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42
42화
최강이 정씨 문중에 다녀오고 5일이 지났다.
협회에서 마련해 준 사무실에 앉아 있던 최강이 시큰둥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 의식을 차렸다고. 잘됐네.”
1년 전부터 의식조차 없던 문주가 치료를 받아 호전되기 시작했단다. 잘된 일이었다.
“이게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최강이 고개를 돌렸다. 소파를 놔두고 굳이 바닥에 무릎 꿇고 있는 4장로가 보였다.
최강은 어느새 4장로에게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선생님이고 나발이고…….”
말하던 최강이 입을 다물고 4장로를 뻔히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이름이 뭐였지?
최강이 4장로의 이름을 들은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말했다.
“너, 이름이 뭐냐?”
“최성주입니다.”
“그래, 최성주 씨. 이제 그만 돌아가세요.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쵸?”
“혹시 그날 일 때문입니까? 그것 때문이라면 죗값, 원하는 방법으로 받겠습니다.”
최강이 말했다.
“그러니까요. 가시라고요. 그리고 가셔서 꼭 필요한 일 아니면 보지 맙시다. 다음부터는 이런 소식도 전화로 좀 하시고. 그게 죗값을 갚는 거니까.”
“아…… 알겠습니다.”
최강의 말에 침통한 얼굴의 최성주가 사무실에서 사라졌다.
다시금 사무실에 정적이 찾아왔다. 최말숙과 류세란은 순찰 중이었고, 주소희는 사정상 외출 중이었기 때문이다.
최강이 혼자서 오랜만에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낼 때였다.
지이이이잉.
테이블 위에 올려 뒀던 최강의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망설이던 최강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최강 씨 휴대폰 맞나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주소희와 류세란의 목소리가 아닌 것은 확실했다.
“일단 맞긴 합니다만 누구십니까?”
-어머, 그새 저를 잊어버리신 건가요?
장난스러운 말투.
어디선가 들어 본 억양이었다. 하지만.
‘어디 보자, 통화 종료가…… 이거였지?’
통화를 종료하고 툭 하고 핸드폰을 대충 던진 최강이었다.
묘하게 좋은 인연은 아닌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시 후.
지이이잉.
같은 번호로 다시금 전화가 걸려 왔다. 이번에도 최강이 전화를 받았다.
-여전히 매정하시네요.
“용건만 말해.”
-그 전에 정말로 기억 안 나시나요?
최강이 기억나는 사람이 없자 말했다.
“어, 전혀.”
-…….
잠시간 정적이 흘렀다.
-그때 제 가슴까지 훔쳐보셔 놓고.
“이봐, 그건 그쪽이 보여 준 거지!”
여자의 말에 반사적으로 답한 최강이 머리를 짚었다. 기억이 났다. 요즘같이 무서운 세상에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하는 최강이 가슴을 훔쳐본 여자는 단연코 한 명뿐이었기 때문이다.
“너, 그 일본 년?”
오늘 무슨 마가 낀 건지 별로 안 친한 애들이 자꾸 얽혔다.
-일본 년이라뇨. 나미사라고 불러 주세요.
최강이 선심 쓰듯 말했다.
“그래, 나미사.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냐?”
-대표 번호가 홈페이지에 떡하니 쓰여 있던데요?
홈페이지. 모르는 단어였다.
일단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 최강이 말했다.
“그래서? 용건이 뭔데?”
-드릴 말씀이 있어요.
“뭔데?”
-최근에 한국으로 일류 닌자 몇 명이 넘어갔어요.
“그래서?”
-듣기로는 고용인이 정씨 문중이에요. 제가 알기로 며칠 전에 정씨 문중과 악연이 있으셨다던데?
나미사는 지금 정씨 문중이 고용한 닌자의 목표물이 최강일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론만 놓고 보면 최강도 그 의견에 동의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최강의 관심을 끈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아직 한국에서도 정씨 문중과 최씨 문중과 관련된 사람이 아니라면 모르는 정보일 텐데 용케도 알고 있는 것이 신기한 것이다.
“어떻게 알았냐?”
-후후, 원래 남편의 내조는 관심에서부터 시작하는 거랍니다?
“말했을 텐데? 국산파라고.”
-그래서 요즘 들어 이민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답니다.
