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40
40화
아직 해가 지기에는 이른 오후 4시경이었다.
정씨 문중의 계단 아래서 최강의 모습이 나타났다.
먼저 도착한 최강이 뒤돌아 허공에 대고 말했다.
“여기냐?”
최강이 말하길 잠시, 4장로가 이어서 나타났다. 어찌나 숨이 차는지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4장로가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뛰어서 힘들어하는 4장로를 놔두고 최강이 돌아섰다.
소리 없이 정씨 문중의 외벽을 응시하던 최강이 말했다.
‘너무 조용한데……?’
다수의 기척이 영내에서 느껴졌지만 침입자가 발생한 것치고는 과하게 조용했다.
최강이 4장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야.”
“네.”
“할배가 오늘 새벽에 출발했다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다행히 정씨 문중은 최강의 사무실에서 최씨 문중으로 향하는 길과 정반대 방향에 위치했다.
최강이 전력으로 달려서 4장로와 함께 거의 두 시간 만에 이곳에 도착했으니 할배가 먼저 오긴 힘들었을 것이다.
‘도착을 안 했다는 말이지?’
최강이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잘됐네.”
“뭐가 말입니까?”
“뭐긴 뭐야, 할배가 아직 도착 안 한 걸 말하는 거지.”
4장로가 반색하며 말했다.
“1장로님께서 아직 도착 안 하신 겁니까?”
“응, 그래 보이네.”
4장로의 물음에 가볍게 답한 최강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양옆에 들어선 대나무 숲을 노려보던 최강이 걸음을 옮겼다.
“뭐 하십니까?”
“…….”
4장로의 물음을 가볍게 무시한 최강이 우측의 대나무 숲으로 걸어갔다.
“여기가 좋겠다.”
“예?”
4장로가 이쪽으로 오라는 듯한 최강의 손짓을 보고 이동했다.
대나무를 슬쩍 좌우로 밀치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최강의 모습이 보였다.
“뭐 해, 너도 일단 몸부터 숨겨라. 기척은 숨길 줄 알지? 들키면 안 된다?”
“예? 도대체 왜……?”
“아니 됐고, 전적으로 나를 믿어.”
최강의 눈에 4장로가 한숨 쉬며 쓱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자리도 좁은데 여길 뭐 하러 들어와?”
“죄송합니다만 여쭤볼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최강이 불편한 얼굴로 말했다.
“뭔데?”
“저희가 1장로님보다 먼저 도착했잖습니까?”
“어, 그렇지.”
4장로가 말했다.
“그럼 이렇게 숨을 이유는 없는 거 아닙니까? 그냥 기다리다가 1장로님이 오시면 데리고 가면 되잖습니까?”
최강이 어이없는 얼굴로 4장로를 바라봤다.
“그래서? 데려가면 어쩔 건데?”
“예?”
4장로의 이해 못 한 듯한 표정에 최강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 녀석…….’
엄청난 바보였다.
최강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야, 그래. 내가 그 녀석 기절시켜서 최씨 문중으로 데려가는 건 쉬운 일이야. 그래서 뭐? 그 뒤에는 어쩔 건데?”
“무슨 말씀이신지?”
“아니, 그러니까! 깨어난 그 녀석이 또 정씨 문중으로 가면 그때는 어쩔 거냐고? 그 녀석, 뭐 쇠사슬로 묶어 둘 것도 아니잖아.”
4장로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제야 이해한 듯 보였다.
그렇다.
애초에 중요한 것은 1장로.
그 귀찮은 할배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도록 만드는 게 문제였지 데리고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럼 방법이 있는 겁니까?”
4장로의 물음에 최강이 씨익 웃었다.
“당연하지.”
***
최강이 대나무 숲에 몸을 숨기고 한 시간쯤 지났을까?
최강의 기감에 숯에 갈린 듯한 예리한 기운이 느껴졌다.
‘드디어 왔네.’
1장로가 도착한 것이다.
터벅. 터벅. 터벅.
발소리가 들려오며 잠시 후 가로수 길을 걷는 1장로가 보였다.
1장로가 계단을 올라가고 잠시 후였다.
집중한 최강의 귀에 계단 위의 대화가 들려왔다.
“최씨 문중에서 최해성이가 왔다고 문주께 전해 주시게.”
