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56
56화
‘뭐야, 갑자기?’
조금 당황한 듯한 얼굴의 최강이 말했다.
“그냥 질문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겁니까?”
우범하의 끄덕여지는 고개를 본 최강이 진지하게 생각했다.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냐라……?’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처음에 이곳에서 눈을 떴을 때는 먹고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주소희를 만나서 해결이 됐다.
그리고 약 반년 전부터는 마땅한 목적 없이 그냥 시간만 보내왔다.
복수의 대상도 남아 있지 않았고, 지킬 사람도 지킬 국가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범하의 질문에 처음으로 최강이 진지하게 자신을 다시 돌이켜 생각해 봤다.
자신이 신하로서 섬기던 나라는 고려.
그건 지금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그런 의미에서 애국심이 있느냐 묻는다면 답은 간단했다.
‘아니요.’
그렇다면 질문을 조금 바꿔서 한국이라는 나라에 살아가는 입장으로서 ‘애착이 있느냐?’라고 물어본다면 어떨까?
‘없다.’
이번 답 또한 매우 부정적이었다.
하기야 1년 남짓 살았다고 해서 애국심이라느니 애착이라느니 생길 리가 없었다. 막말로 한국이 아니라 다른 외국에서 눈을 떴더라도 그곳에서 그러려니 하고 적응하며 살았을 것이다.
최강이 우범하의 말에 답했다.
“생활면에서 물어본 거라면 살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교통도 편하고 편의 시설도 많고요. 다만 애국심 쪽을 물어본 거라면 솔직히 별로 떠오르는 생각이 없군요.”
실망한 우범하의 얼굴이 보였다.
하지만 딱히 미안하다거나 그런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솔직한 감정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그럼 애초에 물어보지를 말든지.’
최강이 괜히 침울해지는 우범하를 보고 이같이 생각할 때였다.
우범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강 씨.”
“네.”
“그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이 나라에 소중한 사람이 있으십니까?”
최강이 주소희를 비롯한 녀석들을 천천히 훑었다.
먼저 주소희.
‘식모.’
그다음은 최말숙.
‘딸?’
마지막으로 류세란을 본 최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원.’
그나마 인간관계랄 거 같은 녀석들이었는데 소중하다는 느낌까지는 들지 않았다.
‘뭐, 확실히 정은 들긴 했지만.’
최강이 말했다.
“짐 덩어리는 몇 개 있습니다만.”
최강의 말을 들은 우범하가 말했다.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최강 씨가 어디에 계시든지 저는 같은 한국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겠습니다.”
최강이 우범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미는 악수를 받았다. 단념한 듯한 우범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난밤의 리치 건은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
우범하가 사무실 건물 앞에서 대기 중인 차에 올랐다.
기다리던 사무관이 말했다.
“무슨 놔두고 가신 물건이라도 있으십니까?”
우범하가 쓰게 웃었다.
“아니네.”
우범하의 웃음을 본 사무관이 말했다.
“설마…… 벌써 대화가 끝난 겁니까?”
우범하가 들어간 지 채 10분이 지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대화다운 대화도 나누지 않고 끝이 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쉽지만 그렇게 됐네.”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참 못됐습니다.”
“너무 나무라지 말게. 현대사회에 마냥 애국심을 기대하는 것도 못 할 일이긴 하지.”
“하지만…….”
우범하도 사무관이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는 알았다.
실제로도 가능성이 보인다면 정에 호소해서라도 대화를 길게 끌어갈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면에서 보더라도 최강의 대답은 가망이 없었다. 구차하게 그곳에서 대화를 빙 둘러 이야기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마저도 의미 없다고 판단이 될 만큼 말이다.
아쉽긴 하지만 최강을 놓는 것이 맞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었다.
최강이 남겠다면 뭐라고 할 맘은 없지만 거액을 들여 가면서까지 최강을 지켜 낼 만한 가치가 우범하의 입장으로서는 사라진 것이었다.
서로를 위한 선택을 한 것이었다.
