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61
61화
내 이름은 리정인. 북에서 파견된 남파 공작원이다.
내가 남에 파견되면서 받은 지령은 비교적 간단하다.
부름이 있을 때까지 남조선에서 대기.
벌써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당에서는 아직까지 연락이 없다. 근래에 평양에서 대규모 소란이 있었다던데 그것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
“야, 띠움!”
띠움.
그래, 그렇다.
내가 남조선에서 쓰고 있는 작전명이다. 특유의 까무잡잡한 피부 덕에 완벽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내가 나의 작전명을 부르는 녀석을 바라봤다.
나를 부른 건 다행히 한 달 전쯤부터 혹시나 생길 수 있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친하게 지내기 시작한 녀석이다.
“치우, 불러써?”
“불렀어?”
녀석의 손바닥이 나의 뒤통수를 후린다.
“불렀어는 반말이고, 짜식아!”
꽤나 강력한 통증이 뒤따른다.
분명히 피하려고 했는데 못 피한 결과였다.
북에서는 몸 쓰는 것이라면 최고로 손꼽히던 나였는데 남조선은 그야말로 미스터리하다. 내가 얽히는 사람들은 주로 최하층 사람들.
하지만 이럴 때마다 가끔씩 정체성에 혼란이 올 때가 있다.
내가 반응할 수 없는 공격을 해 오는 사람을 벌써 두 번이나 만났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몬스터란 게 뭐냐?”
“몬스터?”
언젠가 들어 본 듯한 질문이다.
‘언제였지?’
그렇군.
약 1년 전쯤에 최강이란 녀석도 이런 걸 물어봤었다.
내가 국밥 가게의 TV를 확인했다.
TV에서는 몬스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이거였구만.’
내가 몬스터와 무림인에 대해서 최대한 설명해 주고는 말을 마쳤다.
“치우도 관심 이쓰면 해 바. 예전에 다른 녀석도 내 말 듣고 무림인해서 대박 나써.”
내가 과장된 리액션으로 따봉을 날려 주자, 최지우라는 이름을 가진 녀석의 표정이 진지해지는 것을 보고 내가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도 이 녀석도 최씨네?’
앞으로 최씨 성을 가진 녀석은 가급적 피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남은 숟가락을 들었다.
***
에취!
때마침 오사카 공항을 막 빠져나온 최강이 재채기했다.
“누가 내 욕 하나?”
여전히 조금 근질근질한지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빈 최강이 주변을 돌아봤다.
비행기에 탑승한 지 불과 한 시간 반 정도.
솔직히 일본이란 것이 별로 실감 나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일어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최강이 주소희에게 말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데?”
“배편을 이용할 거예요. 잠깐만요.”
최강의 질문에 답한 주소희가 지나가는 행인을 쪼르르 따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서툰 발음을 제외하면 제법 완성도 있는 일어가 들려왔다.
‘아마도 이 녀석을 본 후로 처음이지?’
이렇게 믿음직하게 느껴지는 날이 올 줄이야.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뭐라는데?”
“이쪽이래요.”
행인이 알려 준 길을 따라 이동한 최강은 그리 오래지 않아 배에 올랐다.
그리고 한 시간 후였다.
배에서 내린 최강을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최강 씨!”
고베 쪽에서 만나기로 했던 나미사였다.
나미사는 지난번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처음 만났던 복장이었다.
흑색 바탕에 작은 연꽃이 수놓아진 기모노였다. 첫 만남과 비슷한 녀석의 복장을 보고 있자니 그날 일이 다시 떠오른다.
분명히 악연이었을 만남이었는데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다니, 솔직히 사람 일이란 게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란 걸 다시 한번 느낀다.
나미사의 앞까지 다가간 최강이 말했다.
“오랜만이네.”
“보름 있다가 가실 거라고 그러셨죠?”
“뭐 일단은 그렇지. 근데 오늘은 그 녀석들은 없냐?”
하야토를 비롯한 백귀대가 보이지 않았다.
나미사가 눈웃음치며 말했다. 남자 여럿 홀릴 법한 미소였다.
“하야토는 몰라도 백귀대는 제가 부리는 녀석들이 아니라구요.”
“그럼 하야토인가 하는 녀석은 어디 갔는데?”
“…….”
최강이 자신의 질문을 받은 나미사의 얼굴에 찰나간의 생각이 스치는 것을 목격했다.
“그냥 방해될 것 같아서 안 데리고 왔어요.”
“그래?”
