 노인의 턱을 올려쳤다.
퍽.
높이 떠오른 노인이 잠시 후 떨어졌다.
털썩.
기절한 것이었다.
***
후…….
노인을 기절시킨 최강이 깊은 한숨과 함께 소녀를 바라봤다.
갑자기 울어 버리는 노인 때문에 난처했지만, 여튼 노인의 말을 미루어 볼 때 소녀가 앓고 있는 병이 구음절맥인 것이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자신이 알기로 구음절맥을 치료하기에 정씨 문중보다 능통한 사람들은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정씨 문중의 협조가 없다면 방법이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쉽게 말해 이대로 두면 소녀가 죽는다는 것만은 확실한 것이다.
최강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제 어쩐다.’
솔직히 고민됐다.
건물값에 대한 피해 배상을 받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이 사실이지만.
몰랐으면 모를까, 알아 버린 이상 무시하기가 좀 그랬다.
자신이야 원래 이런 쪽에 관심이 없어서 상관없었지만, 자신의 아버지가 문중의 모습을 본다면 지하에서 비통하게 울 것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뭐, 선심 한번 쓰자.”
돕기로 결정한 최강이 복도에 얼어붙은 무인들 중 가장 가까운 한 놈을 노려봤다.
시선을 받은 무인의 눈동자가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이 보였다.
‘이놈한테 물어볼까?’
한동안 생각하던 최강이 고개를 저었다.
별로 효율적인 방법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대개 이런 녀석들이 뭔가 있어 보이지만 정작 중요한 것을 물어보면 ‘그…… 그건 잘…….’ 이따위 말이나 뱉어 내는 속 빈 강정이기 마련이다.
최강이 좀 더 괜찮은 놈이 없을까 하고 고민하고 있는 찰나였다.
“어? 이 녀석…….”
최강의 표정이 재밌다는 듯이 변했다. 먼 곳에서부터 이곳으로 빠르게 가까워지는 기척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당탕탕.
소음과 함께 남자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무사한 소녀와 생사가 불명확한 노인, 그리고 최강을 순서대로 바라본 남자가 당황한 얼굴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최강이 말했다.
“잘 잤냐?”
어젯밤에 기절했던 녀석이 마침내 깨어난 것이었다.
“끙…… 1장로님을 어떻게 한 게냐?”
“1장로?”
최강이 기절한 노인을 슬쩍 바라본 뒤 말했다.
“아, 이 할배가 1장로?”
“…….”
“걱정하지 마. 기절했을 뿐이니까.”
최강이 자신의 말에 안도하는 남자를 보고 말했다.
“그보다 궁금한 게 있거든.”
“뭐냐?”
“대충 그림이 그려져. 너희가 왜 정씨 문중의 심부름이나 하고 있는지, 저 여자애가 걸린 병이 뭔지. 근데 말이야.”
최강이 이번 일의 핵심을 찌르듯 말했다.
“위임장에 사인받아 오면 확실히 치료해 주긴 한대?”
그렇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둘 사이에 오고 간 계약이 무엇인지에 따라서 자신이 도와주는 방법이 변해야 하니 말이다.
단순히 사인하는 것으로 알아서 소녀가 멀쩡해진다면 최강은 아깝긴 해도 흔쾌히 사인하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귀찮기는 해도 자신이 정씨 문중과 담판을 지을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남자가 말했다.
“확실하다.”
“어떻게 확신해?”
“문주가 직접 사인한 계약서가 있다.”
“…….”
남자의 말을 들은 최강이 생각했다.
‘그렇다는 말이지…….’
솔직히 본인도 이쪽을 더 바라기는 했지만, 막상 그렇다니 좀 아까운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쩝…….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신 최강이 남자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내놔 봐.”
“뭐를 말이냐?”
“있을 거 아니야. 어제 사인하라던 위임장인가 뭔가 하는 거. 아니면 더 없어?”
***
노인이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한쪽 뺨이 야구공처럼 부어오른 중년 남성이 보였다. 반나절 넘게 자다가 깨어났던 남자였다.
“정신이 드십니까?! 1장로님!?”
“내가 어째서…….”
“기억 안 나십니까? 그분에게 턱을 얻어맞고 기절하셨지 않습니까?”
“그…… 그분?”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것 같았다. 마지막 순간 채 반응할 틈도 없이 턱주가리를 올려치는 통증이 있었던 것 같았다.
남자의 말에 바깥을 바라본 노인이 어두컴컴한 것을 보고 급한 일이 떠오른 듯 물었다.
“문주님은!? 문주님은 어찌 되었습니까?”
“진정하십시오. 문주님은 멀쩡하십니다.”
조금 안심한 얼굴의 노인이 말했다.
“프리저는 어떻게 됐습니까? 4장로.”
“돌아갔습니다.”
“돌아가?”
남자가 노인의 반문에 대답 대신 익숙한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최강의 사인을 요구하던 그 봉투였다.
“왜 이게……?”
최강의 사인이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한 노인이 물었다.
남자가 조금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사실 장로님이 기절하신 사이에 프리저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 어떤 대화를 했습니까?”
“정씨 문중과의 약속에 대해 묻더군요.”