멈춰 있던 우범하의 차가 출발했다. 창으로 내려다보고 있던 최강이 그 모습을 보고는 말했다.
“고작 그거 물어보려고 온 건가?”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질문이었다.
본인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뭐가 중요하다고 여기까지 와서 그런 말을 한다는 말인가?
최강이 창가에 서 있다가 돌아서자 주소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저…… 최강 씨.”
“왜?”
“혹시 이민 가실 건 아니죠?”
최강이 웬 헛소리를 하냐는 듯한 얼굴로 되물었다.
“갑자기 뭔 놈의 이민?”
주소희가 황급히 손을 내밀고는 말을 마쳤다.
“아니에요.”
***
우범하가 사무실에 들른 날로부터 3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현재 대한민국 내에는 주소희가 우려했던 대로 한 가지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바로, 프리저의 이민설이었다.
물론 이 같은 추측성 글이 이전에는 없었느냐 묻는다면 그것은 또 아니었다.
이런 주장은 최강이 리치를 사냥한 직후부터 계속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민설이 갑자기 확 지지를 얻을 계기가 있었다는 말이었다.
바로, 이틀 전 리치의 사냥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말이다.
그날 한 기자는 회견장에서 우범하에게 이렇게 질문했었다.
50위권 고위 랭커로 예상되는 최강을 정부와 협회가 자본을 풀어 지켜 낼 심산이 있는지 말이다.
그리고 논란은 이 질문에 우범하가 이렇게 답하면서 시작되었다.
‘최강(프리저)과의 대화가 있었다. 하지만 긍정적인 이야기가 오가지는 못했고, 서로를 위한 선택을 하게 되었다’라고 말이다.
쉽게 말해 한국 정부의 최강 지키기 포기 선언이었다.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든지 랭커를 영입하려는 해외에 빼앗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었다.
때문에 국민들은 분개했다.
다른 나라에서 돈을 줘서 사 오지는 못할지언정 있는 건 지켜야 되는 것 아니냐는 한탄 섞인 말이 끊이지 않았고, 동시에 바로 며칠 전에 거대한 재앙에서 구해 준 영웅을 홀대한다면서 무능한 정부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온 국민이 냉담한 결과에 한숨 쉴 때.
사건의 당사자는 세상 평온한 상태였다.
“최강 씨, 어때요?”
유형기 수련 3일 차.
최강이 주소희의 손바닥 위에 나뭇잎이나 띄울 법한 옅은 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확인하고 말했다.
‘풍기(風氣)라…….’
이상한 일이었다.
일반적으로 선천기를 모든 사람이 다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런 사람들은 극히 일부다.
애초에 모두 다가 선천기를 타고난다면 유력 명문가나 토착 세력이 형성될 이유가 없는 노릇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주소희에 앞서 유형기를 터득하는 데 성공한 최말숙도 그렇지만, 확실히 이 두 사람은 속성이 있었다. 그것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풍 속성이었다.
천주갑 때문에 일어난 간단한 해프닝이었지만 새로 얻게 된 천주갑의 능력까지는 알지 못하고 있는 최강으로서는 신기한 상황인 것이 분명했다.
‘뭐, 잘됐나?’
최강이 머리를 긁적이다가 마지못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류세란에게 시선을 옮겼다.
침통한 얼굴의 류세란이 보였다. 아마도 일전의 주소희와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무(無) 속성.’
어찌 보면 가장 흔한 경우인데 두 사람의 사이에 끼어서 이상한 상황이 되어 버렸으니 안타까울 뿐이었다.
최강이 류세란의 머리에 손을 얹고는 말했다.
“거기 두 사람은 옥상으로 올라가서 수련하도록 한다.”
“네.”
주소희와 최말숙이 사무실을 빠져나가자 류세란이 말했다.
“저는 못 배우는 건가요?”
“물론 못 배우지, 유형기는.”
시무룩해지는 류세란을 보고는 최강이 픽 웃었다.