물론 3자가 보기에는 자연스러운 대화였을 것이다. 나미사가 답변한 것은 거의 반자동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최강은 알 수 있었다. 하야토인가 하는 녀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녀석의 미세한 눈빛의 변화를 보면 하야토의 부재가 자의가 아닌 타의임을.
‘혹은 외부적인 요인일 수도 있으려나?’
최강이 이것과 관련해서 잠시간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나미사가 최강의 옆에 있는 최말숙을 보고 말했다.
사복 차림인 주소희와는 달리 최말숙은 최강과 같은 디자인의 추리닝을 입고 있었다.
“혹시 이 아이가 그때 말씀하신 그 딸인가요?”
“어. 왜?”
나미사가 최말숙을 관찰하듯 살폈다.
“음…….”
아무리 뜯어봐도 최강과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음을 느낀 것인지 나미사가 말했다.
“의외네요.”
“뭐가?”
“전 부인분이 서양 쪽 사람일 줄은 몰랐거든요.”
“…….”
최강이 조용히 최말숙의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금발을 바라보자 나미사가 말했다.
“그 왜, 항상 국산파, 국산파, 그러셨잖아요.”
최강은 나미사가 무슨 오해를 했는지 알았지만 구태여 설명하지 않았다. 귀찮았기 때문이다.
별다른 말을 해 올 줄 알았는데 최강이 답이 없자, 나미사는 검지를 입술 아래 대고 고민하고 있었다.
잠시 후 무언가 생각난 얼굴을 해 보인 나미사가 장난기 넘치는 웃음을 그리며 입을 뗐다.
“아니면 입으로는 그렇게 말해도 몸은 전혀 다른 몸이 돼 버리셨다거나?”
나미사의 농담을 들은 최강이 잠시나마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나 걱정했던 자신을 후회했다.
‘그래도 큰일은 아닌가 보네.’
최강이 나미사를 꾸짖듯 말했다.
“일단 애도 있는데 수위는 좀 신경 쓰자.”
나미사가 ‘아차’ 하는 얼굴로 입을 한쪽 손바닥으로 막았다. 보아하니 자신도 모르게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것 같은 분위기가 다분했다.
나미사가 최말숙에게 살짝 허리를 숙여 속삭였다.
“오해하지는 말아 주렴. 원래 이런 저속한 사람은 아니란다?”
나미사의 말을 들은 최강이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거짓말 치시네.’
그동안 밥 먹듯이 자신을 희롱해 왔던 나미사의 본모습을 자신은 알고 있는 것이다.
최말숙이 상긋하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은 것이와요. 저도 농담이란 것쯤은 아는 것이에요.”
“어머, 그러니?”
나미사가 대화를 마무리하고 허리를 펴는 것이 보였다. 대충 인사가 끝난 것 같자 최말숙과 반대편에 있던 주소희를 슬쩍 흘긴 최강이 말했다.
“넌 인사 안 하냐?”
“아까 했어요.”
“아까?”
최강이 조금 전에 나미사와 눈인사를 가볍게 나누던 주소희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말했다.
“그래서 니시키 도장인가 하는 곳이 어딘데?”
***
주소희는 나미사가 대기시켜 놓은 차를 타고 니시키 도장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휴…….
주소희가 한숨 쉬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기분이 안 좋았기 때문이다.
최강의 지인이 고베 쪽에서 합류할 것도, 또 보름간 함께할 것이라는 것도, 그리고 그 지인이 나미사라는 이름의 여자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쁠 줄이야…….’
다시 말하지만 주소희는 본인이 한 미모 한다고 자부한다. 그렇기에 평소의 추레한 추리닝에서 탈출한 지금이라면 자신 있었다. 나미사라는 여자를 만난다면 제대로 기죽여 놓을 자신이 말이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오만이었다. 나미사는 좀 많이 예뻤다. 처음에 했던 툭 튀어나온 농담을 제외한다면 나미사는 흠잡을 데 없이 기품 있고 멋진 여성이었다.
“무슨 할 말 있으신가요?”
“아니요.”
시선을 느낀 나미사의 물음에 고개를 휙 돌린 주소희가 조용히 한숨 쉬었다.
그렇다. 알고 있다. 자신이 이렇게 나미사를 의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최강을 좋아하기 때문.
처음 눈치챘을 때는 솔직히 좀 놀랐다.
자신이 난생처음 좋아하게 된 사람이 최강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부정할 수는 없었다. 최강과 류세란이 붙어 있는 걸 볼 때마다 묘하게 심술부리고 싶고, 최강이 칭찬해 주면 또 그렇게 기분이 좋다가도 야단맞으면 기분이 안 좋아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나미사와 하하호호 떠드는 세 사람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하다.
