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55
55화
당일 오후.
강성훈과 협회장 우범하는 리치가 최종적으로 소멸했던 장소에 있었다.
“이곳이라는 말이지?”
“최강, 그자가 그렇게 말하더군.”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 깊게 파인 거대한 구덩이를 본 우범하가 말했다.
“하긴 이런 걸 봐 버렸으니 안 믿을 수도 없겠군.”
우범하는 일전에도 이것과 비슷한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바로 이씨 문중이 돌발 행동을 벌였을 때였다.
당시에는 전투에 말려든 주변의 위험 건물이 폭발해서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상식적으로 이렇게 큰 흔적을 만들 만한 전투가 발생했었다고 믿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오늘 눈으로 확인해 보니 이 거대한 구덩이는 고작 단 일격.
일격에 벌어진 것이었다.
새삼스럽게 최강의 힘을 알아 버린 우범하의 얼굴이 굳어질 무렵 강성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어떻게 할 텐가? 솔직히 악인처럼 보이지는 않았네.”
“그건 나도 알고 있어.”
강성훈이 말했다.
“그럼 더욱 서두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그 정도의 무인이면 선진국들이 군침을 흘릴 만한 인재야.”
이것도 알고 있는 말이었다.
요즘같이 무인들이 국가의 국력과 직결되는 시대에 무려 50위권 랭커의 최강은 다른 나라들도 탐낼 만한 인재다.
인재를 지켜 낼 만한 완벽한 울타리를 갖추지 못한 한국의 경우에는 자본에 밀려 빼앗길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최강을 스카우트할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머지않아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벌써 움직였을 수도 있겠지.’
돈이라면 차고 넘치는 미국과 중국 등 선진국들이라면 충분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우범하임에도 어쩐지 그의 판단은 쉽게 내려지지 않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최강을 억제할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협회 소속이 아니더라도 개인이라는 무인이 그 국가의 소속인 것만으로도 사실 국가적인 부분에서는 상당한 이득이 있다.
실제로 이번같이 국가 재난 수준의 대균열을 자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나 능력이 부족한 외국에 인력 파견을 통해 역으로 벌어 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억제할 수 없다는 위험도는 너무나도 큰 것이었다.
그 전에 단순히 강성훈과 조중일 등 문중의 수장급들이 최강을 견제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을 때와는 확연히 상황이 달라진 것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우범하가 밀려 나오는 한숨을 애써 삼켜 냈다.
“적어도 한 명만 더 있으면 고민할 이유가 없는데 말이야…….”
***
나미사와 통화를 마친 최강이 구슬에 내력을 주입했다.
파지직. 파지지직.
구슬 안으로 밀려드는 최강의 내력을 밀어내듯 일어나는 검은 기운의 반발을 확인하며 최강이 중얼거렸다.
“과연 정체가 뭐려나?”
단순한 구슬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쉴 새 없이 저리 꺼지라는 듯 자신의 내력을 밀어내는 구슬의 모습이 말해 주고 있었다.
주인을 고르는 구슬?
그딴 게 존재할 리 없었다. 필시 구슬의 형태만 하고 있을 뿐 다른 목적의 물건일 것이었다.
물론 최강이 이토록 확신하는 이유도 있었다.
고려 무신 대대로 사용하던 명검.
청화수가 바로 이런 검이었기 때문이다.
‘어라? 근데 그러고 보니 청화수는 어디 갔지?’
그러고 보니 현대로 온 최강은 청화수를 보지 못했다.
최씨 문중에도 없어 보였고, 정씨 문중도 마찬가지였다.
인정받기만 하면 천하를 얻는다는 풍문이 떠돌 정도로 뛰어난 명검 청화수이다.
그 예기만으로도 충분히 명검 반열에 놓아도 될 만큼 좋은 검이었으니 탐욕스러운 누군가가 분명히 가지고 있을 법도 한데, 이상한 일이었다.
청화수의 행방에 대한 생각을 하던 최강이 번뜩 정신 차린 듯한 얼굴로 구슬을 바라봤다.
‘슬슬 됐나?’
검은색 구슬은 최강의 기운이 주입됨에 따라 하얀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옥에 티가 끼듯 어느덧 검은색 점처럼 작게 남았던 검은 기운이 마침내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을 때였다.
번쩍.
구슬이 빛을 발함과 동시에 외형의 변화가 일어났다.