“문주님께서는 오늘 바쁘셔서 만나 뵐 수 없으십니다.”
“그래도 전해 주게. 급한 용무라고, 만나 주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말도 꼭 잊지 말고 말이네.”
대화가 멈추고 커다란 문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문지기 중에 한 명이 급히 들어갔을 것이다.
‘오~~ 생각보다 세게 나오는데~~’
10분쯤 지났을까? 문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뭐라고 하시던가?”
“아쉽지만 바쁘셔서 곤란하다고…….”
“그렇군. 나를 너무 원망하지 마시게나.”
쾅.
계단 위에서 커다란 소음이 들려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오오, 개봉 박두.’
드디어 시작된 것이었다.
최강이 몸을 일으켰다.
“야, 가자. 천천히 따라와.”
최강이 기운을 갈무리한 채 4장로와 함께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오른 최강이 굳게 닫힌 거대한 정문에 뚫린 구멍과 1장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어디 실력 좀 볼까?’
문을 통과한 1장로가 순식간에 수십 명에게 둘러싸이는 모습이 보였다.
곧이어 수십 명의 무인들이 동시에 달려드는 모습이 이어졌다.
퍼퍼퍼퍽.
절제된 움직임.
그리고 적절한 힘 조절.
“제법이네.”
최소한의 힘으로 적을 빠르게 정리하는 1장로의 모습이 보였다.
확실히 자신의 옆에 있는 땀내 나는 중년 남자가 왜 그토록 애걸복걸했는지 알 것 같았다.
방금 전 할배가 보여 준 움직임만 평가하자면 중랑장(정5품)급은 되어 보였다. 방금 전 움직임만 보자면 말이다.
외곽을 지키던 무인들을 다 처리한 1장로가 신속하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계단 끝에 쪼그려 앉아 있던 최강이 일어났다.
“가자.”
“예.”
최강이 1장로가 달린 길을 따라 달렸다. 쓰러진 무인들이 1장로가 향한 곳을 말해 줬으니 어렵지 않았다.
최강이 말했다.
“야, 근데 궁금한 게 있거든?”
“뭡니까?”
“저 할배, 저게 전력이냐?”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제가 아는 1장로님은 이것보다 훨씬 강하십니다.”
“아니, 그런 거 말고.”
달리던 최강이 자리에서 멈춰 서자 4장로가 따라 섰다.
최강이 4장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우락부락한 몸뚱이와는 다르게 백지같이 순박한 얼굴이 보였다.
“기대한 내가 바보지.”
“예?”
“아니다. 가자.”
다시 달리기 시작한 최강의 발이 멈춘 곳은 문주전.
‘한 방에 보스를 노리시겠다?’
물론 단신으로 쳐들어온 할배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자 최선의 판단인 것은 분명했다.
최강이 정문에 비하면 초라한 5미터 남짓의 작은 나무문 두 짝이 뜯긴 모습을 확인하고 담벼락에 기대었다.
최강이 슬쩍 안쪽을 확인했다.
안쪽에는 운동장만큼 넓은 마당과 할배를 포함해 총 여섯 명이 있었다.
할배에겐 조금 부담스러워 보이는 숫자였다.
4장로가 조급한 얼굴로 눈신호를 보내왔다.
최강이 급히 고개를 저었다.
‘기다려, 자식아! 이제부터가 진짜인데 초 치려고.’
최강이 4장로를 제지하고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전해졌다.
현재 대한민국의 최정상에 가까운 무인들의 대결.
솔직히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한 것도 사실이었다.
“내가 바쁘다고 했을 텐데 여기까지는 어인 일이십니까, 1장로?”
“글쎄요. 어째서일까요? 어쩐지 마침 한가하실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와 봤습니다.”
꼴리는 대로 했다는 의미였다.
‘그래. 남자는 노빠꾸지.’
최강이 슬쩍 고개를 내밀어 문주의 얼굴을 확인했다.
‘엥……?’
예상 밖의 표정이 보였다. 단단히 화가 났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문주의 얼굴이 평온했기 때문이다.
“껄껄껄…… 재미있군요. 한가해 보인다니 단단히 오해하셨습니다.”
“오해?”
“네, 그렇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본문을 얕잡아 보고 무단 침입한 괴한이 있었다는 건 알고 계십니까?”