이러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최강을 좋아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주소희의 이러한 생각과 마찬가지로 나미사의 속도 여유롭지만은 않았다.
주소희 역시 여자가 봐도 매력적인 여성임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세련된 느낌의 지적인 여성.
나미사가 본 주소희는 딱 그런 느낌이었다.
최강을 좋아하는 만큼 최강의 옆에 있는 주소희가 신경 쓰이는 것이다.
궁금하면 물어보면 되지 않느냐고?
물론 나미사도 처음에는 그럴까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아니, 말하지 말자.’
곧이어 포기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최강 때문이었다.
자유분방한 성격의 최강이 주변의 여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여자를 좋게 평가할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감점 요인이 될 수도 있어.’
치밀한 계산을 전제로 다시 한번 결론을 내린 나미사가 생각했다.
‘일단 조용히 있자.’
***
한 시간 남짓 이동하던 차량이 정차했다.
차에서 내린 최강이 주변을 돌아봤다.
일본 특유의 누각이라거나 전통 가옥들이 눈에 들어왔다.
최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생각했다. 그냥 그저 그런 관광지의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생각하던 이미지는 아닌데?’
그래도 ‘니시키 도장’이라는 이름처럼 그에 걸맞은 분위기를 예상했었던 것이다.
기념품을 사고파는 사람들과 여행객들이 즐비한 주변을 살피던 최강이 나미사에게 말했다.
“여기가 니시키 도장이냐?”
“아니요. 그럴 리가요.”
다행이었다. 아니란다.
최강이 나미사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고개를 틀었다.
“여긴 니시키 도장 인근에 형성된 상권 느낌이라고 보시면 돼요. 진짜는.”
나미사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은 산 중턱까지 이어진 계단이었다.
“저 위에서부터 시작이죠.”
최강이 앞장서 걷기 시작하는 나미사를 따라서 걸을 때였다.
앞장서 걷던 나미사가 말했다.
“그런데 도장 깨기 규칙은 알고 계신가요?”
“그래, 대충은.”
최강이 말했다.
“하루에 한 번밖에 대련이 안 된다며?”
“네, 맞아요. 그 외의 것은요?”
“다른 것도 있어?”
“네.”
나미사가 말했다.
“일단 니시키 도장에는 총 6단계의 직위가 있어요. 견습 수련생, 수련생, 문도, 부사범, 사범, 총사범. 이렇게 되죠.”
“그래서?”
“처음 도전하는 자는 무조건 견습 수련생 단계에서부터 시작해야 해요. 그리고 각 단계에서 2승씩 챙겨야 다음 단계의 도전이 가능하죠.”
최강이 이해했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마디로 총사범하고 싸우려면 최소 10일 후에나 가능하다는 건가?”
“그렇죠.”
생각보다 번거롭기는 한 거 같았지만 애초에 보름 일정으로 잡았다.
별문제 없다고 판단한 최강이 잠시간 생각에 잠겼다.
‘어디 보자…….’
나미사를 분석하듯 바라보던 최강이 말했다.
“나미사, 네가 만약에 니시키 도장의 소속이었다면 어느 정도 수준이나 되지?”
“음…….”
최강의 질문에 잠시간 생각하던 나미사가 말했다.
“솔직히 어려운 질문이네요.”
최강이 궁금한 말투로 말했다.
“왜?”
“그게, 니시키 도장에는 사실적인 랭커가 현 총사범 타쿠마 씨밖에 없어요. 그 아래 스무 명의 사범 라인이나 100명의 부사범 중에도 랭킹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죠.”
“인재가 없다는 뜻이야?”
“아니요. 그럴 리가요. 생각해 보세요. 올해로 100살을 넘긴 타쿠마 씨가 아무리 정정하시다지만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총사범직을 물려받을 사람이 사범 중에서 나올 텐데 약할 리가 있겠어요?”
“하긴. 일리 있군.”
최강이 납득하자 나미사가 말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사범진의 상위 열 명의 평균값을 80위권, 하위 열 명의 평균을 90위권 정도로나 보고 있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에요.”
“뭐 결국 요약하자면 이거구만? 오차 범위가 너무 넓어서 대답하기 힘들다는 말, 맞지?”
“네.”
최강은 나미사가 저렇게 말했지만 솔직히 그녀를 높이 사고 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일단은 최강의 천지 가르기를 막아 낸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멋대로 나미사를 사범급 하위권 수준 정도로 단정 지은 최강이 주소희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역시 저 정도는 돼야지.’
“뭐…… 뭐예요?”
최강이 씩 웃으면서 말했다.
“있다. 그런 게.”