최강이 골치 아픈 얼굴로 한숨 쉬었다. 인연이라고 해 봐야 주먹 한 방 얻어맞은 게 다면서 뭐가 그렇게 좋다는 건지.
‘아! 혹시 그쪽 성향인가?’
그게 아니라면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할 말은 그게 끝이냐?”
-아니요. 그들을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딱히 별생각 없었는데…… 그래도 나를 죽이러 오셨다니까 얼굴 좀 봐야겠는데, 왜?”
나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화적인 방법을 권해요.
“죽이지 말라고 말하는 건가?”
-네.
최강이 잠시간 고민하다 말했다.
“이유는? 설마 같은 일본인이라고 감싸는 건 아니겠지?”
후후후.
쿡쿡 웃는 나미사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히 아니랍니다. 닌자들의 소속은 쿠미치 일가. 이쪽에서는 뼈대 있는 암살 가문으로 유명한 녀석들이에요. 능력은 두말할 것도 없고요. 최강 씨라면, 기습이라면 모를까 이미 습격을 알고 계신다면 당할 일은 없겠지만, 제가 걱정하는 건 다른 부분이에요 은원에 밝은 편이거든요, 쿠미치 일가는…….
최강이 기다리고 있자 나미사가 말했다.
“그래서?”
-물론 쿠미치 일가가 전부 움직여도 최강 씨께 해가 될까 싶기는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에요. 국제 문제로 번질 가능성 때문이에요.
한마디로 나미사는 최강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였다.
‘귀찮은 일이 생길 테니 피해 가세요~’라고.
최강이 말했다.
“고려해 보지. 끊는다.”
최강이 전화를 끊으려고 할 때였다.
-아, 참 일본에 들르실 예정은 없으신가요? 토와파에…….
나미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깔끔하게 끊어 버린 최강이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그러고 보니 있긴 했었지.”
이틀 전쯤부터였던가?
자신이 밖을 나갈 때마다 따라붙는 녀석들이 있었다. 아마 이 녀석들이 나미사가 말한 닌자들일 가능성이 높았다.
별로 위협적인 움직임을 보인다거나 귀찮게 굴지 않아서 무시했었는데 정씨 문중과 관련이 있었던 것이다.
“어쩐지 고분고분하다 했어.”
조금 반발심이 생길 수 있도록 과한 조건을 걸었는데도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 했었다.
최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히 재미없게 뒤에서 헛짓거리를 해?”
***
다케오는 일본 3대 닌자 가문 쿠미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능력자였다.
3일 전에 한국으로 넘어온 다케오는 4일째로 넘어가기 전날 엄청난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뭐 해? 한국어 못 해?”
“…….”
순간.
정말로 한순간이었다.
500미터는 떨어진 곳에서 움직임을 주시하던 자신이 뒤를 잡힌 것은.
자신이 벽을 느낄 정도의 압도적인 속도.
태어나서 단 한 번밖에 느낀 적 없었던 그런 범접 불가의 속도였다.
쿠미치의 총수를 떠올린 다케오의 뺨을 타고 식은땀이 한 줄기 흘렀다.
‘못 하는 건가?’
극도의 긴장감을 느끼는 다케오와 달리 최강은 여유로웠다.
아니, 정확히는 답답했다.
대화가 되어야지 적당히 혼내 주고 돌아가라고 할 텐데.
질문의 대상이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강이 자신이 서 있는 건물 옥상보다 조금 낮은 건물 옥상에 있는 다른 닌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야, 너도 못 해? 말해 보라니까?”
이번에도 들려오는 말은 없었다.
답답함을 느끼다 못해 짜증을 느끼던 최강의 얼굴이 갑자기 밝아졌다.
방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디 보자, 번호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 최강이 통화 목록의 제일 위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채 세 번이 가기도 전에 통화가 시작됐다.
-전화받았습니다~
나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최강이 말했다.
“생각보다 빨리 받는군.”
-네,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자신이 전화를 넣을 줄 알고 있었다는 반응이었다.
-만나신 거죠? 쿠미치의 닌자들.
“뭐 그렇지. 그보다.”
최강이 궁금한 게 생겼는지 말했다.
“내가 바로 움직이지 않았으면 어쩌려고 기다렸지?”