“…….”
“표정을 보니 모르셨던 모양입니다. 저희는 지금 그 괴한을 이곳에서 기다리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니 한가해 보인다는 것이 오해가 아니면 또 무엇이겠습니까?”
대화를 듣던 최강의 얼굴에 당황함이 떠올랐다.
당연했다.
문주가 말하는 괴한은 1장로가 맞다. 문주도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예측하건대 눈앞에서 문 두 짝까지 박살 내며 등장했을 1장로였으니 모르면 이상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다 아는 문주가 저렇게 말하는 것이라면 쉽게 말해 이것이었다.
이번만 눈감아 줄 테니 좋게 말할 때 그냥 가라.
문주는 지금 이렇게 돌려 말하는 것이었다.
‘설마 안 싸우는 건 아니지?’
최강이 빅 매치가 무산되는 것은 아닐까 우려할 때였다.
1장로의 자세가 변하는 것이 보였다.
전투준비 자세였다.
“흐음…… 내가 한 말뜻을 이해 못 하지는 않으셨을 터.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자신의 권유에도 요지부동인 1장로를 보고 문주가 말했다.
“하…… 어쩔 수 없구려.”
문주가 네 명의 남자들에게 말했다.
“물러나들 계시게.”
네 명의 남자가 뒤로 물러나는 모습이 보였다.
의외였다.
당연히 다섯이 동시에 덤벼들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할배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입을 열었다.
“무슨 의미입니까?”
“의미라니요? 아, 설마……?”
문주가 어이없는 웃음을 그렸다.
“전부 상대하실 생각이셨습니까?”
지켜보던 최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보지 않아도 승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졌구만, 할배.’
최강은 노인의 패배를 점쳤다.
이유는 간단했다.
문주의 저 여유.
아마도 최강의 생각대로 노인은 무형기 단계를 넘어서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다.
힘 조절을 위해 전력으로 상대하지 않았다고 한들 숙련도만 놓고 본다면 노인은 자신보다 조금 아래 정도의 무형기를 구사했었다.
하지만 노인은 어째선지 그날 유형기를 꺼내 보이지 않았었다.
‘사용하지 않은 게 아니라 못 한 거였다니…….’
적잖이 충격이었다.
최강이 전투가 시작되자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문주의 모습을 보고 인상 썼다.
가지고 노는 것이 눈에 훤했기 때문이었다.
연신 두들겨 맞던 문주가 할배의 전력이 담긴 일장을 얻어맞고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쿠구궁.
문주가 건물에 부딪혀 무너져 내리는 잔해에 파묻히는 모습이 보였다.
장내에 침묵이 흘렀다.
건물 잔해를 응시하던 최강이 생각했다.
‘시작됐네.’
그리고 그때였다. 최강이 이같이 생각하자…….
번쩍. 쾅.
빛이 한차례 번쩍하더니 이어서 그 빛에 닿은 잔해가 일순간에 가루로 변하는 모습이 보였다.
화려하게 재등장한 문주의 온몸에는 강력한 뇌기가 휘감겨 있었다.
파지지직.
주변을 향해 불규칙적으로 튀는 스파크가 무차별적으로 부서뜨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것이 바로 무형기의 다음 단계.
정씨 문중의 뇌(雷) 속성의 유형기였다.
***
갑작스럽게 변한 문주의 기세에 1장로가 놀란 눈을 해 보였다.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17년 전 자신의 주군을 잃어버리던 그날의 정대욱은 이런 남자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 시절의 정대욱은 고작해야 주먹에 뇌기를 머금는 수준이었다.
‘이렇게 방대해지는 것이었나?’
설마 그 뇌기가 거기서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상상은 해 본 적도 없었다.
단 한 번의 방심.
그때 당시에도 고작 일격에 자신의 주군의 목숨을 앗아 갈 만큼 위력적이었으니 말이다.
1장로가 인상 썼다.
‘낭패로군…….’
위험했다.
본래 문주를 비롯한 세 명쯤은 혼자서도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으니 당연했다.
부딪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패배였다.
그리고 자신은 오늘 이곳에서 죽으리라…….
비참한 씁쓸함을 1장로가 맛볼 때였다.
때마침 문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 보자. 1장로,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게 어떻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