“책?”
물론 리치 녀석이 사용하던 것만큼 커다란 책은 아니었지만 표지나 분위기는 비슷했다.
책을 집어 든 최강이 표지에 적힌 정체 모를 글자를 눈에 담았다. 분명히 모르는 글자인데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전장의…… 일기장?”
제목을 읽은 최강이 어이없는 목소리를 냈다.
“뭐가 이래?”
허탈감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래도 기대하고 있었는데 누구 씨의 일기장이라니, 김빠진 콜라를 마시는 기분이었다.
그냥 구석으로 휙 책을 던져 버릴까 고민하던 최강이 그래도 고생한 게 아쉬웠기 때문일까, 드러누우려다 말고 다시금 바로 앉아 표지를 넘겼다.
책의 첫 장에는 목차가 쓰여 있었다.
이번에도 외계어처럼 요상하게 쓰여 있는 글자를 최강이 더듬거리며 읽었다.
“데……이빗?”
최강의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렸을 때였다.
데이빗이라고 쓰여 있던 글자가 번쩍이며 사라지더니 동시에 최강의 머릿속으로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휘황찬란한 로브와 스태프를 비롯해 돈 좀 있을 것 같은 민머리의 노년 마법사.
잉크 번지듯 어느새 첫 페이지 전체로 퍼진 새로운 글자들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최강이 말했다.
“역시 대머리일 줄 알았다니까.”
최강이 페이지 전체에 새롭게 쓰인 글자들을 이번에도 음을 따라 읽었다.
‘마나 에센스? 파워 오……라?’
하나같이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문구였다.
“아, 그때!”
최강의 머릿속에 언데드들을 강화시키기 위해 주구장창 외치던 리치의 모습이 떠올랐다.
“표지에 적힌 이게 그 뜻이었나?”
전장의 일기장.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대충 어떤 물건인지 알 것 같았다.
최강이 익숙한 단어 하나를 소리 내어 읽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 확인해 보기 위함인 것 같았다.
“다크 스피어.”
손바닥 위로 거대한 창이 하나 생성되는 것을 확인한 최강이 주저 없이 책을 덮었다.
번쩍이며 책이 사라졌다. 다크 스피어도 마찬가지였다.
최강의 손바닥 위에는 다시 하얀 구슬이 있었다.
“자신이 처치한 적의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거지?”
용도도 편리하고 어떤 식으로 사용해야 하는지도 대충 감이 잡혔다. 하지만.
“차라리 검이나 창 같은 거였으면 더 좋았을 거 같은데…….”
솔직히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애초에 고려 시대에 군권을 지휘하는 지휘관이었다면 그나마 쓸모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자신이 이 물건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일단 가지고 있어 볼까?”
주머니에 못마땅한 얼굴로 구슬을 집어넣은 최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속대로 사무실에 출근하기 위함이었다.
***
“그래서요? 진짜 이거뿐이라구요?”
“그래.”
주소희가 구슬을 가지고 이리저리 살피는 것을 확인하고는 최강이 손바닥을 그 아래 쓰윽 내밀었다.
“앗, 따거.”
파지직 소리를 내며 저항을 일으킨 구슬이 최강의 손바닥 위로 툭 떨어졌다.
‘그럼 그렇지.’
최강이 손 위에 떨어진 구슬을 주머니에 다시 집어넣고는 말했다.
“그래서 무슨 일은 없었고?”
따가운지 자신의 손을 비비며 바라보던 주소희가 말했다.
“그, 협회에서 전화가 왔었어요.”
“무슨 전화?”
“그건 잘 모르겠구요. 그냥 최강 씨를 찾길래 오후에 출근할 거라고 말해 줬더니 그냥 끊더라고요.”
생각이 복잡해졌다.
‘뭔 일이래?’
리치의 사냥이 있었던 때로부터 불과 반나절이 조금 지난 상황이었다.
“반나절 동안 뭔가 있었을 거 같지는 않고…….”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을 찾을 일이 없을 것 같자 최강이 포기하고 화제를 전환했다.
최강이 저 멀리서 설거지나 깨작이고 있던 최성주를 바라봤다.
“이봐, 최성주 씨.”
“저…… 저 말이십니까?”
“그래요, 그쪽이요.”
뭔가 감격스러운 얼굴로 반응한 최성주가 급히 달려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선생님.”