-음…… 그 부분은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았는데요. 어머, 그러고 보니 이런 게 천생연분이란 거 같기도 하고?
“개뿔…….”
나미사 특유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때요? 조금 유니크한 맛이 느껴지시나요?
“됐고. 기다린 걸 보면, 내가 대충 뭘 말할지 알지?”
최강이 자신의 코앞에서 단검을 찔러 넣으려는 자세 그대로 멈춰 선 다케오의 눈을 바라봤다.
다케오의 눈이 크게 동요했다.
최강이 휴대폰을 다케오의 귀에 가져다 대고 잠시 후였다.
나미사와 남자의 대화가 끊기자 최강이 말했다.
“끝났냐?”
-네.
최강이 나미사의 답을 듣고 무형기를 해제했다. 주변에 멈춰 있던 다섯의 닌자들이 최강을 경계하며 훌쩍 물러나더니 다음 순간 모습을 감추었다.
“뭐라고 말했냐?”
-비밀이에요.
최강이 의심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말하던 중에 그 녀석 표정이 개 같던데, 이상한 거 시킨 거 아니야?”
-천만에요. 저를 믿으세요.
“…….”
찝찝한 얼굴로 잠시간 생각하던 최강이 말했다.
“뭐 그래, 고생했다.”
전화를 끊으려는 최강의 분위기를 느꼈는지 나미사가 말했다.
-잠시만요.
망설이던 최강이 다시 받았다.
“왜.”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는 게 맞죠?
맞는 말이었다. 솔직히 이번에 나미사에게 도움을 받았다.
최소한의 온정은 베풀어 줄 수 있는 지분은 되는 것이다.
“말해 봐. 내 상식이 용납하는 선에서의 요구라면 들어주마.”
***
다음 날 새벽이었다.
다케오는 일본으로 향하는 첫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배, 너무 일을 크게 벌인 것은 아닙니까?”
다케오가 같잖다는 듯이 말했다.
“어차피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는 게 이 바닥 아니냐? 신경 쓰지 마. 우리는 옳은 선택을 한 거다.”
“…….”
옳은 선택.
그렇다. 자신들은 분명히 옳은 선택을 했다. 거기서 거절했다면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을 알지만 여전히 걱정을 완전히 털어 내지 못한 얼굴의 후배가 다케오의 옆자리에 앉는 것이 보였다.
“그 괴물은 뭐였을까요?”
다케오가 어제의 최강과 마주했을 때의 감각을 되새겼다.
“괴물이라……. 하긴 그렇게 말하는 게 가장 적합하겠군.”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던 고립.
처음 느껴 보는 공포였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 다섯 명을 제압한 능력자.
그게 괴물이 아니라면 뭐겠는가?
한 가지 의문이라면 어째서 그런 괴물이 아직도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냐 하는 점이었다.
여하튼 죽을 뻔한 위기에서 살아난 다케오가 털어 버리듯 중얼거렸다.
“토와파에는 신세를 졌군.”
***
비슷한 시각이었다.
정씨 문중의 본가는 아침부터 시끄러웠다.
간밤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바로 조씨 문중과 접견지를 형성하던 분가가 하나 사라진 것이었다.
나미사가 다케오와 나누었던 말.
그것의 결과물이 이것인 것이었다.
손바닥 크기의 목재 가패를 만지작만지작하던 정대욱이 말했다.
“이게 그곳에 있었다는 말이지.”
“예. 1장로님의 시체 위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가패에 그려진 쿠미치의 상징 까마귀.
정대욱은 며칠 전 자신의 이복형이 쿠미치의 닌자를 고용한 것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것을 아는 정대욱이기에 지금 이것이 말하는 바는 정대욱에게 특별했다.
‘소름이 다 끼치는군.’
살수가 고용한 의뢰인을 역으로 찌른다?
신뢰를 기본으로 하는 그 바닥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벌어졌다.
적어도 기습이라는 한정적인 상황이라면 정씨 문중의 분가에 잠입해서 이 사달을 낼 수 있는 쿠미치가 그만큼 궁지에 몰렸다는 말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내전으로 모두 모이라고 해라.”
반대파의 핵심인 자신의 이복형이 반기를 들다 본보기로 죽었다.
끝난 것이었다.
정씨 문중의 패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