“유형기가 뭔지는 알고 실망하는 거냐?”
체내의 기가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한 상태의 모습.
대충 설명을 들어서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
류세란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자 최강이 말했다.
“무형기와 유형기, 의형기. 이게 생겨난 계기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해 줄 테니 듣도록.”
“네.”
“예전에 고려 시대에 무명의 무인이 있었다. 무인의 이름은 척준경.”
최강의 눈에 류세란의 얼굴이 바뀌는 것이 보였다.
“왜? 알아?”
“네, 당연하죠. 설마 그 이름이 나올 줄은 몰랐지만.”
최강이 잘됐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그의 특기가 뭐였는지도 알고 있으려나?”
“아니요.”
“무형기.”
최강의 말을 들은 류세란의 얼굴에 호기심 섞인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필마단기로 쳐들어가 적장의 수급을 취해 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 준 최초의 무형기의 사용자였다.”
“그래서요? 그게 유형기와는 무슨 관련이 있는데요?”
“관련이 있지. 척준경 그자도 무 속성이었거든.”
류세란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요?”
“그래. 유형기라는 단어는 여진 정벌을 시점으로 전공을 올리며 두각을 나타냈던 척준경이 고려로 돌아와 휘하 장졸들에게 가르침을 전수하면서 생겨난 단어. 즉, 무형기에서 의형기로 넘어가기 전에 몇몇 장졸들에게 나타나는 이 현상을 체계화하면서 생겨난 단어라는 말이야.”
무형기와 의형기 원류는 이것 두 가지라는 것을 들었지만, 그래도 유형기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렸는지 류세란이 말했다.
“그…… 그래도 유형기는…….”
최강이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그래, 강하지. 확실히 가장 몸에 잘 맞는 옷을 입은 격이니까 위력도 강력한 편이고 효율도 좋아. 하지만 질문! 의형기로 유형기를 발현할 수 있을까?”
“있는 거군요?”
최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형기는 의형기의 맛보기 같은 거니까.”
사실 의형기를 제대로 터득하기만 하면 유형기를 터득한 것과 다르지 않다는 최강의 말을 들은 류세란의 얼굴이 밝아졌다.
“너는 지금부터 조금 힘들겠지만 의형기를 배우면 된다 이 말이지.”
***
이틀 전부터 최강의 주변을 서성이는 사람이 있었다.
검은 선글라스를 쓴 흑인 남성.
바로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한국으로 온 제이스였다.
“그냥 들어가면 되는 거 아니야?”
제이스가 뒤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뒤돌았다.
금발의 백인 여성이 제이스의 눈에 보였다. 필요 없다니까 구태여 자신을 따라나선 자신의 동료였다.
제이스와 마찬가지로 10년 전 유니크 무기를 얻어서 함께 1군 멤버로 승격한 인원 중 한 명이었다.
동네 슈퍼에서 산 듯한 막대 바를 먹는 여성에게 제이스가 말했다.
“방해가 들어오면 다 된 일도 실패할 수 있는 거다.”
“네네…… 어련하시겠어요.”
벌써 이틀 동안 최강이 혼자가 되길 바라며 기다리던 참이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제이스가 여자의 말을 무시하며 사무실 근처를 지키고 있자 잠시 후 최강의 모습이 보였다.
“참 잘생겼단 말이지.”
“시끄럽고, 부탁한 일이나 잘해.”
“알겠거든?”
여자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제이스가 어디론가 향하는 최강에게 다가갔다.
자신을 스쳐 지나가려는 최강을 제이스가 막아섰을 때였다.
바람처럼 갈라지더니 순식간에 자신을 스쳐 이동하는 최강의 모습을 확인한 제이스가 자신도 빠르게 최강을 따라 달렸다.
과연 50위권 랭커답게 이전에 그림자조차 쫓지 못하던 이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 제이스가 달리던 최강의 앞을 점해 최강을 멈춰 세웠다.
“잠시 대화 좀 합시다, Mr. 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