부담스러운 느낌을 무시한 최강이 말했다.
“혹시 청화수라고 아십니까?”
“청화수……? 그게 뭡니까? 삼다수라면 압니다만.”
부리부리한 커다란 눈동자를 바라본 최강이 한숨 쉬며 돌아가라는 듯 손짓했다.
“네, 재미없었구요. 하던 거 마저 하세요.”
최강이 자신의 말에 풀이 죽어 싱크대로 돌아가는 최성주의 등짝을 보고 생각했다.
‘4장로면 나름 지위 좀 있는 건데 모르는 건가?’
곤란한 얼굴로 잠시간 생각하던 최강이 하는 수 없이 다음에 최해성에게 물어보기로 하고 생각을 정리했을 때였다.
슬쩍 말을 걸어오는 주소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그런데 최강 씨, 이것도 무형기예요?”
최강이 주소희가 보여 주는 노트북의 화면을 바라봤다. 화면에는 오늘 새벽에 리치와 싸우던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아, 이런 식으로 본 건가?’
언제 봐도 현대 문명은 참 신기했다. 다양한 각도와 축소와 확대가 가능한 것을 봤을 때 단순한 카메라 촬영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미사의 말뜻을 이제야 어느 정도 이해한 듯한 얼굴로 최강이 말했다.
“뭐, 일단은 그렇지.”
“그럼 저희도 이렇게 할 수 있는 거예요?”
최강이 일제히 무릎 꿇은 수십만 마리의 언데드를 슬쩍 봤다. 자신이 한 거였지만…….
‘좀…… 멋있네…….’
넋 놓고 보고 있던 최강이 번뜩 세 사람의 시선을 느끼고 헛기침했다.
“큼…… 뭐, 일단 최종적인 단계에 이르면 가능하겠지. 규모적인 부분에서는 차이가 날 수도 있겠지만.”
“얼마나요? 얼마나 차이 나는데요?”
골똘히 생각하던 최강이 말했다. 솔직히 이 부분은 자신도 확신이 없었다. 무형기의 응용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특기였고, 일반적인 경우에 얼마나 되는지는 감이 안 잡혔기 때문이다.
최강이 눈치 보며 슬쩍 말했다.
“100분의 1 정도까지는 할 수 있지 않을까?”
“…….”
혹시 모르니 최소한의 범위로 잡아 말한 거긴 한데 반응이 차갑자 최강이 속으로 생각했다.
‘너무 적게 말했나?’
최강이 세 사람의 눈치를 보고 있을 때였다.
주소희를 비롯한 나머지의 얼굴이 밝아지는 모습이 보였다.
“진짜요?”
아니 가르쳐 달래서 가르치는 입장에서 어째서 눈치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안심한 최강이 말했다.
“그래.”
“저, 수련 열심히 할게요.”
주소희가 사무실에 따로 만들어 놓은 어항 쪽으로 향하려고 할 때였다.
“잠깐!”
“왜요?”
최강이 주소희를 불러 세우며 말했다.
“그거는 이제 따로 연습하는 걸로 하고.”
최강이 이미 금붕어 단계를 졸업한 류세란과 최말숙을 슬쩍 보고는 말했다.
“오늘은 2단계를 시작하자.”
“2단계요? 그게 뭔데요?”
최강이 말했다.
“유형기다.”
***
유형기를 전수하기 위해 외출을 하려던 최강은 여전히 사무실이었다.
나가려던 찰나, 갑자기 누군가 사무실로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갑자기 어쩐 일이십니까?”
책상 위에 차를 대접한 최말숙이 슬쩍 물러나자 최강이 맞은편으로 시선을 옮겼다.
협회장 우범하의 모습이 보였다.
그렇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사람은 협회장이었다.
“대화를 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말을 들은 최강의 표정이 묘해졌다.
‘대화?’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뜬금없이 대화라니 생뚱맞았지만 최강이 내색하지 않고 되물었다.
“대화라면 어떤 거 말입니까?”
최강의 물음에 답하기에 앞서 차를 살짝 홀짝이고 잔을 내려놓는 우범하의 모습이 보였다.
“그냥 뭐, 간단합니다.”
“…….”
우범하의 말에 ‘그러니까 그 간단한 게 뭔데?’라고 묻고 싶었지만 최강이 별말 없이 침묵하자 잠시 후 우범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가령 한국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