노인이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대답하셨습니까?”
“송구스럽지만 사실대로 답했습니다. 애초에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눈치이기도 해서.”
노인은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딱히 남자를 나무라지는 않았다.
자신도 당해 내지 못한 고수였다. 현장으로 나가서 남은 장로들이 없는 마당에 그를 자극해서 좋은 꼴 볼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노인이 말했다.
“그래서 프리저는 무엇을 요구했습니까?”
그냥 적선하고 돌아갔을 리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4장로가 말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다니…… 그냥 사인만 하고 돌아갔다는 말입니까?”
4장로가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
“정확히 말하면 한 가지 있긴 합니다.”
노인이 그러면 그렇지, 라는 얼굴로 말했다.
“무엇입니까?”
“그것이…… 한 번만 더 귀찮게 굴면 그때는 진짜 뒤진다고…….”
4장로의 말을 들은 노인의 얼굴이 묘하게 변했다.
-수고했어. 방법은 멍청했지만.
어째선지 기절하기 직전 들었던 프리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리는 듯했다.
***
집으로 향하는 최강의 기분은 그렇게 좋지 못했다.
“괜히 적선만 했네.”
재물욕이 강한 것은 아니었지만 류씨세가와 주씨세가의 수익 지분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알기 때문인지 막상 남의 것이 됐다고 생각하니까 속이 쓰려 왔다.
“윽…….”
엄청난 빌런에게 명치라도 강하게 한 대 맞은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최강이 지난 일을 털어 버리려는 듯 머리를 털었다.
“그래, 잊자. 똥 밟았다 생각하는 거야.”
구음절맥을 치료하는 것에 있어서 자신이 아는 한 정씨 문중만큼 잘하는 곳은 없다.
좋은 것이 좋은 것 아니겠는가?
“다녀왔다.”
집에 도착한 최강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호다닥 뛰어나오는 두 사람이 보였다.
최말숙과 주소희였다.
“다녀오셨사와요.”
“무슨 일이에요? 왜 사무실이 그렇게 됐는데요? 도대체 밤에…….”
주소희의 말을 귀찮다는 듯이 자른 최강이 말했다.
“그냥 개 같은 일이야. 알려고 하지 마. 그보다 말해 줄 게 있다. 주씨세가와 류씨세가의 수익 지분 있잖냐?”
“네. 그게 왜요?”
“그걸 사정상 다른 쪽에 위임하게 됐다.”
“네?”
주소희가 최강의 말을 곱씹다가 놀란 소리를 냈다.
“네? 왜요?!!”
“왜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고 그래.”
최강이 대충 발이랑 손을 씻고 자리에 앉아 TV를 켜자 주소희가 말했다.
“다…… 당연하잖아요. 그게 어떤 건지는 알고 계시는 거예요?”
“알지. 그걸 모르겠냐? 황금 알 낳는 거위 아니야.”
아주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 없었다.
최강의 대답을 들은 주소희가 말했다. 가치를 아는 최강이 그만한 것을 누군가에게 공짜로 주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럼 대신에 다른 거 받은 게 있는 거죠?”
“없다.”
최강의 무미건조한 목소리를 들은 주소희가 무언가 말하려다가 멈칫했다.
‘잠깐……?’
주소희는 최강과 지내며 알게 된 게 한 가지 있었다. 오히려 말투가 조곤조곤해지면 화가 난 상태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이 딱 그랬다.
이럴 때는 괜히 옆에서 쫑알쫑알 캐묻는 것보다 빨리 대화를 마무리하는 게 신상에 좋았다.
“마지막으로 하나만요.”
“뭔데?”
“그럼 도대체 누구에게 준 건데요? 제가 일 처리하려면 그걸 알아야 할 거 아니에요.”
최강이 그놈들을 떠올리자 괜히 기분이 나빠졌는지 인상을 팍 썼다.
“정씨 문중.”
***
다음 날 저녁이었다.
최씨 문중에 들어오는 한 사람이 보였다.
정씨 문중에 보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마침내 문주의 치료를 받고 하수인 생활을 청산하는 일만 남은 것치고는 얼굴이 어두운 것이었다.
“…….”
보고를 받은 4장로가 다시금 물었다.
“뭐라고? 다시 말해 봐라. 그게 정말이냐?”
“…….”
4장로의 물음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무인의 모습이 보였다.
그렇다. 생각과는 달리 정씨 문중의 대답은 보류.
애초에 계약서가 있음에도 이러한 태도를 보인 것이었다.
무림은 힘이 다인 세상이다. 계약이란 건 결국에 동등한 힘을 지녔을 때에나 가능한 것이었다.
함께 보고를 들은 1장로가 가만히 눈을 감고 있다가 일어났다.
“1장로님……?”
“…….”
4장로의 물음에 조금의 미동도 없이 천천히 방을 걸어 나가는 1장로의 모습이 보였다.
4장로가 급히 방을 빠져나가 복도를 걷는 1장로의 등에 대고 말했다.
“어디 가십니까?”
“다녀올 곳이 있습니다. 무책임한 말이지만…….”
1장로가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내치며 말했다.
“문주님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